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텍사스 촌 그리고는 서울역 용산 영등포역 천호동 ~~ 이라 할수있다 하지만 60년대 까지만 해도 종삼이라 부르는 지금의 ♡카다리 극장 근처도 아주 유명한 사창 가였다. 종삼은 서울시내 한 복판에 있어 공화당 정권시절 종삼의 사창가를 없앤다는 것이 시장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단속 하여도 소용없어 결국은 가로등을 아주 환하게 밝혀 결국 손님들 스스로 접근을 꺼리게 만들어 자연 도태되게 하였다.
우리가 흔히 청량리 588이라는 정확한 주소는 전농동 588번지이다. 신라때 세워진 청량사가 있던 자리여서 맑은(淸) 서늘할 랑 청량리의 이름좋은 청량리가 전농동 588번지 때문에 이미지가 더럽힌데 대해 전농동에게 원한을 품고 있음직 하다
서울 사는 남자라면 한번쯤은 가본적한 미아리 텍사스 일명 MIT도 미아리 고개넘어 있지만 미아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음동이나 하월곡 동에 있는 것이며 그 동네도 원래 홍등가는 아니었다.
창녀들은 세계공통 기차역 근처에 자리 잡는다 서울역 근처의 양동은 국내 최대인 유명한 홍등 가였으나 군사정권 시절 서울의 관문앞에 사창 가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며 불도저로 밀어 버렸고 종삼의 창녀촌이 쇠퇴함에 따라 거기서 쫓겨난 창녀들과 빈민들이 꾸역구역 모여 든곳 이 바로 당시의 달동네 하월곡동 길음동 언저리 에 모여들어 지금의 미아리 텍사스 촌이 된 것이다 MIT와 같은 곳은 천호동이며 얼마전까지 있었다
그러나 서울역이나 청량리 영등포 용산역은 지정학 상으로 용솟음 치는 젊음얘들 즉 군바리 들이나 순진한 시골 총각들이 모여드는 곳이 지만 미아리 텍사스 촌은 아무리 서부 개척시대의 텍사스 처럼 술집 겸 여인숙이 생겼지만 교통도 나쁘고 비만 오면 장화가 있어야 했던 변두리 였음이 틀림없는 곳이기에 호객할 만한 손님이 있을리 없었다.
그래서 미아리 텍사스 촌은 고객을 끌기 위해 각종 희한한 묘기를 개발했고 그게 적중하여 술 거나하게 마시고 질펀하게 놀다가 섹스를 마무리하는 풀코스로 인정받아 한량들의 발길 이 끊이지 않게 됐음직 하다.
나도 친한 친구와 친구의 외삼촌 ~ 즉 그곳의 건물주이며 해병대 출신인 친구의 친구 외삼촌 이 초대해서 친구 셋이 딱 한번 가 본적이 있는 데 특별 명령으로 그 건물에서 영업하는 여인들 중에 특 A급 실력자만 불러서 인지 그 현란한 묘기 만큼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월등한 실력권의 금메달 감이었다.
담배 피기와 맥주병 따기는 기본이고 아내의 태국베냥여행 가서 침을 질질 흘리며 본 바늘 쏘아 풍선 맟추기 그리고 바둑알 세기 계란낳기 등등 ~~~ 그리고는 마지막에 써주는 초서체 붓글씨는 아직도 친구집에 고이 간직 할 정도로 명필 이었다 .
사실 미아리는 MIT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미아리 고개는 병자호란 때 오랑캐 즉 되놈이 서울에 침입할 때 이 고개를 넘어 왔음으로 하여 되넘이 고개라 불렸고 일제시대에는 미아리 고개넘어 공동묘지가 있어 넘으면 다시 못 올 한많은 고개였고 6.25 때는 많은 인사들 이 철사줄로 꽁꽁꽁 묶여 납북됐던 단장의 미아리고개 아직도 점쟁이들이 즐비한 점쟁이 촌 얼렁뚱땅 만들어진 집장촌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곳 말 그대로 한도 많고 사연도많은 고개였다.
