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발자취
박씨는 우리 나라에만
gonugol ・ 2025. 6. 1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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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2015년 11월 1일 기준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에 따르면,
30만명 이상이 쓰는 성씨는 30개며
86.1%인 4,281만 명이 여기에 해당했다.
우리나라 성씨 중 김(金)씨 성을 가진 인구의 비율은 21.5%(1069만명)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李)씨 성과 박(朴)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각각 14.7%(731만명)와 8.4%(419만명)으로 뒤를 이었다.
최(崔)·정(鄭)·강(姜)·조(趙)·윤(尹)·장(張)·임(林)씨 등
10대 성씨는 30년 전과 같은 순서였다.
성씨본관을 보면 김해金씨가 446만명(전체 인구의 9.0%)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밀양朴씨와 전주李씨가 각각 6.2%(310만 명)와 5.3%(263만 명)로 많았다.
4위는 경주金씨로 180만 명이 있었다.
경주李씨(139만 명)와 진주姜씨(97만 명), 경주崔씨(95만 명),
광산金씨(93만 명), 파평尹씨(77만 명), 청주韓씨(75만 명)가 10위 안에 들었다.
안동권(權)씨(70만 명), 안동張씨(67만 명), 평산신(申)씨(56만 명),
순흥안(安)씨(52만 명), 안동金씨(52만 명) 등도 50만 명이 넘는 성씨본관이었다.
박씨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성씨이다.
2000년 국세조사에서는 121만5000가구에 389만5,000명으로
286성 중 제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8%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3대 성씨는 김씨·이씨·박씨인데, 이들은 약간씩 다른 특징이 있다.
김씨가 가야계의 김수로왕 계통과 신라계 김씨로 나뉜다면,
이씨는 한두 계통이 아닌 아주 다양한 시조를 받들고 있다.
하지만, 박씨는 김씨나 이씨와 달리 단일 시조를 받들고 있다.
모든 박씨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아직도 박씨끼리는 되도록 혼인하지 않으려는 관습이 있다.
박씨는, 김씨나 이씨와 달리 우리나라에만 있는 성씨이다.
박씨 중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의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전체 박씨 인구의 75.6%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 반남(潘南), 죽산(竹山), 함양(咸陽), 순천(順天), 고령(高靈),
무안(務安), 충주(忠州)박씨가 주류를 차지해 이를 <8박>이라고 부른다.
출처 : 김영일 PD 블로그
신라는 박(朴)·석(昔)·김(金)에 의해 왕위가 교체되었는데,
그중 박씨 왕은 시조인 박혁거세를 비롯해 모두 10명이다.
박씨는 신라 초기에 7명이 왕위에 올랐으며,
신라 말기 신덕왕과 경명왕, 경애왕 등 3명이 왕위에 올랐다.
박씨는 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婆娑王)과 일성왕(逸聖王) 대(代)에서 갈라졌다.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면천·강릉 등으로 분적(貫籍)했고,
비안·우봉(牛峰)·이산(尼山)·해주(海州)박씨 등도 파사왕의 후손이라 한다.
일성왕계는 그의 25대손인 경명왕(景明王), 경애왕(景哀王) 대에서 갈라졌다.
경명왕은 아들로 9형제를 두었는데,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밀양박씨),
고양대군파(高陽大君派·고령박씨), 속함대군파(速咸大君派·함양, 삼척박씨 등),
죽성대군파(竹城大君派·죽산, 음성, 고성박씨),
사벌대군파(沙伐大君派·상주, 충주박씨), 완산대군파(完山大君派·전주, 무안박씨),
강남대군파(江南大君派·순천, 춘천박씨 등), 월성대군파(月城大君派·경주박씨)의
8대군파와 국상공파(國相公派·울산박씨)로 분파되었다.
그 외 경애왕 후손은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가 있다.
출처 : 김영일 PD 블로그
경명왕의 후손들이 박씨 중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나,
특이하게 반남 박씨는 조선조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 명문이다.
「총2백15명의 문과급제자와 상신(영·좌·우의정) 7명, 대제학 2명, 공신 5명,
호당 6명, 문묘배향 1명등을 배출, 모든 박씨가운데 가장 번영을 구가했다.
『열하일기』의 저자로 유명한 실학파의 대가 연암 박지원과
동국18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어 문묘배정의 영예를 누린 박세채는
반남 박씨가 배출한 조선조의 큰 별들이다.
남계 박세채
반남 박씨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潘南面)을 본관으로하며,
시조는 고려시대에 반남호장(潘南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이며
선계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