|
https://m.blog.naver.com/viking999/40094777265
[불교입문 11] 경제와 계율 / 정병조
초기 불교교단의 경제적인 면을 중심으로 하여 사찰의 확보와 그 사찰의 운영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교단이 발전함에 따라 서서히 사원을 갖게 된다. 이 사원은 물론 출가자들이 공동으로 수련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출가수행자들이 자력으로 이것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주로 독지가들의 희사에 의해서 이와 같은 것이 이루어졌다
기원정사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는 기원정사에 얽힌 것이다. 기원정사란 인도의 북부지역 코살라의 영토 안에 있는 절이다. 그 내력에 대해 불교경전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코살라국에서 진리의 법을 펴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수달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특히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보시를 하였다. 그래서 별명이 급고독장자였다고 한다. 고독한 이들에게 옷, 음식물, 금전 등을 많이 베풀었던 까닭에 그러한 이름으로 불려졌다. 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재가 신도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장자는 부처님이 있는 곳에 와서 참배를 하고 부처님이 나무 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을 보았다. 기수급고독장자는 가슴이 아팠다 위대한 분을 저렇게 소홀히 모실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자신의 원을 세웠다. "저분을 위해서, 저분의 제자들을 위해서 자그마한 집이라도 마련해 줄 수 있기 를....." 그는 돈 많은 장자였으므로 코살라 내에서 가장 좋은 땅이 어디 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땅은 기타태자의 별장이 있는 곳이었고, 팔지도 않으려 하였다. 장자는 끈질기게 매달려서 그 땅을 팔기를 간청하였다. 그 별장의 주인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왜 이 땅을 사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천금을 주어도 팔지 않겠소. 만약 이 땅을 전부 금으로 덮는다면 내 팔리다." 주인은 그렇게 농담처럼 말하고 외출을 하였다. 그가 돌아와 보니 장자가 온 정원과 동산을 온통 금으로 깔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서 기겁을 하였다. 그러자 장자는 말하였다. "이미 말씀하셨지요? 이 땅을 황금으로 뒤덮으면 팔겠노라고....." 그 주인은 탄복하였다. "이 세 상 사람들은 황금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버리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는 일이 허다하오. 사람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쉽게 버리려 합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럽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부처님을 존경합니다. 그분은 이와 같은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이 땅을 사서 그분이 머 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주인도 그 말에 감복하여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이 어떤 사람인지 본 적은 없지만 당신이 그토록 존경하여 이 땅을 황금으로 뒤덮을 정도이니, 그는 분명 위대한 성인인가 보오. 나도 그 분께 이 동산의 숲을 바치고, 이제부터 당신을 따라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급고독장자와 기타태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기수급고독 원, 줄여서 기원정사라고 불리고 이 사원은 이렇게 하여 성립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 기원정사의 터는 실라벌 이라고 한역되는 쉬라바스티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기원정사에는 부처님의 설법 터가 남아 있고, 부처님이 직접 물을 마셨다는 우물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아난다가 기념식수를 했다는 아난다 보리수가 서있다. 절터의 규모로 볼 때, 매우 컸던 절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훌륭한 절이다. 불교교단 최초의 절은 영축산정 밑에 있었던 죽림정사로, 그 곳은 우루벨라라고 불리었다. 기원정사는 그보다는 후기의 절이지만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사원은 그 성격으로 보았을 때, 차이티야(caityal)와 비하라 (vihara)로 나눌 수 있다. 차이티야는 예배소, 예배당에 해당하고, 비하라는 정사가 된다. 그러므로 차이티야는 불교적 예배를 위한 곳이고, 비하라는 스님들이 머무는 승방이다. 또 인도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해 석굴 사원이 많이 있다. 세계의 미술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아잔타, 엘로라 등의 석굴이 남아 있다. 더운 지역이기에 굴을 파서 만든 이러한 석굴 사원은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였기 때문에 많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생존 당시에는 그런 석굴 사원은 출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잔타 석굴의 경우, 기원전 3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도 있다. 불상이 없었던 시대, 즉 간다라 예술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의 석굴 사원들이 상당히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부처님이 입멸하고 나서 아쇼카 왕이 등극하였던 시점에 인도의 석굴 사원이 많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석굴 사원을 건립하는 데는 엄청난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했으리라고 본다. 이것은 적어도 국가적인 배려 내지는 수많은 부유한 이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거의 불가능했던 역사였을 것이다.
불교교단에 시여, 보시하는 경제물들은 주로 우바이, 우 바새들이 맡았고, 출가수행자들은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는 이원적이고 이중적인 구조로 초기 불교교단의 경제가 운영되었다. 더군다나 스님이 지켜야 할 계율로서 금은 보화 같은 것을 손으로 만지는 일이 엄금되었다는 것이 율장에 나타난다. 그것을 통해 보았을 때, 교단의 경제를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마도 재가신자들의 몫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된다. 부처님의 열반 후 다비를 하였을 때, 한량없는 진신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의 불교국이었던 나라의 군왕들이 이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탑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탑이란 인도말로 스투파에 해당한다. 이 스투파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가 일어날 즈음이 되는 기원전 2-3세기경이 되면 탑들이 여러 곳에 세워지게 된다. 그것은 기존의 차이티야나, 비하라와는 다른 형태로 운영, 조직될 수밖에 없었다. 즉 차이티야와 비하라가 기성 불교교단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스투파, 즉 탑 지역은 기성 교단의 통제에서 벗어난 별도의 기구로서 생겨나게 된 것이다.
