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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近思錄)-335 제4권 존양편(存養篇) 42>
不有躬無攸利(불유궁무유리)
몸을 보전하지 못하면 이로운 것이 없다고 하였다.
不立己後(불립기후) 雖向好事(수향호사)
자기를 확립하지 못하고서, 비록 착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대하면,
猶爲化物(유위화물)
오히려 물(物)에 화(化)해지는 것과 같아서,
不得以天下萬物撓己(부득이천하만물요기)
천하의 만물을 가지고 자기 몸을 어지럽게 한다.
己立後(기립후)
자기의 마음에 주체성이 확립되면,
自能了當得天下萬物(자능료당득천하만물)
자신이 능히 천하의 만물을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설; 불유궁(不有躬)이란 몸을지키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주역>몽괘(蒙卦)의 육3효(六三爻)에 말하기를, "이런 여자에게 장가들지 말라. 금(金)을 가진 남자를 따라갈 것이니 몸소 지니고 있지 못한다. 이로운 것이 없다[勿用取女(물용취녀) 見金夫(견금부) 不有躬(불유궁) 无攸利(무유리)]"라고 하였다.이 대목은 마음에 확고한 주체성이 없으면 물(物)에 끌려다녀 자신을 잃게 되므로, 처리 능력이 상실되고 혼란스럽기만 한것이다. 꾸준히 본 마음을 길러서 자기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천하 만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사록(近思錄)-336 제4권 존양편(存養篇) 43>
伊川先生曰(이천선생왈)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學者患心慮紛亂(학자환심려분란)
학문하는 자는 마음이 어수선하고 떠들썩하여,
不能寧靜(불능영정)
편안하고 고요하지 못함을 근심한다.
此則天下公病(차즉천하공병)
이는 천하의 공통적인 병폐이다.
學者只要立箇心(학자지요립개심)
학문하는 자는 다만 마음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此上頭儘有商量(차상두진유상량)
이 위에 헤아려서 생각해야 한다"
해설;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집을 지을때 주춧돌이 없으면 안되듯이 글을 배우는 자는 먼저 마음을 안정시킨 다음에 거기에 따라 모든 사물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음에 주장이 있어야 학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근사록(近思錄)-337 제4권 존양편(存養篇) 44>
閑邪則誠自存(한사즉성자존)
부정한 마음을 막으면 정성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
不是外面捉一箇誠將來存着(불시외면착일개성장래존착)
이것은 외면에서 하나의 성(誠)을 잡아서 마음에 두는 것이 아니다.
今人外面役於不善(금인외면역어불선)
지금 사람들은 외면의 불선(不善)에 시달리면서,
於不善中尋箇善來存著(어불선중심개선래존저)
이 불선(不善) 중에 한 개의 선한 것을 찾아서 마음에 두려고 한다.
如此則豈有入善之理(여차즉기유입선지리)
이와 같이 하면 어찌 착한 선(善)이 들어갈 이치가 있겠는가?
只是閑邪則誠自存(지시한사즉성자존)
오직 부정한 것을 막으면 성(誠)은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이다.
故孟子言性善皆由內出(고맹자언성선개유내출)
그러므로 맹자가 말한 성선(性善)은 모두 마음 안에서 나온 것이다.
只爲誠便存(지위성편존)
이것은 다만 정성스러운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閑邪更著甚工夫(한사갱저심공부)
간사한 것을 막으려면 어떠한 공부를 해야 하는가?
但惟是動容貌(단유시동용모) 整思慮(정사려)
그것은 오직 일거일동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정리하면,
則自然生敬(즉자연생경)
자연히 공경된 마음이 우러 나오게 된다.
敬只是主一也(경지시주일야)
공경의 주(主)가 되는 것은 하나이다.
主一則(주일즉)
주장을 하나로 하게 되면,
旣不之東(기부지동) 又不之西(우부지서)
동(東)으로 가지도 않고, 서(西)로도 가지 않는다.
如是則只是中(여시즉지시중)
이와 같이 하게 되면 오직 중(中)이 있을 뿐이다.
