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와 팜므 파탈 / 신달자
밤 12시에 남자가 전화를 하면
요부같이 꾸미고
여우같이 날쌔게 달려가고 싶다
가서 불꽃 튀는 시선 하나로
남자의 몸에 불을 당겨서
삐거덕 삐거덕 생의 관절을
꺽게 하고 싶다
데릴라 쟌 뒤발 양귀비 장희빈
저런 여자처럼 남자의 생의
문고리를 꽈악 잡고 뒤흔들면서
드디어 전 생애를 박살내고
처절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뮤즈...
해뜨는 아침에 창가로 다가가서
그의 겨드랑 은밀힌 숲으로
입술을 오무려 후후후
예술의 뜨끈한 피를 수혈하고
남자의 온 몸에 기어가는 푸른 심줄 속으로
폭풍같은 활기를 쏟아붓고
신통력의 화살을 그의 가슴에 겨누어
주저앉은 그의 정신의 지팡이를 벌떡 일으키는
뮤즈, 뮤즈...
나는 그의 발밑에 숨쉬는 땅
머리 위에 도는
별밭 하늘
처진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올리는
부드러운 기적의 두 팔이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이 되고 싶어한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은가 보다.
대극되는 두 의미의 팜므 파탈과 뮤즈...
아님 쿤델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사와 사비나...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주인공 여자의 퇴폐적인 삶처럼
사랑은 함께 떨어지는 진창이 되는 일도 있고 하늘을 향한 고귀한 사랑이 될 수도 있나보다.
나는 동화를 좋아하는데 누군가에게 인어공주와 같은 사랑을 주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물거품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것은 어쩌면 나약함이라기 보다는
전사와 같은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대가없는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할테니까.
팜므 파탈이란 아마도 남성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 듯하다.
클레오파트라나 여전사와 같은 느낌은 사랑은 쟁취라는 개념이 들어가서 일까?
사랑은 일회용이 아닐텐데.
소유관념을 떠난 사랑이어야만 진정한 사랑은 아닐까?
현실에선 불가능한걸까.
그런데 사랑은 왜 내 손에 들어오고 나면 병안에 담은 파도처럼 그 생기를 잃어버리고
새장에 갖힌 새처럼 지루해질까?
맹수도 닫혀진 공간에서는 우울증에 앓는다고 하던데.
자유로운 상태에서 동등한 관계로 만난 사랑이 그 능동적인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한 생으로 사랑을 깨닫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