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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먼저 읽어 오라는 알퐁스 도데'별" 을 감상 해보자.
두 명에게 지명하여 발표케한 후 요약하게 한다.
별의 줄거리 요약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내가 뤼르봉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두 주일마다 보름치 양식을 실어다 주는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의 다갈색 모자가 언덕 위로 넘어올 때면 나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나는 어느 집 어린이가 영세를 받았고, 누가 결혼을 했는지,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척, 아가씨가 얼마나 자주 잔치에 가고 저녁 나들이를 하는지, 지금도 새로 나타난 멋쟁이들이 계속 아가씨의 환심을 사러 오는지 따위를 넌지시 알아보았죠. 만일 네가 그런 건 알아서 무얼 하려고?"하고 묻는다면...그때 내 나이 스무 살이었다고....
어느 일요일 어느 일요일 눈이 빠지게 보름치 식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노새를 몰고 나타난 사람은 누구일까요?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몸소 나타난 것입니다. 꼬마는 앓고, 아주머니는 휴가를,도중에 길을 잃어서 늦어졌다는 얘기를, 내 눈에는 여운 모습! 아무리 바라보아도 내 눈은 지칠 줄 몰랐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농장으로 가면, 가끔 아가씨가 식당을 휙 가로질러 가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가씨는 하인들에게는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가씨가 바로 내 눈앞에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스테파네트는 신기한 듯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습니다. 아가씨는 아름다운 나들이 옷을 더럽힐까 봐 스커트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더니, 양을 몰아넣는 울 안으로 들어가 내가 자는 구석자리에 깔린 양 모피, 벽에 걸린 커다란 두건 달린 외투, 이 모든 것이 아가씨에게는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입니다. "그래, 여기서 산단 말이지? 가엾어라. 밤낮 이렇게 외롭게 지내면 얼마나 답답할까! 뭘 하며 시간을 보내지? "잘 있거라. 목동아." "조심해 가세요, 아가씨." 마침내 아가씨는 빈 바구니를 노새 등에 싣고 떠났습니다. 사라진 뒤에도, 그 노새 발굽에 채여 굴러 떨어지는 그 돌멩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내 심장에 쿵쾅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하고, 아련한 꿈에라도 취한 듯 졸음에 겨운 듯 멍하게 바로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 우리 아가씨가 나타났습니다. 방금 전까지 생글생글 웃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물에 흠뻑 젖어 추위와 공포로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소나기로 물이 불어난 소르고 강을 기어코 건너려다 그만 물에! 이제 날은 저물고 집으로 돌아 갈 수 없어 안절부절 못하자 이걸 보고 같이 울고 싶어지더군요.
기어코 밤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새 짚 더미 위에, 아직 한번도 쓰지 않은 새 모피를 깔아놓고, 안녕히 주무시라고는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앉았다. 갑자기 사립문이 삐걱 열리면서 양들이 뒤척이는 바람에 나는 염소 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에 걸쳐 주고,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깜짝 소스라치며 내게로 바싹 다가 앉고는 했습니다. 한 가닥 광선을 뿌리며 지나가자 무얼까? "어떤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아가씨도 나처럼 성호를 따라 긋고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뭔가 깊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윽고 아가씨는 불쑥 ‘그런데 너희들 목동은 모두 점쟁이라고 하던데?" "천만에요, 아가씨. "별이 넌 저 별들 이름을 잘 알겠지?" "그렇답니다, 아가씨. 자 저게 '갈퀴' 또는 삼왕성(오리온)은 우리 목동들에게 시계 노릇을 해 주는 별이지요. 저 '목동의 별'이랍니다. 우리가 새벽에 양 떼를 몰고 나갈 때나 '프로방스의 피에르' 뒤를 쫓아가서 칠 년에 한 번씩 결혼하는 예쁜 마글론 말입니다. "어머나! 별들도 결혼을 하니?". "그럼요, 아가씨". 별들의 결혼이야기를 할려는데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맞게 비비며, 가만히 내 어깨에 기대 아가씨는 먼동이 환히 터올라 별들이 해쓱하게 빛을 잃을 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잠든 얼굴을 지켜보며 가슴이 설레었지만, '저 숱한 별들 가운데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곱게 잠들어 있노라고......
