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TV 프로에 <낭독의 발견 > 이라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촌스런
아니 대단하게 촌스런 프로지요.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이야기를 하고 낭독도 하고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한구절을 낭독하는........
요즘은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을 깔고 나래이션이션을 해도 볼까 말까 한데
순수하게 낭독하는 사람의 목소리 하나에 모든 걸 걸고 진행을 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점때문에 도리어 몰입이 되었었는데.....
어느날 문정희 시인이 출연을 했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거친 목소리로
이 시를 낭송해주는데
아.... 나도 저 시인의 마음처럼
폭설이 내리는 산계곡에
사랑하는 사람과 갇혀버리고 싶다는 상상을 해보게 되더군요.
그리고 시인은 결혼했어도
저렇게 사랑을 꿈꾸는구나
TV에 나와서 저렇게 공개적으로 사랑을 희망한다고 이야기하는 구나.
저는 결혼과 동시에
다른 사랑이란 꿈꾸는 것 조차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결혼생활이란
박제된 사랑이랄까?
그런데 시인의 낭송은
마치 사랑하고자 하는 본능을 깨우는 함성처럼 들렸어요.
시인 한사람의 목소리인데
마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 같은 합창 소리 만큼
압도적으로...
마치 나무에 쌓인 눈 떨어지는 소리, 헬리콥터와 동물이 뛰는 소리들이 함께
제 귓가를 울리는 듯한 착각.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어느해 여름인가 고 2 아들아이가
정선으로 여행갔다가 폭우에 갇힌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친구들과 따라간 엄마 몇명들과
수퍼가 있는 민박집에 갇혀서
며칠동안 그 수퍼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우고 돌아왔엇지요.
그 아이들 그 때 행복했었을 꺼예요.
학원, 여름 보충수업 그런 거 없이
길이 끊어지고 불어난 계곡 물 속에서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첫댓글 고2였던 아드님은 그때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중에서 제일 기억나고 행복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