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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축년 세모(己丑年 歲暮)에 ***
태백산太白山 구간을 지나면서 주변 산세山勢가 아름답고
또 고사목枯死木과 주목朱木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사진이 많아져 2회로 나누었습니다.
민족民族의 영산靈山인 태백산은 이미 다녀온 사람이 많겠지만,
공사다망公私多忙하여 가보지 못한 분을 위하여 가능한 사진을 많이 올려 봅니다.
그동안 저의 부족한 체험기를 읽고 염려와 격려를 보내준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저의 다음 대간大幹 순례巡禮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신년新年 3월쯤에나 계속하려 합니다.
기축년己丑年을 보내고 경인庚寅年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건강健康과 행운幸運을 기원祈願합니다.
백두대간 33일째; 곰넘이재~신선봉~깃대배기봉~태백산~화방재(14.6km)---1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구름 많고 간간이 햇빛...
아침에 잠에서 일찍 깨었으나 옆자리에 아직 황 사장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그냥 누워 있다가 닭 우는 소리를 신호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밖으로 나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하늘을 처다 보았더니 밤하늘에 별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상당히 추울 거라고 해서 잔뜩 겁 먹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방에 들어와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황 사장도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가 싶었는데 조금 있으니 부엌에서 소리가 난다. 시간은 벌써 6시 반, TV를 틀어 일기예보를 들었더니 이번 주 내내 강추위가 예상되고 후반으로 갈수록 더 추워지겠다고 한다. 이번 산행은 이제 겨우 시작인데 추위 때문에 고전이 예상된다.
배낭을 챙겨 부엌으로 나와 황 사장이 끓인 대구탕으로 아침을 먹는데 나는 그런대로 먹을만 한데 황 사장은 맛 없다고 투덜댄다.
대구탕을 먹으니 새삼스럽게 김해 있을 때 생각이 난다. 지금쯤이면 진해가까이에 있는 용원 바닷가 어시장魚市場에 대구가 한창일 게다. 대구는 입이 큰 생선이라 대구大口라고 하는데 옛날에 비쌀 때는 1~2백만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물고기들의 회귀성回歸性을 이용, 치어稚魚를 방류하여 조업을 개선하고 부터 해마다 풍어가 되어 값이 많이 싸졌다.
대구는 곤 때문에 숫대구가 훨씬 비싼데, 그 때 용원 어시장에서 생대구는 한 마리에 3~4만 원, 활대구活大口는 마리당 12만 원 정도하였는데 한번은 대원隊員이 김해 내려왔을 때, 활대구 한마리를 사서 절반은 회를 뜨고 나머지로 탕을 끓여 1주일간이나 물릴 정도로 먹은 기억이 난다. 생대구만 해도 맛이 그만인데...,그때 그 활대구 사시미와 지리의 맛은 영원히 잊지 못 할 것 같다.
[참새골 입구]
식사를 하고도 황 사장이 태워 주기를 기다리다 보니 출발이 늦어진다. 잠시후, 황 사장이 도로포장이 된 데까지 3km 정도, 어제 산에서 내려와 만난 첫 번째 집 앞까지 테워준다. 내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춘양에 나가면 대포나 한잔하라고 사례비를 건네니까 사양한다. 내가 3만 원을 조수자리 앞쪽에 올려 놓았더니 황 사장이 웃으며 '고맙습니다, 다음에 지나시는 길이 있으면 또 들려요' 한다. 나는 황 사장이 어제 만난 후로 지금까지 그렇게 활짝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황사장과 이별하고 산행채비를 한다. 이곳 참새골 입구에서 대간 마루 곰넘이재까지는 2km 정도.., 길이 좋기도 하고 스틱을 사용하면 손이 시릴 것 같아 스틱은 배낭에 꽂아둔 체 이틀 째 순례를 시작한다.
좌측으로 시루봉을 바라보며 곰넘이재로 오르는데 어제 내려올 때 와는 달리 곰넘이재까지 오르기도 만만치 않은 오르막.., 추운 날씨에도 땀이 나서 곰넘이재에 도착하자 마자 쉼터 의자 위에서 내의를 벗어 어제처럼 배낭에 매단다. 어제, 오늘 경험으로 보아 어지간히 추워도 산에 갈 때는 내의를 입으면 안 될 것 같다.
[눈으로 덮인 신선봉 登路...]
오늘은 이곳 곰넘이 재에서 태백산을 지나 화방재까지, 15km를 가야한다. 날씨가 꽤 쌀쌀하여 손이 시릴 것 같아 준비해 온 핫팩을 하나 뜯었다. 핫팩은 겨울 골프에 많이 사용되는데 온기가 15시간 정도 지속되고 언 손을 녹여 주는 데는 안성마춤이다. 핫팩을 조금 흔들어 주머니에 넣고 널찍한 군사도로를 따라 신선봉 들머리에 들어선다.1,184.5봉으로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구룡산이 저만치 물러나 있다.