旣不之此(기부지차) 又不之彼(우부지피) 如是則只是內(여시즉지시내)
이것도 하지 않고, 저것도 하지 않으니, 이것은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存此則自然天理明(존차즉자연천리명)
이와 같은 마음을 소중히 지니면 저절로 천리(天理)가 분명해 질 것이다.
學者須是將敬以直內(학자수시장경이직내)
배우는 자는 반드시 공경된 마음을 가져 안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써,
涵養此意(함양차의) 直內是本(직내시본)
뜻을 키워야 한다. 안을 바르게 하는 것이 근본인 것이다.
해설;한사(閑邪)란 사악함을 막는다는 뜻으로, 부정한것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지하는것을 이르는 말이다. 간사한 마음을 막으면 정성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주역>건괘 문언전에서 인용한 이천 선생의 말이다. 오직 부정과 간사한 마음이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뜻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거일동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공경된 마음이 생기도록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소중하게 지니는 것이 뜻을 키우는 근본이라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338 제4권 존양편(存養篇) 45>
閑邪則固一矣(한사즉고일의)
간사한 마음을 막으면 마음은 하나로 된다.
然主一則不消言閑邪(연주일즉불소언한사)
그러나 주장을 하나로 하면 간사한 것을 막는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有以一爲難見(유이일위난견) 不可下工夫(불가하공부)
하나로써 보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如何(여하) 一者無他(일자무타)
어찌해야 하는가. 하나란 다른 것이 아니다.
只是整齊嚴肅(지시정제엄숙) 則心便一(즉심편일)
다만 생각을 바르게 하고 용모를 엄숙히 하면, 마음은 오로지 하나로 통일된다.
一則自是無非僻之干(일즉자시무비벽지간)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면 옳지 않고 편벽된 것의 간사함은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다.
此意但涵養久之(차의단함양구지) 則天理自然明(즉천리자연명)
이와 같은 마음이 오랫동안 길러지면, 천리(天理)는 저절로 밝아질 것이다.
해설; 밖으로는 용모를 단정히 하고 안으로는 마음을 엄숙히 하여 바르게 하면 마음은 하나로 통일될 것이며 마음이 통일되면 자연히 천리가 밝아질 것이라는 이천 선생의 말이다. 오직 마음의 주체성을 확고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근사록(近思錄)-339 제4권 존양편(存養篇) 46>
有言未感時(유언미감시)
"느낌이 없을 때에는,
知何所寓(지하소우)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아십니까?"하고 묻는 자가 있었다.
曰(왈)
말하기를,
操則存(조즉존) 舍則亡(사즉망)
"마음은 잡고 있으면 존재하는 것이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는 것이다.
出入無時(출입무시) 莫知其鄕(막지기향)
들고 나감이 때가 없어, 가야 할 거처를 알지 못한다.
更怎生尋所寓(갱즘생심소우)
그런데 어찌 마음이 머물 곳이 생기겠는가?
只是有操而已(지시유조이이)
오직 마음을 잡고 있을 뿐이다.
操之之道(조지지도) 敬以直內也(경이직내야)
마음을 잡는 방법은, 공경하여 안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해설; 미감(未感)이란 사람의 마음이 사물에 느낌을 갖지 않고, 조용한 상태에 있을 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미이다. 곧 정신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 인데, 마음은 원래 형체가 없는 것이므로, 마음을 지켜서 보존하면 있게 되고, 놓아 버리면 없게 되는 것이니, 흔히 정신을 놓았다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를 잘 깨달아야 한다. 마음을 기르는 방법에 대한 이천 선생의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40 제4권 존양편(存養篇) 47>
敬則自虛靜(경즉자허정)
공경하면 자연히 허정(虛靜)이 된다.
不可把虛靜喚做敬(불가파허정환주경)
그러나 허정을 공경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해설;허정(虛靜)이란 아무것도 생각 하지 아니 하고 사물(事物)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
는 정신(精神)상태(狀態)를 말하며,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된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조항은 이천선생의 말로서 경(敬)과 허정(虛靜)을 구분하였다. 공경하게 되면 잡념이 없어져 흐림이없는 고요함이 되지만 허정(虛靜)으로써 공경을 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염계(周濂溪: 주돈이)는 말하기를, "사람이 정(靜)한 후이면 자기가 주재(主宰)가 되고, 그런 정(靜) 가운데 물(物)이 있어야 비로소 공경(恭敬)이 되는 것이다. 공경이되면 잡념이 없어지므로 허정(虛靜)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341 제4권 존양편(存養篇) 48>
學者先務(학자선무) 固在心志(고재심지)
학문하는 자가 우선 힘써야 할 일은, 도심(道心)을 굳게 지니는 데 있다.
