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탕 트레킹 3
6일 일정중에 넷째날이다. 목적지인 강진콤바에서 하루를 잤으니 이제부터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귀가길. 오늘 밤은 라마호텔이라는 지역에서 자게된다. 트레킹 초입에 있는 곳이라 호텔 즉 로지가 많이 밀집해 있다. 오늘 라마호텔 지역까지 쉬엄쉬엄 7시간 정도 걸려 내려가야 한다. 일박한뒤 내일은 다시 샤브로베시에서 자고 모레 버스를 타고 카투만두로 돌아간다. 카투만두 가는 길도 고역이었다.
우선 강진콤바의 아침. 한국 관광객 한분이 강진콤바에서 파는 야크치즈가 세계 3대 치즈라고 말해 어제 1키로그램을 샀다. 가격은 천루피. 만 3천원 정도. 아침에 이 지역 빵, 로칼 브레드와 함께 먹었는데 로칼 브레드가 맛이 없다. 밀가루 씹는 느낌. 덜 먹고 남겼더니 미국인이 맛있다며 먹어치운다. 카투만두 시내에서 먹는 호띠나 인도식 빵인 란보다 두껍다.
내려오는 길에 야크도 보이고 소년 짐꾼사진도 찍고 풍경도 감상했다.
2시에 라마호텔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휴식이다. 강원도나 지리산속 산장같은 분위기다. 계곡 물소리가 귀를 씻어주고 약간 추운것 같은 바람이 필요없이 들떠있던 감성을 식혀준다. 2400미터 높이. 가이드가 대충 숙소로 잡은 이집은 왠지 손님이 없는 분위기다. 저녁으로 다른 것 섞지 않은 맨밥만 달라고 했는데 돌인지 소금인지 알수없는 이물질이 자주 나온다. 그동안 먹었던 식사도 대부분 밥인지 짠지인지 내가 무얼 먹고 있는지 모르게 맛이 없을 때가 많았다. 네팔 사람들은 차를 마실때 꼭 설탕을 넣어 먹는다. 이 로지의 설탕통을 보니 뚜껑도 없다. 몇달째 열려있었는지 아무도 신경 안쓴 것 같은 참 편한 모습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음식하는 영감이 알콜, 마리화나 중독자라고 한다. 그래서 이집 밥이 특히 느낌이 안 좋았나 보다. 그래도 화덕 옆에서 사진 찍을 때는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이 괜찮다는 듯 행복 하다는 듯 미소는 지어본다. ㅋㅋ집나오면 고생인줄 나도 안다구. 그래도 나가고 싶으니까 문제지.
그날 밤 이집 침대에서 트레킹와서 처음으로 약간의 근질 거림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도저히 아침밥은 시켜 먹지 못하고 차만 한잔했다. 샤브로베시로 다시 출발. 가는 길에 비를 만나 한 로지에서 로칼 술이라는 무스탕을 한잔했다. 강진콤바에서 마신 창은 한국 막걸리와 거의 똑 같았다. 뒷맛이 싱거워서 많이 마시고 싶지는 않은 술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커피잔에 마신 무스탕은 막걸리 종류가 아니다. 버터와 커피, 설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검은색이 커피같이 생겼는데 알콜도수가 창보다 높다. 양주에 커피 타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면서 다리 아픈 것도 가시는것 같다.