[다가오는 신선봉...]
[자작나무와 산죽...]
[신선봉 턱밑...]
눈으로 덮인 대간 길, 산죽 길을 지나 신선봉을 오르는 길이 된비알이라 상당히 힘든다. 스틱을 사용하지 않
고 핫팩으로 번갈아 손을 데우니 별로 추위를 못 느끼고 오히려 등에 땀이 배어난다.
[신선봉神仙峰, 1,280m]
신선봉 정상에는 이정표와 부산 낙동산악회에서 물푸래나무에 달아둔 정상표지판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아주 특별한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데...
[할배 묘墓...]
언뜻보아 신선봉 정상석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정상석이 아니라 묘빗돌이 서 있고 그 뒤에 아담하게 자리한 묘墓, 한기基가 대간 꾼을 맞는게 아닌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빗돌에 '경주손공영호지묘 慶州孫公永胡之墓'라 새겨져 있다. 돌림자 영자永字는 영~ 수~ 진~익 永~秀~晉~翼으로 내려오니까 증조부 님 행렬行列이다. 나의 증조부님 묘소는 고향 선산先山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영永 자 할배의 묘소를 여기서 만났다. 빗 돌 뒷면에는 '부인은 안동 권씨, 슬하에 1남2녀, 친손자 2, 외손자 2'의 후손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는 얼굴도 모르지만 이렇게 신선봉 정상에서 대간 순례객을 맞아 주고 있는 할배께 묵념을 드리며 어쩌면 신선이 되었을 고인의 명복과 후손들의 번영을 빌고 아울러 내가 대간 순례를 무사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원했다.
신선봉 하산로 방향으로는 대간 표지 리본이 참 많이도 달려 있다. 신선봉 정상은 신기하게 바람도 없고 마침 엷은 햇빛이 비치어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다. 나는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할배묘에 하직 인사하고 하산키로 한다. 내리막 경사가 심해 아무래도 스틱을 써야 할 것 같아 다시 스틱을 조정한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 신선봉 정상에서 대간 길은 지금오던 방향에서 시계 방향으로 310도 꺾여 차돌배기로 가게된다. 더욱 가까워진 태백 마루금을 바라보며 신선봉을 내리는데 마치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간다는 느낌까지 든다.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태백 마루금을 좌측에 동행하며 산죽으로 이어진 대간 길을 가는 동안 어딘가 살고 있을 신선봉 할배의 후손들을 생각해 본다. 그렇게 높은 곳, 1,280m의 고지에 힘들여 부모님의 묘를 쓰며 무슨 생각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삶에 신선봉 할배 묘의 의미는 무엇인가?
궁극적窮極的으로 인간의 사후死後는 무엇인가? 그동안 문득문득 머리를 스처 지나갔던 본질적인 의문疑問들이 홀로 가는 순례자巡禮者의 뇌리를 두드린다. 사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說이 있겠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가 아닐까? 사후세계死後世界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것..., 있다와 없다 과연 어느 쪽이 참인가?
나는 어느쪽인가 하면 후자後者에 속한다. 그러다면 그렇게 많은 종교인은 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죽음이 없다면 종교는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 앞에 나약한 인간은 종교를 찾는게 아닐까?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하여 믿음을 갖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종교의 참 의미는 아닐 게다. 참 종교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삶의 영생과 부활을 확신하여야 할 테니까..., 그 자체로 믿음의 의미는 있는게 아닐까? 그렇지만 래세來世는 없고 소멸消滅만 있다면 믿음은 곧 허구虛構가 아닌가...?
차돌배기에 도달했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마루금은 1,247봉을 지나 각화산(1,176m)으로 뻗어가며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가 된다. 나는 '89년경에 포항제철소에 소수력 발전을 시설하기 위하여 소천면에 소수력발전설비를 보러 간적이 있는데, 그때는 일행들의 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소천면 어디였는 지는 모르겠고 어디 깊은 산골이었는데 한적하고 청정한 곳에 자리잡은 소수력 발전설비를 돌아보고 일행들과 함께 산골집에서 산나물이 그득한 점심을 맛있게 한 기억이 남아 있다.
이어서 사거리 안부를 만났는데 어느 산꾼이 나무에 "물"위치를 알려 주려고 표지판을 붙여 두었다. 나는 지난여름 한 밤중에 깃대봉을 오르며 저런 물 표지를 보고 밤중에 샘을 힘들게 찾아 위기危機를 모면한 생각이 났다.