然有謂欲屛去聞見知思(연유위욕병거문견지사)
그러나 견문과 아는 것과 생각을 물리치려는 자가 있다면,
則是絶聖棄智(즉시절성기지)
이는 성(聖)을 끊고 지혜를 버리는 것이 된다.
有欲屛去思慮(유욕병거사려) 患其紛亂(환기분란)
또한 사려(思慮)를 물리치려는데, 마음의 어지러움을 걱정하는 자가 있다면,
則須坐禪入定(즉수좌선입정)
모름지기 좌선(坐禪)하여 입정(入定)해야 할 것이다.
如明鑑在此(여명감재차) 萬物畢照(만물필조)
밝은 거울이 여기에 있어서, 만물을 모두 비춰주는 것과 같음은,
是鑑之常(시감지상)
거울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難爲使之不照(난위사지불조)
거울로 하여금 비치지 못하게 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人心不能不交感萬物(인심불능불교감만물)
사람의 마음도 만물에 교감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므로,
難爲使之不思慮(난위사지불사려)
마음으로 하여금 사려(思慮)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若欲免此(약욕면차) 惟是心有主(유시심유주)
만일 이것을 없이하고 싶다면, 오직 마음에 주인이 있어야 한다.
如何爲主(여하위주) 敬而已矣(경이이의)
무엇이 주인이 되는가. 경(敬)이 있을 뿐이다.
有主則虛(유주즉허)
주인이 있으면 사욕이 없는 허(虛)가 된다.
虛謂邪不能入(허위사불능입)
허(虛)라는 것은 간사한 마음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을 말한다.
無主則實(무주즉실)
도심(道心)의 주체성이 없으면 사욕의 마음이 가득 차게 되고,
實謂物來奪之(실위물래탈지)
사욕의 마음이 가득 차는 것은 외물(外物)이 들어 와서 도심(道心)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大凡人心不可二用(대범인심불가이용)
대체로 사람의 마음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가 없다.
用於一事(용어일사) 則他事更不能入者(즉타사갱불능입자)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일은 들어 올 수 없는데,
事爲之主也(사위지주야)
그것은 사물이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事爲之主(사위지주) 尙無思慮紛擾之患(상무사려분요지환)
사물이 주인이 되더라도, 사려가 흐트러질 염려가 없는데,
若主於敬(약주어경) 又焉有此患乎(우언유차환호)
하물며 경(敬)이 주인이라면, 또한 어찌 이런 걱정이 있겠는가?
所謂敬者(소위경자)
이른바 경(敬)이라고 하는 것은,
主一之謂敬(주일지위경)
하나를 주장으로 하므로 경(敬)이라고 하는 것이다.
所謂一者(소위일자)
소위 하나라고 하는 것은,
無適之謂一(무적지위일)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는 것을 하나라고 하는 것이니,
且欲涵泳主一之義(차욕함영주일지의)
전일의 뜻을 함양(涵養)해야만 한다.
不一則二三矣(불일즉이삼의)
전일하지 않으면 둘이나 셋이 될 것이다.
至於不敢欺(지어불감기) 不敢慢(불감만)
속이려 들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으며,
尙不愧於屋漏(상불괴어옥루)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皆是敬之事也(개시경지사야)
모두 다 경(敬)의 일이라 할 수 있다.
