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동 마산 연안여객선터미널
남성동 부두에서 바다건너 삼귀 (귀곡,귀현, 귀산) 마을로
다니던 웅남호
옛날 마산 남성동 부둣가엔 "홍콩빠" 라는 횟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제 그 부근이 모두 매립된 뒤라 그 곳이 어디쯤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진다. 몇해 전부터 고향을 찾을때 마다 친구들이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보면 새로이 생긴 횟집거리거나 장어구이집들이 쭉 들어선 곳이었다.
마산항 매립이후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마산의 교통은 나아졌는지 모르겠으나, 새로 넓게 뻗은 해안도로 주변의 풍경이 고향을 찾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말 이게 아니다 싶다. 서울 변두리나 위성도시에서 볼 수 있는 네온사인 반짝거리는 모텔들이 양쪽에 즐비하다. 도시의 미관을 고려한다면 어떻게 이런식의 개발이 허용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거지나 학교등과 일정거리가 떨어져 있다면 행정적인 허가 요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시 행정담당자로서도 허가를 해주지 않기가 힘들것인줄 안다만, 개발이익에만 혈안이 된 인간들이 도시를 망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역 공무원이라면, 그리고 애향심 있는 고향지킴이들이 있다면 이렇게 되어서는 않된다.
조금 지나친 말인지 모르겠으나, 도시 발전에 미래의 비전과 시민들의 행복지수등을 고려하여야 할텐데, 그런 것들이 그들의 머리속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가슴속에 있어야 한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마산 남성동 어시장 부둣가는 마산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부둣가였다. 연안 여객선 터미널도 그곳에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옛 풍물이지만 남성동 옛 여객선 터미널은 마산∼충무, 마산∼거제, 마산~남해, 마산~설천 등지를 잇는 여객선 항로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이 매우 컸다. 아버지따라 설천, 남해등으로 낚시따라가다 새벽에 들렀던 남성동 복국집들 모습은 거리만 달라졌을뿐 모습은 아직 그대로였다. 국민학교때부터 복국을 맛도 모르고 먹었으니, 참 오래먹었다.
당시 연안 여객선중에는 "천신호" 같이 큰 배도 있었고, "웅남호" 같이 통통배라 불리우는 작은 배들도 있었다. 천신호는 꽤 큰배 였는데, 성호초등(57회), 마중 동창 녀석이 이 천신호 선주 아들이었던 기억이 난다. 천신 1, 2, 3호 등 큰 배가 여러 척 있었다. 그 친구 집에 가끔 놀러가기도 했다. 천신호는 여름철엔 가포해수욕장으로 엄청난 사람들을 초과해서 태우고 다니다가 사고가 난 적도 몇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신호, 당시 마산 사람들은 다 아는 큰 배였다.
조금 작은 여객선이었던 웅남호는 지금 마산 앞바다 건너 두산중공업이 소재한 창원시 적현, 귀현, 귀곡, 귀산 등지로 왕복 운항을 했다. 삼귀라고 하는 곳 중의 한 마을 구실이라고 불렸고, 옆에 조그만 구실해수욕장이 있었다. 지금은 공장이 들어선 그 부근은 처음엔 토지개발공사의 토지 수용뒤 현대양행이 들어왔었고, 나중에 한국중공업으로 통폐합 되었다가 몇해전 두산그룹이 M&A 로 다시 인수했다. 당시 구실 안쪽에 우리집 논과 밭이 조금 있었는데 그 곳 분이 경작을 해주어 어릴적 여름철 일요일엔 구실을 자주 다녔다. 그 기름진 땅들이 모두 수용되어 공장이 들어서고, 오늘날 세계적인 중공업회사 공장이 들어와 왔으니 참으로 상전벽해 (桑田碧海)다.