'선생님! 소설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래 너희들에게도 연애 사연들이 있었을 걸!" '없습니다요...' '없긴 뭐가 없어?' ' 그럼 선생님은 있었겠네요?' '하 이눔들 봐라.' '선생님 연애담 하나 들려 주세요.' '하며 여기저기서 웅성그려 피할 길이 없었다. 이거 말 하나 잘 못해...... 그럼 좋다.!
그 말씀 다시 취소할 수 없습니까?
내가 늦게 교육대학에 들어가 가정교사를 하고 있을 때 이야기다.
초등학생 3학년과 6학년인 두 형제를 가르치면서 아래채 방에서 함께 먹고 자며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하루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까지는 내 공부를 하고 7시까지는 두 형제에게 아침 공부를 시키고 여덟 시 반에 집을 나간다. 9시부터 수업이 시작되어 오후 4시에 마치면 방과후애는 오르간 연습이다 체육실기 연습 등을 마치고 오후 여섯 시에 집에 돌아온다. 저녁 식사 후 7시부터 9시까지는 두 형제와 함께 주로 수학문제를 중심으로 개인 지도를 하고난 다음 밤 11시까지는 내 공부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그야말로 곽 짜인 바쁜 일과였다. 등하교길인 비봉산 밑 진주고교 옆 수정동에서 인사동을 거쳐 신안 벌 학교까지 5K를 매일 도보로 등하교를 하고 있었다. 벌판 보리밭은 초록으로 짙어가고 진주성 서장대 밑 남강 변에 실버들 나무에 푸른 잎이 제법 연초록으로 물들어 작은 바람에도 하늘거리고 있었다. 대학교정 화단에는 하얀 목련 꽃봉오리가 볼록볼록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3월이 지나고 4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학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공부방 내 책상위에 향기로운 꽃이 화병에 꽂힌 채 나를 반기고 있었다. 방안도 아침에 나갈 때 내가 정돈한대로가 아니고 앞창 문까지 깨끗하게 반들반들 윤이 나고 있었다. 속으로는 "누가 이렇게 했느냐?"고 묻고 싶은 말이 입밖에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저녁공부 시간이 끝날 무렵에야 괜히 더듬거리며 오른쪽에 앉은 큰놈에게 넌지시
‘책상위에 이 꽃 누가 가져다 놓았나?" 하며 떠보았다.
"큰누나가 갖다 놓은 깁니더."
"뭐 큰누나라고" 하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직이 떨리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큰놈이 대뜸 하는 말이 ‘큰누나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습디더." 하면서 싱긋 웃으며 나를 슬쩍 왼쪽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땍! 이늠" 하며 나는 시치미를 떼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환한 무엇이 떠오르고 있었다. 밤 열 시가 넘자 애 둘은 자고 나는 책상위에 스탠드 불을 밝히고 책을 펼치고 앉았으나 머리는 온통 그녀 생각으로 차 있었고 그날 밤은 고스란히 뜬 눈으로 지새웠다.