해설;이용(二用)이란 사람의 마음에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있는 데,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심은 사욕을 없애고 천리에 맞도록하는 것으로서 구체적인 수양 방법은 주경(主敬)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敬)은 전일(專一)에 있고 전일(專一)은 무적(無適)에 있다는 것을 설명 하고, ‘경(敬)을 주장으로 하는 공부’에 대한 이천 선생의 말이다. "마음속에 주장이 있으면 밖에서 오는 간사한 것이 들어갈 수가 없으니 이것이 허(虛)이며, 마음속에 주장이 있으면 의리가 실행되니 이것이 실(實)이다"고 하였다. 절성기지(絶聖棄智)란 말은, 썩 잘하는 재주를 없애고 지혜를 버린다는 뜻으로, <노자> 상편19장에 나오는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42 제4권 존양편(存養篇) 49>
嚴威儼恪(엄위엄각) 非敬之道(비경지도)
엄위(嚴威)와 엄각(儼恪)은, 경(敬)의 도(道)가 아니지만,
但致敬須自此入(단치경수자차입)
경(敬)에 도달하려면 모름지기 여기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해설;엄위(嚴威)란 엄격하고 위엄이 있는 것을 말하고, 엄각(儼恪)은 지나치게 삼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경(敬)은 마음속에 있는것이며, 엄위엄각(嚴威儼恪)은 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속에 경(敬)을 만들려면, 외형부터 위엄을 갖추어서 삼가면, 안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이천 선생의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43 제4권 존양편(存養篇) 50>
舜孶孶爲善(순자자위선)
순(舜) 임금은 부지런히 선(善)을 행하였다.
若未接物(약미접물) 如何爲善(여하위선)
만약 외물과 접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겠는가?
只是主於敬(지시주어경) 便是爲善也(편시위선야)
다만 경(敬)을 주장으로 하는 것이, 곧 선인 것이다.
以此觀之(이차관지) 聖人之道(성인지도)
이것을 미루어 본다면, 성인(聖人)의 도(道)는,
不是但嘿然無言(불시단묵연무언)
오직 묵묵히 말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해설;자자위선(孶孶爲善)이란 말은 부지런히 힘써서 선(善)을 행하는 모양을 말한다. <맹자> 진심장구편에 말하기를, "닭이 울면 일어 나서 부지런히 선을 하는 자는 순(舜)의 무리이다[鷄鳴而起(계명이기) 孶孶爲善者(자자위선자) 舜之徒也(순지도야)]라고 하였다. 부지런히 힘써 선을 행하는 것이 오직 경(敬)이며, 또한 성인은 말이 없는중에도 스스로 마음을 길러 경(敬)을 이루고 있다는 이천 선생의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44 제4권 존양편(存養篇) 51>
問(문)
묻기를,
人之燕居(인지연거) 形體怠惰(형체태타)
"사람이 한가하게 있을 때, 형체가 몹시 게으르다 해도,
心不慢者(심불만자) 可否(가부)
마음이 게으르지 않다면 되는 것일까요?"하니,
曰(왈)
대답 하기를,
安有箕距而心不慢者(안유기거이심불만자)
"어찌 몸을 편안히 하고 앉아서 마음이 게으르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昔呂與叔六月中來緱氏(석여여숙육월중래구씨)
예전에 여여숙(呂與叔)이 6월중에 구씨현(緱氏縣)에 찾아 왔다.
閒居中某嘗窺之(한거중모상규지)
한가히 지내는 것을 내가 몰래 보았는데,
必見其儼然危坐(필견기엄연위좌)
반드시 위엄있고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니,
可謂敦篤矣(가위돈독의)
가히 돈독하다 이를 수 있다.
學者須恭敬(학자수공경)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공경한 마음을 지녀야 하지만,
但不可令拘迫(단불가령구박)
다만 지나치게 엄숙하여 얽매이고 쪼들리지 않아야 한다.
拘迫則難久(구박즉난구)
지나치면 계속하기가 어려울 것이다"고 하였다.
