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전하, 제가 지금 영의정인데…한명회 대감이 좌의정으로 밑에 있는 게 거시기 좀 껄적지근 합니다. 원래 한명회 대감이 이전에 영의정을 두 번이나 지냈는데, 지금 품계로 보면 제 아래에 계시니….”
성종 5년 신숙주가 성종에게 주청한 내용이었다.
“아니, 신숙주 대감…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토킹 어바웃 입니까? 원래 신대감이랑 한 대감은 친구 먹는 사이 아니였음까?”
“거…거시기 아무리 친구라도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 하는지라….”
“더구나, 예전에 세조 대왕 시절만 봐도 그렇죠. 그때 보면 신대감이 왕 먹고, 그 밑에 꼬붕으로 들어간 게 한 대감 아니었음까? 한 대감이 기본적으로 신 대감보다 한단계 아래 벼슬을 많이 살았는데…한번 진행된 인사니까 이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마시고, 걍 앉아 계세요. 가뜩이나 인사청문회니 뭐니해서 총리 하나 가는 게 녹록지 않은 판인데….”
“거시기…그래도….”
그랬다. 신숙주와 한명회…분명 혁명동지이며, 똑같은 공신(功臣)레벨이었지만 성종시절에 이르자 그 레벨 차가 확 드러나게 되었으니, 세조시절에만 해도 신숙주는 정통파 엘리트였던 반면, 한명회는 재야파 모사꾼 정도의 평가를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공신만 4번이나 했고, 두 임금의 장인이 되었고, 결정적으로 성종의 장인으로 위세를 떨치게 되면서부터는 신숙주도 한수 접어두고 꼬리를 마는 처지에 이르렀다.
“아 씨바, 신하들이 전부 장인 눈치만 보니…신숙주 정도가 저렇게 꼬리를 마는데, 다른 애들은 어쩐다는 소리야?”
성종과 기타 신하들의 눈에 보이는 한명회는 대궐 밖의 임금이었던 것이다. 자, 문제는 말이다. 정작 한명회 자신은 이런 평가를 좀 벗어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 쉬파…왜 사람들이 날 권신(權臣)이라고 손가락질 하지? 난 그냥 이 나라 조선의 안위와 왕실의 평안을 위해서 이 한 몸 불싸질렀을 뿐인데, 사람들이 이런 내 충심을 알아주지 않는다니 섭섭하군.”
“대감, 그거야 뭐 소인배들의 생각들이니,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누가 뭐래도 이 나라의 최고 실력가는 대감이지 않습니까?”
“이색희! 내가 그 소리 듣기싫다고 했어? 안했어? 난 그냥 조용히….”
“조용히 은퇴하시려구요?”
“너 이색희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냐? 나도 인마 조용히 물러나고 싶지…. 그런데 나라가 나를 원하잖아. 당장 내가 자리를 비운다 치자, 개떼처럼 간신들이 덤벼들 테고, 그럼 아직 연치어린 전하가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시겠냐?”
“그…그렇죠?”
“나도 은퇴하고 싶지만…어쩌겠냐? 나라가 원하고 전하가 원하시는데….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소인배놈들 때문에….”
그랬다. 이때 당시 최고의 권신이었던 한명회는 자신이 권력에 뜻이 없는 고고한 학자처럼 보이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의 행보는 이런 그의 뜻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당장 그의 딸들의 혼처가 어디였던가? 바로 왕실이 아니었던가? 아울러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을 제껴두고, 왕위 서열 3위인 자을산군(성종)이 왕위에 올라서게 된 이유가 다 한명회의 사위라는 뒷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그가 권력에 뜻이 없다는 소리를 누가 믿겠냐는 것이다.
“안되겠어. 일단은 말야 내 호를 바꿔야 겠어. 권력에 뜻이 없다는 걸 대외적으로 알릴수 있는 호…. 기러기랑 노닐면서 한가롭게 지내겠다…뭐 그런 뜻으로 압구정(狎鷗亭) 어떠냐?”
“음 거시기, 느낌이 참으로 판타스틱한데요? 뭔가 좀 팜프파탈적이고…신세대 스러운 것이…마치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을 가야 하는 듯한…그런 느낌이랄까?”
“오케이 거기까지! 앞으로 내 호는 압구정이다!”
한명회의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발언들…천하가 다 인정하는 권신(權臣)이 권신이 아니라고 뻗대는 모습이란…과연 압구정은 어떤 식으로 서울의 인구를 늘렸던 것일까? 초특급 대하 인구센서스 사극 ‘서울 인구폭발의 주범 압구정’은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