입학 당시 대학입시를 치루기 위해 짧은 기간이지만 대학주변에 하숙을 해야만 했다. 입시 하루 전에 수험표를 받은 다음 수험교실까지 확인해 두어야만 했다. 밀양에서 버스를 타고 또 진주까지 기차로 갈아타야 하기에 말이다. 내가 하숙한 집은 바로 대학 앞에 있는 집을 구했다. 그날 나와 함께 하숙한 시골 학생이 모두 6명이었다. 264번이란 수험번호 표를 수령한 후 저녁을 먹고 문제지를 뒤적이고 있었는데 나머지 5명은 모두 시골에서 왔기에 밤늦도록 시내 구경하다 언 손을 불면서 들어왔다. 음력 정월대보름 쯤 되었으니 진주 추위가 몹시 매서웠다. 나는 혼자 내일의 시험을 대비하여 요점정리를 하고 자리에 눕다가 내 수험 번호가 264번이라 ‘이 육사’ 하며 뻘떡 다시 일어나 '이 육사의 작품인 '광야, 청포도' 그리고 작가가 독립운동하다 17회나 투옥되어 1944년 감옥에서 옥사, 그의 필명 64(陸史)도 수인(囚人)번호 64에서 따왔다.‘는 것을 상기하며 한 번 더 264(李陸史)를 공부한 것이 수험당일 그게 국어시험에 출제되어 다른 학생들보다 좋은 점수를 얻었다. 10일 후 합격자 발표일에 합격증 수령 후 다시 그 하숙집에 들렀더니 "역시 수험 전날 꼼꼼히 혼자 밤늦도록 공부를 하더니 합격될 줄 알았다." 고 하며 나보다 하숙집 안 주인께서 입시합격을 더 좋아해하며 이르기를! "입학등록한 후 자기 집 아들이 중3 하나에 6학년 초등생이 있으니 하숙걱정 하지 말고 자기 집에 가정교사로 있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런 자리를 구하려는 나에게 더없는 기쁜 소식임에랴? 그렇게 1년을 그 집에서 지냈지만 중3 아들이 도통 공부에 뜻이 없고 밤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므로 더 이상 그 집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학년이 바뀌어 다른 집으로 수소문해 옮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때였다. 2학년 초 학생간부 선거가 치러지고 임원조직이 짜여져 자연이 학내 학생과 출입이 자자지고 있었다. 어느 날 학생과에 용무가 있어 들렸더니 학생과장께서 날보고 하시는 말씀 ‘가정교사를 의뢰하는 집이 있는데 좋은 학생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하시기에 제가 있던 집에 사정이 있어 옮겨야겠다고 여쭸더니 잘 되었다며 소개된 곳이 2학년 때 가정교사로 있었던 집이 바로 이 집이다. 집 주인은 진주시청공무원 간부급이였으며 제법 부유한 가정이었다. 아들 둘을 나에게 부탁하기를 아침저녁시간만 늘 함께해 달라며 사례비까지 두둑히 주었다. 초등 3년과 6년짜리에다 위로는 누나가 둘 있었다. 작은 누나는 여고 1학년이며, 내 방에 꽃을 꽂아 주는 큰누나는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같은 대학 동학년이라 한집에 한달이 넘도록 숫기없는 나라로서는 말을 걸거나 감히 함부로 넘볼 수없는 그런 처지에 있었던 그녀다. 그런데 그 ‘큰누나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습디더.’ 라는 말을 들었으니 어찌 그 밤이 잠이 왔겠는가?
어느덧 산과 들은 날로 연초록에서 푸름이 완연해진 5월로 치닫고 있었다. 비봉산 남쪽 진주고 동편 수정동에서 신안 벌에 있는 대학까지 두어 달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애들의 큰누나인 그녀와는 같이 등하교를 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녀보다 일찍 등교하여 늦게 귀가하기에. 거기다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이 나뉘어져 있어 자연스레 학내에서 남녀학생끼리 서로 마주치기도 쉽지 않다. 강의가 끝나면 다음 강의시간에 맞추어 화학실, 생물실, 음악실, 등 여러 특별실을 찾아 서로 우르르 교차 이동하는 시간에 어쩌다 서로 아는 이가 있다면 눈인사만 건내는게 전부다. 5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7월 기말고사 준비를 앞둔 어느 늦은 하교길이었다. 마침 교문 입구가 긴 플라타나수 잎새들이 석양에 빤짝이는 교문통에15M 앞 전방에 그녀가 걸어가고 있었다. 검고 짧은 스커트에 흰 블라우스로 왼쪽 가슴에 책을 양 손으로 감싼 채 혼자 굽 높은 힐을 신고 또박또박 소리를 내면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 앞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100M가 넘는 긴 교문 길을 벗어나기 전에 따라붙어 숨이 찬 다급한 목소리로 뒤에서
"아무개 큰누나“ 하며 불러 놓고는
”매일 이런 시각에 귀가하나요?"