해설;비록 한가히 있을때라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것이며, 배우는 자는 항상 긴장을 풀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되 지나치지 말것을 경계한 이천 선생의 말이다. 주자도 말하기를 "마음이 지극히 공경된다면 몸도 자연히 정체해지므로 애쓰지 않아도 반드시 행동이 나오게 된다.억지로 안배하려고 애쓰면 오래갈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병이 생기는 것이다"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345 제4권 존양편(存養篇) 52>
思慮雖多(사려수다) 果出於正(과출어정)
생각이 비록 많다고 해도, 결과가 바르게 나온다면,
亦無害否(역무해부) 曰(왈)
또한 해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말하기를,
且如在宗廟則主敬(차여재종묘즉주경)
"종묘(宗廟)에 있을 때에는 공경을 주로 하고,
朝廷主莊(조정주장)
조정(朝廷)에서는 장중(莊重)을 주로 해야 하며,
軍旅主嚴(군려주엄) 此是也(차시야)
군문(軍門)에서는 엄정(嚴正)을 주로 함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如發不以時(여발불이시) 紛然無度(분연무도)
행동이 때에 맞지 않고, 어지러워 구별이 없다면,
雖正亦邪(수정역사)
비록 바르다고 한들 또한 간사함이다"고 하였다.
해설; 여여숙(呂與叔)이 물은 데 대한 이천 선생의 대답이다. 마음에 중심이 없기 때문에 사려가 복잡한 것이며, 사려가 많더라도 때에 따라 알맞게 나타나야 정(正)이 된다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346 제4권 존양편(存養篇) 53>
蘇季明問(소계명문)
소계명(蘇季明)이 묻기를,
喜怒哀樂未發之前求中(희노애락미발지전구중)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밖으로 나타나기 전에 중(中)을 구하는 것은,
可否(가부)
옳은 것입니까?"하니,
曰(왈)
대답 하기를,
不可(불가) 旣思於喜怒哀樂未發之前求之(기사어희노애락미발지전구지)
"옳지 않다. 희노애락이 밖으로 나타나기 전에 구하려고 생각하는 것,
又卻是思也(우각시사야)
그것이 곧 생각하고 있는 것이 된다.
旣思卽是已發(기사즉시이발)
이미 생각을 하였다면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纔發便謂之和(재발편위지화) 不可謂之中也(불가위지중야)
겨우 나타난 것은 화(和)이니, 중(中)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又問(우문)
또 묻기를,
呂學士言當求於喜怒哀樂未發之前(여학사언당구어희노애락미발지전)
"여학사가 말한 희노애락이 밖으로 나타나기 전에 마땅히 구하라는 것은,
如何(여하) 曰(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하니, 말하기를,
若言存養於喜怒哀樂未發之前(약언존양어희노애락미발지전) 則可(즉가)
"만약 희노애락이 나타나기 전에 마음을 기르라고 하였다면, 옳은 것이다.
若言求中於喜怒哀樂未發之前(약언구중어희노애락미발지전)
그러나 희노애락이 나타나기 전에 마음을 기르라고 하였다면,
則不可(즉불가)
옳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問(우문)
또 묻기를,
學者於喜怒哀樂發時(학자어희노애락발시)
"배우는 자는 희노애락이 나타날 때,
固當勉强裁抑(고당면강재억)
마땅히 힘써서 알맞게 억제해야 하겠지만,
於未發之前(어미발지전) 當如何用功(당여하용공)
아직 나타나기 전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曰(왈)
말하기를,
於喜怒哀樂未發之前(어희노애락미발지전) 更怎生求(갱즘생구)
"희노애락이 나타나기 전에, 어찌 삶(生)을 구할 수 있겠는가?
只平日涵養便是(지평일함양편시)
다만 평소에 마음을 기르면 될 것이다.
涵養久(함양구) 則喜怒哀樂發自中節(즉희노애락발자중절)
오랫동안 함양하면, 희노애락이 저절로 절도에 맞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348 제4권 존양편(存養篇) 54>
人於夢寐間(인어몽매간)
사람은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도,
亦可以卜自家所學之淺深(역가이복자가소학지천심)
또한 자기 학문의 얕고 깊음을 헤아려야 한다.
