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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머리에
최근 국정과제로 『혁신 읍·면·동 추진계획』이 발표되었고, 서울특별시에서는 『서울시 2기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안)』이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다. 혁신 읍·면·동 추진방안은 서울에서 그간 추진되어 왔던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이하 ‘찾동’으로 약칭)”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물론,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 등의 위기에 대응하여 각 지역이 읍·면·동과 같이 마을보다는 더 큰 근린생활권 내에서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제고시켜 점차 축소되는 행정서비스를 민관협치로 보완·대체하고 주민들을 지역사회 운영의 주체로 등장시키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마찬가지로 서울특별시의 제2기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에서도 지난 1기부터 추진해오던 찾동 사업 등 마을과 자치의 적극적인 연계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를 동시에 활성화시키는 것을 중요한 전략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정책흐름은 마을공동체의 활동이 지역의 자치로 상향식으로 연계되는 과정을 통해 주민자치의 실효성을 제고시킨다는 견지에서 대단히 환영할만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마을을 넘어 보다 큰 읍·면·동에서의 자치를 염두에 둔다면, 마을공동체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주민자생조직 외에 소위 관변단체나 지역 시민단체, 주민기반의 지역사회 봉사조직 등 다양한 주민조직들이나 지역 이해당사자들과의 적절한 연계와 협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주민자생조직 외에 과거부터 법적인 기반이나 혹은 행정과의 협업을 전제로 한 공식적인 주민조직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 향후 마을자치 및 근린자치 활성화를 위하여 이들과 어떻게 연계하고 협업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2. 각 읍·면·동의 행정에서 바라보는 주민자치와 주민조직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광역과 기초의 2단계 자치단체로 구분되며, 주민들의 선거에 의해서 자치단체장을 선출하고 주민들의 자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 기초자치단체는 보다 주민과 밀착된 행정을 위해 각 읍·면·동별로 행정사무소를 두는데, 과거에는 읍·면·동사무소라고 부르다가 2000년 전후로 읍·동 지역을 우선적으로 주민자치센터로 개편한다. 당시 취지는 읍·면·동사무소의 업무를 민원과 복지, 생활정보제공 등 주민에게 꼭 필요한 사무중심으로 개편하고, 사무소 내에 자치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를 설치하고 주민들의 자치활동 공간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문화와 여가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는 “찾아가는 주민센터”로서 다시 이 주민자치센터를 진정한 커뮤니티 허브로 만들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당시 읍·면·동사무소를 주민센터로 개편한 데에는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 “주민자치”라는 개념에 맞도록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했던 것이고, 여기에는 다양한 주민 자생조직들의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상 자치제도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풀뿌리 주민자치가 가능하도록 시·군·구를 폐지하고 과거 일제 강점기와 같이 읍·면·동 중심의 자치행정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데, 결국 읍·면·동은 근린생활권과 가장 밀접한 행정구역으로서 기본적인 행정서비스와 공공서비스가 제공되는 단위이기도 하며 주민자치의 주요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읍·면·동 행정은 더욱 주민들과 밀착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복지와 민원 등 생활밀착 행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주민자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마을공동체나 근린생활권의 주민조직과의 협력적 관계형성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 읍·면·동 정책이나 서울특별시의 찾동사업은 점차 잊혀져가는 이러한 취지를 다시 회복시키려는 노력이다. 복지와 평생학습 등 읍·면·동의 공공서비스가 과거의 주민을 서비스 수혜자로 대상화시켰다면 최근에는 주민공동체를 서비스 공급자이자 동시에 수혜자로 인식하고 행정과 협업하는 모습으로 점차 전환되고 있는 추세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읍·면·동 주민센터는 이렇게 다양한 주민조직들과의 협력을 지향하기에 다양한 주민조직들을 파악하고 있으며 그들과 일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일례로 울산광역시 동구의 일산동 주민센터 홈페이지에는 관내 주민조직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우리는 주민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주민조직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민모임은 지역사회와 주민의 공공을 위한 목적의 활동을 추진하고 있으며, 순수하고 자생적인 주민 봉사모임에서부터 관에 의해서 만들어진 주민조직 혹은 전국조직의 지역 내 주민모임(이를 “계통조직”이라고 칭함)까지 다양하다.
