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태수를 임신한 엄마가 하혈을 조금씩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간절한 마음으로 멈추기를 기원했건만 멈추지 않아 두려운 마음에 병원으로 가니,
의사 왈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산모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것이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대답을 기대하며 왔건만, 이 산적같은 의사는 오히려 나를 벼랑끝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울고....... 아 이제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냉정히 우선순위만을 놓고 보자면 엄마가 우선이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을 해야할 만큼 극한상황에 다다르지는 않았다고 판단했고,
엄마의 생각도 그러했다.
그래서 하루만 더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어렵게 발길을 집으로 돌렸던 것이다.
그후, 태수는 8개월전 의사의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때의 싸이렌소리, 혹 그 의사에게 시위한 것은 아닐까.
하엿튼 사연많은 아이 그대 이름은 태수.
경기장에 도착하니 월요일 아침조회처럼 수많은 아이들이 경기장에 운집해 있고,
대회관계자는 교장선생님 훈시하듯 열심히 연설을 하고 있었다.
'...... 여러분들 중에 미래에 저 서귀포월드컵경기장에서 뛰는 선수가 나왔으면.....'
태훈이 말처럼 대따 말이 많았다.
막간을 이용, 엔젤 아이들을 쭉 살펴보았다.
도새기 맴버 태수,병준,현석 포함 모두 7명이 서 있었다.
그 당시 엔젤에서는 축구와 관련된 어떤 팀도, 어떤 활동도 없었던지라 도대체 저 7명이
어떻게 선발되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은 선수들 사기를 위해 '연습 안해도 다 이기는거 아니냐'라고 얘기하였다가
슛돌이 광팬들의 원성을 샀던 엔젤감독을 기억할 것이다.
엔젤감독은 직함이 무지 많았다.
감독, 이사장, 체육선생, 그리고 원장 남편......
몸은 하난데 하는 일은 제라 많은 오리지널 멀티플레이어였다.
후일담이지만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원장은 반대했지만 감독이 밀어 부쳤다고 한다.
그 감독이 고심끝에 7명을 선택했던 것인데, 그 사연을 들어 보면 흥미롭다.
민재는 원내 씨름대회 씨름왕, 기원은 씨름 준우승자, 태수는 원내 닭싸움대회 닭싸움왕이여서
뽑았고, 나머지 지렬,민상,병준,현석은 평소 지켜본 바 다른 아이들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뽑았다는 것이다.
비록 왕년에 축구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운동은 하나'라는 소신에 바탕을 둔 기막힌 선수 선발로
엔젤감독은 아이매치계의 명장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던 것이다.
8강전이 시작되었다.
전반전에 태수는 쉬었다. 감독 얘기로는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것.
어제의 대승으로 감독은 내심 우승을 욕심내고 있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 구경하는 유아들의 축구경기는 솔직히 K리그보다 더 재미가 있었다.
이때 상대편 골키퍼는 오동민이라는 아이다.
덩치가 크고 유연한 아이로 이날 너무나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가정이지만, 이 아이가 엔젤팀 선수였다면 준수나 원준이 못지않게 각광을 받았을 것이다.
전반전은 동민이의 활약으로 '0대0'으로 끝났다.
태수가 들어가고 드디어 후반전 시작.
아들이 뛰기 시작하니 나의 심장박동수는 급격히 빨라지고 나의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커지고 있었다.
태수가 들어가니 게임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수의 슛팅이 동민이의 선방으로 막히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러다 지는 건 아닌가. 만사 제쳐두고 왔는데.....
드디어 감격스런 태수의 골이 터지고......
8강전은 엔젤의 힘겨운 승리로 끝났다.
이제 몸이 풀려버린 4강전은 그야말로 태수의 독무대였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정녕 저기 10번이 내 아들이란 말인가.
도대체 골목축구에서 태헌이가 어찌했길래 태수가 저토록 활개를 치는 것인가.
대다수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 다녀 찬스도 잘 나지 않았고, 슛을 해도 골키퍼 정면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경기는 골이 나봐야 한 두점정도고,
'0대0' 무승부에 이은 승부차기가 태반이였다.
그러나 태수는 달랐다. 두가지 점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것은 빈 공간을 찾아 다니며 많은 찬스를 만들어 내는 공간활용능력과
빈 곳으로 침착하게 차 넣은 슛팅능력이였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이 두가지 장점을 활용, 태수는 많은 골을 넣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칭찬할 점은, 태수는 즐겁게 축구를 하며 관중들과 호흡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태수는 골을 넣으면 마치 야구에서 홈런을 친 것처럼 경기장 옆 관중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경기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 흥분의 도가니탕이였으면 아나운서가 '10번 엄마 손들어 보세요'라고까지 했을까.
결승전은 이미 김이 빠져 있었다.
모든 사람이 엔젤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심이라면 저 10번이 이번에는 몇골을 넣을 것인가였다.
예상대로 태수의 골 폭풍에 상대팀은 전의를 상실, 결승전은 싱거운 승부가 되고 말았다.
시상식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 엄마가 급히 나에게 뛰어오면 하는 말.
'주최측에서 MVP를 태수가 양보하면 어떻겠다고 그러네'
순간 나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아 주최측이 왠지모르게 어설프다.
그 어설품에서 진작 알아 보았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