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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5일(금)
* 시작 기도
(막 7:27-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님...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여인은 이 말에 발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개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는 것처럼 자기들에게도 그 은혜의 부스러기를 던져달라고 합니다.
이런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너의 딸이 나았다고 천명하십니다.
이런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진짜 믿음임을 압니다.
나 또한 이 여인의 고백처럼 개요 벌레입니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겔 6:1-14
제목 : 너희 분향제단들이 황폐하고 깨뜨려질 것이며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4 너희 제단들이 황폐하고 분향제단들이 깨뜨려질 것이며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5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6 내가 너희가 거주하는 모든 성읍이 사막이 되게 하며 산당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분향제단들이 찍히며 너희가 만든 것이 폐하여지며
7 또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인들 중에 살아남은 자가 있게 할지라.
9 너희 중에서 살아남은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들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10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리니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마침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하되
12 먼 데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13 그 죽임 당한 시체들이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 위에, 모든 산 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4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가 사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황량하고 황폐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 나의 묵상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할 것을 명하신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명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그 산에서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섬겨야 할 이스라엘이 바로 그 산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미명하에 온갖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제단과 분향단 그리고 우상은 하나님을 이름하여 세운 온갖 잡신들이며 그들은 지금 하나님을 모독하며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패역한 백성들을 향해 칼을 보내어 산당과 제단들을 멸하고 황폐하게 하며 분향단들을 깨뜨리겠다고 하셨다.
이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칼이 되어 마음으로 죄짓고 하나님 아닌 다른 그 무엇을 향해 마음을 빼앗겨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칼이다.
(히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심판)하나니 이는 지으신 것이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은 곧 성령의 검으로서 우리의 모든 폐부와 심장을 꿰뚫어보시며 마음의 생각과 뜻 즉 생각의 동기까지 보시고 심판하시기에 누가 그 말씀 앞에서 숨기며 감출 수가 있겠는가?
감추려 한들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지극히 우매한 일일 수밖에 없다.
만물이 말씀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훤히 드러나는 것을 무엇으로 가린단 말인가?
그것은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그냥 있는 것이 낫지 부끄럽다고 무화과옷을 만들어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과 똑같다.
그가 입은 무화과옷은 옷이 아니라 카고레로서 벨트(허리띠)이다.
결국 부끄러움을 가리려 하다가 안 한 것보다 못한 더 비참한 자가 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꼴불견이 되어 무화과옷이 아니면 견딜 수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기에 내 마음의 모든 우상과 제단을 박살 내 버린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남아 있는 그 우상 조각이라도 붙들고 또 음란하게 섬기기 때문이다.
느후스단 곧 놋조각에 불과한 놋뱀을 무슨 신령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대대로 가보처럼 물려오면서 많은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겨왔다.
그것은 오늘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책망에 다름 아니다.
종교심으로 가득 차서 무슨 은사가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하면 철새처럼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기도받고 능력받으려고 했던 나를 고발하는 것이다.
나는 철저하게 찍히고 깨지고 무너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시행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당연한 공의의 심판 앞에서 그 심판을 유보해 달라고 빌고 빌고 또 빌지 않는가?
마7장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 받을 심판은 무엇인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것도 빨리 무너져야 그 피해가 적다.
그런데 모래 위에 집을 지어 놓고 그 주인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그 집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도 언젠가 무너질 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본전 생각이 나니까 무너지기 전에 본전 뽑을 요량으로 많은 사람을 그 집에 몰아넣고 재우다가 한 순간에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다.
모래 위에 집을 지었으면 빨리 무너지는 것이 공의다.
그리고 반석 위에 새로 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산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여 모두 부수고 깨트리고 무너뜨리고 사람을 흩으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 여러 나라에 흩어지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살아남은 자가 있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8절) 그러나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인들 중에 살아남은 자가 있게 할지라.
그때 비로소 그들이 이방인 중에서 음란함으로 주를 떠나고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던 일을 회개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회개를 원하신다.
연약한 육신이 있기에 누구나 범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을 공의로 받아들여 인정함으로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는 길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죽이신다.
(12) 먼 데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 즉
회개하지 않는 자는 망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한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푸신다.
진정한 경건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곧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건의 능력이다.
나는 경건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포장해서 살아온 자로서, 경건의 모양만 있지 정작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였다.
매사에 진지함과 신실함보다 포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성향이 항상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였다.
여기에 넘어가면 나는 또다시 내가 아닌 또 다른 김종수가 되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곤 하였다.
거기에 만족하고 다 이룬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던 내가 그런 죄를 지어 놓고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는 인색하였다.
그게 무슨 죄라고... 하면서 무시하고 넘어가곤 하였다.
주님은 회개를 촉구하는 영적 사인을 주시는데도 나는 거부하고 은근 슬쩍 넘어가곤 하였던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충만했지만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무너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포장된 인생을 살았다.
이런 내게 복음이 찾아왔고 자기주장의지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사도바울이 그토록 울부짖었던 죄가 나는 그냥 지은 죄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자기주장의지였다는 것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도 안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야 뭐 다 하는 것이고 애교로 봐 줄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나 스스로 합리화시키면서 나는 나만의 경건의 탑을 쌓아 온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옳다.
나만의 아성이었던 경건의 탑을 무너뜨리게 하셨고 오히려 무덤 속으로 나를 초청하셨다.
초청하시는 주님의 손길은 거칠고 아팠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시는 그분의 눈길은 한없이 인자하셨고 나를 품속 깊이 끌어안으시며 품으시는 그분의 품은 내가 누울 요람이었다.
나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들어갔으나 말씀 앞에 내 자신이 설 때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요 정말 비참한 자임을 보게 되었다.
예수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아는 것이 은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 시간 욥의 고백이 나의 고백임을 인정하며 그 고백으로 다시 주의 품으로 들어간다.
(욥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내 심장이 일렁이고 마음의 하늘에 빛이 쏟아집니다.
말씀을 통하지 않고 주님을 만나려고 했던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것이 내가 지은 모래 위의 집이었음을 고백하며 통회자복하나이다.
죄가 발견되면 즉시 그 자리에 엎드릴 줄 아는 용기를 주소서.
그것이 진정한 경건의 능력임을 날마다 확증하게 하소서.
오늘도 새 날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수술 후 회복 중에 있는 권사님을 주의 강한 손으로 붙드시고 평안을 허락하소서.
아픔 중에 함께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쁨을 맛보는 영생의 사귐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심판의 칼보다 예리한 말씀!
오늘도 내게 행하신 주의 심판은 옳습니다라고
하며 그분의 긍휼을 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