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특징을 표현하는 개념 중에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관치금융’일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 정도로 번역되지만, 관치금융이라는 우리 말 표현의 그 생생한 뜻을 전달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필자가 한국 금융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관치금융이다. 그러나 관치금융의 구체적 증거를 대라고 하면, 솔직히 난감하다. 심증은 있으되 물증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관치금융이 불법인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목적은 불법일지 몰라도, 수단은 합법이다. 그래서 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관치금융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행정부가 하는 일이 대개 그렇지만, 특히 금융당국에는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다. 매일매일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데, 그 하나하나의 적법·불법 여부를 가릴 기준을 법령에 세세히 기술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령에는 추상적인 원칙만 제시하고, 그 구체적 집행은 금융당국에 위임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의 재량권이 합리적 범위 내에서 엄정하게 행사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선진 금융질서의 요체이다. 우리나라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금융당국의 감독권한을 여타의 정치적·정책적 목적을 위해 오남용하는 것’으로 관치금융을 정의하고자 한다.
이 정의에 부합하는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최근의 두 가지 경우만을 본다. 우선, 지난 연말의 KB금융지주 회장 후보 사퇴 건. 금감원의 정기 종합검사권 발동 자체는 합법이지만, 그 목적이 오로지 법에서 정한 건전성 감독과 은행경영실태 평가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지난주 재정부 차관의 한은 금통위 회의 참석 건. 이른바 ‘열석발언권’은 한은법이 부여한 합법적 권한이지만, 출구전략 시행 및 한은법 개정이 논란이 되는 이 시점에 재정부가 굳이 그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을 곱게 바라볼 사람은 없다. 그러니 ‘한은 길들이기’라는 말이 나온다. 강조하지만, 합법적이라고 정당한 것은 아니다. 관치금융의 핵심은, 합법을 빙자한 재량권의 오남용에 있다.
개개인을 놓고 보면 그렇게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집단으로 움직일 때는 조직폭력배나 진배없어지는 것이 한국의 모피아다.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또는 실용정권이든,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모피아에게 넘어가는 순간 여지없이 실패한 정권이 된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모피아의 관치금융은 경제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훼손하고, 결국 모든 경제주체가 모피아에 대한 로비에만 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첫 조각에서 금융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모두 민간인 출신으로 임명할 정도로 모피아에 대한 기본적 불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부처와 청와대 참모진이 모두 모피아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피아는 유능하다. 특히 경제위기의 순간에 그 유능함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모피아가 경제정책을 주도하게 되면, 이명박 정부의 ‘선진경제질서 창달’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선진경제질서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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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글이지만 마지막 3단원이 핵심인 글입니다
첫댓글 저는 좀 회의적이기도 해요
경제같은 전문분야는 전문가에게 전권/독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인지라
경제관료들을 저렇게 마피아식으로 몰아가는것도 좋지 않다고 봄
경제 분야 뿐만 아니라 뭐든지 다 전문가가의 역량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민주적 통제가 무조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녀사냥처럼 몰아가는 게 아니라 경제 정책에 한해서 수십년동안 검찰 못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그걸 교묘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데 이용해온 집단입니다. 공무원으로 고생한 거 보상받는다는 심리로 그런 것들 다 묵인하고 관례처럼 봐주다가 생긴 집단입니다. 권한에 비해 감시가 제대로 안된 게 현실이구요. 그런 경제 관료 엘리트들이 한국 경제 위기 때 환율조작에 가담하고 그랬던거죠. 그런 걸 못하게 막아야합니다.
@overture 전세계의 경제학자/관료들이 토론하는 주제라서 뭐가 정답이라 말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중앙은행/헌재/대법원 관련해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구요. 이번에도 '의도는 좋았다' 해놓고 외부 비전문가를 행정부 내부에 내리꽂는 식으로 해결책으로 내놓는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봅니다. 법, 경제 부문은 전문가에게 전권을 주는게 맞다고 봅니다.
의미에는 공감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상 작금의 통제는 일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간출신 관료가 필요할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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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가 문젠게 저기도 전관예우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그래서 모피아라는 단어가 더 나왔을텐데..
법조계에 가려져서 그렇지 어마어마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