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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류초(天文類抄)는 세종대왕의 명으로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1406년~1465년)가 편찬한 천문 설명서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3년 7월 2일 1421년 기록을 보면 “서운관(書雲觀)에 간수했던 ‘천문비기(天文秘記)’를 궐내(闕內)로 옮겨 들이게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 고유의 천문 서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의 명을 받은 천문학자 이순지는 당시 옛 천문서적을 총망라하여 종합한 ‘천문류초(天文類抄)’를 편찬하였다.
北斗(북두)는 七政之樞機(칠정지추기)며 陰陽之本元也(음양지본원야)라. 故(고)로 運乎天中而臨制四方(운호천중이임제사방)하야 以建四時而均五行也(이건사시이균오행야)라. 又曰人君之象(우일인군지상)이요 號令之主也(호령지주야)며 又爲帝車(우위제거)니 取乎運行之義也(취호운행지의야)라. (『천문류초天文類抄』)
북두는 칠정七政의 핵심이 되는 기틀이며 음양의 본원이니라. 고로 하늘 가운데에서 빙빙 돌아서 동서남북 사방四方을 통제해서 봄여름 가을겨울 사시四時를 세우고 오행五行을 고르게 하니라. 북두칠성은 임금의 모습이며, 모든 별들을 호령하고, 모든 인간세계를 호령하는 주인공이며, 옥황상제님께서 타시는 수레니, 수레는 운행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니라. (『천문류초天文類抄』)
사마천은 『사기』「천관서」에서 “북두칠성이란 이른바 ‘선기옥형(璇璣玉衡)을 살펴서 칠정七政을 다스린다’는 것이다[北斗七星, 所謂璇璣玉衡以齊七政].”라고 기록하였다. 칠정七政이란 해와 달과 금, 목, 수, 화, 토의 오성五星을 말한다. 태양달, 일월(日月)은 음양론의 근거가 되고, 오성(五星)은 木火土金水 오행론의 기준이 된다. 결국 이 말은 북두칠성이 천지일월의 운행을 주관한다는 뜻이다.
北斗者(북두자)는 乃天地之元靈(내천지지원령)이요 神人之本命也(신인지본명야)라 北斗居天之中(북두거천지중)하야 爲天之樞紐(위천지추뉴)며 天地之權衡也(천지지권형야)라 天(천)이 無斗不生(무두불생)하고 無斗不成(무두불성)하며 無斗不明(무두불명)하고 無斗不行(무두불행)하나니 斗爲量度之玄器也(두위양탁지현기야)니라 (『도장道藏』17권 「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注」)
북두칠성은 천지의 으뜸가는 성령이며, 신과 인간의 근본생명을 주장하니라. 북두칠성은 하늘 가운데 자리해서 하늘의 지도리가 되며, 천지의 저울이 되니라. 하늘이 북두칠성이 없으면 만물을 생성하지 못하며, 북두칠성이 없으면 만물을 성숙시키지 못하며, 북두칠성이 없으면 세상을 밝히지 못하며, 북두칠성이 없으면 하늘 자체가 운행하지 아니 하나니, 북두칠성은 헤아리고 살피는 현묘한 그릇이 되느니라. (『도장道藏』17권 「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注」)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상투의 어원, 상두(上斗,북두칠성)
유독 한민족에게서만 볼 수 있는 칠성문화가 바로 머리를 틀어 올리는 상투다. 상투는 상두(上斗, 북두칠성)다. 상투를 틀 때 앞으로 4번, 뒤로 3번 머리를 일곱번 틀어 올려 꼿꼿하게 세우는 머리위의 솟대로써 하늘로부터 오는 기운을 받는 곳이다.
상투는 내 머리를 삼신상제님이 계시는 칠성을 향하게 하여 항상 상제님과 한마음으로 살겠다는 의지와 정성의 표현이다.
속담에 뽀족한 수가 있다고 할 때의 뽀족한 수는 인간 머리위의 솟대, 상투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풀기 어려운 난관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대로 기도로서 소원성취를 이룰 수 있는 뽀족한 수가 있다는 것이다. 홍산문화 유물 중에 발견된 옥고에서 알 수 있듯이, 상투는 태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생활문화다.