하며 말을 걸었으나 내 가슴은 이미 뛰고 있었다.
"아니에요. 체육 실기 때문에 오늘 좀 늦었네요. 동생들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많지요?"
하며 그 까만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때까지 바로 내 코앞에서 그렇게 여자의 예쁜 눈동자는 처음 보았다. 그 순간 한동안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면서 나는 미리 짚어 생각하기를 '평소 내가 학교에서 공부하고 늦게 귀가하는 걸 그녀가 잘 알면서 일부로 나를 만나기 위해 뒤쫓다가 내가 음악실에서 오르간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것을 눈여겨봤다가 괜히 체육실기 핑계를 대는구나' 하며 내 나름으로 생각하는데 이미 남강 둑을 넘어서고 인사동에 이르자 찻집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 드-드-릴말씀이 있는 데여?" 하며 운을 떼었으나 말이 더듬거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며 아까 보았던 예쁜 눈이 아니고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저기 찻집에 가서 이야기 합시다요."
이층 찻집계단을 가리키고는 내가 먼저 나무계단을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뒤따라 올라와 마주 앉으며 가슴에 안았던 책들을 탁자에다 내려놓으며
"무슨 이야깁니까?" 하며 나를 쳐다보고 다그친다. 나는 속으로 사랑 고백을 하려면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그때 "무슨 차를 드릴까-아-요?"
하며 찻집 아가씨가 우리 둘을 부러운 듯 번갈아 쳐다보며 차 주문을 재촉하자 나는 그녀에게
"무-얼 드실-래요?" 하고 묻자
"커피," 라고 하기에 나는
"커피 둘" 하고 주문 해놓고 무슨 말부터 꺼내야하나 생각할 때 탁자에 커피 잔이 놓이기가 바쁘게 그녀는 양손으로 잔을 들어 한 모금 입술에 적신 후 대뜸 하는 말이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하며 나를 쳐다보며 싱긋이 웃는다.
”동생들 사례비 때문이죠? 그런 건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아버지께 올려드리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며 일사천리로 말해 버린다.
“앗 그-게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 하고 얼굴을 바싹 내게 밀며 그예쁜 눈동자를 크게 열고 묻는 바람에 그만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저 아무개 누나를 사랑합니다." 라고 크게 외쳐 버렸다.
"어-머-머" 하고는 잽싸게 탁자에 놓았던 책들을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길레 나는 그녀의 왼팔을 낚아채며 재빨리
"조금 전에 사랑한다는 말 취소합니다." 라고 했으나 그대로 그녀는 찻집 계단을 종종걸음으로 내려가 버렸다. 아뿔싸 이 일을 어떡하랴? 한동안 멍하니 넋을 잃고 있다가 겨우 일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찻집을 나왔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 내가 5월 초에 맹장수술로 며칠간 학교를 쉬게되자 문병온 다섯 명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군 제대를 하고 대학에 입학한 같은 또래 학우들인데다 내가 있는 집에 두어 번 왔다가 저녁까지 먹고간 적이 있는 친구들 그러면서 '부잣집에 기식하고 있는 나를 부럽다.'고 한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날 저녁때가 되어 찾아간 곳은 그들이 기거하는 하숙집이었다. 마침 저녁상을 들여놓을 때다. 나를 본 친구들은 '늦게 왼 일이냐?' 하며 밥 한 그릇에 수저만 더 가지고 와 같이 저녁을 먹자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밥생각이 전혀 없었다. 조촐한 밥상 접시에 담긴 계란후라이를 두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친구끼리 남의 몫까지 하나 더 먹으려고 쟁탈전을 벌이면서 젓가락끼리 불을 튀기는 것을 보고 한참 먹을 때라 돌아서면 배고팠던 시기인데 하물며 하숙집 밥일레야?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별천지에서 하늘이 내린 복을 말 한마디 실수로 내손으로 차버렸으니 말이다.
