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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산(白華山)에 일소계(一笑溪)가 있으니 위치는 태안 마애삼존불상, 태을동천(太乙洞天) 각자(刻字)가 된 바위, 감모대(感慕臺)라 각자된 8각형 좌대 사이에 흐르는 실 개천이 있다. 이 옆 바위에 각자로 一笑溪’라 새겨있는데 지나가는 이들은 ‘한번 웃지요’실 없는 선조들이 있었네! 하며 무의미하게 해석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야기는 일제에 의한 책략으로 우리 조상의 뜻을 훼손키 위한 모함이라 생각한다. 어찌! 성리학적 소양이 깊었던 선비들이 함부로 자연을 해하고 멸실한단 말인가. 또한 감모대 좌대는 성인 앉을 크기가 아닌데 접대용 좌대라는 상상이 가당 키나 한가. 이런 일소계라는 각자를 한 것은 김정식님이 살았던 시대의 시대정신인 유불선(儒佛仙) 합일의 운동과 정신을 고양키 위해 배치했다 사료된다. 하여 중국 여산삼소(廬山三笑)의 일화를 천착해 봄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정립한 사람으로 정토종의 초조(初祖)로 불리운다. 이 혜원스님은 평소 '影不出山 跡不入俗' (그림자는 산을 나서지 않고, 발자취는 속세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글을 골라 걸어두고 있었다. 그림자조차 속세로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손님이 오시더라도 산문 앞 개울가(虎溪)까지만 나가 배웅하곤 했는데, 혜원스님의 명성을 듣고 유인 도연명(陶淵明)은 도교 모산파의 도사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혜원스님을 찾았다. 돌아가는 길에 혜원스님이 배웅을 나가는데 셋의 대화가 어찌나 깊었는지 대화를 하다가는 그만 호계(虎溪)를 건너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문득 자신이 스스로 세운 계율을 어기고 호계를 건넌 것을 알고는 그만 셋은 함께 껄껄 웃어 젖혔다고 한다. 뜻이 맞아 함께 진정 나누기를 하며 웃었던 이 아름다운 일화를 호계삼소(虎溪三笑)라고 하여 두고 두고 기리게 된다. 이 호계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 앞에 있는 시내(현재는 실개천 수준임)이다. 그림으로도 이어지고 우리나라에서도 불교의 비구니, 카돌릭과 성공회의 수녀, 원불교의 정녀등이 모여 삼소회(三笑會)를 결성하고 교류하니 종교간 대화를 통해 벽을 허물고 공존의 장을 만들자는 노력이라 하겠다. 개울가 옆에 일소계라는 각자를 배치한 것은 유불선의 공존을 염원하여 개울을 일소계라 호칭하였다고 추정된다. 즉, 허허로운‘한번 웃지요’가 아닌 종교간 공존과 대화를 염원한다는 의미로 새겨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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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慕臺]
전각 안에 [마애 삼존불]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소재 백화산 정상부근의 바위에 새겨진 태안마애삼존불상 (높이 向左佛 身高 255cm, 向右佛 身高 240cm, 중앙보살 181cm)은 1966년 2월28일 보물432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 2004. 8. 31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것으로 거대한 바위의 동면에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삼존불입상을 새겼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배치와 달리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더욱이 좌우의 불상은 크고 중앙의 보살은 상대적으로 작아 일보살·이여래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좌우의 불상은 기본적인 형태가 같은데, 다만 오른쪽 불상의 얼굴이 뚜렷하고 좀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두 손의 인상(印相)이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한 모습이 약간 다를 뿐이다
태안군청 자료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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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5년, 그동안 흙 속에 묻혀있던 대좌가 드러나면서 삼존상의 웅장한 규모가 빛을 보게 된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은 우
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미술품으로 마애불의 효시이며, 신라는 물론 일본의 불교조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백제시대 불교유입
루트를 밝힐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라고 한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보살입상은
좌우 우람한 두 불상 사이에 끼여 있는 듯 뒤로 물러나 작게 새겨진 보살입상은 관대(冠帶)가 좌우로 뻗은 높은 삼면관(三面冠) 을 쓰고, 두 손으로는 보배구슬(寶珠)로 여겨지는 지물을 감싸 쥐고 있는 봉보주(俸寶珠) 보살상이다. 좌우 양면에 모사 뿔 같 이 길게 나온 조각형상부터 좌우로 길게 늘인 관대모양의 장식이 가슴위로 늘어져 있다. 타원형으로 길고 통통한 얼굴은 잔잔 한 미소를 머금어 원만상이며, 신체는 원통형으로 직립해 있다.
어깨를 덮어 내린 천의는 길에 내려와 무릎 부분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며 묵중하게 처리되었고 배 앞에 모은 두 손은 오른손을 위로 하여 보주를 감싸 쥐고 있다. 여래상과 달리 양감이 적고 낮은 돋을 새김이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고 좌우 대칭을 이룬 조각수법이다.
태안군 문화관광과 자료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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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살짝 번지는 백제의 미소 여래입상은
좌우 불상의 얼굴은 둥글고 통통하게 살이 많아 부피감이 있으며, 팽만한 뺨은 강건한 인상을 보이고 온 얼굴에 큰 미소가 번지고 있어 위엄하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겨주고 있다. 민머리로 표현한 머리에 작은 육(肉)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없고 큼직한 두광에는 무늬가 없다.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장대한 체구는 불상의 장엄한 위충을 나타낸다. 천의는 가슴이 넓게 열린 대의를 착의하였고 그 안 에는 실타래 모양의 내의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왼쪽은 시무외인 . 여원인의 통인을 하고 오른쪽 상은 왼손으로 보주(혹은 합 )을 들고 있고. 연화대좌 위에 두발로 버티고 서 있는 묵중한 자세는 무한한 자비와 순진무구한 백제불교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 다.