오늘날은 상투를 시대에 뒤처지는구습舊習으로 알지만, 상투의 어원은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상두(上斗)로서 사실 상투문화에는 삼신상제, 하느님을 받들던 인류의 원형문화인 신교(神敎)의 정신이 담겨 있다. 상투의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중국 남방의 묘족에서 확인할 수 있고, 20세기 초 아메리카 인디언과 중미의 아즈텍인들에게서도 살필 수 있다.
『서경書經』은 유가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태산泰山 꼭대기에는 지금도 ‘옥황전玉皇殿’이 있다.
제왕이 되면 누구든 그 곳에 올라가 천상에 계신 하나님,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고 나라 살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상제님! 제가 즉위를 했습니다. 신고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서 ‘천자(天子)’라 불려 왔다.
인간 머리위의 솟대, 상투(上斗, 북두칠성)
땅위의 솟대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한국의 윷놀이는 지구촌 놀이문화의 원조(인류학자 슈트워트 컬린)
한국의 대표적 민속놀이 중의 하나인 윷놀이는 북두칠성이 하늘을 도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윷놀이의 유래에 대해 역사학자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은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윷판을 단군조선시대 오가(五加)의 출진도(出陣圖)’라 하였다. 윷놀이의 말판은 부여(夫餘)의 관직제(官職制)를 모의(模擬)한 사출도(四出道)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윷가락의 도개걸윷모에서 ‘도’는 돼지[豚], ‘개’는 개[犬], ‘걸’은 양[未], ‘윷’은 소[牛], ‘모’는 말[馬]을 뜻한다.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天圓)이요, 안의 방정한 모양은 땅(地方)을 본뜬 것이다. 윷놀이에는 천문 역법과 역학의 수리철학이 담겨 있다. 「단군세기」에서는 천하天河에서 천지신명이 내려준 거북이 등에 윷판이 그려져 있었다고 하였다. 윷판은 하늘의 법칙을 담고 있는 천강서이고 우주만물의 변화 원리를 탐색하는 가장 철학적인 놀이문화다.
丙午十六年(병오십육년)이라 東門外十里(동문외십리)에 陸地生蓮(육지생련)하고 不咸(불함)에 臥石自起(와석자기)하고 天河(천하)에 神龜(신귀)가 負圖而現(부도이현)하니 圖如柶板(도여사판)이오
10세 노을단군 재위 16년 병오(丙午, 단기 399, BCE 1935)년, 동문 밖 십 리 떨어진 땅 위에 연꽃이 피었고, 불함산에서 누웠던 돌이 저절로 일어났으며, 천하天河에서 신령스런 거북이 그림을 지고 나타났는데 그 모양이 윷판과 같았다. 「단군세기」
※ 월화수목금토일(月火水木金土日) 요일과 달력의 원조, 배달시대의 북두칠성의 칠성력七星曆,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
책력冊曆: 중국학자 쉬량즈는 중국사전사화에서 중국의 역법은 동이로부터 시작되었다[國曆法始於東]”라고 하였다.
칠회력七回曆: 한민족의 고대 신교神敎 시대의 제천력祭天曆으로 배달 시대에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이 있었다 (태백일사의 신시본기), 사기 봉선서에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뚜렷한 증거들을 찾을 수 있다.
14세 치우천황 때 자부紫府 선생이 일월日月의 운행 경로와 도수를 측정하고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 오행五行의 수리數理를 살펴 칠성력七星曆을 만들었다. 이것은 배달 시대에 이미 있던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에 연원을 둔 것이다. 여기서 칠회력은 곧 칠성력七星曆을 말한다.
‘신시(神市)’배달을 기록한 문헌
◆<삼국유사> 일연 1206~ 1289 <권1 기이1 고조선(왕검조선)>古記云 昔有桓國(謂帝釋也) 庶子桓雄 ..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 유희령 1480~ 1552 <권1 전조선>檀君 姓桓氏 名 王儉 .. 有神人桓因之子 桓雄 .. 謂之神市 在世理化
◆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행 홍언필 1530 <권54 평안도4 영변대도호부 고적 태백산)太佰山(古記 昔有天神桓因 名庶子雄 .. 謂之神市 主人間三百六十餘事)
◆ <기언記言> 허목 1595~1682 <권32 외편동사1 단군세가>上古九夷之初 有桓因氏 桓因生神市 始敎生民之治 民歸之神市 生檀君..
