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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중일 삼국지
동북아 공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과 주변국들의 현재 상황에서 이 책은 중국인, 일본인들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모습 속에서 한국인들은 어떤 지혜를 찾아 미래를 살아야 하는지 따뜻한 시선과 웃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 저자 우수근 : 어릴 적부터 들어 온 ‘역마살이 겹쳤다.’는 수식어대로, 일본과 미국, 그리고 중국에서의 교수 생활로 이어지는 10여 년의 세월동안 세계 곳곳을, 특히 동남아시아를 뒷마당 다니듯 드나들었다. 현재 중국 상하이 동화대학 교수로 있으며, 국제법 및 아․태지역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성공하는 중국진출 가이드북』, 『미중일 새로운 패권전략』, 『미국인의 발견』, 『한국인 우군의 한․일의 장벽이란 무엇인가』, 『얻어맞을 각오로 쓴 한국인 우군의 일본에 대한 직언』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 21세기에는 국가관계뿐만 아니라, 개인과 단체 간의 관계도 나날이 밀접해지고 있는데, 동북아의 한국, 일본, 중국의 3국 관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안녕과 평화 속에 우리 동북아 3국이 ‘윈-윈’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science)’이란 말은, 영어 어원상 아는 것(sci=to know)을 의미한다.
상대를 나의 시각, 나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상대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관행과 습관을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 그를 보아야 한다. 즉 ‘나의 틀’이 아니라, ‘그의 틀’을 통해 그를 보아야 그의 실체가 좀 더 정확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시각에서, 이 책에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서 탈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덧붙이면, 저자는 이 책에서 내(우리)가 중국(인)과 일본(인)을 더 많이 알고 더 잘 이해한다면, 이는 곧 작게는 개인의 발전으로, 크게는 국위선양 그리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로도 이어질 수 있는 커다란 동력이 되지만, 빛바랜 편견과 색안경으로 그들과 좌충우돌하며 심적 장벽만 높여 간다면, 이는 곧 나와 우리의 도태를 의미함과 동시에, 크게는 동북아에 암운을 드리우는 불행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이 책이 우리를 먼저 알고, 이웃 나라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또 이러한 바람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 유학과 미국 유학, 그리고 중국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만나고 접하며 느끼고 고민하게 되었던 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이모저모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1부 한․중․일 마주보기에서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일반적인 성향에 대해, 그리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3국에 대한 이미지(인지도와 친밀도 등)와 그것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2부 한․중․일의 정치 삼국지에서는 리더십을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독도나 역사교과서 왜곡을 오히려 일본 개혁의 기회로 삼자는 제안과 ‘까치 국가’가 되자는 발상 등은 매우 독특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3부 한․중․일의 경제 삼국지에서는 한․중․일 3국 경제의 허와 실을 진단하고 있는데, 세부적으로는 직업관과 기업풍토 및 근무환경, 양극화, 미래(지금의 일본 사회를 보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한국 사회의 대강의 큰 틀이 그려지고, 지금의 한국을 보면 어느 정도 지난 후의 말레이시아나 태국이 그려지며, 또 이들 나라로부터는 이후의 중국이, 중국의 오늘에서는 베트남이, 베트남의 오늘에서는 일정 기간 후의 캄보디아가 그려질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음)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4부 한․중․일의 사회 삼국지에서는 사회 갈등과 사회위기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한․중․일의 대학생, 행복지수, 매스컴, 지역감정 등을, 그리고 재외 한민족의 비애 등을 다루고 있다. 5부 한․중․일의 문화 삼국지에서는 한․중․일의 미인들, 결혼관, 성문화, 음주문화, 거주문화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끝으로 저자는 이 책이 우리의 나아갈 길에 대해 소박한 문제제기를 하는 계기가 되어, 우리 모두가 이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며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21세기 한중일 삼국지
우수근 지음
1부 한․중․일 마주보기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돌다리를 건너는 법
일본, 중국, 미국 등지에서 유학하거나 생활하면서, 중국인, 일본인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그들과 일하면서 한․중․일 3국의 일반적 성향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중국과 일본 양국의 차이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우리 속담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일반적인 중국인이라면, 십중팔구 돌다리를 두드려 보는 둥 마는 둥, 그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다른 이들을 흉보며, 가래침 한번 ‘회-액!’ 거나하게 내뱉으며 거침없이 건너가려 할 것인데, 이는 다른 이들을 무시하며 깔보는 듯한 그들만의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은 돌다리를 만져 보고 두드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듣고 검토, 분석한 다음에도, 다른 누가 먼저 건너가야지만 비로소 그 뒤를 쪼르르 따르려 할 것이다. 이는 곧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해 ‘호탕하지 못하다’, ‘쫀쫀하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에 대해 ‘막무가내다’, ‘거칠다’, ‘조잡하다’고 인식하는 것을 수긍하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양국의 이러한 특성을 접할 때면, 대륙과 섬이라는 지정학적 영향이 양국 국민성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아무튼 이러한 각국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해와 상생의 출발이 된다. 타인(타국)의 언행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와 다른 남의 특성을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 한 결과인데, 이것은 곧 자신(자국)의 세계를 ‘자기’라는 폐쇄된 우물 안으로 좁게 국한시키고, 타인과의 공존도 저해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즉 타인(타국)을 품으려면 먼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생각하는 한국