3. 자생적 주민조직과 법적·공식적 주민조직
위 표와 같이 다양한 주민조직의 유형을 구분한다면, 자생적인 조직이냐 혹은 법적 기반을 지닌(즉, 행정기능과 관계를 지닌) 제도화된 조직이냐의 이분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예컨대 자생적인 조직이라면 순수한 주민봉사단체나 종교나 기타 사회활동으로부터 파생된 주민봉사단체, 보육시설이나 학교의 학부모 모임이나 주민 품앗이 모임, 지역기반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나 육아맘 모임, 지역 시민단체, 주민들의 체육회 및 각종 주민 동아리 모임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자생적으로 관계망을 형성하고 가치나 의제를 공유하며 활동하는 주민모임들은 주로 정부의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의 우선적인 대상이 되고 있으므로 이들을 순수한 의미의 마을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자생적인 조직 모두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과 지역주민의 혈세로 마련된 정부의 지원금은 공동체 모임 초기의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지원과 주민 역량강화 차원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이 거의 없는 경우에도 받을 수 있지만, 대체로 이런 경우는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 수백만 원 이하의 소액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시설조성 등 수천만 원 이상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정부 지원사업의 경우 단순한 취미활동이나 사적인 활동, 종교적·정치적 목적을 띤 활동을 하는 모임보다는 대다수의 주민들의 복리를 위한 사업이나 활동의 편익이 주민에게 고르게 배분될 수 있도록 공익적인 목적의 마을공동체 활동에 혈세를 쓰는 것이 맞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자생적인 모임이 주민들을 위한 공익적인 목적을 지향한다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대부분 특히 형성초기의 모임은 사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또한 공적이지 않은 임의의 사적 결사체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정부의 지원이나 공적인 자원을 해당 모임이 전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는 항상 특정 사적단체에 대한 특혜시비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면 자생적이며 사적 결사체인 주민조직과 달리 정책이나 행정적인 목적, 즉 공적인 목적에 의해 관 주도로 제도화되고 하향식으로 조직화된 법적·공식적인 주민조직도 존재한다. 행정에서의 업무는 민간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혹은 참여가 필요한 경우들이 많은데, 이 때 행정과 협력할 수 있는 주민조직들이 필요하므로 관 주도의 주민단체들이 조직화된다. 대체로 이러한 주민조직들은 행정적 필요에 의해 최소한 공익적인 목적을 표방하는 경우들이 많고, 정부를 대신하거나 혹은 협업을 전제로 하므로 법령을 통해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공적인 자산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조직들을 법적 혹은 공식적인 주민조직이라 칭한다면, 이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반상회나 이·통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법적 용어로는 공동주택입주자대표회의), 각급 학교의 녹색어머니회, 국민운동단체(새마을조직,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자유총연맹), 의용소방대·자율방범대 및 생활안전협의회 등이며, 기타 특정한 목적에 의해 개별법령이나 조례에 명시된 주민조직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특징은 주민들을 대리 혹은 대표하여 행정에 의견을 전달하거나 필요한 사항을 협의하거나, 때로는 행정사무의 일부를 위탁받기도 하므로 관이 주변에 있는 주민조직이라는 의미로 “관변조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늘 이러한 관변조직들을 보면서 “과연 저들이 나와 같은 주민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는가?”라는 의문에 휩싸인다. 분명히 주민 개개인은 투표나 위임장과 같은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관변조직을 대표로 인정하고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는데, 관은 그들을 주민의 대표격으로 보고 있어 민관 양자 간 인식의 괴리가 존재한다. 관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그들은 주민 중 덕망있는 지역 유지나 특정 행정기능과 관련된 지역 내 전문가이므로 그들이 주민들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나, 엄밀히 이것은 행정의 측면에서 바라본 주민 대표성일 뿐 주민들의 입장에서 본 대표성은 아니기에 비판의 여지가 존재한다. 또한 관은 이러한 주민조직들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만나고 협의하므로, 이러한 관변조직은 대체로 관에 호의적이고 협조를 잘 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관은 필요시 민을 ‘동원’하는 것이며 이는 주민참여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참여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풀뿌리 마을공동체의 활성화 관점에서는, 주민들을 대표해서 관과 협의하거나 협업한다면 주민들에 의해서 인정받는 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순수하고 자생적인 주민모임의 입장에서는 관변조직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관변조직은 법령이나 행정적으로 인정받고 권한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자생적인 주민모임들과의 관계 속에서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고, 특히 최근에는 마을이나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부지원 사업 등에 있어서 이러한 관변조직들과 마을공동체가 경쟁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아 시선은 더욱 곱지 않게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4. 조합형 및 기업형 주민조직과 지역 이해당사자 조직
통상 ‘조합’은 그 구성원(조합원)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며 구성원들의 이해와 편익을 추구하는 모임을 의미하며, ‘기업’은 경제적 목적달성을 위해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유기적인 조직체를 의미한다. 즉 조합형 및 기업형 주민조직은 사적인 집단의 이해를 위한 조직으로, 통상적으로 주민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시장경제 활동을 위해 전문적인 역량을 갖추고 상대적으로 강한 유기성과 응집성을 보이는 특성을 보이며, 조합원이나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강한 배타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주민조직의 일례로 도시재개발 사업의 주민조직인 주택재개발조합이나 전통시장 상인회, 작목반·어촌계나 영농조합·영어조합·산림조합, 주민이나 지역 중소상공인의 협동조합, 마을기업 및 마을공방, 지역기반의 사회적경제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지역자원을 활용·보존·관리하기 위한 주민신탁이나 지역재단, 지역·마을기금운용 주체, 주민기반 신용협동조합(신협이나 마을금고)과 공제조합 등도 조합형 혹은 기업형 주민조직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이 이슈가 되면서 창신숭인이나 서울역 일대 등 일부 사업지구를 중심으로, 미국의 ‘지역공동체 개발법인(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s, 마치 동단위의 LH나 SH와 같은 개발법인)’이나 영국의 ‘개발신탁(Development Trusts)’ 등을 연상하게 하는 ‘도시재생협동조합(CRC)’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마을기업 혹은 주민자산투자·운용조합도 생겨나고 있으며, 공동체주택이나 사회주택 등 사회적 가치를 목적으로 한 전문적인 자산운용 사회적경제 주체들도 새로운 조합형·기업형 주민조직의 사례로 볼 수 있다.