◆ <약천집藥泉集> 남구만 1629~1711 <제29잡저 동사변증 단군> 云昔有桓國帝釋庶子桓雄 受天符印三箇..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 且其五行治水之法과 皇帝中經之書가 又出於太子扶婁오 而又傳之於虞司空하고 後에 復爲箕子之陳洪範於紂王者가 亦則皇帝中經과 五行治水之說이니 則蓋其學이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니라.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皇帝中經>이 부루태자에게서 나와 우사공虞司空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箕子가 은나라 주왕紂王에게 진술한 홍범구주 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다. 본래 그 학문은 배달국 신시시대의 구정법邱井法과 균전법均田法에서 전해 내려온 법이다. ([태백일사]
‘청구(靑丘)’배달을 기록한 문헌
◆ <규원사화> 북애자 1675 <태시기단군기>神市氏 寔爲東方人類之祖 .. 盖檀君以前 首出之聖人也 .. 曰靑丘國 宅樂浪忽'
◆ 倍達桓雄定有天下之號也其所都曰神市後徙靑邱國傳十八世歷一千五百六十五年
환웅께서 천하를 안정시키고 정하신 나라의 이름이다. 수도는 신시神市요, 후에 청구靑邱국으로 옮겼다. 18세를 전하니, 역년은 1,565년이다. <삼성기(三聖紀 下)>
◆ ‘神市之季에 有蚩尤天王이 恢拓靑邱하시고. 배달국 신시神市시대 말기에 치우천황이 계시어 청구(靑邱)를 널리 개척하셨다.’ <「삼성기三聖紀 上」>
◆ 蚩尤起靑邱하시니 萬古振武聲이로다. 淮岱皆歸王하니 天下莫能侵이로다
치우천황 청구靑邱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회수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의 누구도 침범할수 없었사옵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適以是時(적이시지)에 紫府先生(자부선생)이 造七回祭神之曆(조칠회제신지력)하고 進三皇內文於天陛(진삼황내문어천폐)하니 天王(천왕)이 嘉之(가지)하사 使建三淸宮而居之(사건삼청궁이거지)하시니 共工軒轅倉頡大撓之徒(공공헌원창힐대요지도)가 皆來學焉(개래학언)하니라. 於是(어시)에 作柶戱(작사희)하야 以演桓易(이연환역)하니 盖神誌赫德所記(개신지혁덕소기) 天符之遺意也(천부지유의야)라.
마침 이때 자부 선생이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 지구촌 최초의 달력)을 만들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천황께 바쳤다. 천황께서 기뻐하시고 삼청궁三淸宮을 지어 기거하게 하셨다. 공공·헌원·창힐·대요의 무리가 찾아와서 모두 자부 선생에게 배웠다. 그때 윷놀이를 만들어 「환역桓易」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대체로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기록한 『천부경』이 전하는 취지이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김문표金文豹는 윷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天圓)이요, 안의 방정한 모양은 땅(地方)을 본뜬 것이다. “윷판의 가운데 있는 별은 북극성이요, 동서남북 사방위의 북두칠성은 4※7= 28수다. 북두칠성이 제 자리에 있으며 뭇별이 둘러싼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柶之外圓象天, 內方象地卽天包地外也. 星之居中者 樞星也. 旁列者 二十八宿也.卽北辰居所 而衆星拱之者也.]”(『중경지中京誌』 「사도설柶圖說」)
배달 신시神市시대 5세 태우의 환웅 때의 신선 발귀리(發貴理)가 소도 제천행사를 보면서 동방문화의 원형 역사정신을 찬양하는 시詩로서
신선 발귀리(發貴理)는 어떤 분인가?
* 神市之世 有仙人發貴理 與大皞 同門受學...
신시 시대에 선인 발귀리가 있었다. 태호복희씨와 동문수학하였는데... (「소도경전본훈」)
신선 발귀리는 약 5,400년 전 배달국 ‘신시(神市)시대’에 살았다. 발귀리는 태극기 팔괘를 그으신 배달국의 5세 환웅의 12번째 왕자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와 동문수학했던 분으로 한 스승 밑에서 공부를 했다. 배달국 황실에서 친구로 거의 같이 큰 것이다.