미아동彌阿洞이란 이름은 조선말 고종高宗 초의 공식기록에 처음 나타나는데 그 유래는 확실치 않다 다만 전해오는 이야기는 되너미 고개 돈암동의 유래를 일명 미아리 고개라고 부르는 까닭에 고개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고 설과 미아 제7동에 있는 불당골佛堂谷에 미아사彌阿寺가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이 절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이있다.
불가에서는 미아를 언덕에서 쉬어 간다는 뜻으 로 풀이 한다면 그런 좋은 이름을 집장촌 이름 으로 부르니 미아동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고 하소연 한다. 미아리 텍사스와 2km 이상 떨어져 있는 미아동은 이름을 제발 쓰지 말자는 것이다
언젠가 언론에 보니 미아동은 강북구인데 왜 성북구에 미아가 붙었느냐며 미아 삼거리 미아리고개 미아가 붙은 지역이나 공공 표시 물은 전부 없애고 다른 이름으로 바꿀 계획을 갖고 있다 한다.
실제 자기네들 지역에 미아리 텍사스가 있어서 피해보는 미아동은 생각한다면 미아리 텍사스를 없앨 강구를 해야지 이름 도용당해 손해보는 미아동을 탓하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미아동 사람들이 앞으로 미아동 말고는 절대 미아를 쓸수 없도록 특허 등록을 하면 미아리 고개는 되너미 고개로 바꿀 수 있지만 미아리 텍사스는 길음 텍사스나 월계 텍사스로 이름을 바꾸어야 할텐데 영어 이니셜이 문제지만 ~~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강북 재개발은 집장촌도 추억속으로 사라질 것 같다
미아리 극장 개관 하던날 우리집 식모 누나는 나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다 그 극장에서 삼양동쪽으로 가다보면 앵두나무우물이 있는 작은 언덕이 길을 막고 있었지. 그 왼편에 공동묘지를 깍아 세운 당시 국민학교가 있었어 완전히 개간되지 않은 운동장엔 못다 썩은 관짝이며 때론 인골이 나오기도 한다는데 밤엔 도깨비불로 변한다고 하였다. 그 동네에서 살다보니 그저 개똥같은 소문만 늘어서 " 아파치 파 " 가 더 쎄다느니 미도극장 " 코만치파" 가 더 쎄다느니 하는 헛배 앓는 소리로 골목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 내 글에 종종 나오던 큰돌산 작은돌산 ㅡ 처녀가 애를 뱃다고 떨어져 죽은 곳 .... 대가리가 굵어지면서 할일 없는 까까머리들이 Texas 초입 " 물망초 " 부터 종암동 소방서근처까지 색시집이 몇 개인지 호구조사도 하였던 바 , 지금은 이 세상 친구가 아닌 녀석은 졸업기념으로 색시집에서 아**시를 헌납하고 술 까지 얻어먹었다는 전설같지도 괴담도 만들었다 .
유리창 너머로 나이 어린 내 또래만한 여자 아이를 보았을 때 그 잘난 연민의 정이 들어 술 한잔 하면서 보고 싶어 국민은행에 적금까지 들었던 기괴했던 나의 젊은 시절이 거기 있었다
용산이나 천호동 .그리고 서부역 쪽 만리동. 아직도 자취가 남아 있는 영등포 . 아차 ! 잊고 넘을 수 없는 마장동 시외터미널 ..... 녀석은 귀대하기가 죽도록 싫어 버스를 아껴서 짧은 것 한탕으로 그 원망의 와수리 버스를 올라 탔다. " 여명의 눈동자 " 를 쓴 김성종은 첫 소설로 " 어느 창녀의 죽음 " 에서 전쟁의 비애와 혈육상간의 아픔을 그렸다 . 그 소설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창녀. 창녀촌 .... 절제 못하는 인간 아니 남자들의 허무를 뿌려대고 가는 곳 .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 시골에서 막차타고 상경한 어린 누이들의 눈물과 한숨이 베니어판을 벽에 절규처럼 긁혀 있는 곳 정액 냄새가 씻겨지지도 않은 동전 몇 푼을 뜯어가는 빈대같은 인간들 . 아 남산의 비탈길 ....