남성동 여객터미널은 요즘 돝섬이 바라앞에 보이는 신마산쪽 부두로 옮긴 것을 차를 타고 해안도로 지나가다 보았다. 마산을 기항지로 한 남해안 일대 항포구를 드나드는 여객선 선착장이 있던 남성동 부두 부근의 횟집거리, 그 중에서도 "홍콩빠"라 불리는 횟집은 마산 토박이는 물론 외래인들에게도 인기있던 곳이었다. 홍콩하고 아무런 연관도 없다. 아마 홍콩정부로 부터 명칭 사용 허가받을 시간이 없어서 그냥 무허가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ㅎㅎㅎ) 설악산 가서 속초 대포항 이나 물치항에 갈때면 홍콩빠 생각이 났었다.
80년 바닷가 매립이 있기전 그 때 모습을 그리워하며 2005년 경 안희철 마산어시장 번영회 부회장은 아래와 같은 자조섟인 글을 지역 신문에 올렸다. 매우 공감가는 대목이다.
" ~~~~ 그때만 해도 마산어시장에는 짠 냄새와 생선비린내가 심해서 코를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정박한 소형어선 사이에서 급하면 볼일도 보고 그러다가 날아가는 갈매기의 배설물에 맞아 낭패를 보았던 때가 그때가 진짜 살아 숨쉬는 어시장의 본 모습이었다. 지금, 그때 그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래도 주위 환경과 어울릴 수 있게끔 수산물 시장만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어야 모양새가 나고 제자리를 찾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급해서 바다를 메웠는지. 그래서 지금 무엇을 얻었는지. 땅이 모자라서 바다를 육지로 만들었다 치자. 그러면 육지로 변한 그 자리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때 홍콩빠의 후손들을 도시 속으로, 빌딩 속으로 처박아 놓기만 하면 대충 모양새를 갖추는 것인가. 불보듯 뻔한 일을 그 당시 꼭 매립을 해야만 했다면 바닷가 위에 말목을 박고 바다와 제일 가깝게 있었던 홍콩빠를 거리상으로나 순서대로라도 바다와 제일 가깝게 위치해 있어야 상식이 아니겠는가? 현재 마산어시장 수산물 시장에서는 바닷물의 짠 냄새도, 코를 막을 정도의 비린내도, 배설물을 자유롭게 토해내는 갈매기 울음소리도, 물위에 떠있는 소형어선 조차도, 아무것도 맡을 수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변하는 것은 할 수 없다. 변하는 것에 대한 억지도 아니다. 다만 바라고 싶은 것은 바라볼 수 있을 때 바라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제는 존재하는 것에 대한 제자리 찾기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있는 것도 빼앗기는 작금의 현실을 보았을 때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라도 떠나보내거나 도태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마산의 브랜드 슬로건이 ‘꿈의 항만도시’라 정해졌다는데 과연 항만도시에 걸맞은 그 무엇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홍콩빠가 존재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답이 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마산 수산물 시장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제자리를 찾아 그 곳에서 현실에 맞게끔 짜임새 있게 꾸민다면 그 또한 항만도시 다운 마산의 명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어릴적 할아버지손에 이끌려 남성동 어판장 경매하는데 가서 자주 구경 했던 기억이 난다. 경매공판장 옆에 조그만 방파제가 있었고, 바로옆이 천신도, 웅남호 등 여객선들이 정박했던 항구가 있었다. 남성동에서 주로 파는 생선과 조개류는 도미, 민어, 청어, 참조기, 아구, 문어, 바다메기, 갈치, 고등어 , 멍게, 해삼, 소라 등 마산과 통영, 거제 앞바다 등 연안에서 잡히는 해산물들이 주종을 이룬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마산의 멸치를 비롯 미역, 다시마 등의 건어물을 파는 골목은 마산상호신용금고 건물 뒤쪽에 있다. 건어물의 종류도 다양하고 수량도 많아 질 좋은 상품을 고를 수 있는 데다 전국을 무대로 판매하는 도매상을 겸하고 있어 싸게 살 수 있으므로 이 곳 마산에 관광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멸치나 미역 등을 선물로 사 가면 실속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건어물골목 옆에는 마산에도 그 요리 솜씨를 자랑하는 마산 복국거리 복국집이 즐비하다. 최근에는 이 곳 어시장뿐 아니라 마산수산업협동조합이 있는 항구 쪽에도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어 승용차로 어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낯선 도시에 가면 시장에 가장 먼저 가보라는 말 그대로 마산 어시장은 마산의 인심과 풍물, 맛을 두루 구경하고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옛날 "홍콩빠" 는 사라지고 없지만, 남성동과 서성동 횟집, 장어구이집은 그 옛날 낭만스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 그런데로 옛 정취를 떠올릴만했다.