한국과 일본에는 중국을 소개하는 많은 책이나 자료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한․일 양국의 서적을 읽노라면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관련 책들의 저변에 흐르는 일반적인 논조가 한국 서적과 일본 서적에서 사뭇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충 설명하면, 한․일 양국 모두 주로 중국의 경제적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하지만 한국 서적들은 “13억을 헤집어라!”는 식으로 13억의 전면을 강조하고 있다. 즉 13억 중국 시장에서 미소 지으려면, 더 늦기 전에 중국행에 나서라는 식으로 독려하는데, 다분히 선정적이며 무책임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반면, 일본은 “13억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13억의 이면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매우 다르다. 즉 한국은 적극 나서야 할 기회로서, 일본은 신중하고 경계해야 할 위협의 대상으로서 중국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위기(危機)’라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기회와 위협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고루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가 생각하는 한․중․일
내가 접한 대부분의 중산층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3국에 대한 인지도와 친밀도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각국 정부 및 정치 부문을 통한 인지도 : 일본 > 중국 > 한국
각국 경제와 문화 및 비정부 활동을 통한 인지도 : 일본 > 한국 > 중국
보충 설명하면, 일본 정부의 막대한 ‘Yen 차관’이나 무상 원조 등의 ‘경제 협력’, 그리고 이들과 동반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활동은, 인도네시아와 같이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들에서조차 일본에 대한 인지도를 상당 부분 끌어올리게 했고, 여기에다가 각종 비영리 기구 및 시민 단체들의 인도주의 손길은,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과 친절함 덕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동남아 지역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어, 동남아 지역에서 일본의 인지도는 친밀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과 중국은 어떤가? 먼저 중국은 현재 경제적으로 급부상 중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정부의 대외 차관이나 무상 원조 등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 국내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도 아직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중국의 외교 전략이 돋보인다. 중국은 이와 같은 중국의 국내 사정을 잘 인지하고 있을 동남아 국가들이 감격하도록,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부족하거늘 이를 쪼개어 나누어 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하는 식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 기업들의 선전으로, 인지도는 낮지 않고, 전체적인 국가 이미지 또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들 나라에 비해 떨어진다. 아니, 유감스럽게도 아세안(ASEAN) 지역 지인들의 최근 목소리를 모아 보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부자 국가’이지만 인색하다는 종전의 큰 이미지 외에 이렇다 할 다른 사항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관련, 특히 우리 정부는 ‘많이’ 반성해야 한다. 이는 결코 규모나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월드컵 4강’과 ‘경제 규모 11위’를 우리만의 헛된 자화자찬이 아닌, 주변 각국도 마음속 깊이 공감하며 반겨 주는 따뜻한 대한민국, 한국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부 한․중․일의 정치 삼국지
한․중․일과 리더십
중국 헌법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국가의 최고 권력 기관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인대의 대표들이라 해도 그들의 인민 대중에 대한 태도는 대체적으로 매우 수수하고 질박하여,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권위(외국에서는 당당하지만 국내에서는 온화해지는 중국 정치인들의 모습)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풍기는 권위(국내에서의 떵떵거리던 모습이 외국에서 번데기마냥 쪼글쪼글 왜소해지는 모습)와 사뭇 다르다.
한편 일본의 국회도 국가 권력의 최고 기관임과 동시에 유일한 입법 기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의 국회의원들의 태도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겸허하고 조심스럽다. 예로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에 임하는 일본 의원들의 모습 -준비한 자료와 질문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며, 출석한 응답자들의 응답을 차분하게 경청하는 양보의 모습- 에서는 스스로 낮추며, 역지사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중․일의 리더십과 관련하여 덧붙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기존 질서에 대한 ‘인정’이나 ‘선험자’에 대한 존경이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흔히 한국의 정계에서는 자신을 세우거나 한 자리 하기 위해, 선후배나 동료, 심지어는 현재 그 직위에 있는 사람까지도 마구 폄하하며 부정하는, 아주 잔인하고 유치하며 치졸한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정계에서는 ‘선배’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자신들을 세워 나가는데, 이 점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조속히 배워야 할 문화라고 생각된다.
