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사랑의 공동체를 주셔서 마음과 뜻을 함께 나누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말씀으로 새날을 엽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너 인자야 토판을 가져다가 그것을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2. 그 성읍을 에워싸되 그것을 향하여 사다리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흙으로 언덕을 쌓고 그것을 향하여 진을 치고 그것을 향하여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3. 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4.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5.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6.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
7. 너는 또 네 얼굴을 에워싸인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
8.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끝나기까지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9.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너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네가 옆으로 눕는 날수 곧 삼백구십 일 동안 먹되
10. 너는 음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씩 때를 따라 먹고
11. 물도 육분의 일 힌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12.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
13. 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14. 내가 말하되 아하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락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
16.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근심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두려워 떨며 물을 되어 마시다가
17. 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 하여 떨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본문 주해)
에스겔은 BC.597년에 2차 포로 이송 때에 잡혀가게 되었다. 이때에 잡혀간 사람들은 아직도 건재한 예루살렘과 성전을 바라보며 곧 돌아가게 될 것을 꿈꾸고 있었다.
이때 선지자 에스겔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고 있음을 상징 행위를 통해 보여준다.
1~3절 :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완전 멸망하기까지 7년간 예루살렘의 멸망을 확정 짓고 확정 짓는 예언을 되풀이한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토판에 예루살렘 지도를 그리고 포위되는 모습을 표현하라고 한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포위되어 심판을 받는 하나님의 행동을 예시한다. 그는 이곳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심판받는 도성에서 눈을 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특히 3절의 ‘철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단절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적이 쳐들어와서 성읍이 망하는 것 보다 더 무서운 심판의 징조를 보여준다.
4~8절 :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왼쪽으로 누워 390일(공동번역:190일)을 지내도록 말씀하신다.
1일을 1년으로 하여 390년의 죄악을 담당하게 한다는 행위이다.
이는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을 담당한다는 의미이다.
오른쪽으로 40일은 아직 남은 유다의 멸망 등 한 세대(40년)를 나타내는 개략적인 숫자이다.이 둘을 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기간인 430년이 되어 심판과 구원의 의미를 보여준다.
9~11절 :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하는 그 날수 동안 먹을 양식과 마실 물에 대하여 말씀한다. 여섯 가지 혼합 곡물로 떡을 만들어 먹도록 하시는데, 당시 다양한 곡물의 혼합은 비축 물량이 적을 때 부득이하게 먹는 방식이다. 곡식의 혼합은 혼합을 금지하는 율법에 위반되어 부정한 음식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양은 하루 떡 이십 세겔(230그램)과 물은 육분의 일 힌(600cc)이다. 이것은 한 끼의 식사 분량 정도이다. 그러므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양만을 저울에 달아서 먹어야 한다.음식과 물을 저울에 달아서 먹는다는 것은 성이 포위되거나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음식이 핍절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행위이다.
12~15절 :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는 떡을 인분에 구워먹으라고 하신다.
인분은 성경에서 부정하게 여기는 것이니 그 떡은 더러운 음식이 되는 것이다.
에스겔이 자신을 더럽힌 적이 없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쇠똥으로 대체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부정한 인분의 의미를 가진다.
이 정도로 모든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그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셔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정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부정한 떡을 먹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다른 민족들 속으로 내쫓아 그들이 거기에서 더러운 떡을 먹을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벌이 주어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뢰하여야 할 여호와 하나님은 의뢰하지 않고 그들의 양식을 의뢰하였기 때문이다.
16~17절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버리시겠다고 하신다.
그들은 기근과 가뭄으로 떡과 물이 부족하여 모두가 절망에 빠질 것이며, 마침내 그들의 죄악 속에서 말라 죽을 것을 말씀하신다.
(나의 묵상)
어제 파수꾼의 사명에 대해 묵상을 했었다.
파수꾼이라는 호칭은 좋아하면서도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간사함과 어리석음을 주님 앞에 고백했었다.
그런데 오늘 에스겔의 상징 행위를 보며, 어제 파수꾼이라고 좋아라 나댔는데, 오늘은 주춤한다.
1년 넘게 아무 말도 못하고, 왼쪽 오른쪽으로 눕고, 떡(똥에 구운 떡)과 물을 달아서 먹고.....
이러한 에스겔의 상징 행위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에스겔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에 대한 벌을 받는 것과 그 대속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고, 이는 온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수꾼이라고 좋아했지만 내가 무슨 수로 이런 고난에 동참할 수 있을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 에스겔을 보면서 나는 마음에 부담을 느낀다. 아니 부담이 아니라, ‘어, 뜨거라!’ 하고 천리만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생각한다.
고난에 대한 내 마음은 즐겁지 않지만 성령께서 하게 하시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에스겔이 이 모든 행위를 함도 그에게 주의 영이 임하였기 때문이다.
에스겔의 상징 행위를 보고 그 백성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저게 무슨 행동이야? 왜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가?’ 아니면 ‘아하, 우리의 죄 때문에 예루살렘이 이렇게 멸망하는구나....’ 일까?
매일 말씀 묵상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나의 행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뭐 꼭 그렇게 믿어야 하나?’
아니면 ‘아하, 매일 말씀으로 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선지자의 상징 행위는 무언중에 이루어지지만, 어쩌면 말로 하는 것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
그 무언의 행위를 통해서 들을 자는 들을 것이고, 듣지 않을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묵상 시작 때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회복된다.
주님께 새 생명을 받은 자,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 살게 하신다는 말씀(고후5:15)이 예전에는 무거웠는데 이제 점점 내게 기쁨으로 다가오니, 나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로 사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본다.
(묵상 기도)
주님,
세상적으로 보면 선지자의 삶은 참으로 고단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고단한 삶을 기꺼이 살아냄은 주의 영이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복음의 은혜를 알고 누리는 자로서
생명을 전하기에 그것이 고단함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 생명을 낳는 주님의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무익한 종’의 기쁨을 진심으로 올려드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