현대양행, 한국중공업을 거처 두산중공업으로 바뀐 공장이 들어서 있는 해안으로는 현재 도로가 나 기 전까지 마산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창원 삼귀마을 (귀곡,귀현, 귀산) 사람들은 뭍에서 살아왔지만 뭍사람이 아니라 섬사람으로 살아왔었다. 1978년 산업도로가 개설되기 이전, 그 쪽에 사셨던 분들은 소형 연안여객선 웅남호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3귀 마을 출신 중에는 우리 30회 동문도 한명 있었다. 남성동 마산여객선 터미널과 삼귀를 오가는 동력선 웅남호 편으로 삼귀마을 사람들은 논, 밭 농사도 짓고, 갯가에서 잡은 각종 어패류들을 마산 어시장에 내다 팔며 자식들 학비 마련하고 생필품으로 바꿔서 생활했다.
미래를 위한 쓴소리
이제는 그 옛날 아름답고 푸르렀던 가고파의 바다는 사라지고, 낭만과 멋을 안겨주던 홍콩빠는 없어졌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의 옛 정취는 낡은 추억속의 흑백사진이 된 지 오래지만, 오,폐수 정화시설의 정비로 서서히 마산항 수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해안을 낀 다른 임해도시의 변화 트렌드를 눈여겨 벤치마킹 한다거나, 도시의 미래 지향적 관광을 염두에 둔 선택과 집중식의 친환경적인 개발을 추진한다면 향후 더 나은 방향으로의 부두 문화 개발이 가능하리라 본다. 지난번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카나다 밴쿠버의 독특한 부두 개발 사례를 TV 에서 방송한 것을 보았다. 관계 행정당국의 사명감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마산에 가면 눈에 뛰는 엠블럼을 본다. 시 홈페이지에도 올려진 Dream Bay (드림 베이) ! 말은 좋다. 드림 베이를 만들려면 제발 입으로만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부둣가를 좀 더 친환경적인 관광 포인트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뛰어나도록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꼭 돈 많이 드는 인프라 공사만 필요한게 아니다. 컨테이너 부두, STX 공장 유치, 그런 거창한 하드웨어 보다는 문화적인 콘텐트가 풍부한 산뜻하고 사람 냄새나는 항만을 만들기 위해서, 앞 바다 투어 프로그램도 만든다거나, 기존 구 도심지에 문화적인 상징거리를 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물론 코스트 고려해야겠지만, 강원 춘천, 광주, 전주 등 최근 문화적 컨텐트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도시개발에 접목시킨 다른 시의 개발계획도 벤치마킹 했으면 한다. 시 당국자들이 열정적인 학자와 주민들과의 스킨쉽이 필요하다.
지방자치 분권 체제에서 단체장과 의회 의원들의 사심없는 결연한 의지, 이를 뒷받침하는 공무원의 의욕적 업무추진, 그리고 주민들의 살아숨쉬는 강력한 행정 감시 모니터 및 자발적 봉사자세가 갖추어진다면 그 도시의 미래는 밝다.
|
** 위 내용은 지역신문, 관련 홈페이지, 향토사 연구하시는
분들의 자료집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