첫댓글 으아 역사가 줄줄 흐르네요 잼나게 보고 갑니다. 79년도에588들렀다가임질의 추억이 있는곳 휴가나와서 말이죠 히히히
까꿍!
마의태자님!
군시절 588추억이 ~~~
ㅋ 웃음이 절 로 난? 왜일까요.?
우리는 ㅎ
늘 복 되시고 행복하세요 ^♡^
다 우리나이때는 한번씩 지나다녔던 길을 일목요연하게 써주셨네요
좋은기억은 아니지만 기억이 생생하네요 청량리588앞에서 만원버스타고 학교가던. 꼬맹이 중학생시절부터 ㅎㅎ
왜요?
조은 추억이지유?
머시마들은 다아~~~~~ㅎ
제인에어님 추억묵고 살아오 ㅎ
늘 복 되시고 행복하세요 ^♡^
미아리 극장 개관 하던날
우리집 식모 누나는 나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갔다
그 극장에서 삼양동쪽으로 가다보면 앵두나무우물이 있는 작은 언덕이 길을 막고 있었지.
그 왼편에 공동묘지를 깍아 세운 당시 국민학교가 있었어
완전히 개간되지 않은 운동장엔 못다 썩은 관짝이며 때론 인골이 나오기도 한다는데 밤엔 도깨비불로 변한다고 하였다.
그 동네에서 살다보니 그저 개똥같은 소문만 늘어서 " 아파치 파 " 가 더 쎄다느니 미도극장 " 코만치파" 가 더 쎄다느니 하는 헛배 앓는 소리로 골목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
내 글에 종종 나오던 큰돌산 작은돌산 ㅡ 처녀가 애를 뱃다고 떨어져 죽은 곳 ....
대가리가 굵어지면서 할일 없는 까까머리들이 Texas 초입 " 물망초 " 부터 종암동 소방서근처까지 색시집이 몇 개인지 호구조사도 하였던 바 , 지금은 이 세상 친구가 아닌 녀석은 졸업기념으로 색시집에서 아**시를 헌납하고 술 까지 얻어먹었다는 전설같지도 괴담도 만들었다 .
유리창 너머로 나이 어린 내 또래만한 여자 아이를 보았을 때 그 잘난 연민의 정이 들어 술 한잔 하면서 보고 싶어 국민은행에 적금까지 들었던 기괴했던 나의 젊은 시절이 거기 있었다
위에 섬사랑님이 올려주신글도 옛날 얘기로 재미있는데
오분전님도 미아리텍사스일대를 재미있게 써주셧습니다.
미아리도 지나고 길음동도 지나는 ..중고를 다녔습니다
20 번 아륙교통이나 9 번 영신여객 애용하셨겠군요 ㅋㅋ
용산이나 천호동 .그리고 서부역 쪽 만리동. 아직도 자취가 남아 있는 영등포 . 아차 ! 잊고 넘을 수 없는 마장동 시외터미널 ..... 녀석은 귀대하기가 죽도록 싫어 버스를 아껴서 짧은 것 한탕으로 그 원망의 와수리 버스를 올라 탔다.
" 여명의 눈동자 " 를 쓴 김성종은 첫 소설로 " 어느 창녀의 죽음 " 에서 전쟁의 비애와 혈육상간의 아픔을 그렸다 .
그 소설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창녀. 창녀촌 ....