* 而道旣通 遊觀乎方渚風山之間 頗得聲華 及觀阿斯達祭天 禮畢而仍作頌
신선 발귀는 도를 통한 이후에 방저方渚와 풍산風山 사이를 유람하여 자못 명성을 얻었다. 아사달(阿斯達)에 와서 제천 행사를 보고 예식이 끝난 후에 찬송하는 글을 지었다.
발귀리는 환국과 배달의 신교문화, 우주광명 문화, 역사문화 정신을 아주 깊이 있게 온몸으로 체득한 분이다. 그러고 나서 ‘유관호遊觀乎’, ‘방저풍산方渚風山’, 방저와 풍산 사이에서 세상을 쭉 둘러보면서 ‘급관아사달제천及觀阿斯達祭天’, 아사달에 와서 제천행사를 보고 나서, 여기서 ‘예필이잉작송禮畢而仍作頌’, 천제가 끝나고 나서 송가를 불렀다고 되어 있다.
‘백두산에 4대 신선이 발귀리, 자부선사紫府仙師, 대련大連, 을보륵乙普勒이다. 자부선사는 발귀리의 후손이다. 그러면 이 자부(紫府)는 누구인가?
바로 동서방 문화의 신선문화의 원조元祖다. 이 자부선사의 제자가 바로 배달국의 14세 자오지慈烏支 천황 즉 치우 천황이다.
바로 이 배달국에서 삼사三師 가운데 운사雲師로서 정부 경영진에 참여했던 서방의 헌원軒轅이 나중에 자부선사가 계시던 삼청궁三淸宮에 와서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받아서 일가를 이루었다. 그래서 ‘아, 내가 정통후계자다’라는 교만 때문에 그 후 치우천황과 10년의 탁록涿鹿 대전쟁이 벌어졌다. 그 전쟁에 대해서는 중국의 『관자管子』나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부분적으로 나와 있고, 중국 현지에 가보면 치우 천황을 모신 능이라든지 여러 유적지를 볼 수 있다.
이렇게 5,400년 전에 발귀리가 계셨고 그다음에 자부선사가 계셨고, 그다음에 대련大連과 소련少連이 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3년 상을 봐 왔는데, 조선시대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묘소 옆에 천막을 치고 시묘살이를 했다. 이 전통이 2세 부루夫婁 단군 때 대련 소련 형제가 거상居喪을 잘 했는데 그 지극한 효심이 중국 서방까지 전부 알려져서 공자가 그에 대해 언급을 한 것이 있다.
그다음 을보륵乙普勒은 3세 단군 때 삼랑三郎이었다. 삼신을 모시는 예법에 대해서 마음에 대해서 아주 정통한 분이다. 당시 가륵嘉勒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문자를 만들어 보라고 해서, 38로 구성된 한글의 원형 가림토加臨土를 만들었다. 그리고 을보륵이 신神과 왕王과 종倧이란 무엇이며 전도佺道란 무엇인지 정의를 했다. 이 책은 제왕학帝王學의 법전이다. 신왕종전神王倧佺의 도의 정의에서, 과거 원형문화 정치 철학을 맛볼 수 있다.
신선 발귀리가 소도 제천행사를 보면서, 동방문화의 원형 역사정신을 이렇게 찬양하는 시로 지어서 노래로 불렀다. 이분의 시詩에 우주관과 인간론, 인간관의 원형,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서 아주 큰 진리의 깨달음의 틀을 아주 쉽게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
첫 구절이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 ‘대일大一’, 말할 수 없이 큰 하나! 이 대일大一 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의 근원이다. 그걸 ‘한없이 크고 하나다’라고 하고, 이것을 다시 찬양한다. 그 대일大一 ! 우주만유, 존재하는 것 즉 존재자의 그 존재,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과 같은 것, 우주 만유 생명의 어떤 근원 그 지극함이여,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걸 이름하여 ‘양기良氣’라 한다. 양良은 양지良知, 양덕良德 할 때 양인데, ‘아름답다, 좋다, 선하다’ 등 좋은 뜻이 많다.
