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준비만이 안전과 재미를 보장한다
'급출발 급제동' 삼가고, 한 박자 앞서 나가기
9월. 한여름의 뜨거웠던 햇살은 조금은 누그러지고, 이쯤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종주산행. 힘든만큼 값진 산행이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종주산행을 준비하자.
산행은 힘들지언정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산행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그 어떤 것도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안전과 재미는 산행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나 종주산행이라면 말이다.
종주산행이란 쉽게 말하면 정상에 이르는 가장 먼 길을 택해 가는 것이지만 때로는 목표가 정상이 아닐 때도 있다. 산행만 최소한 이틀 이상 걸린다. 따라서 종주산행의 특징은 산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과 장비와 식량 일체를 모두 배낭에 꾸려 메야한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보행법도 마우 중요하다.
산에서 먹고 자기 그리고 입기
먹여야 간다. 성인 기준 하루 평균 소비하는 열량은 2500칼로리 정도. 하지만 등산은 하루 4000칼로리 정도가 소모된다. 대략 1분에 10칼로리가 소모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묵직한 배낭을 생각하면 소모량은 더 많아진다. 그래서 즐겁고 안전한 종주산행을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밥도 잘 먹어야 하지만 중간중간에 행동식을 잘 먹어야 몸이 말을 잘 듣는다. 산사람들이 가장 많이 챙기는 행동식은 쵸코바와 쵸코파이, 약과, 육포, 건포도, 햄 등이다. 미숫가루도 좋다. 미숫가루를 준비하려면 설탕을 미리 타놓고 꿀을 밀폐용기에 준비한다(요샌 꿀을 튜브에 담아 팔기도 한다). 열량도 중요하지만 땀을 많이 흘린다면 염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햄처럼 약간 짭짤한 것도 좋다.
산을 자주 다닌 사람이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행동식 메뉴가 웬만큼 정해져 있다. 메뉴는 취향대로 선택하되 먹는 때는 신경을 써야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배고프기 전에 먹는다'. 밥을 먹고 출발헤서 2시간이면 배가 고프다. 밥 두 그릇을 반찬과 라면을 곁들여 먹으면 1200칼로리 정도이니 2시간이면 밥 먹은 흔적이 없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간식을 먹어야 한다. 대략 50분 산행에 10분 정도 쉰다면 쉴 때마다 행동을 조금씩 먹으면 된다.
잘 자야 쉽게 피곤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잘 자자. 일반적으로 산에서 잠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음주 그 다음이 소음, 그리고 빛이다.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거나 많이 마시게 되면 그 여파는 다음날까지 미친다. 산에서 마시는 술맛은 인정하지만 적당히 먹고 잔다. 내일의 산행을 위해.
산 중에 웬 불빛? 장터목이나 중청산장에서 자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새벽 3~4시쯤이면 일출을 보려는 이들의 랜턴불빛들이 군무를 이룬다.
산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 생김새만큼이나 사연도 각각인지라 이야기는 밤늦도록 이어진다. 몸이 피곤해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수면을 방해한다. 푹 자려면 몇 가지 소품을 준비한다. 베개가 없어 불편하면 장비점에서 공기베개를 장만하고 불빛이나 소리에 예민하다면 귀마개와 안대를 준비한다. 세 가지 다해야 10,000원 선이다.
국립공원에서야 어렵지만 야영을 한다면 집 짓는 것이 큰 일. 습한 땅을 피해 바닥 고르고 텐트 치는 것이야 기본이고, 날씨가 흐리다 싶으면 배수로를 파야한다. 판 흙을 배수로 양 옆으로 올려 '뚝방'을 쌓으면 좋다. 플라이는 짱짱하게 덮되 텐트와 닿지 않아야 텐트 내부에 이슬이 맺히지 않는다. 혹시라도 젖으면 가스버너를 약하게 켜서 두면 마른다.
플라이 뿐만 아니라 비닐도 텐트와 단짝이다. 딱 텐트에 맞게 준비하지 말고 플라이 밑에 두는 배낭이나 장비들도 비닐 위에 놓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크기로 준비한다. 삽도 없고 스틱도 없어 배수로 파기가 힘들다면 비닐 밑에 돌이나 나뭇가지를 두어 끝을 올리면 된다. 물론, 플라이는 비닐을 덮어야 한다.
9월의 산은 일교차가 큰 편이다. 낮엔 땀이 삐질삐질 나다가도 밤이 되면 한기가 느껴진다. 낮에 산행할 때는 여름용 기능성 의류를 입으면 되고 밤엔 긴소매 의류를 준비한다. 비올 때나 바람불 때 필요한 방수방풍 의류는 한여름에도 필수로 챙기는 것이니 초가을엔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
먹을거리와 마찬가지로 입을거리도 한 박자 앞서 나가야 한다. 춥기 전에 입고 덥기 전에 벗자. 다리도 아프고 배낭 다시 메기도 번거롭지만 추우면 꺼내서 입고 더우면 벗어서 넣는다. 그러니 꺼내기 좋게 배낭 윗부분(혹은 헤드)에 넣는 것이 좋다.
