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 ‘독재’로 향하는 선동적인 공작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때부터 자유와 공정을 강조했다. 그것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자유’와 ‘공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자신이 잘못된 질서를 원래대로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는 매우 정직하다. 그의 행동은 예측가능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말은 언어의 선택과 사용방식에 의해 내용이 결정된다. ‘자유’는 다양성과 관용 그리고 공존이라는 단어와 함께 했을 때만이, ‘공정’은 절차적 정당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더 큰 관심이 뒷받침 될 때만 진정한 의미를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나 집단에 대한 배제의 언어로 사용될 때, 자유와 공정은 끔찍한 폭력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의 자유와 공정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자유’라는 말은 오로지 공산주의의 반대적 의미에만 적용하고 있으며, 공정은 자신의 문제에는 눈감고 상대의 문제를 공격하는 데에만 활용되고 있다. 가치와 이념은 하나만의 절대성이 강조될 때 그리고 다른 가치와 이념을 존중하지 않을 때 단지 투쟁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그리스도의 이념이 ‘종교재판’에서 이교도나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비판자와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했듯이, 나치의 민족주의가 ‘반유대주의’와 결합하여 공포의 홀로코스트를 완성했듯이, 그리고 지금도 종교나 이념을 통해 자신들의 국민을 압박하고 자유을 억압하듯이, 이념과 가치는 언제든지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이념 싸움의 본격화를 선언했다. 새로 개각을 시행했고 임명된 장관들의 면모를 보면 과거 싸움꾼의 재능(?)을 인정받는 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하 Y)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반대 세력과의 적극적인 투쟁을 강조했다. Y의 발언은 정부 국무위원의 조건은 정책의 실용적인 능력이 아니라 얼마만큼 선전이나 홍보에 능하고 상대 세력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압도할 수 있는 화력을 갖추고 있는가가 되고 있다. 정치인이 아닌 투사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반대 정치세력과의 싸움이 아니고 비판적인 국민들과의 싸움도 예고하는 행동이다.
Y는 현재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점진적인 계획을 밟고 있다. 자신들의 검사 측근들을 주요 요직에 포진시켰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추종자들을 모으고 오로지 충성심을 바탕으로 권력을 배분하고 있다.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으며 문화계의 진보성을 잠재우려는 책략에 돌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책략을 시행하면서 베이스 깔린 기본적인 본질이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주의’라고 몰아가고 있으며, ‘반국가주의’를 공산주의와 일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홍범도 장군’에 대한 모욕은 오로지 이러한 흐름에서 파생한 것이다.
Y의 정직하고 투명한(?) 독재를 향한 국가경영의 비전은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진정한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반공주의’라는 이념을 절대적인 성격으로 변환시켜, 그것과 조금이라도 배치된다면 어떤 배경이나 맥락에 대한 고려없이 다양하면서도 역동적인 사유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둘째, 민주주의는 다른 견해에 대한 충분한 반론 보장과 절차적인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임에도,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방식대로 자의적인 법적용을 통해 강제적이며 일방적인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이러한 정치적 압제가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시키며 사회적 약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잔혹하고 냉정한 공격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화물연대’의 최소한의 요구를 묵살하였고, 작업장의 고통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참사로 죽어간 보통 사람들의 절망적인 외침에 귀를 닫았고, 강제징용이나 위안부로 살았던 분들의 피맺힌 절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결국 수많은 공공적 영역을 파괴할 것이며,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 경제적 자유나 자율적인 사회적 삶을 빼앗아가게 될 것이다.
현재 코레일에서는 철도파업 중이다. 보수언론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교통의 불편함만을 부각시켜 보도하고 있다. 철도를 비롯한 현재의 정부 정책이 앞으로 가져올 공공적 영역의 파괴성에는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지방의 공공병원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버스 터미널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에 닥쳐올 공적 삶을 무너뜨릴 심각한 쓰나미의 가능성에는 눈을 감고 오로지 경제적 이익과 편리에만 몰두한다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안정과 평화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정책에 대한 무관심과 문제의 본질은 외면하고 현재의 편의에만 집중하는 단기적인 욕망이 초래한 관성이, 결국 Y가 급격하게 추진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파괴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독재와 파시즘은 국민들의 지지와 방관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그것은 국민들의 현명한 지혜가 깨어있다면 독재와 파시즘은 불가능하다는 말과 동일하다. 나치의 파시즘은 선거를 통해 정당한 권력을 장악하면서 시작했다. 현재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도 선거를 통한 저항일 수밖에 없다. 무엇이 공동체의 미래에 적절한 방향인가를, 국가 공동체가 최소한으로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면서, 국민 각자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로 판단하다면 현재 Y의 폭주는 허구적 이념이라는 약물에 중독된 환자의 난동과 같은 느낌이다. 그것을 중단시킬 책임과 의무는 시민들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있는 것이다.
첫댓글 - "국민들의 현명한 지혜가 깨어있다면 독재와 파시즘은 불가능하다." -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의 윤석렬처럼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없다는(현명하다는, 지혜롭다는, 정의롭다는........) 확신에 가득차 있다. 거기에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옳고 남이하면 틀린...)' 생각까지 더해져 아무런 거리낌없이 편가르기를 저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