결국 조합형·기업형 주민조직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으로서 주민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특히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는 주민기반 사회적경제 조직은 마을공동체의 발달된 형태의 하나이자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춘 사업·활동 추진체로서 볼 수 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 조직 중 시장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실효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대부분 지역 및 주민과 괴리되거나 지역적으로 뿌리를 내린 경우가 많지 않으므로, 향후 일을 할 전문성을 갖춘 보다 끈끈한 결사체로서의 조합형·기업형 주민조직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5. 주민조직 거버넌스를 통한 지역공동체 생태계의 활성화
이상과 같이 주민 봉사모임이나 동아리 수준의 자생적인 주민조직 외에도, 행정과 연계된 법적·공식적 주민조직과 경제적 수익·편익을 위한 사적 결사체로서 조합형·기업형 주민조직 등이 존재한다. 법적·공식적 주민조직의 경우 소위 관변단체라고도 불리며, 즉 행정적인 목적에 의해 주민 대표성이 부여되었지만 주민자치의 측면에서 주민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지는 못한 수준이며, 읍면동 수준의 주민협의체로서 느슨한 네트워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반면 조합형·기업형 조직은 구성원의 이익과 폐쇄성이 특징이나, 한편 주민조직 중에서 경제활동에 특화되어 가장 타이트한 네트워크이자 업무역량을 갖추고 있다.
향후 마을공동체가 더욱 활성화되어 풀뿌리 주민자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적·공식적 주민조직이나 조합형·기업형 주민조직과 풀뿌리 자생조직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과 원활한 연계·협력이 필요하다. 마을공동체로서 주민 자생모임과 달리, 법적·공식적 주민조직은 행정과의 연계성이나 공공업무의 대행, 공적 자산에 대한 접근·활용 등이 용이하므로, 풀뿌리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이들을 받쳐주거나 혹은 이들의 실질적인 구성을 주도한다면 마을자치와 주민자치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조합형·기업형 주민조직의 경우 향후 혁신 읍·면·동의 추진에서 이들의 업무역량이 공적 자산에 대한 위·수탁 업무를 처리하는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이들이 창출하는 이익을 통해 마을기금을 조성하거나 마을공동체의 자산화를 추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편 주민조직은 아니지만 주민조직과 상호작용하는 지역 내 중요 이해당사자 그룹도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 활성화 차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지역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나 조직·단체들은 광의의 ‘주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역 이해당사자들은 지역 내 중소상공인 및 업소, 민간기업, 공공기관(학교, 보건복지, 경찰·소방·안전, 인프라시설 등) 및 편의시설(도서관 등), 지역 내 언론·비영리부문, 전문가 집단(대학·연구시설 등) 등 다양하다. 이들은 때로는 주민자치조직이나 마을공동체 등이 필요한 자원이나 정보, 전문성과 네트워크 등을 제공해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이들과 적절한 관계형성이 중요하다.
자생적인 주민모임으로서 마을공동체가 향후 법적·공식적 주민조직이나 조합형·기업형 주민조직으로 발전하고 이들과 연계하며, 다양한 주민이나 지역의 이해당사자들을 포괄하며 이들과 연계·협력하는 지역공동체 거버넌스의 구축은 향후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의 활성화를 위한 다음 단계의 정책적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발췌 : http://www.seoulmaeul.org/programs/user/board/webzin2/webzin_read.asp?index_pageno=&idx=893&cover_idx=&searchVal=&pageno=1&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