如夢寐顚倒(여몽매전도)
꿈속에서도 심신에 착란을 가져 오는 것은,
卽是心志不定(즉시심지부정)
그 마음의 뜻이 안정치 못하고,
操存不固(조존불고)
마음을 지키는 일이 굳세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설;심신이 안정되어 있으면 꿈도 아무렇게나 꾸어지지 않는다. 꿈이 어지러우면 사리 판단이 어렵고, 미혹에 빠질 수도 있으므로, 배우는 자는 마땅히 언동을 삼가고, 꿈속이라도 자기 공부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이천 선생의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49 제4권 존양편(存養篇) 55>
問(문)
묻기를,
人心所繫著之事果善(인심소계저지사과선)
"사람이 마음을 얽매는 일이 과연 선(善)이라면,
夜夢見之(야몽견지) 莫不害否(막불해부)
밤에 꿈에서 본 것은 해로움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하니,
曰(왈)
말하기를,
雖是善事(왈수시선사) 心亦是動(심역시동)
"비록 이것은 선한 일이라 하겠지만, 마음은 역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凡事有兆朕(범사유조짐)
모든 일에는 길흉화복의 징조가 있는 것이므로,
入夢者卻無害(입몽자각무해)
꿈에 들어오는 것은 해롭지 않으며,
捨此皆是妄動(사차개시망동)
이러한 것 이외의 것은 모두 마음의 망동(妄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人心須要定(인심수요정)
사람의 마음은 모름지기 안정을 요하는 것이다.
使他思時方思(사타사시방사) 乃是(내시)
생각해야 할 때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 옳은 것인데,
今人都由心(금인도유심)
지금 사람들은 마음대로 생각을 한다"고 하였다.
曰(왈)
묻기를,
心誰使之(심수사지)
"마음을 누가 부리는 것입니까?"
曰(왈)
대답 하기를,
以心使心則可(이심사심즉가)
"마음으로써 마음을 부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人心自由(인심자유)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便放去也(편방거야)
본성을 잃어 버리고 만다"고 하였다.
해설: 꿈에 나타나는것이 해롭지 않다고해도, 이로써 마음을 파악하고 분별해 갈수 있다면 이것 또한 존양(存養)의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한순간이라도 놓고 있는 만큼, 잃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양을 하면 천리가 자연히 밝아지고, 천지(天地)의 기(氣)가 가득 차는 것이니, 꾸준히 노력하라는 이천 선생의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50 제4권 존양편(存養篇) 56>
持其志(지기지)
그 뜻을 보존하고,
無暴其氣(무폭기기)
그 기력(氣力)을 해침이 없도록 하라는 것은,
內外交相養也(내외교상양야)
안과 밖을 서로 기르는 것이다.
해설; 이 대목에 나오는, 기지(其志)란 <맹자>공손추장구상편(公孫丑章句上篇)에 나오는 것으로, "그 뜻을 보존하여, 그 기운을 난폭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지기지(持其志) 무폭기기(無暴其氣)]" 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뜻을 지키면 안에 주(主)가 있게 되고, 안에 주(主)가 있게 되면 기(氣)가 가득 차게 되며, 기(氣)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밖으로는 방종이 없어진다. 뜻과 기(氣)가 서로 교호(交互) 작용을 이루어야 안으로는 뜻이 곧게 되고, 밖으로는 기운이 완전하게 된다는 이천 선생의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51 제4권 존양편(存養篇) 57>
問(문)
묻기를,
出辭氣(출사기)
"출사기(出辭氣)는,
莫是於言語上用工夫否(막시어언어상용공부부)
언어상의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하니,
曰(왈)
말하기를,
須是養乎中(수시양호중)
"모름지기 중(中)을 기르게 되면,
自然言語順理(자연언어순리)
언어가 자연히 이치에 따르게 될 것이다.
若是愼言語不妄發(약시신언어불망발)
만약 언어를 삼가고 망령되게 하지 않으려면,
此卻可着力(차각가착력)
이것을 힘써야 된다"고 하였다.
해설;출사기(出辭氣)란,<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로, ‘말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논어> 태백편에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도를 행하는데, 중히 여길 세 가지는 용모를 갖춤에 있어서 엄숙하되, 거칠고 오만함을 멀리하고, 안색을 바르게하여 신실하게 하며, 말을 함에는 야비하거나 도리에 어긋남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을 빌려서, 언어의 공부는 중(中)을 함양하는 데 있으며, 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되 무리하지 않아야 된다는 이천 선생의 말이다. 마음속에서 도리를 지키면 자연히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 언어가 이치에 따르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352 제4권 존양편(存養篇) 58>
先生謂繹曰(선생위역왈)
선생이 장역(張繹)에게 말하기를,
吾受氣甚薄(오수기심박) 三十而浸盛(삼십이침성)
"나는 허약한 체질로 태어나서, 30세가 되어서야 차츰 원기가 성해지고,
四十五十而後完(사십오십이후완)
40 · 50세가 된 뒤에야 몸이 건강해 졌다.
