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Rent)’의 계보를 따지자면 프랑스 작가 앙리 뮈르제(1822∼1861년)가 쓴 소설 ‘보헤미안 삶의 풍경’이 가장 먼저다. 이 소설을 뼈대로 자코모 푸치니(1858∼1924년)가 오페라 ‘라 보엠’을 발표했고, 다시 조나단 라슨은 ‘라 보엠’을 토대로 뮤지컬 ‘렌트’를 만들었다. 소설-오페라-뮤지컬을 관통하는 근본 정신은 순수와 자유가 살아 숨쉬는 보헤미안 정신이다. 라슨의 삶 자체가 한편의 보헤미안 드라마였다. 그는 1996년 1월, 7년 동안 정성을 쏟았던 ‘렌트’의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을 불과 하루 앞두고 36세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렌트’의 한국 공연은 2000년 초연 이래 올해로 다섯번째다. 지난 4차례 공연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대학로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는 점이다. 초연이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흥행 방식과는 거꾸로 대형에서 소형 무대로 역주행한 셈이다.
대학로 공연은 감동적이다. 워낙 원작의 스토리가 탄탄한 데다 출연진도 대체로 이를 잘 소화했다. 특히 여장남자 앤젤과 여주인공 미미가 에이즈로 숨을 거둘 때 객석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옆 사람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공연은 출연자와 객석의 공동 작품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앤젤(김호영)과 콜린(최민철)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성애자로 나오는 두 사람이 ‘렌트’를 이끌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앤젤의 죽음에 직면한 콜린이 굵고 낮은, 그러나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나는 이 장면을 ‘렌트’의 명장면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렌트’는 노래가 풍성한 뮤지컬이다. 간단한 대화도 노래하듯이 주고받는다. 뮤지컬에서 노래가 나와야 할 때 말이 나오는 것만큼 실망스런 일도 없다. 2시간 40분짜리 긴 공연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노래 덕분이 크다.
아쉬움도 남는다. 여주인공 미미가 되살아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미미의 애인 로돌포(‘렌트’의 로저)가 “미미”를 외치는 걸로 끝난다.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로저(신동엽)가 “미미”를 외친 뒤 미미가 죽은 앤젤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난다.
죽은 사람을 살리려면 그만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것을 기억하자). 앤젤이 미미의 꿈에 나타나 “너는 다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어딘가 허전하다. 출연진도 이 대반전을 실감나게 표현하지 못했다. 라슨의 원작에 손을 댈 수 없다면 연출가와 배우들의 내공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두고두고 숙제거리가 될 듯하다. 최소한 이 장면에서 맥이 빠진 나머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수선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