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뭐라고!”“이길여!”…92세 총장, 그날 왜 말춤 췄나 [프롤로그]
이길여! 이길여!
지난해 5월 10일, 가천대 축제 무대 앞엔 수많은 학생이 모여 있었다. 초대가수 싸이의 등장에 앞서 92세(올해 기준) 이길여 총장이 무대에 올랐다. 학생들은 그의 이름 석자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내 이름이 뭐라고!” 마이크를 잡은 이 총장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이길여를 외치는 학생들의 음성이 한층 커졌다.
그때였다. 이 총장은 “여러분, 오늘은 세계적 스타 싸이가 오는 날이죠?”라고 묻더니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무반주 댄스였다. 이 총장은 “우린 가천 스타일!”이라는 추임새까지 넣으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학생들은 환호했고, 총장 뒤에 도열한 부총장과 교직원들의 눈은 동그래졌다.
가천대 이길여 총장. 사진 유튜브 캡처
#2.
‘92세 이길여 누님 최신 근황’(당시 실제 나이는 91세)
축제가 끝나고 열흘이 지난 뒤,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총장의 말춤 영상이 화제가 돼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날 말춤 사건 이후 가천대 홍보팀은 총장의 말춤 영상을 구해 음악과 자막을 입혔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347만 회나 재생됐다. 댓글 창은 감탄으로 가득했다.
‘믿을 수가 없다. 90대 할머니가 저렇게 서 있는 것도 힘들텐데’
‘저 대학생들의 증조할머니뻘 되는 사람이 앞에서 춤추고 있는 거다’
‘6·25 때 대학생이었던 총장과 2002 월드컵도 못 본 대학생들이 같이 어울리는 진풍경’
2023년 5월에 올라온 이길여 총장의 '말춤' 영상은 지금까지 347만 회 재생됐다. 가천대에서 올린 공식 영상 외에도 여러 유튜브 채널이 말춤 영상을 올렸다. 사진 유튜브 캡처
#3.
중장년층뿐 아니라 MZ세대에게도 이길여란 이름은 ‘동안(童顏)’의 대명사로 익숙하다. 지금도 그의 사진이 종종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가천대는 몰라도 이길여는 안다’거나 ‘대학 총장 이름은 이길여밖에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진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그의 ‘젊음’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이른바 ‘이길여 동창회 사진’이다. 2012년 이 총장의 모교인 대야초등학교에서 동문들과 찍은 사진이다. 비슷한 연배의 동문들 사이에서 이 총장은 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독보적으로 젊어 보인다.
이런 사진에는 꼬박꼬박 “가천대 지하실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라는 댓글이 달린다. 이 총장의 젊음에 대한 밈(meme, 인터넷 유행어) 중의 하나다. 가천대 지하실에는 이 총장의 젊음을 위한 비밀 연구소가 있다는 괴담을 담은 우스갯소리다.
2012년 군산 대야면 대야초등학교에서 열린 이길여 박사 흉상 제막식에서 동문들과 만난 이 총장. 사진 가천대 제공
하물며 사진보다 생생한 말춤 영상이 주는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92세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꼿꼿한 자세와 걸음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또렷한 눈빛이 담긴 말춤 영상은 새삼 이 총장의 젊음을 생생하게 전달했던 것이다.
놀라움 뒤에는 빠르게 궁금함과 부러움이 찾아온다. ‘어떻게 저렇게 젊을 수 있는 거지?’ ‘우리 부모님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중앙일보는 이런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이길여의 청춘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4.
이 총장을 만난 기자는 이번 탐구의 계기가 된 ‘말춤’부터 물어봤다. 왜 총장은 많은 학생 앞에서 말춤을 췄을까, 그날 말춤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을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