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랜 고등어를 꿈꾸며
-수영예찬-
주기영
336만(萬) 리(里)나 되는 황금빛 날개를 펄럭이며 바다 속 용을 쪼아 올린다는 전설의 새 금시조(金翅鳥)가 파도를 가르며 비상하는 모습과 향기가 진동하는 푸른빛의 코끼리(香象)가 강물을 건너가는 위풍당당함을 불경에서는 금시(金翅)가 바다를 쪼개고 향상(香象)이 강물을 건너간다는 표현으로, 금시벽해 향상도하(金翅劈海 香象渡河)라 표현했다. 이 구절은 일찍이 추사(秋史 金正喜)가 상대방의 잘 쓴 붓글씨를 기리면서 인용하던 극찬의 문구이기도 하다.
나는 이 멋진 문구를 수영, 그 중에서도 버터플라이(butterfly)라 부르는 접영(蝶泳)의 호쾌한 모습과 연결지어 생각하곤 한다. 같은 수영이라도 평영(平泳;개구리헤엄)이 여성의 부드러운 동작에 잘 어울린다면 버터플라이는 세찬 남성의 역영(力泳)에 더욱 어울리는 영법이다. 돌핀(dolphin)킥과 더불어 부드럽게 웨이빙(waving)을 하며 두 팔을 힘차게 벌려 상체를 솟구쳐 올리는 위용은 마치 금시조가 바닷물 속에서 용을 쪼아 올리는 형태로 상상된다.
실은 나의 수영 경력은 대단한 것이 못되며 일천하기 그지없다. 수영 좀 하는 사람들에게 몇 년이나 됐느냐고 물어볼 때면 기본이 5년, 대개는 10년 내지 15년이란다. 나는 이제 3년이 좀 넘었을 뿐이고 더구나 60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어린 시절 내 고향 예산의 무한천(無限川)에서 여름철이면 되는대로 헤엄을 치며 물가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기도 했고 재직 중에는 방학 때 단 며칠이라도 바닷가에 나가 되는대로 자유수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는 제대로 스타일(型)을 잡아서 한 것이 아니었으니 수영경력이라고 할 것이 못된다.
아이디어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정년퇴임을 몇 달 남겨놓고 퇴직연수에 참가했을 때 강사 한분으로부터 퇴직 후의 운동으로는 수영이 최고이고 심신에 미치는 효과가 아주 좋다는 말을 듣고 힌트를 얻은 바 있었는데 마침 집 근처에 저렴하면서도 관리가 잘되는 수영장이 있어 회원 가입을 하고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3년을 넘기게 되었다.
이제는 아침마다 내 집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면도하는 대신에 수영장에 가서 수영도 하고 면도와 샤워 그리고 드라이까지 하고 오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대부분의 학교에는 수영장 시설이 없었고 유독 내가 다니던 학교에만 수영장이 있다 해서 큰 자부심을 갖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저렴한 월회비로 지근거리의 수영장에 다닐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내 나라가 참 살기 좋아졌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며 이런 복지혜택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선배들 그리고 부모님이나 조상님들이 참 안 되었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그동안 수영을 하면서 잘못한다고 핀잔도 많이 받았지만 참으로 고맙고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군대식 바다 수영을 가르쳐준 해군장교 출신이라는 분, 바다에서 시체인양을 전문으로 했다는 분 등이 수영의 각종 영법과 다양한 기술에 관하여 여러 가지 지도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한참 열을 올릴 때에는 집에 와서까지도 인터넷으로 하기와라 도모코 같은 세계적 수영선수들의 동영상을 유심히 본다든가 아쿠아리움(수족관)에서 큰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거기서 수영을 이치를 알아내기도 했다.
물고기 중에서도 제일 빠른 것은 다름아닌 고등어인데 평균속도가 시속 60 내지 70 킬로미터이고 속도를 낼 때는 100 킬로미터를 훨씬 초과한다는 것이다. 비행기 동체의 모습은 고등어의 몸체을 모방한 것이고 그것이 유체 속에서 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형태라고 한다. 그만큼 수영이란 물의 저항과의 싸움이다. 고등어가 물고기 중에서도 가장 저항을 덜 받는 유선형이라고 해서 나는 특히 고등어 반찬을 많이 먹기도 하는데 금년에는 고등어가 많이 잡혀 값도 저렴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보면 지느러미를 사용하여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주된 추진력은 몸통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힘이다. 뱀이 물위를 가로질러가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물고기나 뱀은물속에서 척추가 좌우로 휘도록 되었는데 사람의 척추는 수중에서는 상하로 휘도록 되어 있어서 아래 위로 물살을 가르며 웨이빙을 한다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다.
수영할 때 두 팔을 휘둘러 추진력을 얻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이고 어깨와 허리 그리고 골반과 하체의 굴신을 통한 롤링과 웨이빙을 이용하여 부력과 추진력을 얻는 측면이 많다. 사지를 모두 잃은 사람이 몸통만으로 영국의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넌 일도 있다.
수영을 하면 근육이 발달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관절을 둘러싼 자잘한 근육은 크게 발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슴과 허리 그리고 대퇴부와 하체의 큰 근육은 어느 운동보다도 고르게 발달되고 강화된다. 다만 수영은 골밀도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수영과 병행하여 주기적으로 등산을 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수영과 인간과의 숙명은 생명의 탄생시부터 이미 시작되는 바 즉 헤엄을 가장 잘하는 정자가 대기 중인 난자에 먼저 도달해 고지를 선점함으로써 새 생명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아득한 옛날 지구상에 처음으로 생명이 탄생한 것도 바다에서였다고 하는데 인간의 혈중 염도가 해수의 염도와 비슷한 것을 보면 모든 동물과 인간의 고향은 바다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3 분의 2 이상이 바다로 덮여 있기도 하니 바다야 말로 우리의 마당이며 고향땅이기도 하다.
