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마라톤대회 모습. 이 주자가 신은 가죽신발이 압-슈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적인 형태는 비슷하다.
(상 편에 이어)
폐타이어에서 스폰지까지 진화 거듭한 압-슈즈
초기 압슈즈의 모양은 요즘 운동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구두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다소 애매한 모양이었다. 이는 창업주 황이성 사장이 구두 장인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당시 세계 각국의 운동화들이 대개 비슷한 형편이었다. 외피 재질을 부드럽게 하고, 바닥창의 접지력과 유연성을 강화하고, 발목의 전후좌우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발목 부분 외피를 변형하면서 운동화의 기본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대륙체육사가 처음 선보인 이른바 ‘1세대 압-슈즈’는 재활용 상품에 가까웠다. 외피는 구두를 만들 때 쓰는 가죽을 사용했고, 바닥창은 마라톤 다비에서 뜯은 것을 쓰거나 폐타이어 오린 것을 썼다. 가죽 외피는 전체적인 내구성은 뛰어나지만 신축성이 부족해서 문제였다. 달리기로 인해 앞꿈치의 심한 굴곡이 반복되면 앞꿈치 양 옆부분이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압-슈즈는 이 부분을 실로 누볐다. 밑창도 구두 꿰매는 실로 박음질해 붙였는데, 창이 어느 정도 닳으면 실이 헤지기 때문에 수선을 자주 해야 했다.
수요가 늘고 제작 환경도 다소 개선되자 ‘2세대 압-슈즈’가 나왔다. 폐타이어 대신 틀에 생고무를 부어 만든 일체형 창이 가장 큰 변화였다. 외피는 가죽과 범포지(두꺼운 면 소재) 두 가지를 썼다. 가죽은 너무 무겁고 범포지는 내구성이 너무 약해서 둘 다 문제였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어 두 가지를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보강을 위해 누볐던 부분에는 지금의 아디다스 상징무늬와 유사한 가죽 3선 무늬를 붙였다. 이때까지의 제품은 맞춤 신발임에도 불구하고 길게는 한 달까지 길들이기를 해야 시합에서 마음 놓고 쓸 수 있었다 한다. 서 기 일쑤었다.
‘3세대 압-슈즈’는 현대식 운동화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창은 생고무와 스폰지를 함께 써서 질기면서도 제법 푹신한 쿠션을 발휘하도록 만들었고, 외피는 가죽과 통기성 좋은 천 소재를 선택적으로 사용해 경량성과 통기성, 유연성을 두루 좋게 했다. 요즘 러닝화처럼 측면에 가죽 등으로 장식을 덧붙여서 내구성을 보강했다.
그렇게 유명했던 압슈즈, 왜 사라진 것일까?
마라토너들에게 있어 압-슈즈는 필수품이었다. 조금 뛴다 하는 러너들은 경기하러 서울에 갈 때마다 필수 코스처럼 대륙체육사에 들러 신발을 맞췄다. 행여 닳을까 봐 애지중지하며 중요한 훈련이나 시합 때만 신었고, 특히 길이 잘 든 것은 큰 시합 때 신기 위해 고이 모셔두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압-슈즈의 절대적인 인기도 1960년을 기점으로 하락기를 맞았다. 한때 제휴를 요청하기도 했던 오니츠카타이거를 비롯해 육상 선진국의 양산형 운동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륙체육사도 훌륭한 기술과 노하우를 가졌지만, 황폐화된 국내 경제상황 속에서 개인이 만든 회사는 경쟁력이 부족했다. 일찌감치 현대화된 생산시스템을 구축한 오니츠카타이거가 1977년 아식스를 출범시켰을 때는 이미 그 상대가 될 수 없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국내 업체들과도 경쟁이 되지 않았다. 프로월드컵, 엑티브, 프로스팩스 등 토종 스포츠브랜드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양산업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규모와 대륙체육사의 노하우가 뭉쳤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륙체육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1세대 브랜드들은 외국 브랜드들을 먼발치에서 쫓아가야 했다.
대륙체육사는 1998년 창업주 황이성 사장이 별세한 뒤 4남 황규형 씨가 물려받았다. 동대문운동장 상가에 간판을 걸고 코치화(체육 지도자들을 위한 신발. 실내근무와 체육지도에 두루 편리하도록 제작됨)를 주력 품목으로 하여 명맥을 유지했다. 지난 2008년 동대문운동장이 없어진 후에는 어디로 옮겼는지 알 수 없다. 당시까지 후계자가 없었고 그의 나이가 현재 60대 중반이므로 대륙체육사의 역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많은 원로 육상인들이 압-슈즈를 기억하고 있는데, 막상 실물은 보존되어 있지 않다. 한국 스포츠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발인데도 우리는 그저 상상만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