今生七十二年矣(금생칠십이년의)
지금 내 나이가 72세 인데,
校其筋骨(교기근골) 於盛年無損也(어성년무손야)
근골은, 젊은 시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하였다.
釋曰(역왈)
장역이 말하였다.
先生豈以受氣之薄(선생기이수기지박)
"선생님께서는 원기를 박하게 받으시고,
而厚爲保生邪(이후위보생사)
어찌 두텁게 양생(養生)을 하셨습니까?"하니,
夫子黙然曰(부자묵연왈)
선생은 묵연히 계시다가 말씀하기를,
吾以忘生徇欲爲深恥(오이망생순욕위심치)
"나는 양생을 잊고 욕심에 따르는 것을 매우 수치로 여겼다"고 하였다.
해섫; 이천 선생이 72세때 그의 제자인 장역과 자기의 건강에 대하여 주고받은 말이다. 젊어서는 허약한 체질이었으나, 식욕이나 색욕 등을 삼가하여 지금은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한 몸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허약한 체질 이라고 하여도 관리하기에 따라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53 제4권 존양편(存養篇) 59>
大率把捉不定(대솔파착부정)
대체로 마음을 단단히 파착하지 못하는 것은,
皆是不仁(개시불인)
모두 불인(不仁)하기 때문이다.
해설;파착(把捉)이란 마음을 굳세게 가져서 흔들리지 않는것을 이르는 말이다. 마음의수양이 모자라면 침착하지 못하고, 흔들려서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이것은 어질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것이니, 오직 존양(存養)에 힘써서 마음 속에 경(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근사록(近思錄)-354 제4권 존양편(存養篇) 60>
伊川先生曰(이천선생왈)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致知在所養(치지재소양)
"아는 것을 다하고자 하면 평소부터 지(知)를 길러야 한다.
養知莫過於寡欲二字(양지막과어과욕이자)
지(知)를 기를려면 과욕(寡欲) 두 자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해설; 지(知)에 이르고자 한다면 오직 욕심을 적게 하여 마음을 기를 것을 강조하였다. 욕심을 적게하면 사물의 판단이 분명해지므로 치지(致知)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
는 것이다.
근사록(近思錄)-355 제4권 존양편(存養篇) 61>
心定者(심정자) 其言重以舒(기언중이서)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자는, 그 말이 신중하고 여유가 있어서 느긋하며,
不定者(부정자) 其言輕以疾(기언경이질)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못한 자는, 그 말이 가볍고 급박한 것이다.
해설;말이란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 사람의 말씨에서 마음의 안정과 불안정한 상태를 알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켜서 바른말이 자연스럽게 우러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근사록(近思錄)-356 제4권 존양편(存養篇) 62>
明道先生曰(명도선생왈)
명도 선생이 말하기를,
人有四百四病(인유사백사병)
"사람에게는 404가지의 병이 있는데,
皆不由自家(개불유자가)
모두 기(氣)에서 오는 것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겠으나,
則是心須敎由自家(즉시심수교유자가)
마음만은 모름지기 바로 잡아서 몸 안에 지녀야 한다"고 하였다.
해설; 사백사병(四百四病)은 불가(佛家)의 말로서, 사람의몸에 생기는 병의총수(總數)라고 한다. 신체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어느하나가 너무 중대하면, 한(寒)·열(熱)등의 병이 생긴다고 한다. 1대가 101종이므로 합하여 404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유자가(不由自家)란 병(病)은 기체(氣體)로 부터 오게 되므로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마음은 사람의 신명(身命)이다. 그리고 몸의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기체로부터 오는 많은 질환은 사람이 어찌할도리가 없지만, 마음만은 스스로 바로잡아서 머물러 있도록 하여 자신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