수영이 주는 이익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수영은 침례(baptism)의 효과가 있어 마음을 리후렛슁(refreshing)해 준다. 여러 가지 소심중과 우울증을 한순간에 날려 보내는 효과가 있다. 한 시간 정도 물살을 가르고 난 다음 샤워까지 마치면 몸과 마음은 어느덧 청춘과 같은 생기가 넘치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욕과 자신감이 생긴다.
쉬머(swimmer)들끼리는 수영중 서로 직접 접촉((contact)이 되는 것을 피하여 자기의 트랙을 따라서 앞으로 나가지만 수경(水鏡)을 통해 들어오는 인체의 멋진 동작들은 마음을 젊게 하고 일종의 스킨쉽(skinship)의 효과를 가져와 외로움과 우울함 등의 정신적 침체를 상당부분 극복제거할 수 있다. 물과 피부와의 상호접촉을 통한 교감은 말할 수 없는 상쾌감을 주는 바 그것은 아마도 까마득한 옛적 어린 세포가 모체의 양수를 헤엄치던 기억이 재생되는 쾌감일지도 모른다. 수영복(swimming suit)은 될 수록 짧아야만 물과의 접촉면이 많아서 피부건강에 좋다.
수영은 인간에게 해방감과 자유를 준다. 진정한 신체적 자유는 딱딱한 고체 즉 땅 위에서보다는 유체 속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같은 유체라도 공기는 너무 가볍고 부력이 약해서 그 속을 새처럼 유영(遊泳)할 수가 없고 비행기나 낙하산 없이는 마음껏 신체적 자유를 누릴 수도 없다. 하지만 물 속에서는 상하전후는 물론 360 도 회전의 자유가 보장되니 몸의 자유를 통해 마음의 자유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이다.
수영은 폐 건강에 특히 좋다. 인간의 자연사(自然死)의 가장 큰 원인은 폐렴과 대퇴골 골절로 인한 패혈증이라고 한다. 물 속에서 호흡을 정지하면 얼마 못가서 산소결핍으로 질식사하게 되므로 수영의 기술 중 첫 번째는 호흡법일 수 밖에 없다. 머리를 항상 물 밖으로 내어놓으면 좋겠지만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는 순간 그만큼 부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영시에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내밀어 재빨리 공기를 흡입해야만 된다. 머리의 무게는 인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영을 하는 동안에는 자연히 심호흡을 하게 되고 호흡기내의 가래 등 불순물을 최대로 밖으로 뿜어내게 된다. 수영운동을 계속하는 사람은 겨울철에도 거의 감기라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땅위에서 수직으로만 걸어 다니는 인간에게는 혈액순환이 늘 문제가 되고 모든 질병은 결국 혈액순환이 안 되어 유발되는 것인데 물속에서만은 입체적으로 즉 360 도 전후상하로 몸을 움직임으로써 자연히 혈액이 인체 구석구석까지 순환되어 질병을 줄일 수 있고 기분마저 상쾌해져 우울한 기분을 확실하게 허공에 날려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완전 가공된 음식을 많이 먹는 현대인에게 큰 문제점의 하나는 섬유질의 부족이다. 그래서 변비가 되기 쉽고 숙변이 쌓이기 쉬운데 수영은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다. 변이 정상화 되면 대장암이나 항문질환도 그만큼 예방되고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근 40년 동안 교단에 서 있는 동안 많은 교사들이 위하수나 항문질환 등 직업병에 노출되기가 쉬운데 이런 문제도 수영운동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요즘 많이들 하는 골프는 비용이 많이 따르고 총체적 운동량도 많지 않으며 테니스 역시 좋은 운동이긴 하지만 반드시 기량이 비슷하고 맘에 드는 파트너가 있어야 되며 서로간에 시간을 맞추기도 무척 어렵다. 스키가 좋다지만 한철 운동에 불과하며 장비 이동과 스키장까지의 접근도 번거롭고 단 한번의 사고로 중상을 입을 수 있다.
수영만은 최소의 비용으로 매일 같이 혼자서도 가능한 운동이다. 운동 중에 즐거움도 다른 것보다 못지않으며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장비라야 수영복(swimming suit) 과 수영모(swimming cap)와 수경(goggle)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귀마개(earplug) 정도이니 모두 다 뭉쳐봤자 한주먹도 안 되어 작은 손가방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다.
과거에는 시설 좋은 실내수영장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뒤로 자치단체마다 체육관을 신설했고 그 지하에 멋진 실내 풀장을 만들어놓았다. 대개 25m 레인이 일고여덟 개 만들어져 있고 50 m 레인이 있는 곳도 있으나 출전선수가 아니라면 25 m 레인에서 왕복을 계속함으로써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세계적 정치지도자들이나 명사들도 만년까지 수영을 통해 건강을 유지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국민들 특히 교단에 직립하여 수업을 하는 교사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고 확신한다.
나의 은퇴생활의 나날은 곧 수영의 나날이었다. 지난날의 동료들을 만나면 무슨 특별한 건강비법이 있느냐고 물어올 정도로 좋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늘도 나는 금시벽해 향상도하(金翅劈海 香象渡河)라는 멋진 구절을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만 사랑하는 이 세상을 위해 나의 작은 힘이나마 봉사를 위해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 09. 28)
주기영 약력:
1946년 충남 예산출생으로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대전고(5년), 서울 동성고(32년) 등에서 근무, 정년퇴임. 황조근정훈장 수훈.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울교원문학회 이사. 수필집으로 <봄은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등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