스투파 지역은 불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참배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순례의 코스가 되는 곳이다. 부처님이 사리의 형태로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곳을 찾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보니 점차 보시되는 물건이 생겨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스투파 지역을 청소한다든지 향을 피워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점차 기성 교단과는 별개로 스투파 지역을 중 심으로 하는 출가자도 아니고 재가자도 아닌 또 다른 형 태의 그룹들이 생겨났다.
초기 불교의 윤리적 실천 앞서 언급했듯이, 불교교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집단이었다. 승가는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었다. 신분. 계급. 인종 등의 차별을 두지 않고 어느 누구든지 부처님의 가르침 밑에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승가에 들어와서 수도하려는 마음을 지닌 이는 반드시 계(戒)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계란 요즘의 윤리라는 말에 해 당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불교의 계명을 구족계(具足戒)라 한다. 이는 '갖추어서 계를 지닌다'는 말이다.
그러나 '계'라는 말 자체는 본성. 습관. 행동 등을 의미하는 낱말이었는데, 거기에서 파생되어 착한 행동이나, 착한 습관 등을 지칭하는 낱말로 변했다. 출가스님들의 구족계는 이러한 착한 행동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구족계가 '-을 하지 말라'라고 하는 금지 명령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은 자발적인 요청이다.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강제조항이라기 보다는 그런 일을 삼가는 것이 좋다는 충고인 것이다. 또한 그것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족계가 비구의 경우에는 250계, 비구니의 348계 등으로 많은 계목의 조항들이 있다. 또 그중에는 네 가지의 가장 중한 죄라고하여 바라이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번쇄하고 현학적인 계목의 나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계율의 정신이다.
보통 불교에서는 다섯 가지의 계를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오계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이 다.
첫째, 살생하지 말라. 불살생.
둘째, 주지 않는 물건은 취하지 말라. 불투도
셋째, 사음하지 말라. 불사음.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불망어
먼저 첫 번째 계에 대하여 살펴보자.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태어난 모든 생명은 살고 싶지, 죽고 싶지는 않을 것 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른 동물들을 죽이거나 학대하 는 행위는 죄악이라고 한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도 그 자비를 확대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견해를 취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강변하기를, 동물들은 영혼이 없으므로 잡아먹어도 무방하지 않느냐고 한다. 영혼이 없다는 이유로 짐승을 잡아먹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인도 사람들은 '안 먹을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먹지 않고 죽이지도 않는 것이 훨씬 더 깨끗한 삶'이라고 말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도 살생 자체를 즐겨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취미로 하는 낚시가 물고기에게는 죽음을 넘나들게 하는 행위가 되기에, 살생은 어떤 경우든지 용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불투도(不偸盜)다.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선 도둑질은 남이 아끼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승낙도 없이 갖는 것이므로 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이 파괴된다는 것이며, 그 스스로의 도덕성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도둑질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셋째, 불사음(不邪淫)이란 구체적으로 이성관계를 지칭 하여 금지하는 계로 보인다. 인도의 출가사문들은 독신을 지키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왔다. 왜 그런 점이 이상화 되었을까? 바로 그것이 윤회의 단절을 이루기 위한 첩경 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들은 자식들에게서 그 부모가 행한 행위의 집약과 축약을 볼 수 있지 않는가? 부모의 행위에 대한 과보, 그 끊임없는 이어짐을 보지 않았는가? 물론 재가의 생활을 하면서도 성불할 수 있지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윤회의 단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독신을 지키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이성관계를 금하는 것이다. 다만 재가신자들인 경우에는 부부관계를 인정하고 그 밖의 이성관계를 금하는 것이므로 불사음이라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도덕성의 타락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간다. 이 도덕적 타락의 가장 구체적인 사실이 이성관계의 문란이 아닌가 한다. 이성관계의 문란은 가정파탄을 초래한다. 그러한 가정은 결손가정의 불행한 아동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골격은 건강한가 정에서 비롯된다. 가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 사 회의 발전을 이해서라도 이러한 계율은 지켜야 된다는 것이다.
넷째, 불망어(不妄語)란, 망령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복잡한 가르침 들이 포함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말에 대한 조항이 상당히 까다롭고 많다. 망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들어 보자 악구는 악담이나 욕지거리 같은 것을 가리킨다. 양설(품)은 이간질하는 말이다. 기 ()는 비단같이 번지르르한 말로써 남을 속이는 말이다.
우리 시대에는 향기로운 말들의 자취가 사라지고 있으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말들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로는 인격적인 완성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망령된 말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공부를 먼저 실행해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위 와 같은 네 가지의 계명이 가장 기본이 되는데,
그것 외에 오계를 말할 때는 불고주(不酤酒)를 꼽는다. 처음엔 '술을 팔지 말라'고 하는 불음주(不飮酒)로 되었다. 불음주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도취물, 아편 같은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집단이든지 규율이 필요하다. 이러한 불교의 규율은 상가, 즉 초기 불교의 교단인 승가의 운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들이었다. 다만 부처님도 말씀하셨듯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근본적인 사계의 계목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입장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