태안군 문화관광과 자료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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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의 진취적인 기상을 나타낸 연화대좌는
묵중한 마애불상을 떠받치고 있는 연화대좌는 11조각의 홑꽃잎 연화문의 복련으로 중앙이 넓고 반듯한 한 잎을 제외하고 끝이 뾰 족하고 날카롭다. 좌우 대칭으로 꽃잎이 밖으로 돌아 끝을 위로 꺾어 올려 간결하면서도 소박하고, 날렵하면서도 명쾌하여 생기 있는 백제인의 진취 적인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연화는 5세기 성총이나 무용총 등의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고, 무열왕릉의 왕비 머리받침대에서 보여 주목된다.
태안군 문화관광과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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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암의 대웅전]을 돌아 태을암을 내려간다.
옆으로 나 있는 마루금을 생각하면서 편의상 도로를 따라 간다
[백조암]백조의 알같이 생겼다하여 이름지어진 바위를 지나
634번 도로로 내려온다. 모래기재 아래이기에 태안여고를 바라보면서 걸었다.
[태안여고]옆 도로를 따르다 오른쪽 산으로 입산하게 된다.
아주 낮은 봉우리 93m의 높이에 삼각점이 '서산 436'의 번호를 달고 있다.
낮은 봉우리의 산길은 얼마 못 가 빈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임도로 내려놓고 있다.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하게 된다.
인삼밭과 황토색 밭이 시원한 마음을 펼쳐보이는 듯 하여 풍요롭게 조용한 농촌마을길을 걷는다. 퇴비산과 구수산이 나를 부르며
발자욱 소리가 크다.
삭선1교차로를 건너게 되며 예비군훈련장이 보이는 곳으로 계속 진행하여 가게 된다.
예비군훈련장을 지나 임도를 따르다 오른쪽 산으로 입산한다. 표지기가 있어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철탑이 보이며
[퇴비산]정상. 옛 봉화대로 추정된다는 산정,
[퇴비산의 삼각점은 '서산 435'을 달고 높이 160m의 낮은 산이다.
지도에 없는 [개봉산]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소나무사이로 보이는 서해산업(주)의 기계소리가 윙윙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구수산이 손짓을 한다. 묘를 지나 서해산업의 도로로
내려 32번 국도를 횡단보도한다.
구수산으로 오른다. 그물망으로 절개지를 쳐 놓아 그 위를 밟아 간다. 땅위에 낙엽이 가득하기에 푹신하여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하고 겨울나무의 쓸쓸함이 보태니 잠바를 껴 입었다.
[구수산성]으로 돌탑에 그 해답을 누군가 적어 놓았다.
능선을 조금 더 따르면
[구수산 낙조봉]이 돌탑과 있다.
역시 누군가 낙조봉의 설명을 적어 놓았다.
부해(浮海)의 길을 따라 강회(講會)에 나선 간재 선생, 도학적 인간 성(性) 체득을 노래하였다.
감음(感吟)
성명원무반점사(性命元無半點私) 성명은 원래 반점의 사도 없느니라
사심쟁승화무애(私心爭勝禍無涯) 사심이 쟁승하면 재앙이 끝이 없다
봉권세간구도사(奉勸世間求道士) 세상 도 구하는 선비에게 받들어 권하노니
지종수사학선니(祗從洙泗學宣尼) 오직 공맹 도학을 배워 인간 도리를 딱어라
걷게 될 수룡저수지의 풍광이겠지~~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나를 위로한다. 이 낙조봉에 쓰인 옛 선비의 물들인 낙조을
감음하며 기울어져가는 부활의 꿈을 꾸고 싶다.
'모두가 비워라. 비우리라' 낙조봉을 내려간다. 서둘러야 겠다.
관광버스주차장으로 내려와 주유소를 지나 유득재인 32번 국도에 선다. 수량리 육쪽마을 단지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고 바로 길
건너 대창슈퍼가 있기에 그곳에서 산행정리를 하고 스틱을 접는다. 커피한 잔 사 먹을려 했는데 혼자냐며 한 잔 주신다.
'혼자냐고" "친구도 없냐고"
"네"
다음에 올 차편은 만리포, 천리포, 소원행 버스를 타서 시목1리 입구에서 내려라 하고 태안행 버스는 바로 있단다. 그랬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태안으로 와서 인천터미널행 버스에 캄캄한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왔다. 오랫만에 이틀동안 걸은 허리가 잘
견딜지 모르겠다.
태안읍 백화산 정상 가까이 , 서해가 굽어 보이는 커다란 바위에 우리나라 석굴암의 시원(始原)으로 볼 수 있는감실을 만들고, 거의
환조(丸彫)에 가깝게 삼존불을 양각했다고 하는 마애삼존불의 600여년전 백제시대를 잠시 공부하였던 계기가 참 좋았다는 생각은
여전히 머리에 맴돌고
國泰民安의 준말로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준말인 태안만의 의미론 「태평하고 안락하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바로 태안인 것이다.
어제는 서산을, 오늘은 태안의 산을 걸었다.
첫댓글 산행기가 올라오니 환호성이 질러진다
한반도의 여기저기 다니며 우리산하의 모든 것을 기록함에 존경을...
백제미소는마음에감동을주지요. 가지님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함께 산행했던 그때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