[다가오는 깃대배기봉]
멧돼지들이 온 산을 헤집어놓은 비탈 길을 지나 깃대배기봉 아래까지 왔다. 온종일 하늘에서 전폭기들이 굉음을 울리고 있기 때문인지 오늘은 멧돼지들이 어디 다 도망이라도 갔는지 보이지는 않는다.
차돌배기에서 3.6km 걸어 깃대배기봉에 이른다. 여기서 산 줄기가 갈라지는데, 우측으로 뻗어가는 산마루는는 두리봉(1,353m)을 지나 청옥산(1,276.5m)으로 이어지며 봉화군 소천면과 석포면의 경계가 된다. 물론 이 청옥산은 백두대간 마루금, 두타산 다음에 있는 청옥산과는 다른 산이다.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있었지만, 사진은 올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조금 후에...,
12시가 넘어 깔판을 깃대배기봉 정상석의 기초에 깔고 앉아 점심으로 빵을 먹는다. 목이 막혀 물을 먹으려고 하니 물병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배낭무게를 줄이려고 보온병도 없이 왔더니만..., 이제 마실 물이 없다.나는 혹시 물병이 녹으려나 하고 배낭 옆에 꽂혀있던 물병 하나를 배낭 속에 넣어 두고 물 없이 빵 한개와 맛동산 하나를 먹었다. 그런데 물을 마시지 못했지만 갈증이 그리 심하지는 않다.
[깃대배기봉, 1,368m]
점심을 먹고 불과 50여 미터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산림청에서 세워둔 깃대배기봉 정상석이 또 나온다. 이곳이 분명히 조금 전 정상석이 있던 곳보다 5~6m는 더 높을 것 같으니 여기가 깃대배기봉 정상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곳은 깃대배기봉 정상, 조금전 봉우리는 두리봉 갈림길로 하면 무난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손이 시려 다시 스틱 하나를 접어 배낭에 메달고 하나만 사용하며 한 손에는 스틱, 다른 손에는 핫팩을 쥐고..., 조금가다 스틱 쥔손이 시리면 스틱과 핫팩을 교대로 쥐었더니 손도 시리지 않고 지팡이 도움도 받고..., 상당히 편안하다.
나는 이렇게 편한 것을 왜 이제서야 생각해냈을까...? 저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1,356봉으로...]
무명봉인 1,356봉을 오른다.
다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신혼新婚일 때 울산에 있는 온산공단溫山工團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 핀랜드人 헤이노넨이란 사람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이분은 핀랜드의 펄프프랜트 전문 엔지니어링사社인 Ekono 사社 사람으로 전기제어 분야 논리회로 설계 전문가로 동해펄프현장에서 나와 함께 일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분은 점심시간에 채소류로만, 그것도 생식으로 식사를 했다. 심지어 수퍼에서 콩나물을 사와서는 '콩을 이렇게 나물로 만들어 먹는 우리들의 지혜'에 신기해 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베지테리언(vegetarian)이 낯설었던 나는 콩나물을 날것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는 그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일과 후에 이분이 베지테리언이 된 동기에 대해 물어봤더니 십수 년 전에 인도에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요가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하고 그후 육식肉食을 금禁해오다 몇 년 전부터 생선류까지 금禁했으며 이제는 생식을 한다고 했다.
한번은 단칸방인 우리 신혼 방으로 초대했더니 저녁식사로 과일을 좀 들고는 이분의 요가 강의가 이어 졌다.
그분은 길게 설명했지만, 요약하면 요가는 이를 추구하는 이론과 그 이론을 달성하기 위한 수련, 즉- 시어리
Theory와 메디테이션Meditation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물박달나무 군群]
[눈길]
태백이 가까워져 오자 눈의 고장답게 대간 길에는 제법 눈이 쌓여 있지만 다행히 미끄럽지가 않아 걸어가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산죽 길과 눈길이 번갈아 나오는데 눈을 밟으면 뽀드득뽀드득 하는 소리가 나고 눈과 스틱사이에서는 짐승의 울음 소리가 나는 착각을 일으켜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우려 보기도 한다. 나는 갑자기 얼마 전 고인이 된 이청준씨의 소설 '눈길'이 생각났다.
[산죽길]
눈이 엷게 덮혀있는 산죽길을 간다.
헤이노넨 씨가 설명한 내용을 소개하면, 요가의 이론은 불교의 윤회설輪廻說과 유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모든 생명체는 삶를 거듭하게 되는데 이승에서 닦은 업보대로 다음 생生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즉 이승에서 덕을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다음 생生에서는 좀더 업 그래드된 삶으로 태어나고..., 이렇게 생을 거듭하다(윤회輪廻)가 그야말로 큰 덕을 쌓으면 최고의 경지에 빨리 도달하게 되어 윤회 회수도 줄어들게 된다. 일단 최고의 경지[BRAMA]에 이르면 고달픈 삶의 윤회를 멈추고 영생永生을 누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가 생식하는 이유는 모든 생명체는 윤회輪廻의 생生을 보내고 있으므로 인간人間은 가능한 살생殺生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이승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최소량으로 섭취해야 하고, 그 것도 가능하면 하등의 생명체로 영양 섭취하면서 한 생의 윤회를 보내야 다음 생에서 좀더 업 그레드된 생으로 환생하게 된다고 한다.