미․중․일 vs. 닫힌 사회 한국
우리의 닫힌 사회성은, 우리 사회의 경직성 심화와 더불어 주변국이 우리를 조소하고 이용하도록 스스로 만들어 왔다. 그 단적인 예가 우리 사회의 천편일률적인 일본에 대한 인식이다. 물론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 정계 일부의 구악에 대해서는 비분강개함이 당연하며, 그것이 합당한 대처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일관에 있어 대통령부터 국민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항상 동일한 목소리에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똘똘 뭉쳐야만 하는지,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일본의 위정자들이, 북한이나 중국을 두려워하듯, 우리의 비분강개를 버거워하였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그들이 자기들의 정리 정략에 맞춰, 우리를 자극하고 유도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는 좀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손에 의하면 닫힌 사회의 결합 원리는 정지된 관습이나 위압, 명령 등에 의해 개인을 사회에 복종시키려는 불변의 비인격적인 닫힌 도덕으로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가족이나 도시, 국가도 타인을 선별 또는 배척하며 거부와 투쟁을 전개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열린 사회의 결합 원리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생명의 근원에 감촉되는 환희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향상하려는 인류애적 도덕, 즉 열린 도덕이다. 따라서 열린 도덕은 가족이나 사회, 국가의 닫힌 도덕을 초월하는, 사랑으로 맺어진 인류 사회에 대응하게 된다고 한다.
필자는 강산이 한 번은 변하고도 남았을 그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외국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상대적 닫힘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밟힐수록 강해지며 푸르러지는 우리의 열린 사회 지향성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에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문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사회의 열림 지향성을 저해하는 일부 닫힘성 인자들이다. 하지만 감히 단언한다. 우리 국민들의 슬기와 지혜는, 겪어 본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훌륭하다. 이러한 우리에게 있어 황우석 교수 사태 등은 우리의 열린 사회화를 더욱 촉진하는 촉매제가 되리라 확신한다.
한국과 중국, 독도와 역사 교과서 왜곡을 일본 개혁의 기회로!
과거사나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계 일부의 행태는 실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그들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과연 현명하다고 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차제에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와 독도 문제를, 오히려 일본 변혁의 계기로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하고자 한다. 즉, 일본인들 스스로 자국의 전근대적 정치 행태에 일대 변혁을 초래하도록 유도, 지원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먼저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일본 전문가가 있지만, 현행 독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 자세는, 아직 체계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한편 일본 국민들의 지성과 이성은 결코 우리보다 낮지 않지만, 일본인들은 현재 독도에 대해 아직 무지하거나 혹은 지엽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관련 자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에 관한 한․일 양측의 기존 자료들과 새롭게 발견되는 자료들을, 일본인들이 직접 접하고 사고하는 가운데 그들 스스로 독도 문제에 좀 다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즉 이들 일본인들에게 독도를 포함한 양국 현안에 최대한 잘 다가갈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의 자료와 주장을 있는 그대로 제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사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는 한국 정부의 지원에 의한 관련 자료의 일본어판 발행과 일본 국내외 일본인들에게 그 발행본을 배부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다음,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 또한 우리가 전략을 잘 짜기만 하면, 일본 개혁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설 것인가? 일단 우리의 타깃을 두 부류로 나눠 보자. 첫 번째 부류로는 일본의 행동하는 양식들, 즉 역사 바로 세우기에 노력하는 일본 사회의 단체와 역량 있는 개인들이 최우선 대상 -일본의 교육 현장을 지키는 일선 교사들, 일본 사회의 양식을 지키는 다양한 시민 단체와 개인 활동가, 일본의 학부모- 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즉 소중한 자신들의 2세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키는 것을 수수방관할 리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일본인들과의 유대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는 가운데, 이들이 스스로 일본 정부의 한심함을 질책하며 계도하도록 협력해 나가자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로는 일본의 일반 사람들을 꼽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들에게 ‘무리하지 않게’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인들의 감정과 