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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옛생돌 원문보기 글쓴이: 나무
서남부 '고려시대 마을터', 보존 될까 | ||||||||||||
도개공 "매물 보존"...학계, 시민단체 "현장 보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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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굴된 고려시대 유적은 고려시대 ‘유성현’의 치소였거나 이와 비슷한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발굴을 맡았던 류형균 중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1만5100㎡를 발굴조사 한 결과, 고려시대 연못지 등 마을 집단 유적으로써 현의 치소라는 확정은 할 수 없으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마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 열렸던 현장지도위원회에서도 몇몇 문화재위원들은 보존에 대한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외에 매몰이나 이전보존의 의견까지 나오는 등 발굴유적에 대한 통합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지난 26일 열린 매장문화재위원회에서도 연못의 보존 범위 등이 난해해 현장조사를 통해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사업을 맡고 있는 도시개발공사의 박성수 차장은 “보존의 방법에는 매몰도 포함된다. 5m를 성토해야 하기 때문에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용지는 건설사 입찰을 통해 아파트가 지어지기 때문에 아직 설계가 나오지 않아 여유공간은 많다. 다만 감정평가시에 장애물로써 존재를 표시해 주고 위에 잔디 등을 심어 보존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달 원형 보존 성명서를 발표했던 대전문화연대 안여종 사무국장은 “대전 933개 역사유적 중에서 고려시대 유적은 단 5곳에 불과하고 모두 시민들과 거리가 먼 산속에 존재한다”면서 “이를 원형보존해 고려시대의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려시대를 전공한 한남대학교 이정신 교수는 “눈에 띄는 고려시대의 유물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연못과 도로가 나왔다. 고려시대의 연못은 전국에서 처음이며 보존된 것도 없다. 꼭 보존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학계나 시민단체, 개발기관들의 주장은 ‘보존’이라는 것으로 일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 발굴조사과 김순철 사무관은 “매장문화재위원회에서 유구들 중 연못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 관심사였지만 이에 도로까지 논의되면서 현장확인으로 결정됐다”면서 “추석을 전후해 현장지도위원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문화재위원을 중심으로 현장조사단을 꾸려서 확인 후에 보고서가 작성될 것이고 그 것을 토대로 오는 29일 심의가 이뤄질 것이다”고 앞으로의 일정을 밝혔다. 한편 서남부지구는 사업 시행자인 토지공사, 주택공사, 대전도시개발공사와 중앙문화재단·백제문화재단이 오는 2009년 1월까지 택지개발구역에 대한 문화재 시굴 및 발굴조사를 완료키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조사대상지(150만㎡) 가운데 40만㎡가 발굴조사구역으로 전환된데다 문화재 조사 인력이 부족해 문화재 시굴조사는 70%에 머물고 있으며 발굴조사도 늦어지고 있다. 전국에서 단 하나 뿐인 고려시대의 연못이 땅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밖으로 나와 후손들에게 그 본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는 이달 말에 열릴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판가름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