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은 새해 벽두에 발길을 농민혁명의 고장인 정읍과 내장산으로 향했습니다
나약해진 몸과 맘으로 붉은 흙에 묻혀있을 역동적인 힘을 공감하고자 하는 목마름도 있었지요.
넓은 것이 바다와 하늘이라지만 일상적인 일에 매인 저에게 그 둘은 현실이 아니죠.
호남의 비옥한 땅은 이 나라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생명력의 원천이고
이 널직하고 먼 수평선을 보면 눈 앞의 이익보다 대의를 우선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근력으로 일궈낸 많은 수확물을 댓가없이 빼앗겨 온 역사 때문에
절망 속에서도 역경을 이겨왔던 지혜로운 고장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곳은 저에게 항상 현실로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형장의 칼을 앞에 둔 전봉준의 시선은 시대를 넘어 우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침략자를 영접하였던 권력은 간 데 없고
운이 다하여 할 바 없이 죽어 간 한 사나이의 절명시와 눈빛이 천 년은 더 이어질 듯 합니다.
이 사진의 얼굴이야말로 죽어가는 역사와 인간이 뿜어내는 가장 역설적 표정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이후 우리 백성들이 겪어야했던 절망과 희망을 통찰한 모습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넬슨이나 이순신 장군을 위대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업적은 왕명에 대한 복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봉건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김정호나 전봉준을 그 윗자리에 앉게 합니다.
주워진 운명에 순종하지 않고 뭇 생령들의 바램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에게 명령하는 자를 왕이 아닌 하늘에 의탁했기 땜이죠.
장군들은 역사를 바꾸지 않고 체제를 공고히 하였기에 그 뒤는 찬사와 영광이 줄불을 이룹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옥중 사망이나 형장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뒤에도 온갖 오물을 다 뒤집어 씁니다.
중등시절 국사책 동학단원 이름이 "동학운동"이 아닌 "동학 난"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 제작은 적에게 기밀을 제공한 간첩행위였고 침략자에 맞선 동학농민들은 왕명을 거역한 반역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오늘에도 유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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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사랑하는 붉은 마음 아는 이 없다하여 한탄하고 간 전봉준이지만
그의 피와 살은 오늘 황토현의 흙속에서 다시 살아난 듯합니다.
맑은 비 하얀 눈에 씻겨져 이제는 님의 서슬이 묽어도지련만
오늘 황토현의 흙빛은 더윽 생생합니다.
어찌하여
한 햇살 아래에
동해는 푸르고 서해는 붉은지요.
아마도
시대를 흘겨보는 푸른시선은 동해의 물빛으로 살아나고
백성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도 황해로 흘러가고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전봉준 고택을 방문하고 눈내리는 신작로 길 5키로 정도를 걸어 황토현 기념탑을 향하였습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들판은 넓어서 한가롭고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작년에 부여 낙화암에 갔을 때 이야기 중 우리는 3천궁녀라는 숫자가 망국적 의자왕의 상징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었죠.
하지만 이곳 정읍, 고창 쪽을 둘러보며 저는 그 생각을 바꿨는데 이유인 즉,
바로 이 너르고 너른 들판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큰 도회지 술집 도우미들이 삼천 뿐일까요?
아마 포항이나 광양의 제철공장을 보지않고는 정확한 도우미의 통계를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미녀와 술집이 경제력과 반드시 함수 관계를 이룬다는 얘긴 아닙니다.
겨울 추위에 빌어먹을 놈의 해충들을 얼려 죽일 양으로 땅을 깊게 갈아엎어 놓았는데
당시 농민들도 이렇게 갈아엎긴 했지만 이번 겨울처럼 강추위는 아니었나봅니다.
이 당시 살아남은 조병갑은 나중에 체포된 2대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관으로 나왔다나?
역사에 이런 익살도 허다하답니다~ㅋ
그러나 계속 부어놓은 퇴비 땜에 땅이 검어지긴 했어도 붉은 기운은 아직도 역력하지요?
황토현으로 향하는 중에 논에서 나물 캐는 아낙을 보고 다가갔습니다.
비료푸대 위에는 캐놓은 싱싱한 냉이나물이 놓여 있었는데
한겨울 들판에 이토록 건강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데에 무척 놀라웠고
새봄을 알리는 이 여인들의 나물캐는 손사위가 더욱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근대의 새벽을 알렸던 저 황토현의 역동성과 이 땅의 생명력에 공감하며
아낙들의 마음줄이나 튕겨 볼 요량으로 물어보았습니다.
"먼 나물이다요?"
"냉이 너물이요"
"내 눈에 냉이는 하나도 안 보이고 여그 풀들만 퍼렇게 보이궁만은, 이 풀 이름이 머이다요?"
"그거 시루떡 꽃이랍디다, 근데 어이서 오셨능게라?"
'지금 서울 사는디요, 고향은 남원이지요"
낯선 사람의 집까지 물어보는 아낙의 아량 땜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같이 나물캐면서 노작거리면
한 나절은 이곳의 진한 흙내를 맡으며 재밌게 보낼 것 같았습니다.
황토현 기념탑 아래에 동학운동 기념관이 한식 건물로 전아하게 만들져있어 그 때 일들을 상세히 볼 수 있게했는데 기념탑에서 몇 백미터 앞에 또 어마어마한 현대식 건물로 기념관과 교육관이 건축되어 있었습니다
기록화와 미니어쳐 인형들로 수북하다니까 구경거리를 기대하시고 이 고장에 오셨다면 필히 들려야 합니다.