1학년 때 있었던 집은 목장집으로 아주 검소하게 사는 집이었다. 밥상위에 생선 한 토막이나 맛있는 반찬이 놓이면 아이들과 나 그리고 제대한 큰아들과 함께 먹는 밥상이다 보니 맛있는 반찬 한두점 집어먹기가 쉽지 않았다. 오로지 주식인 밥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독상에다 항시 생선 한도막이 아닌 한마리에다 다른 맛있는 반찬이 여러가지였다. 처음 한 일주일간 영양보충한다고 반찬만 먹고 밥만 남은 상을 보고 식모 아주머니가 "아이구 선생님은 밥을 왜 안 잡수시고 반찬만! 하며" 의아했다. 그런 집을 두고 들어가지 못하고 하숙하는 친구들과 함께 먹는 저녁밥이 씹는 게 밥이 아니고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그날 밤도 밤이거니와 그 후 3일간의 식사도 잠자리도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치미를 똑따고 내 발로 걸어 그녀의 집을 들어갈 수가 없다. 무슨 낯으로 두 형제들을 가르칠 것이며 그녀를 대하랴? 그래도 나도 명색이 뼈대 있는 양반집 후손인데 사나이가 그런 게 뭐 대단한 결례냐고 스스로 마음을 추슬러도 보았지만 내 자존심이 용서치 않았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학우들과 함께 하숙집 신세를 졌다. 군대 생활하며 '뚜껑 없는 화장실에 앉아 일 보던 중 철모를 날치기 당했다가 자기도 똑같은 수법으로 탈취하여 기압을 면했다.'는 이야기, 훈련 중 배가 고파 '누룽지를 몰래 숨겨 허기를 때웠다던 일, 1학년 중간고사를 끝낸 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밤늦도록 친구끼리 모여 술을 퍼마시고는 대성 방가 하면서 진주성 동편 입구에 표지도 없는 우람한 담장에다 실례를 하다가 붙들려가서 죽도록 몽둥이 뜸질 받고 나오면서 그 곳이 보안대(5공 때 안기부)였음을 실토한 이야기' 등을 들으며 5일간을 그들과 함께 기식했다.
드디어 기말 시험도 끝이 났다. 주말이면 집에라도 가야지 하며 텅빈 교정을 힘없이 나오고 있을 때다. 운동장 먼발치 앞에 그녀가 홀로 하교하고 있었다. 나는 변명하기도 만나기도 멋쩍었기에 걸음을 일부러 늦추어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그녀도 천천히 걷는다. 뒤로 돌아가는 후문이 있었지만 그 길로 가면 너무 두르기에 나는 더 천천히 걷자 그녀도 역시 더 천천히 걷기에 이번에는 내가 재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앞지르고 있었다. 그때다. 그녀가 내 오른팔을 잽싸게 낚아채 팔짱을 끼고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먼저 찻집에서 절 사랑한다고 했던 말 취소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 다시 취소할 수 없습니까?"
하면서 생긋이 웃으며 내 허리를 감싸며 찰싹 달라붙는다. 그날따라 교문통 양옆 키큰 플라타나수 이파리가 석양에 더없이 푸르게 하늘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그 다음은요? 이 눔들 봐라 '별" 소설에 다음은 있더냐? 목동과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겠느냐? 해설을 덧붙이면 오히려 독자들 머릿속에 찡한 감동이 오히려 반감되기 때문이다.
"선생님,방금 이야기 하신 주인공이 결혼하신 사모님이십니까?" "흠 소설이란 허구(虛構)잖아? 허구라도 있음직한 이야기가다." 여기 저기서 "선생님! 너무 재-미-있습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줄인다.'
1983년 늦은 봄에 창작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