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는 ‘걸어 다니는 1인 기업’이라 불러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세계에도 통하는 재팬 애니메이션을 만든 선구자’로 통하는 그가 지난 40년간 일본 영화시장에서 이룩한 성과는 웬만한 기업체를 능가하다.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성공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미야자기 하야오는 지브리의 첫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를 시작으로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등 수많은 히트작들을 탄생시켰다. 2005년 당시, 역대 일본영화 흥행 1위부터 3위가 그의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좋은 예다.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 작품 [마녀 배달부 키키]가 18년의 세월을 건너, 국내 극장에 걸린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일본작품만이 국내 개봉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작년에 풀리면서 이루어진 결과다. 사실 실사를 방불케 하는 3D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요즘 1989년 작 [마녀 배달부 키키]는 시쳇말로 ‘장사가 안 되는 애니메이션’일 수 있다. DVD나 불법복제 파일을 통해 이미 너무 많이 공유됐다는 것도 약점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녀 배달부 키키]는 개봉 불허 규정이 풀리자마자 관심을 끌고, 개봉관을 잡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브랜드가 버티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며,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극장을 찾는 관객이 있기 때문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일본이 아닌, 유럽 시가지를 배경으로 했다. 이국적인 소재와 배경을 즐겨 사용했던 지브리 초기작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인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톡홀름의 고틀랜드 섬을 방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작업한 히사이시 조가 음악이 맡아 밝고, 경쾌한 만화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어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다. 자수로 짠 듯 곱게 펼쳐진 북유럽의 풍광, 품에 안고 터뜨려버리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이와 동물들, 히사이시 조의 선율을 타고 치솟는 비행의 쾌감. 그리고 물론 여기에는 이를 악물고 어른의 세계로 돌진하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있다. 머글과 마법사의 피를 절반씩 내려받은 헤르미온느처럼 키키 역시 마녀 엄마와 인간 아빠 사이에 태어난 혼혈 마녀다. 모든 마녀들이 그러하듯이 그녀는 13살 되는 해에 홀로 독립을 해야만 하고, 만월의 밤에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아름다운 항구 도시에 정착한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선천적인 재능 덕에 ‘오소노 아줌마’의 빵집에 거주하며 동네 배달일을 하게 된 키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귀에 고양이 지지의 말이 그저 ‘야옹’으로만 들리기 시작한다. 마녀의 피가 모자란 것일까. 마법 빗자루마저 부러뜨린 키키는 매서운 성장통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비행의 능력을 되찾는다. 개봉 당시 “여성영화”로 홍보됐던 <마녀 배달부 키키>는 <붉은 돼지>로 새로운 탐색을 시작하기 직전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낸 소품에 가깝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기계 장치와 마법 빗자루의 크기로 미야자키 영화의 경중을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야자키는 100만명이 채 안 되는 관객을 동원했던 <천공의 성 라퓨타>(1986)와 <이웃집 토토로>(1988)가 아니라 260만의 관객을 동원한 <마녀 배달부 키키>를 통해 지브리 스튜디오의 재정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었고, 지브리의 신화는 미야자키의 소녀들 중에서도 가장 짜릿하게 공기 중을 활강(滑降)하는 마녀로부터 마침내 시작됐다. 물론 18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비행솜씨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