그들만의 일반 정서에 호소해 들어가는 재치 있는 접근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즉 타인에 대한 피해를 꺼리며 주위에 대한 배려와 공존을 사회의 근간 덕목으로 삼아 온 일본임에 착안하여,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미덕에 비춰 본 오늘날 일본 정부의 행태를 생각해 보도록 부드럽게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양국의 현안은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양국의 건전한 다수 세력들과 상시적으로 폭넓게 교류, 협력해 나가는 가운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 땅 독도에 대한 우리의 단호한 수호 결의와 사수 의지는 필요하며 당연한 것이지만, 미국의 어떤 국제법 학자의 지적처럼 마치 ‘무비판적 세뇌 교육’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지금과 같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 제창과 함께 “와!”하고 나라 전체가 들고 일어서는 듯한 모습은 이제 재고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이여! ‘까치 국가’가 되자!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국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중국인 및 일본인 일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본인은 자국과 향후 관계 강화가 필요한 국가로 중국(43.3퍼센트), 아시아(21.3퍼센트), 미국(19.4퍼센트) 등을 꼽고 있는데, 한국은 1.9퍼센트로 인도(10.2퍼센트)와 러시아(2.8퍼센트)에도 뒤지고 있었다. 또 중국인들은 미국(31퍼센트), 러시아(24퍼센트), 아시아(23퍼센트) 등의 순으로 꼽고 있는데, 여기서도 한국은 인도(9퍼센트)와 일본(4퍼센트)에도 뒤지는 3퍼센트에 불과했다. 한편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은 급증하여 2006년 상반기의 수출 계약이 이미 작년 한 해의 실적을 초과했고 수출시장도 다변화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한류(韓流)’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위의 두 가지 상반된 사실이야말로, 우리에게 ‘까치 국가’로서 나아가야 할 ‘까치 외교’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까치 외교란 어떤 것일까? 까치 외교를 보기 전에 먼저, 그 구상의 전제이자 1단계 모습인 ‘조류(鳥類) 외교’를 살펴보도록 하자. 한반도는 왼쪽 날개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대륙 세력을, 오른쪽 날개에는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해양 세력을 가졌는데, 새는 양쪽 날개의 힘과 크기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야만 잘 비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의 몸체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한반도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도 조류 외교를 지향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20세기 중반의 한반도 상황과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단적인 예로 그동안 경시했던 왼쪽 날개의 한축인 중국이 급속도로 부상하여, 현재는 그동안 함께한 오른쪽 날개보다 이 왼쪽 날개를 더 중시하자는 소리마저 커지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지만, 아직 중국에 대한 총제적인 판단은 시기상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은 명백하다. 양쪽 날개에 균형 감각을 고루 잘 살리는 외교 전략, 미국이니 중국이니 하는 어느 한축보다는, 모두를 잘 어르는 가운데 비상할 수 있는 신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하겠는데, 까치 외교는 이 조류 외교와 거의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2단계 완성형 전술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까치’는 우리 민족이 지닌 이미지(나타나기만 하면 반갑고 그로 인해 왠지 좋은 일을 예감하며 가슴 설레게 하는 길조의 이미지) 그대로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이미지를 외국이나 외국인들에 대한 한국, 한국인의 이미지로 심어 나가자는 것이 까치 외교의 핵심이다.
정리하면 까치 외교란, 조류 외교를 추진함으로써, 한반도 이해 당사 국가들과 균형 잡힌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국가 안보를 확고히 다져 나감과 동시에, 국가 역량을 문화와 민간 부문 등의 비정치․경제적 분야로도 적극 다각화시켜, 우리 제품이나 문화,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 ‘한국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어디에서도 환영받으며, 또 이에 대해 우리가 적절히 잘 화답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의 도덕적 리더십을 인정받아, 존경받는 국민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국가 전략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3부 한․중․일의 경제 삼국지
한․중․일의 직업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의 직업관은 ‘직장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충성’으로 잘 알려져 왔다. 반면 직장은 종업원들을 가족처럼 잘 보살펴 주며 이에 화답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서구화되어 평생 고용의 개념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뿌리 깊은 전통이 단기간에 바뀔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지금 일본인에서는 미국을 위주로 한 서구식 변화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로 하드웨어 부문에서만 진행되고 있고, 소프트웨어, 즉 개개인의 의식 변화에는 그 파급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예로 이직과 관련해서도 일본인들은 매우 신중하다.
