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성:해혼후묘가 또 중요한 한약재 지황 발견을 했습니다!
江西:海昏侯墓又有重要发现!地黄和蔗糖或暴露刘贺生前两桩事
출처: 강남도시보 작성자: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2020년06월 장시성 고고학 연구소는 난창하이 아오허우국 유적지의 고고학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확인했으며 전문가가 류허 묘소에서 추출한 샘플에서 중약 가공 지황과 자당을 분석했습니다. "지황'에서도 전분 성분을 발견했는데, 이는 한나라 때 약품의 사용과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황을 재가공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당의 발견은 또한 한나라 귀족의 호화로운 삶을 반영합니다. 6월 29일, 고고학 전문가인 성박물관 당서기 쉬창칭이 장강도시보 전언론 기자에게 단독으로 비밀을 폭로했습니다.
전문가의 고증에 따르면 류허는 류머티즘이 심한 한약인 지황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며, 가공할 때 물에 가열하고 전분 부원료를 첨가하고 난창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 주스를 첨가하여 한약의 쓴맛과 떫은맛을 완화합니다.
▲ 고고학자들이 발굴해낸 금은 그릇과 칠함 등의 물건 [문제 1] 2000여 년 전의 지황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정교한 옻칠 상자에 있는 '페이스트' 샘플은 주요 묘지의 오락 도구 라이브러리에 보관된 정교한 옻칠 나무 상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쉬창칭에 따르면 류허의 묘는 차마고, 오락기구고, 무기고, 전고, 양고, 악기고, 술구고, 주방기구고 등으로 구분되며, 지황을 담는 옻칠 상자는 거문고 등과 함께 한 방에 있는데 그 안에는 벌레와 풀 모양의 물건이 진흙과 모래로 덮여 있어 진면목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기자는 묘주 류허(劉贺)가 기원전 59년, 지금으로부터 2079년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이 페인트 상자와 그 안에 있는 물체는 적어도 20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중국 고대 최초의 한약 포제품이기도 합니다.
[문제2] 지황과 자당은 누가 발견했습니까? 7개의 과학 연구 단위 전문가가 공동으로 옻칠 상자에 있는 '동충하초' 샘플의 성분을 연구하기 위해 장시성 문물 고고학 연구소, 안후이 한의과대학 약학대학, 중국 중의과학원 한약자원센터, 정통 약재 국가중점실험실 육성기지, 동화공대 장시성 질량분석기 과학기기 중점실험실, 중국 중의과학원 중국 의학사문헌연구소, 칭화대 의과대학 의학시스템생물학연구센터 등 7개 단위의 최고 과학 연구팀이 참여했다고 소개했습니다.
[Q. 3] 한약인 지황은 왜 부장품이 될 수 있습니까? 류허는 생전 또는 자주 지황을 약으로 사용했다고 쉬창칭에 소개했으며 해혼후 묘의 발굴로 볼 때 무덤 구조와 부장품은 당시 '사망여사생(事死如事生) 사망여사(事亡如事存)'의 장례 제도를 곳곳에서 반영하고 있습니다.
서한시대에는 국력이 날로 강해지고 후장(厚葬) 풍조가 성행하면서 고인이 생전에 누렸던 모든 것을 무덤으로 가져가서 저승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편안한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따라서 유하 묘에서 발굴된 금은보석이나 도용칠합 등은 모두 그가 생전에 사용했거나 애지중지했던 물건들입니다. "묘실 옻칠함에서 한약인 지황이 나온 것도 유하가 생전에 많이 쓰던 약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장청이 설명했습니다.
▲ 한약재 지황 발굴 [문제 4] 유하는 왜 한약 지황을 복용했을까? 심한 류머티즘은 침대에 누워만 있을 수 있다는 사료에 따르면 전한의 폐제 유하가 재위한지 27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폐위된 후, 한 선제(宣帝)는 관리를 보내 '암행(暗行)'을 시켰고, 결론은 류허(劉贺)가 '질약(疾痿)'하고 '보행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류허는 심한 류머티즘으로 인해 걷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하 묘의 서당, 동침의 관곽 옆에는 2m 남짓한 침대가 하나씩 발견됐습니다. 서한시대 예제에 따르면 손님을 접대하고 집무하는 서당은 침대를 두어야 합니다.
이로 미루어 류허는 생전에 류머티즘이 심해서 좁은 침상에서 무릎을 꿇거나 가부좌를 틀지 못하고 누울 수 있는 침상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업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쉬창칭은 말했습니다. 따라서 중국 한의학의 4대 고전인 한나라의 '신농본초경'에 수록된 풍습병 대증 한약 '간지황'은 류허의 생전에 섭취한 한약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묘 유흥도구고에서 칠함에 담긴 지황 한약 [문제 5] 2000여 년 전 자당을 먹을 수 있었을까? 류허는 난창 사탕수수 즙을 먹고 있습니다' 류허가 먹는 한약에서 발견되는 당 성분은 꿀, 찹쌀 또는 밀과 같은 설탕 제품이 아닐 수 있습니다.
쉬창칭은 기자에게 샘플에서 검출된 성분은 자당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2000년 전 서한 사람들은 사탕수수로 만든 사탕수수를 먹을 수 있습니까? "우리 장시난창(江西南昌)은 한나라 때 사탕수수 생산지였습니다. 당시 사탕수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해혼후인 류허에게 사탕수수를 먹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쉬창칭은 당나라 때쯤 사탕수수에서 즙을 짜서 말려서 자당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유하가 살았던 전한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당을 개발하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류허약의 자당 성분은 당시 사람들이 사탕수수를 사용하여 단순히 짜낸 사탕수수 주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6] 유하가 복용하는 지황은? 과수 가열 + 전분 코팅 + 사탕수수 주스 오늘날 사람들에게 친숙한 한약 지황은 '쌍떡잎식물강 관상화목 현삼과 지황속 식물'에 속하며 지하 뿌리가 황백색이기 때문에 명명되었습니다.
쉬창칭에 따르면 현미경, 질량 분석, 핵 자기 및 3차원 재건과 같은 다양한 현대 과학 기술 테스트를 거쳐 연구진은 류허 묘에서 출토된 페인트 상자의 페이스트가 '지황 뿌리 및 외부 재료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유하가 복용한 한약재 지황은 당시 가공 과정에서 다른 전분류 부재료와 찌거나 삶아 사탕수수즙과 전분류 등의 부재료로 가공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쉬창칭은 페인트 상자에서 출토된 샘플은 내부 식물층과 그 주변의 보조 재료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물층은 지황으로 검출되었으며 지황을 감싸는 보조 재료에는 전분과 자당이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출토된 시료를 분석한 결과, 류허가 복용한 한약재 지황은 뜨거운 물로 처리한 후 사탕수수 주스가 함유된 보조 재료 층으로 코팅되어 사람들이 약을 복용할 때 지황의 쓴맛을 완화할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분류:고고학 프론티어
본문 라벨: 남창해 혼후국 유적 유하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