절제 못하는 인간 아니 남자들의 허무를 뿌려대고 가는 곳 .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
시골에서 막차타고 상경한 어린 누이들의 눈물과 한숨이 베니어판을 벽에 절규처럼 긁혀 있는 곳
정액 냄새가 씻겨지지도 않은 동전 몇 푼을 뜯어가는 빈대같은 인간들 . 아 남산의 비탈길 ....
저도 대왕코너에서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588 듣기는 했습니다~~ㅎ ㅎ
학다방 멤버셨군요 ^^
@오분전 어머나 학다방 ㅎ ㅎ
지금 생각났어요 깜놀 ㅎ ㅎ
@소정 친구 녀석이 여친한테 차이고 같이 청량리에서 미아리 고개까지 포장마차마다 들러서 대포 한 잔씩 마시고 갔던 .....
결국 길음다리 아래서 곱게도 쏟았지말입니다 ㅋㅋㅋ
@오분전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그친구들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ㅎ ㅎ
@소정 할매 할배 ...겠지요 ㅎㅎ
@오분전 섬사랑님 잠도 못주무시겠네
오분전님도 쉬세요 내일 시간 많아요 ㅎㅎ
@오분전 할배.할매.
그런기요.
옛적 야그에 그시절 그시절롯
@섬사랑 돌아가기 싫어요
앞으로 다가올 길은 내가 못가본 길이니 ....
실수하지 않고 의지대로 가보고 싶어요
다만 몇날 며칠이라도 ....ㅋ
@섬사랑 이그 잠깨셨네 학다방 생각에
옛날 남친들 생각이 ㅎ ㅎ
@오분전 잊어버리고 훤히보이는 길을 ㅎ
아름답게 걸어가요.
함께들♡♡♡♡♡
@소정 ㅋㅋㅋ 잘 지내고 있다 하더이다 .... 소문에
@오분전
@오분전 소문이 빠른가요.
늦은건가요 ㅅ
@소정 ㅋㅋㅋㅋ
@섬사랑 소문은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오분전 아
그래요
유통기간은요 ㅎ
@섬사랑 안 팔리면 끝 !
@오분전 에공
으째야쓰까 잉 ㅎ
@섬사랑 유통기한 지났어도 그어렸던
남자애들 보구싶다요 ㅎ ㅎ
@소정 하믄
그러고 말고요
보약이지요 ㅎ
@섬사랑
지금은 다 밀리고 아파트 촌이 된것 같던데요.
한 많은 미아리 고개는
14살 부터 25살 까지
버스 타고 지나 다녔어요
미아리 텍사스촌이란 말은 그 후에 들은 적이 있었으나~
결혼과 동시에 시내로 나갈 일이 없어서~어떻게 생긴 곳인지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청량리 송도병원에서 (지금은 약수동) 치질수술하시고 보신탕을 좋아하셔서 588있는데서 보신탕사왔던 기억이 있네요
난 직장 주소가 전농동 588 이니
추억이 없을 수가 없는데
말 못합니다..ㅋ
미아리 텍사스는
당시 친구들 결혼할대
함값 받으면
무조건 거기로 가는걸로 되어 있기에..
아..남지끼리 라면 별별 얘기가
다 나올텐데
수다못해 아숩다..ㅋㅋ
지금 588 자리가 재개발로
아파트 공사중인데
어느 ㅁㅊㄴ이
588 있던 자리라고 유적비를
세우려고 계획 했답니다.
물론 주민들 반대로 취소 되었지만. ㅎ
@다다닥 세상에
그런일이요.?
ㅊ ㄴ 들을 위해 기르는 거 말씀인가요.
세상에 덜 떨어진 이 같으니~~~
특정인들을 위해
588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이런 말은 남자가 해야 하는데요..^^
특정인도 그렇지만
싱글 남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꼭 필요한 곳이
였는뎅ㅡㅡㅡㅎ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이라는...
말이 맞을까요 ?
두번째 직업 입니다
첫번째는 사냥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