근데 이걸 어떻게 꾸리지?
이제 짐꾸리기다. 배낭은 가벼울수록 좋다. 그럼 어떻게 꾸려야 덜 무거울까. 가벼운 짐(옷, 침낭 등)을 먼저 넣고 무거운 짐(주로 먹거리)은 배낭 위쪽 그리고 등쪽으로 붙인다. 무거운 짐이 바깥쪽에 있으면 누가 뒤에서 잡아 당기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요새는 장비가 좋아져 초경량, 초소형의 장비들이 많다. 대신 값이 상당하니 각자의 능력(경제력과 체력)에 따라 장비를 준비한다.
배낭 안의 내용물이 젖으면 안된다. 배낭도 좋아졌고 커버도 있지만 배낭 내부에 '코팅'을 하자. 지물포 가면 김장 비닐이 있다. 김장독 안에 비닐을 넣고 그 안에 김치를 담듯, 배낭 안에 비닐을 넣고 그 안에 필요한 장비를 꾸린다. 배낭에 여유가 된다면 매트리스를 반으로 접어 배낭 안에 돌리는 것도 방법. 매트리스를 걸에 매달면 잡목이 우거진 길이나 암릉에서 걸리적거리지만, 안에 넣으면 배낭 모양도 예뻐지고 완충작용도 한다.
여분 옷은 별도의 주머니에 담고 자질구레한 것은 구분하여 색이 다른 잡주머니에 넣자. 익숙해지면 참 편하다. 그리고 수시로 필요한 것은 배낭 윗부분이나 헤드에 넣는다. 씨에라컵, 수저, 휴지, 행동식.... 오후가 되면 헤드랜턴도 헤드에 챙긴다. 그리고 이왕이면 배낭 겉에 주렁주렁 다는 것은 삼가자.
의식주를 다 챙겨 짐을 쌌으니 이제 남은 것은 산행. 종주산행은 기본적으로 걷는 것이다. 발걸음은 땅을 지그시 누르듯 딛는다. 툭툭 던지듯 내걷는 걸음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한다. 기운이 펄펄 남는 젊은이가 산행 경력이 많은 노인의 발걸음을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걸음폭은 짧게 그리고 걸음은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쉽게 붙은 불은 쉽게 꺼진다.
알파인 스틱은 종주산행에 쓸모가 많다. 걸을 때 무릎이나 관절을 보호하는 것은 기본이요, 걸음걸이에 도움을 주니 배낭의 무게가 덜하고, 플라이 폴대가 없으면 순식간에 키다리폴대로 변신하니 그 또한 편리하다. 임시로 배수로를 파기에도 좋으니 삽을 대신할 수도 있고,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아랫사람을 끌어주니 생명줄이 아니겠는가. 힘들 때 스틱에 두손을 얹고 턱을 바치면 한숨이 여유롭다.
실과 바늘은 물집이 잡혔을 때 유용하고, 물티슈는 손발 닦고 세면하기에 그만이다. 담배가루는 벌레들이 싫어하므로 텐트 주변에 뿌리면 좋다. 모기향을 피운다면 모기향통(철로 되어있고 매달 수도 있다)도 챙긴다. 비상약통에 압박붕대도 넣고, 그밖에 각자의 경험에 따라 소품을 준비하면 된다.
지형을 모른다 탓하지 말고 해당 산의 지형도를 배낭에 챙기고 중간중간에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지형을 물어 지도를 확인한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하게 잘 알려준다. 지나칠 정도로.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마른 옷은 하나 남겨두고, 핸드폰 전원은 꺼둔다.
종주산행이 체력테스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여유있게 걷고 조망도 즐긴다. 내 갈 길을 내다보고 내 온 길을 돌아보면 '눈은 게으르고 손발은 부지런하다'는 평범한 진리가 떠오른다. 그 길에서 만난 꽃들은 친구가 되고, 시야를 가로막는 신갈나무의 잎도 푸르다. 카메라가 있다면 찍어두었다가 야생화 서적이나 식물도감을 뒤지면 산행의 재미가 새록새록할 것.
"종주를 하면 성취감은 물론 시야도 넓어지죠. 두터운 일상의 틀을 깨는 훌륭한 탈출구가 될 겁니다." 설악산만 천회 가까이 훑고 다닌 김회율(57세)씨의 말이다., 종주산행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9월호
첫댓글 저에게는 꼭 필요한 글이군요.. 강성호님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 됐어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