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5]전각예술가 친구의 새해초 '세화歲畵 선물'
새해 첫 아침, 참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전각예술가 친구가 을사년乙巳年 원단元旦, 새 아침을 맞아 일년내내 운수대통을 기원하며 새긴 소품을 액자에 담아 보낸 것입니다. 이런 작품을 '세화歲畵'라고 합니다. 올해는 푸른 뱀띠 해입니다. 작가는 을사년을 ‘사행천蛇行川’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한 후, 약간의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그 내용입니다.
사행천은 뱀 모양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물을 말합니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머뭇거림도 없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바다(목표/목적지)에 이릅니다.
2025년은 乙巳 뱀띠 해를 맞아 구불구불 더디지만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흐르는 물길처럼 뱀의 초형肖刑을 심각心刻했습니다.
한 해 내내 사행천같이 화평和平하시기를 빌어마지아니합니다.
2025년 을사 원단
行空子 진공재 세배 절절절
위 문장 중 ‘심각心刻’은 작가가 만든 조어입니다. 온 마음을 다 바쳐(심혈을 기울여) 돌판에 돌칼로 그림과 글을 새기는 것을 뜻하지요. 말하자면 돌에 글과 그림을 새겨 ‘돌꽃’을 피움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작가의 비원悲願이 담긴 것이겠지요. “爲 愚泉大人”아아-, 저와 제 가족들의 화평을 위한 헌사獻辭가 호화롭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년 내내 책상 위에 놓고 그 마음을 간직하겠습니다.
그는 갑진년인 지난해 새 아침에도 같은 취지의 소품액자를 보내주었지요. 이 때의 연중年中 화두話頭는 작품을 보면 아시듯 ‘용득운우龍得雲雨’였습니다. 여의주如意珠 2개를 입안과 주먹에 숨긴 채 승천昇天하는 초형이었습니다. 용득운우는 용이 변화무쌍한 속에서 구름가 비를 만나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는 형상이니,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순조롭게 풀리기를 바란다는 축원이었건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지 않았지요.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멧돼지 작자는 청천벽력도 유분수이지 45년만에 한밤에 비상계엄을 선포해 ‘대한민국號’를 허벌나게 꼬이게 만들었으니까요.
아무튼, 을사년인 2025년만큼은 작가의 비원대로, 가정이든 나라든 일 년 내내 사행천처럼 화평和平했으면 좋겠습니다. ‘을씨년스럽다’의 어원語源(etimology)이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905년 을사년에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절반 넘게 팔아먹은 ‘을사5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우리가 흔히 ‘검사스럽다’는 말을 썼지만, 당시 나라 전체가, 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을사년스러웠겠습니까? <을사년스럽다→을씨년스럽다>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갑진년이고 을사년이고 정말로 어마무시하게 을사년스러웠을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지 않나요? 역사는 반복되는 양, 지난해 <갑진 105적>이 있었지요. 나라를 생각하면 엄청난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아-, <을사85적> 아니, 대통령 체포를 막겠다고 관저로 달려간, 소위 금배지들은 어찌하여 <을사 45적>을 자청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나저나, 어제 오후에 인사동에서 작은 ‘쩜방’을 차려 전각을 하고 있는, 진공재 작가의 제자격인 양성주 님이 카톡으로 작품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그림이 제법 외설적猥褻的이기도 하여 보자마자 푸웃- 웃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뱀의 혀’는 물론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만, 뱀은 그 못지않게 ‘사행천’이 뜻하듯 장점을 많이 가진 미물입니다. 특이한 것은 그림 오른편에 그린 긴 창槍에 꿰인 멧돼지 한 마리입니다. 그 멧돼지는 법, 공정, 상식, 정의를 입만 열면 나팔을 불었습니다만, 솔직히 ‘법 미꾸라지’조차도 못되는, 너무나 비겁하고, 비열하고, 야비하여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죽인 희대의 독재자도 막다른 코너에 몰리자 애인과 동반자살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인간은 그런 용기조차 없이 국민들을 갈갈이 찢어놓고 있습니다. 어안이 벙벙하여 그 이름조차 거론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결국 역사가, 국민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아니합니다.
여담 하나 하겠습니다. 지난달 29일 생질의 결혼식 주례를 섰습니다. 주례이자 외삼촌인 제가 ‘커플 인감도장’을 선물하면서 ‘세계적인 전각예술가 친구가 새겼다’는 말을 했는데, 하루가 지난 다음날 9살 손자가 진지하게 “할아버지, 근데 할아버지 친구가 '세계적인' 게 맞아?”라고 물어 놀라고 크게 웃었습니다. 제깐에 많은 주례사 중에 그 말이 유난히 귀에 꽂혔나 봅니다. '한 총기'한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하, 그 말을 기억했어? 근데 할아버지 말이 맞아. 말 그대로 International Artist야. ”라고 대답했지요.
가난한 예술가가 해마다 연초에 선물하는 소품의 '세화 액자'를 올해도 소중히 간직하며, 그 의미를 새길 것입니다.
부기: 사필귀정事必歸正, 이 사자성어를 아시겠지요. 엊그제 해병대 박정훈대령의 무죄 선고. 이게 기쁜 소식인가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데도, 우리는 왜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박수를 쳐야 할까요? 사실은 참 한심한 일입니다. 법이란 이렇게 공명정대해야 하는 것을. '런종섭'이라는 추접한 작자가 이의를 제기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아는 일인 것을. 소가 웃을 일이고 개가 풀 뜯어먹는 일들이 연일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