반면 중국 베이징에 있는 CRT라는 시장조사기구에서, 중국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직업관, 특히 이직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응답자들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입사한 후 1년 이내에 이직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의 잦은 이직의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직업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을 ‘수입’에 두고 있는 직업관에서 비롯되는데, 그러다 보니 중국인들의 근무 태도나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우리보다 훨씬 덜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일본의 기업풍토, 근무 환경은 대단히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해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중국 기업에 비해 근무 강도가 강하고 기업 풍토도 너무 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을 두고 이렇게 평가하는 중국인들이 일본 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고추 먹고 맴맴’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인보다 더 잘 버티어 내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몇 년 고생해서 악착같이 엔화를 벌어 모으면, 중국에서 자신의 비즈니스를 일궈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의 양극화
지금 한국 사회는 학력이나 직업에 의한, 혹은 도시와 농촌이라는 지역 간의 빈부 격차가 확대일로에 있어,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이냐, 분배를 더욱 고려한 정책이냐?’를 두고, 각계각층의 의견이 분분한데, 지금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빈부 격차와 사회 양극화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먼저 일본을 살펴보자. 한 때 일본은 자본주의 진영 가운데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 정비된, 즉 빈부 격차의 폐해가 가장 낮은 국가로 칭송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일본의 명성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급격하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전통 시스템을 급속하게 서구화시키면서 -예컨대 평생 고용의 시스템에서 성과제 시스템으로- 소득 분배에 의한 평등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하여, 일본 국민들 중에도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빈부 격차 또한 매우 심각하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가, 인본주의와 과학적 발전관을 제시하고 나선 건 이미 성장의 그늘에서 곪을 대로 곪은 빈부 격차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월드컵 4강에 경제력 세계 11위라는 대한민국의 빈부 격차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우리 사회 내에서 스스로 해결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가진 자뿐만 아니라 보통의 우리들도 형편에 맞게 주변의 아픔을 함께 한다면,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해 나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빈부 격차 문제를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해서, 언제까지 성토만 하고 있을 순 없고, 스스로 먼저 실천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 양극화의 아픔은 바로 콩 한쪽도 나누는 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의 20세기와 21세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과 교류하다 보면, 경제적 선진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뒤따르는 개발도상국의 앞날, 즉 거시적 흐름이 어렴풋이 예측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일본 사회를 보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한국 사회의 대강의 큰 틀이 그려지고, 지금의 한국을 보면 어느 정도 지난 후의 말레이시아나 태국이 그려지며, 또 이들 나라로부터는 이후의 중국이, 중국의 오늘에서는 베트남이, 베트남의 오늘에서는 일정 기간 후의 캄보디아가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 1,000달러를 돌파할 무렵인 1970년 후반의 일본은, 이미 풍요로움에 대한 회의가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던 시기였다. 즉 그칠 줄 모르게 지속되었던 고도성장 덕에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온갖 후유증으로 인해 양(量)적 삶에서 질(質)적 삶의 추구로 사회 기조가 크게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돈이나 재산보다는 가족이나 건강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으며, 이에 맞춰 일본 정부도 ‘생활 대국’이나 ‘여유 있는 삶’을 지향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표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이 100년 걸려 이뤄 낸 하드웨어를 30여 년 만에 어느 정도 이뤄낸 한국도, 앞만 보고 급히 달려오다가 결국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는 예견된 재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행히 성장 위주보다는 주위를 전반적으로 둘러보며, 성장과 균형, 분배를 동시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개혁․개방의 과실 맛이 한참 더해 가기만 하는 중국은, 아직까지 전 사회가 ‘샹치엔(向前, 미래를 향해 전진)’이 아닌 ‘샹치엔(向錢, 돈을 향해 전진)’으로 만연되어 가고 있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돈으로는 거의 무엇이든지 가능한 배금주의 사상이 팽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태로 인해, 1960년대 일본이 겪었던 온갖 후유증과 1980년대 한국이 치렀던 그 어려움을 중국에서 재연하게 될 거라 생각하면 우려되는 면이 많다. 더욱이 일본이나 한국과는 달리 광활한 대지에 엄청난 규모의 인구를 지닌 중국이 그 카오스와 같은 혼돈을 겪을 때, 우리에게 파급될 영향을 생각하면 실로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4부 한․중․일의 사회 삼국지
한․중․일의 대학생
중국의 대학은 한마디로 ‘작은 도시’라 불린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학생들이 큰 걱정 없이 학창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대학 내에 웬만한 도시의 기능 -기숙사, 식당, 병원, 보건소, 상점, 편의점, 학내 파출소, 수영장, 헬스클럽 등- 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므로 채산이 맞지 않아 경제적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등록금 수입으로 대학을 운영하려 하지 않고, 산학협동을 활성화시키거나 비즈니스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공조하고, 혹은 대학 자체 내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여 실사구시형 대학으로 활로를 개척하려 노력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대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데도 이들의 사회 진출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힘겹다. 반면 일본의 대학생은 한마디로 너무 바쁘다. 놀기에 바쁘고, 아르바이트에 바쁘고, 연애하느라 바쁜데, 이런 대학에는 ‘레저 랜드(Leisure Land)’, 즉 놀이 동산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닌다. 이들 대부분의 경우 학비는 부모님이 대 주고, 용돈 등은 스스로 벌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공부는 언제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인 학생들은 학업을 등한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놀거나 즐기느라 학업을 등한시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외 활동으로 분주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단순한 놀이 외에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회의 돌아가는 섭리를 배우거나 경험을 쌓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각종 단체나 시민 단체에 참가하여 사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 경험을 축적한다.