내 생각으론, 전봉준 고택이나 제대로 복원하는 데 그 돈의 십분지 일이나마 썼다면 들른 사람들의 마음이 훨씬 흡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내장산 입구에 도착하여 내장사 절을 향하는 모습입니다.
불교식으로 하면 자신을 찾고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만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침 진눈개비가 엄청 내리는 중이어서 오늘 산행의 낭만과 시련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서울에선 100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고 가족들 연락이 계속되며 산행을 포기하라는 소리가 눈발이 치는 듯합니다.
그 말에 속으로,
"하늘은 함박눈 내리는 북한산을 또 못보게 하는구나! " 하는 탄식이 떠올랐습니다.
듣기로는 군경이 총동원되어 제설작업에서 사투를 벌인다 하는데
내장산을 오르는 등산 날라리는 함박눈 대신 진눈개비라하며 불평하고 있습니다.
눈 덮힌 사찰 분위기는 항상 수다스런 현실을 망각하고 마음 바다 한 가운데에 깊이 들어가고 싶게 합니다.
내장사는 수려한 주변 산세와 짜임새 있는 사찰구조로 격조가 높아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아이젠 끈을 고쳐매는 바람에 일행에 뒤쳐진 것이 까치봉까지 이어졌죠.
천신만고 끝에 일행과 합쳐지면 그동안 쉬고있던 일행들은 곧바로 오르고, 미처 쉬지 못한 그 분은 다시 뒤처지고....ㅋㅋ
까치봉에서 신선봉으로오르는 중입니다.
산행 중에도 내장산과 호남평야는 화두처럼 생각 속에 계속 머물러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바위능선을 오르며 문득 생각나는 게,
"산자락엔 비옥한 땅과 감로수가 항상 넘치고 있는데, 산능선엔 왜 딱딱한 바위투성이인가?"
"수만년 전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쌓여있었을 흙들은 지금 어디로 갔나?"
눈,비를 동무삼아 무수한 시간을 흘러내렸을 터, 그 자취따라 골이 패여서 계곡이되고...
그 뒤에 내린 빗물이 산속의 자양분을 실어날라 강을 이루고 들판을 만들면
숫한 생명들이 태어났다 지기를 반복하고~
내장산은 자신의 자양분을 호남평야에 아낌없이 부어주고 지금은 허허로이 서있으니
그 모습은 장엄하고 위대할 수밖에요,
"그럼,원래 검었던 흙이 황토가 된 이유는?"
인간의 욕망 또한 강렬한지라,
자연이 배달해준 심성으로 이를 멀리하다보면 뜨거운 삶의 진실이 생기고
그 붉은마음이 스스럼없이 반죽되었지않았나 하는 이유 밖에 나는 모릅니다.
ㅎㅎ,나도 이 자리에서 하마트면 단숨에 밑으로 흘러 하산할 뻔했습니다.
양쪽은 천애절벽이었는데 순간적으로 부는 바람으로 휘청했다니깐요?
그래서 가던 길 멈추고 바람 조심하라 이르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신선봉 정상에서 국립공원 관리소 직원들의 신년하례삭과 만났습니다.
상냥한 여직원이 건내는 뜨거운 차는 눈보라 해치고 올라온 등산객에게는 최고의 서비스였습니다.
하산한 다음 올려보는 내장산은 등산 전보다 훨씬 정감이 있고 신성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의제 허백련 선생님이 산수화의 모델을 어디에서 구하셨는지 짐작이 되었죠.
산능선에서는 천지를 메운 운무 땜에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을 산줄기들을 상상으로만 해야했지만
하산한 뒤에 보는 내장산은 사람표 발자국이 찍혀있는 보름달처럼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눈쌓인 아스팔트 길을 다시 5키로 정도를 걸어 산중이라는 뒷풀이 장소에 도착했죠,
이곳의 돼지갈비와 꿩탕을 곁들인 술 맛을 아시는 분이 과연 이 세상에 몇 분이나 될까요?
첫댓글 휴대폰 사진이라 화질이 세련되지는 않아도 정읍벌의 질감은 오히려 잘 살아난 거 같어요~ㅎ
잘봤습니다 선배님 ! 저도 현장에서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고 / 또한 어쩌면 그렇게도 문장력이 훌륭하시며, 사진의 배경이 정말로 멋집니다
좋은 격려 감사합니다. 정관 아우님이 현장에 가시면 더 멋진 감회가 새롭게 솟아날 겁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것을 보게해 주셔서...
내장산은 설경도 멋있구먼..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했던가...사계절 언제나 등산을해도 운치가 있어서 좋은것같네.금년도 복많이받고 건강하시게............
금년에 첫만남일세, 이리 좋은 자리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워~ㅎ, 두터운 흙이 많아 먹거리가 푸져서 밥상인심도 아름답데, 현정이도 보람있고 복스러운 새해가 되길 바라네,
정말 멋있습니다!!선배님!! 항상 이렇게 멋있는 글만 남기시는 선배님은 정말 멋쟁이입니다...
주먹만한 재롱에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일시적 감흥으로 소외되어진 산수를 탐방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며 쓴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