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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북중 12회 총 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정윤-017-284-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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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 60 이면,,,,, 저 먼산 너머 내리막길로 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닦쳐올 人生 70을 기다려야 할것이다,
그래도 , 지금 이순간이, 지금 우리들 대부분의 나이가,,,,, "人生 60을,,," 갖 넘은,,,,황금시대!! 마지막 시절이 아닐까 ??
- 박 정 윤 의 생각일세,,,-
![]() ![]() ** 人生 60 을 이야기 하다 !! **
"인생 60을 이야기 하다 !!" 란 거창한 제목으로 나의 인생 60을 이야기 하려 하니, 잡글 이지만 읽어주고, 넓은 양해와 이해를 해주소 !!
20代때 엔 혈기왕성한 기백과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하고, ROTC 라는 후보생으로 입단하여 동기생 8~90% 대부분은 2 년 6계월의 화려한 장교로서 ,,,,,이나라 간성으로서 군인의 길을 마감하고, 이 사회의 중책을 수행하였고, 현재도 각각 주요분야에서 활동중이지만,나는 2 년만에 장기복무를 신청하여 24여년 고급 령관장교로 근무를 하다가 1992년 5월에 "뇌경색"으로 쓰러진지 18 년째다,
어느 동기생은 "몸도 불편한데??" 이곳에 글쓰기도하고 동기생 모임에 자주 참여는 못하지만 위로겸 위안의 말을 한다,
또 다른 동기생은 나를 "사랑한다!!"는 너무나 감격적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동기생도 있어서 , 지금 나는 행복하다,
그렇게 나는 여러 동창과, 동기들의 위로와 위안의 말 을 듣고서 18 여년을 살아온 2급 "지체 장애인"이면서, 2급 "국가유공자"(國家有功者)이다,
그러나 군복무중에 "전투"나 "교육훈련중"에 몸을 다쳐서 "유공자"가 되었 더라면 더 떳떳 할탠데,,,, 내가 몸 관리를 잘못해서 장애로 유공자가 됬슴은 "자랑스럽지 못하기에,,,조금은 부끄럽다,,
10대 후 반에 첫사랑의 그 여인이 생각이 난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노래가사 같이 "첫사랑 그여인은 나처럼 늙어 가겠지,,,"
그 첯사랑이 지금 내곁에서 40년이 넘게 한이불을 덮고 사는 지금의 아내이다, 연애 6년에 40년 살고 있으니 46~7 년 사는거나 같다,
그러나 양 다리를 걸쳐서,,,,, 대학 1~2 학년 때에 사귄 음악과의 피아노 전공의 키큰 동성 동본, 목사 외동 딸이 생각이 난다,,
같은 박씨 (朴)인 데도,,,, 이름을 "정 윤"외 자 이름 이라고 속이고 몇 계월 을 양다리를 걸치고 곡예와 같이 속이기를 몇계월여,,, 동성 동본임 을 알아 차리고 이별 하는데 는 1년이 안 걸렸다,
또다른 여인은 고3 의 S 여고생,,, 졸업반인 못생긴 그 여고생과 의 긴 여행이 생각난다, 여수 "오동도" 에서의 하룻밥, 비들기 호 의 기차여행 등등 지금쯤 그 여인도 나 처럼어디선가 늙어 가겠지,,,
"人生 60 을 이야기 한다"면서 지난 추억의 여인 들만 열거를 하니 이만 줄이고, 나는 20 여년의 군 생활이 어쩌면 화려함 그 자체라 해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
중위때 장기복무를 늦게 신청하여 4년후에 대위가 되기전에 당시 서울 필동에 있던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 "33경비단 수송관"으로 근무하게 됐다,
윤필용 수경사령관이, 특전사령관과의 암투가 한참 일때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결단으로 윤필용 사령관을 퇴임 시키고, 훗날 1212주역이 되는 진용으로 전두환과 노태우중령을 청와대 내, 외곽 경비 단장으로 보임 시키고, 장세동 소령을 전두환 중령이 꼬봉??으로 교육 시키면서 키우고?? 있을때이다,
그즈음 나는 특전사 4주간 교육차출 명령이 되어, 그곳에가면 죽을것 같아서 2군사령부 로 227수송 자동차 대대로 전출이 되어 부평에 미군부대 880 수송중대로 "보리 카츄사" 부대 소대장으로 근무 하다가 대위로 진급 되어 대구 2군사령부에서 행정과장과, 영외 중대장을거쳐 4년 근무하고 소령으로 진급이 되었다,,
진급과 동시에 화천 7사단 군수처 수송 보좌관으로 강원도화천으로 전방근무를 군 생활 처음으로 근무하게 된다,
당시 정 승화 육군 참모 총장이 "학자" 장군 으로 "덕장"이기에 "군인도 베워야 한다"고 대학원 위탁 교육이 처음 시행 되었다, 나는 지원하여 8계월만에 화천 7사단을 떠나서 서강 대학교 학군단 교관 직위로 보직만 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하고 2년 6계월의 대학원 학생이 됬다,
행정대학원은 야간에 개설이 되어서 주 3~4일만 대학원에 다니며 "80년 봄"이 전국 대학가에 데모의 물결이 휘쓸고 닦쳐온것이었다,, 하루 쉬고, 하루 놀고, 하루 공치고,,,, 매일같이 데-모로 "휴강" "전두환 물러가라 !!" 악쓰고 "5,18 광주 사태"가 있어서 1980년에는 모든 대학생은 아마도 1계월도 공부하지 않하고,,,아니 못하고 한 학년씩 올라갔다,,
어영 부영 1982년 석사학위 졸업에 명예롭지 않는 "석사"학위를 수여받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또다시 보직된곳이 부평 "3군지원사령부" 였다,
나는 그곳에서 대대장 근무와 1984년 "국군의 날 행사" 대대장으로 여의도에 8계월 파견 되어서, 지금의 증권감독원 자리에서 탠-트 를 치고 2백여대의 차량을 운용하는 대대장 근무를 마치고 진해 수송학교 를 거쳐서 국방부로 전속이 됀다,
1988~1992년 까지 4년여 국방부 에서 "수송정책 담당관"으로서 근무하다가 줄 ?? 을 잘못 잡아서 ?? 권 영 애 (국방부 차관) 진급에 미끌어지고 ?? 몸을 다쳐서 아니 질병으로 군인의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대충 나의 人生60년을 흟터 봤지만, 어쩌면 군 생활이 화려 했으리라고,,,, 나는 판단하고 위안을 한다,
그것은 대부분을 수도권에서 군 생활을 했고, 대학원 2 년 6계월동안 2급 과학 과목 정교사 자격증으로 1년여 고등학교 교직생활도 했고, 1년여 위탁교육 기간중에 서강대학교 학군단후보생 교관도 했고, 중위 시절엔 "수도 경비사령부"에서 "육사출신들 에 끼워서 ?? 1212주역들과 그때 당시 근무했던,,, 장교들은 육사 25~27기로 100% 장군으로 모두가 진급이 됐으며, 그들과 군생활을 했던 추억이 人生60을 뒤돌아보면 재미있고, 화려한 기억과 즐거운 기록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하고 지금도 또렸이 남아 있다,
- 끝-
< 오늘은 "人生 60을 이야기 하다" 전편을 대충 마치고, 동창생 여러분의 눈치?? 를 보고 다음에 희,노,애,락.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기회가 있으면 후편으로 "나의 人生 60을 이야기 하다"를 글쓰기 하려하니 양해 해주기 바람>
- 박 정 윤 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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