입사 시험 준비를 위해 도서관을 지켜야만 하는 우리의 대학생들과, 위에서 본 것처럼 각종 사회 활동과 같은 ‘사회 공부’로 분주한 일본의 대학생들을 한번 비교 -대학을 마치면 어차피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데, 그 순간부터 도서관 공부와 사회 공부로 일관했던 양국 대학생들의 경쟁력이 드러나게 됨- 해 보자. 과연 어느 쪽이 사회생활에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중․일의 행복지수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경제력이 반드시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각국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에서, 방글라데시나 필리핀처럼 아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국가의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가 높은 순위권을 차지하는 반면, 경제 대국의 일본인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항상 최하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국민 소득 1,000달러 시대를 마크하게 된 중국은 어떨까? <차이나 데일리>에 의하면, 개혁․개방 이후 약 20년간 중국인들의 소득은 무려 10배가량 증가했지만, 중국인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고, 이러한 가운데 중국에서도 과로사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1980년대 일본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과로사(Death from overwork)’란 용어는, 한때 일본 사회의 한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고도성장의 끝자락에서 우리에게까지 엄습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과로사 세계 제1위라는 멍에 속에서 있음- 하였는데, 이러한 과로사가 이제는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의 사회적 이슈로도 등장한 것이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서는 과로사에 이르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매스컴
일본의 2005년 7월 8일자 <요미우리 신문>에 의하면, 미국과 일본 양국 정부는 공동 개발해 온 요격미사일을 시험 제작하여 발사할 것이라고 했고,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인 ‘둥평-31’, 중거리 미사일인 ‘둥평-21’, 그리고 함대지 ‘줄랑-2’ 등 3기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앞에서 ‘조류 외교’를 제안하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균형 잡힌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 양국에 의한 미사일 발사 시험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시각은 과연 어떤가? 일본의 미사일 발사는 심히 우려되는 일이지만, 중국의 미사일 발사는 상대적으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일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우리들의 대일관이나 대중관은 균형 잡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혹은 극히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를 예단하고 그에 휩쓸려 경거망동하는 가벼움을 취해선 안 된다. 즉 우리는 중국과 일본을 한 가지 시각으로 고착시켜선 안 되고, 더욱 다원화된 시각에서 냉철하게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매스컴이 바뀌어야 한다. 자극적이며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캐내야 하는 것이 매스컴의 속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매스컴도 객관적이며 공정한 보도를 할 대세적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매스컴 종사자 한두 사람의 손끝에서 각색되어지는 그들의 세계가 더 이상 우리 모두의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일반 개인은 좀 더 트인 사고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삶이면서 언제까지나 타인의 머리에만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매스컴은 철저히 거듭나야 한다.
한․중․일의 지역감정
한국의 지역감정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다. 그런데 지역감정이란 놈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물론 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일부 정객에 의해 놀아나거나 극단적인 대립현상을 보일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예로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關東) 지방과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關西) 지방간의 대립을 들 수 있다. 교토나 나라, 오사카 등 일본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중심지 역할을 해 온 간사이 지역 사람들은, 에도 시대 이전까지는 역사의 음지에 불과했던 도쿄를 포함한 ‘촌구석’ 간토 지역 사람들을 깔보고, 그들을 무시하는 뉘앙스로 “그 간토 애들은…….”, “간토에 뭐가 있겠나…….”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간토 사람들도 “(오사카의) 오코노미 야키가 정말 음식이긴 음식인가?”, “과거에 사로잡힌 채 시기, 질투만 일삼는 자들”이라며 간사이 지역 사람들에 대한 폄하를 드러내 보인다.
