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에서 경제전으로>
피터 슈바이처 저(1994), 한용섭 역(1998, 오롬시스템)
소련이 붕괴된 과정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 할 수 있으며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거대한 초강대국 소련이 해체된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일부나마 해소시켜 주는데 의의가 있다.
저자는 소련의 붕괴가 자체의 체제 모순에 의한 과정이 아니라 미국의 적극적인 대외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80년대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강경 반공 보수노선이 채택된 시점에서 소련이 지닌 몇 가지의 약점은 미국의 대소 강경 드라이브를 부추킨다. 애당초 소련을 소멸되어야 할 집단으로 규정한 레이건은 소련의 경제적 약점을 부각시켜 한계에 이르게 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며 여기에는 중앙정보국의 비밀 공작이 큰 역할을 한다.
먼저 70년대 말부터 지속되어온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비밀리에 지원하여 공산진영을 동요시키고 이를 탄압하는 폴란드 공산정권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소련으로 하여금 체제유지비용으로 폴란드에 엄청난 경제원조를 하지 않을 수 없게끔 했던 것이다. 아울러 서방진영이 추진해온 소련내에서의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중지토록 설득하여 자원 개발을 통해 경제난 해소를 추구하던 소련으로서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사우디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석유를 증산하고 가격을 내리도록 함으로써 소련이 석유 수출로 얻어 오던 이익을 대폭 줄이는 것은 물론 아예 소련석유의 수출 비중마저 줄어들게 했다. 게다가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에서 반군들에게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하여 결국은 장기전끝에 철수하게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회교도들의 이탈 분위기가 고조됨으로써 소련방해체의 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이 취한 온갖 군비증강 계획 특히 전략방위망 구상(SDI)은 소련으로 하여금 도저히 군비경쟁에서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끝내는 두 손을 들고 근본적인 체제 변혁을 통한 살길 찾기에 나서게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가 관점이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체제가 무너진 데에는 이 외에도 더 많은 연구를 통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과연 미국의 집요한 노력도 한 몫을 했겠구나 하는데 이해를 더해 주는 것이 이 책의 가치라 하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 이외에 국제 정치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지니는 정보기관의 비밀공작 활동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점 또한 흥미를 갖게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