첫날 잤던 샤브로베시 로지에 다시 짐을 풀었다. 이날 저녁으로 치킨 칠리를 시켜 먹었다. 닭고기에 마늘, 양파 볶음이다. 그동안 볶음밥 삼아 시켜먹던 밥 종류나 면보다 훨씬 깔끔했다. 우리나라 양념치킨 맛이라고나 할까. 저녁에 프랑사람, 미국사람 등 여러 인종들과 여행얘기로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카투만두가는 버스에서 산에서 본 일본 사람을 다시 만났다. 1박에 500루피하는 곳에서 잤다는데 나는 싱글룸 200루피짜리에서 잤다. 일본사람이 잔 곳은 개인 화장실도 있는 괜찮은 곳인가 보다. 올때 10시간 걸린 로칼버스 대신 천원정도 더 주고 5시간 걸리는 슈퍼버스를 탔다. 그러나 역시 10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유는 중간에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나서 3시간동안 길에서 멈춰 서 있었기 때문이다. 180도로 꺽어야 하는 커브길이 수백개인지 수천개인지 모르는 절벽산길인데도 운전사는 휴대폰 통화도 하며 여유를 부리더니 마침내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냈다. 경찰 오는데 2시간, 와서 조사하는데 1시간이 걸렸다. 느림의 나라. 하루종일 기다려도 뭐 별거냐 하는 나라같다. 경찰이 버스 못간다고 하면 다른 차 타야한단다. 설마 농담이겠지. 외국인 관광객 특히 일본사람은 슈퍼버스가 아니라 '슈퍼 비스따리 버스'라며 불만이 가득하다. '비스따리'란 '천천히'란 말이다. 나중에 일본사람은 이렇게 시간이 늦었으니 돈 반환하라고 말해 사람들의 성원을 받기도 했다. 교통사고가 아니더라도 중간 중간 군인복 입은 경찰이 올라와서 아무 소득도 없는 검문을 하는 시늉을 하고 또 좀 가다가 누군가 지키고 섰다가 운전사 면허증 검사하고, 관광객들 입산허가증 검사하고. 분위기는 무슨 엉터리 전시상황같다. 아이들은 올리고, 어디선가는 똥냄새가 난다. 일본인은 냄새가 날때마다 창문을 연다.
사진 앞에 보이는 트럭과 교차하기 위해 차가 절벽쪽으로 조금씩 붙는 순간. 버스에 있던 불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여자 두명이 창밖의 절벽을 내다 보더니 기겁을 하고 차에서 뛰어 내린다. 뒤따라 일본인, 그리고 나의 가이드까지 버스를 탈출. 이 모습을 보고 네팔인들은 박장대소한다. 다행히 승객들이 죽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버스가 교차를 끝내자 다시 타는 그들. 괜히 내렸다는 기분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네팔인들도 절벽에서는 무서움을 느낀단다.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무심하다고 하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이 느낌을 사람이라면 피할수는 없을 것이다. 심장병 걸린 것 같다.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는 랑탕 트레킹코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로 장관을 이루며 피어있는 모습은 찾을 수 없어 실망했다. 내가 기대가 너무 큰가.
고산지대 티벳사람들의 집. 그냥 잘 몰라서 티벳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종족이 다시 몇개로 나눠지는 것 같다.
어쨋던 절벽길을 겨우 내려와서 카투만두 쪽으로 가는데 2000미터 이상의 산길이 다시 나온다. 백두산 같이 높은 산 수십개가 구름과 함께 눈 앞에 좍 펼쳐져 있다. 구름과 산을 보니 드디어 제대로 구경할게 생겼는가 하는 기대와 함께 절벽길을 또 가야 하나 하는 걱정도 생긴다. 운전사는 절벽쪽 쳐다보지도 않고 평지길 가듯 엑세레다를 밟는다. 산과 구름, 잠깐 그럴듯 하다가 별 감흥이 없다.
랑탕 트레킹의 결론은 다시는 안와도 되겠다는 것. 산에서 엄청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계속 가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냥 눈산일 뿐이었다. 왜 사람들이 히말라야, 히말라야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는데 그저 그랬다. 그냥 한번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을 보는 것 뿐이다. 한 네팔 교민에게 물었더니 자신도 같은 곳에 두번 갈 생각은 없다고 한다. 다만 여기 1년 이상 오래 살게 되면 안 가봤던 트레킹 코스를 가보고 싶어 진단다. 산이 좋아 여기 정착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내가 시간이 지나면 랑탕 말고 다른 곳, 안나푸르나 코스나 에베레스트 코스를 가보고 싶어 질까? 현재는 아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좋은 것이 하나 있다. 죽음 직전까지 가는 듯한 절벽 버스타기와 추위, 나쁜 음식을 경험하고 나면 간이 좀 붓는다. 죽음이 좀 만만해 보일수 있다. 그래서 사는게 좀 편할 수도 있다. 인터넷도 안되는 지역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귀찮은것 안하고 살아도 되는구나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미 간이 좀 부은 사람, 귀찮지 않게 사는 사람은 히말라야에서 더 얻을게 없다.
첫댓글 고생인지,재미인지 아뭏든 방랑생활이 부럽다
ㅎ 고생끝에 낙이 있다고 그 누가 말을 했던가. ㅋ 맞는 말 같다. 안 맞아도 할 수없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