한편 중국에도 지역감정은 존재하는데, 일본의 오사카나 도쿄의 대립처럼, 양대 도시의 ‘자존심 대결’이 일종의 지역감정으로 나타나는 곳이 있다. 바로 베이징과 상하이가 그곳이다. 예컨대 베이징 사람들은 상하이 사람들을 ‘돈만 밝히는 천박한 자들’이라고 경시하고,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들을 ‘아무것도 없이 허세만 피우는 위선자들’이라며 무시하기 일쑤이다. 아울러 중국에서는 현재 주거하는 해당 지역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공공연한 특혜(역으로 말하면 차별)가 주어지기도 한다. 한 예로 상하이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도시이며, 잘 나가는 만큼이나 상하이 토박이들의 타지역 사람들에 대한 차별 태도는, 외국인들조차 문득문득 놀라게 하곤 하는데, 그들은 타지역 사람들을 공공연히 ‘와이띠런(外地人)’이라 호칭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이런 표현을 쓰는 상하이 사람도, 그렇게 불리어지는 타지 사람들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이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중국 내 지역 차별이 그만큼 뿌리 깊게 고착화되어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재외 한민족의 비애
재중 교포와 재일 교포를 생각할 때면, 나는 ‘어쩌면 이렇게 상반된 삶을 살아 왔을까?’하는 생각이 우선 떠오른다. 참고로 중국 내에서 조선족의 삶을 요약하면, 차별 없는 상태에서 한민족으로서 우리 것을 소중히 지키며 나름대로 존경받는 당당한 삶 -조선족들은 스스로 당당하게 ‘중국인’이라고 밝히고 있음- 을 지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그들은 ‘우리는 조선 민족 출신 중국인’, ‘중국 국적을 지닌 조선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우리는 중국인들인 그들을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므로 ‘당연히’ 우리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살아오질 않았던가?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조선족과 관련된 크고 작은 불상사는 바로 이와 같은 우리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에 비해 재일 교포들의 삶은 어떤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 교포 가운데 약 50만 명은 해방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외국 국적을 지닌 채 차별 받으며 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재일 교포 변호사 김 모 씨에 의하면 그들의 대부분은 출생시부터 일본식 이름을 짓고, 일본 유치원과 일본 학교 등에 진학하며, 일본어를 주된 언어로 체득하며 지낸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민족학교가 정규 학교로 인정되지 않아, 대학 입학 고사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이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 외국인 등록증을 휴대하지 않으면 안 되고, 커서는 공무원이 될 수 없으며, 취직할 때도 일본인보다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차별에 시달린다. 또 그들은 세금은 일본인과 동일하게 납세하면서도 참정권에서 제외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점은 조국이어야 할 한국에서도 그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으며,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도 아니어서 은행계좌 개설 등을 포함한 일상생활에서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 속상한 것은, 이런 차별이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워져, 재일 교포들은 스스로 차별당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기막힌 또 다른 현실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일본에서의 재일 동포, 즉 한민족의 비애야 그래도 생소하지는 않지만, 현재 중국에서의 또 다른 한민족의 비애가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내 자식과 부모형제의 미래를 위해, 목숨 걸고 조국을 버리며 험난한 길을 마다 않는 탈북 난민들이 그들이다. 대우받고 당당한 삶을 영위하는 중국 내 한민족(조선족)과 달리, 탈북 한민족은 공포 속에 도주 생활을 하고 있다. 남․북 양측은 이산의 비애를 풀기 위해 남․북 당사자 간 만남의 장을 넓혀 가고 있지만, 다른 한곳에서는 또 다른 한민족의 비애가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5부 한․중․일의 문화 삼국지
한․중․일의 미인들
먼저 한국 여인들이 추구하는 미인관을 살펴보자. 여기서 소개하려는 것은, 한국 여인 당사자들의 생각과는 무관한,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바라보며 느끼는 한국 여인들에 대한 미인관인데, 이들 외국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국 여인들이 대부분 ‘얼굴 미인’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일본 여인들이 추구하는 미인관은 어떠할까? 물론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있겠지만 ‘가슴 미인’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서 크게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다 보니 일본 사회에는 풍만한 가슴 확대 수술을 위한 정보가 매우 다양하고, 또 풍만하지 못한 가슴을 브래지어로 교묘하게 커버하는 기능성 브래지어도 속속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각선미 미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인의 각선미에 대해 한 일본인 남자 -자칭, 여자 볼 줄 안다는- 는 구들방이나 다다미 위에서 생활하는 한국이나 일본인들과는 달리, 주로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중국의 전통 생활양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이렇듯 한․중․일 3국은 전통적으로 얼굴, 각선미, 그리고 가슴을 중심으로 한 고유의 미인관을 추구하여 왔다. 그런데 지금 이와 같은 각국의 전통적 미인관에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예로 화장기 거의 없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해 온 일본 여인들도, 한류의 영향으로 화장을 짙게 하고 있고, 중국의 경우는 그 변화가 일본보다 더 심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의 음주 문화
음주 문화와 관련하여 한국, 일본, 중국은 많은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3국에서 술이 일상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유사하다. 아울러 그 술을 통해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깊이하며, 또 그 술로 인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극히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먼저 중국의 술과 음주 문화를 살펴보자. 오랜 유래를 지닌 중국에서의 술은 그 종류 또한 무척 다양한데, 각 지방마다 그 지역의 기후와 특산물 등을 이용한 독특한 원재료로 빚어, 맛과 향 또한 무척 다양하다. 일반 중장년층 중국인들의 음주 문화를 살펴보면, 상하이 등지의 남방 사람들은 ‘황지요우(黃酒)’라는 알코올 도수 약 15도 전후의 연한 황색 빛이 감도는 술을 즐겨 마시고, 베이징 등의 북방 사람들은 ‘바이지요우(白酒, 흔히 우리가 ‘배갈’이라고 부르는 것)’를 즐겨 마시는데, 북방의 중국인들은 점심시간에도 이런 술을 반주 삼아 마시며, 저녁 연회나 모임 자리에서는 연거푸 들이켠다. 하지만 큼지막한 접시에 가득 담겨 나오는 온갖 풍성한 안주에, 떠들썩하게 즐기며 마시기 때문인지, 다음 날에도 두통은 별로 느껴지질 않는다. 한편 현재의 20~30대의 젊은 중국인들은 위에 언급한 그것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음주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주로 마시는 술은 바이지요우나 황지요우가 아닌 맥주 -이들은 맥주를 서너 병 시켜 각자 한 병씩 자기 앞에 놓고, 자기 잔에 스스로 적당량만큼 따라 마시는 음주 스타일- 이다.
