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마지막 전차 381호
서울에서 전차가 운행된 해는 대한제국 광무3년인 1899년이라 합니다.
전시된 이 전차 381호는 1930년경부터 1968년까지 38년간 서울 시내를 누볐던 전차입니다.
전차가 시민들의 유일한 발이었던 시절의 겨울에 전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서울 시민들 모습.
1968년 11월 30일 동대문역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전차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승무원 모습
자동차의 홍수속에 고독하게 서있는 서울 도심지 최후의 전차 모습
1968년 12월 1일 만 70여년만의 운행을 멈추고 동대문 기지 정류장에 멈추어선 전차들의 모습
1968년 12월1일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전차의 해체
전차바퀴와 내부시설등 철물들이 고철로 뜯기고 전차는 밧줄에 걸려 마지막 숨을 거둔다.
1900년 보신각 전차역
1900년 초의 보신각 앞을 지나는 전차
그 당시에는 '전거'라고 불렸다.
종로를 지나는 등급있는 전차
최초에는 좌석 등급이 없었지만 나중에 상, 중, 하로 좌석을 차별을 뒀고 한국인 운전수는 전무했던 상태라 일본 경도 전철 회사에서 초빙해온 일본인 운전수들이 대부분이었다.
1903년 서울의 전차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워크의 한성전기회사에 의해 1898년 12월 전기궤도 부설공사가 완공되었다.
준공 직후 소아 사고로 전차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지만 각지로부터 전차를 타보기위해 서울로 몰려왔다. 정원은 40명이고, 중앙에는 양반이 이용하던 특실이 있었다.
1903년 종로전차 정류장
한양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전차였다. 완벽하게 관리된 전차는 한성주변의 성외곽까지 연결되고 있다. - 까를로 로제티 ('한국과 한국인'저자, 이탈리아 대사)
1904년 발행된 전차 정기승차권(왼쪽 : 앞면, 오른쪽 : 뒷면)
1905년 남대문로와 종로가 만나는 보신각 주변.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1910년 남대문로 우측으로 전차가 다니고 좌측으로 소달구지가 지나간다.
1919년 남대문 전차 대기소
서울에 전차가 들어오 면서 단발령 시행에 실패한 일본은 전차회사 직원들에게 상투를 자르게 했다.
서양식 모자를 쓰게 함으로써 전차가 몰고 온 개혁 바람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꾸어 놓고, 운전수는 강제로 일본식 제복을 입혔다.
백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순헌(엄비)왕비 국상 시기이다.
1920년 소공동 한국은행앞
1930년대 광화문
태평로
1935년 청량리앞
보신각 앞의 전차 갈림길(1935년)
1920년 ∼ 1930년대의 버스, 곧 승합자동차는 오늘날과 같이 크지 않았으며 포드 8인승·14인승의 소형이었다. 당시 자동차의 등장은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하였을 때,사람들 사이에는 말보다 빠르다고 한다. 기차보다 더 빠르다’ 라는 논의가 벌어질 정도였다.
1930년대 경성 시내의 전차와 버스 요금이 5전이었다. 경성역 구내의 전화를 이용하려면 또한 5전이 들었다. 교통비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종로선
전차 정류소
통학길의 전차
다리위를 달리는 전차
1945년 소공동 한국은행앞
1945년 9월 16일 종로 2가 화신 백화점(현 종로타워)
1947년 동대문앞
1953년 종로 거리의 전차
1956년 남대문 앞 도로의 지프형 승용차와 서울의 대중 교통이었던 전차와 시내 버스
1960년 서울역앞을 지나는 전차
1960년 남대문로를 지나는 전차
1960년 명동 미도파 백화점앞을 지나는 전차
1962년 당시의 전차 노선도이며 지하철 1호선의 초창기 노선 모델이였다
1062년 세종로
1966년 6월 30일 동대문 전차 차량 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