다음은 수련(Meditation)에 대한 것인데 수련은 일반적으로 사회에 알려진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참선 자세가 있으며 헤이노넨 씨가 시범을 보여 주기도 했다.
[부쇠봉과 태백산 갈림길]
부쇠봉과 태백산의 갈림길에 왔다.
여기서 잠깐 갈등이 생긴다. 지름길로 태백산으로 바로 갈까? 아니면 부쇠봉 정상에 들렀다 가나? 여기서 부쇠봉까지는 400m..., 나는 부쇠봉을 들렸다 가기로 한다. 부쇠봉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봉우리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함께 해오던 경북도계가 백두대간을 떠나는 봉우리다. 그래서 나는 부쇠봉에 올라 경북도계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갈림길]
두 번째 갈림길..., 부쇠봉에 올랐다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 태백으로 가야 한다.
[문수봉文殊峰, 1,514.9m]
부쇠봉에 오르면서 자장율사가 꿈속에서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전설이 있는 문수봉을 지척에 바라본다. 경북도계는 부쇠봉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떠나 문수봉으로 흐른다. 부쇠봉바로 아래에 있는 전망대에서 봉화 청옥산 방향으로의 조망을 담아본다.
헤이노넨 씨는 울산 현장에서 예수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갖고 있었다. 갈색 눈을 가진데다가 생식生食을 해서 그런지 우윳빛 피부에다 긴 머리카락..., 게다가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방인의 요가 강의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죽음은 모든 것이 없어지는 상태..., 즉 소멸消滅로 가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은 단지 내 생각일 뿐이며 어떤 종교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 누구도 오해 없었으면 한다.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봉화의 청옥산, 1,276.5m...]
[부쇠봉, 1,546.5m]
드디어 부쇠봉 정상에 섰다.
경북도계의 분기점답게 삼각점이 두 개나 있다. 부쇠봉은 사방의 전망이 너무나 좋아 나는 올라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래 '산은 사람을 공연히 오르게 하지 않는다' 라는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중후하고 힘차게 뻗어나간 태백산 마루금, 아득히 보이는 함백산과 이어지는 두타산 청옥산방향의 대간 마루금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부쇠봉에서 본 태백산]
[문수봉 방향]
대간 길을 떠난 경북~강원도계가 흘러가는 문수봉 방향의 마루금이 태백으로 향하는 대간꾼의 발목을 붙잡고 이쪽으로 오라고 메달린다. 그러나 마냥 머무를 수는 없는 것...,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만나 오랫동안 함께했던 경상북도에 작별을 고告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7월4일, 소사재를 떠나 무더위 속에 딸기를 따먹으며 오른 초점산에서 김천시 땅을 밟으며 경상북도를 만난이래, 국수봉에서 상주시, 청화산에서 문경시, 저수령에서 예천군, 묘적령에서 영주시, 그리고 선달산에서 봉화군을 만나 여기 부쇠봉까지 함께 했다.
이제 아쉽지만 경북과 빠이빠이~ 나는 대간 길을 따라 강원도 땅인 태백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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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운 날씨에도 뚜벅뚜벅 걷는 모습이 상상되고도 남습니다.
적시 적소에 구구절절 사연까지 곁들여 놓았으니 읽기도 편하고 머리 속에 그려지기만 하네... 동절기 산행 접기를 잘했네...
참고로 2001년 11월 11일 새벽 3:00무릉주차장에서 삼척 청옥산( 정상부근 쌓인 눈 높이가 약 30cm)에 07:00시 제일 먼저 등정을 하였는데 정상에 큰 무덤이 있었다.그 뒤로 흰 백발의 노인이 서성거리고 있었고, 이윽고 나타난 수염이 텀수럭한 늙은이가 보였다.사연인 즉 지난 밤에 조금 아래에서 비박을 하고 일출 장면을 담을려고 일어났다나. 흰백발 노인은 아버지(82세) 늙은이는(63세) 아들 이라고 하면서 백복령을 지나 미시령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경인년에 만날 삼척 청옥산은 1403.7m나 되는데 11월 초에 정상부근에서
80노인이 비박이라..., 또 이른시간 눈덮인 정상무덤에서 백발 노인을 만난
박 대장도 도인을 만난 듯한 기분 아니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