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생명윤리에 대한 강의를 녹화한 적이 있다.
청중은 한 명도 없었고, 무더위 속이었지만 소음 문제로 에어컨도 틀지 않고 녹화해야 했다.
나중에는 카메라 기사도 카메라만 작동시켜 놓은 채 슬그머니 나가버렸다.
스튜디오에 덩그러니 남아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강의하자니 마음속에서 갈등을 느꼈다.
‘무더우니 대충대충 빨리 끝내자. 아니 이번 회만 끝내고 그만두어야지. 듣는 사람도 없이 이게 무슨 꼴인가?’
그런데 마음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 청중이 없느냐?’ ‘없는데요. 방금 촬영기사도 나갔잖아요!’ ‘나는 네가 보이는데 너는 내가 보이지 않느냐?’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나머지 강의 녹화에 열과 성을 쏟았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그 프로그램을 보아도 후회가 없었다.
기독교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살아가는 존재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제일 큰 청중이시다. 칼뱅은 이것을 코람데오 신앙이라고 표현했다.
코람데오 의식을 지니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영광이 떠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사람은 보이는데 하나님은 보지 못하는 가시적인 눈을 가졌다.
그러기에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잊을 때는 없는가?
창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창 5: 24
제목 : 하나님과의 동행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다.
창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눅 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동행을 통해 놀라운 일들이 만들어진다.
부부의 동행을 통해 한 가족이 만들어지고
친구와의 동행을 통해서 이웃이 만들어지고
주님과의 동행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동행도 함께할 자와의 동행이어야지 그렇지 못한 동행은 오히려 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성경은
잠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암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했고
동행해서는 안 될 이와 동행한 사람은 그 인생을 망치기도 했습니다.
민 22:39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발람: 거짓 선지자
하나님은 발람에게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하시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다음에는 많은 선물과 "높여 크게 존귀케" 해 주겠다는 말에 나귀를 타고 떠났다. 그는 그 보수에 눈이 어두워져 좋은 예언이 임할 것을 기대하고 떠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다. 발람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타고 가던 나귀의 눈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길을 가로 막아 선 것을 볼 수 있었다. 나귀가 놀라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니, 발람은 노하여 채찍질을 하였다. 이것은 발람이 그 초청을 기뻐한 증거이다. 그가 이렇게 대노하였을 때에, 나귀는 하나님의 그릇이 되어 하와를 유혹한 뱀처럼 말을 하기시작하자(고대사, 벧후 2:15,16) 마침내 그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도록 허락되어 위험을 알고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대언자라는 조건으로 발락에게로 갔다. 아르논 부근에서 발락을 만나 이튿날 아침 바알의 산당에 올라가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것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었다. 그래서 발락은 실망하여 비스가 산에서 번제를 드렸으나, 결과는 전과 마찬가지 예언이었다. 세 번째는 브올 산에 올라갔으나 이스라엘의 축복과 모압˙에돔의 파멸 예언이었다. 발락은 대노하여 아무런 보수도 주지 않았다. 발람은 보수를 바랐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을 보면 민수기 23:7- 10, 18- 24, 24:3- 9, 15- 24에서 여호와의 백성의 무비성(無比性), 그 능력, 그 아름다움, 그땅의 부요, 그들의 영광 있는 승리, 끝으로 모압˙에돔˙아말렉˙가나안 땅에 한 제국을 건설할 대왕(大王)을 예언하시었다. 이 사건 후에 얼마 동안 발람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다가 다시 이스라엘을 부패시키는 자로 등장한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기울어지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을 시사했는데, 이제 그 계략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떨어지고, 곧 그 원수를 미디안 사람에게 갚았는데, 그도 그때 죽임을 당했다(민 31:8,16,고대사)
발락: 십볼의 아들이며 모압 왕이다(민 22:4). 이스라엘 백성이 입국하려 할 때에 발락은 아모리 사람에게 행한 소문을(민21:33) 듣고 공포에 찬 나머지 미디안 장로들과 협의하고, 사자를 발람에게 보내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할 방침을 세웠다.
그렇다 잘못된 동행은 해가되고 좋은 동행은 이로움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누군가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가 같아야 합니다.
1. 목적이 같아야 하고(뜻과 마음이 맞아야 한다)
2. 방법이 같아야 하고(정당한 방법, 부당한 방법)
3. 보조가 같아야 합니다. (기차냐 비행기냐, 도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