한편 일본에는 ‘오사케’나 ‘니혼슈(흔히 청주라 불리는 것)’라 불리는 알코올 도수 약 15도 전후인 일본 전통주가 있는데, 그 종류 또한 엄청나게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음주 문화는 어떤가? 많은 일본인들의 경우 술 마시는 순서가 대략 정형화되어 있다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은 먼저 술자리에 앉으면, 대부분 “토리아에즈 비루!(우선 맥주부터 주세요!)”라는 한 마디로 그 날의 한잔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먼저 맥주로 가볍게 ‘간빠이!’를 한 뒤, 취향에 따라 포도주나 니혼슈 등으로 옮겨 간다. 그런데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자그마한 그릇이나 접시에 살짝살짝 조금씩 담긴, 하지만 다양한 각종 안주를 즐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기는데,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강권하거나 잔을 돌리는 행위 등은 거의 하질 않는다. 그리고 중국도 일본도 첨잔이 일반화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직․간접적인 경험상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의 술을 통한 교류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음주 문화가 양적인 면에서나 강권의 면에서 양국을 압도적으로 능가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에게 깔짝대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있으면, 거나하게 한번 대접하겠다고 하고, 한국의 자랑거리(?!)인 폭탄주를 한번 권해 보라. 십중팔구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쩔쩔매게 될 테고, 이후로는 우리를 설설 피하거나 우리의 말을 잘 듣게 될 것이다.
한․중․일의 거주 문화
한․중․일의 일반 거주지를 연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낱말은 온돌, 다다미, 석재인데, 먼저 일본 집의 특징을 살펴보자. 일본의 전통적인 집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다미(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우리의 두꺼운 돗자리 비슷한 것으로 방바닥에 까는 것을 지칭)가 깔려 있다. 그러나 현대화된 지금의 일본 주택이나 아파트 등에서는 다다미가 쉽게 눈에 띄질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신축 혹은 재건축되는 고급 빌라 등을 중심으로 다다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일본 집은 공간이 협소하다. 대도시권에 사는 4인 가족의 경우,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20평 정도의 방 2칸에, 식탁과 의자, 간이 소파 등이 겨우 놓일 만한 주방 겸 거실에 사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중국의 집을 살펴보자.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중국인의 거주 공간도 한국만큼 넓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 대도시민의 거주 공간을 멋지게 바꾸어 가고 있다. 조그만 골목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다닥다닥 붙어 지내던 중국인들이, 높게 뻗은 큼지막한 신축 아파트 등으로 거주 공간을 옮기며, 경제 발전의 과실을 향유하고 있는데, 중국의 아파트나 빌딩 등의 외관은 그야말로 자기들만의 개성을 한껏 뽐내기라도 하는 듯, 저마다 다른 모습과 특징으로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이 건축물의 내부 시설이나 처리 등을 보면, 중국이 가야 할 머나먼 길을 느껴지게 한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만큼 건물 외관과 내부 사이에는 ‘괴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집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온돌이 없다. 중국에서는 석재나 목재로 된 바닥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고급 대리석 등을 사용하여 방바닥을 멋지게 꾸민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단열재와 방풍재 하나 사용되지 않은 중국의 아파트는, 칼바람이 부는 대륙의 냉랭함을 막아 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6․25 전쟁 당시 인민군복을 연상케 하는 두텁게 누빈 내복에 점퍼까지 걸쳐 입고, 옆에는 히터를 튼 채 두 손가락만 움직여 이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이 처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