『환단고기』 첫 페이지, 도통한 승려 안함로가 쓴 『삼성기』 를 보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라고 했다. 우리가 우주 광명 인간이 되어서 나라를 열었는데, 그게 환국이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주 광명 인간이 될 때 환국을 인식할 수가 있다. 그러고서 둘째 줄에 ‘승유지기乘遊至氣’, 이 신은 ‘지기至氣’를 타고 노신다는 말이 있다. 그 신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가? 지극한 기운, 지기至氣라는 것이다.
이것이 다시 근대사의 출발점 동학에서 위대한 선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가을 우주의 이 여덟 글자에 나타난다. 선천 팔자 아무리 좋게 타고 났어도 이번 개벽으로 다 무너진다는 것이다. 후천 팔자, 지기금지원위대강, 지기 사상(至氣思想)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도 중국 중심의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때문에, 우주광명 원형문화의 우주 생명사상이 제대로 해석이 안 되고 있다.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발귀리의 송가에서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즉 ‘무와 유가 섞여 있다, 구분할 수가 없다, 하나다, 일체다, 무와 유는 둘로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도 형상, 육신이 있고, 이것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다.
공간, 허공은 있지만 이것은 무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허공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수가 있고, 사물이 이동할 수가 있다. 공간의 실상이 무와 유의 문제인데, 이 무와 유는 일체다.
허조이묘虛粗而妙, 허, 텅 빔. 거기서 나타난 조粗. 조라는 건 조박糟粕한 것인데, 이 대우주의 저 무수한 별자리, 은하계가 우리 인간 중심으로 볼 때는 조박한 것이다. 그러니까 텅 빈 우주의 공간, 허의 실체는 궁극으로 비어 있는 이 ‘텅 빔’ 속에서, 조화의 근원 바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조粗라는 것은 우주의 무수한 은하계, 지구 만물의 생명, 바다의 물고기, 아름다운 푸른 산하에 있는 꽃, 식물,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허조이묘虛粗而妙라, 묘妙라는 건 오묘한 것인데, 이 우주가 나타나 있는 자체가 너무도 오묘한 것이다.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그다음에 만물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법칙성을 얘기한다.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여기서 체용론體用論이 나온다. 체體라는 것은 본체, 용用이라는 것은 작용 또는 현상으로도 말한다. 어떤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실세계로도 말한다. 우주의 문제에서 크게 보면, 우주의 근원이 되는 본체가 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우주가 벌여져 있다.
그런 의미의 본체와 현상, 또는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상세계, 사물의 양극, 근원과 현실, 본체와 작용은 마치 우리 몸으로 보면 ‘몸과 몸짓의 관계’와 같다. 여기 이 몸통이 있고 몸짓이 나온다. 수많은 몸짓이 나오는데 그 몸짓이 다 다르다.
그래서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삼三은 일一을 본체로 삼고,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일一은 삼三을 작용으로 삼는다.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무無와 유有 그 근원이 되는 우주의 텅 빈 허虛의 조화세계, 무궁한 조화의 이 텅 빈 허虛의 세계, 거기에서 나오는 조박한 우주의 현상계 허조虛粗. 그러니까 무와 유, 허虛와 조粗가 일환一環, 하나로써 일체가 되어 어우러져서 순환한다. 환環이라는 것은 순환, 생성한다는 것이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체와 용이라는 것은, 구분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갈라지는 게 아니다,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에 보면 서양은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신앙하는 사람이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체와 용은 둘이 아니고 갈라질 수 없다.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그러면 궁극의 유와 무가 생성되고, 우주 만유가 태어나는 지극히 비어 있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
거기는 누가 있다는 말인가?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허大虛, 장대하게 거대하게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그 텅 빔 속에 광명이 열려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모습, 신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이걸 경구로 해석하면 ‘네 마음을 크게 비워라. 그러면 여기에 광명이 열리나니 이것이 신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너의 신성의 모습이다’ 라는 것이다. ‘이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대광명이 네 몸과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것은 소도제천 행사를 직접 보면서 대신선이 된 깨달음의 도통 경계를 고백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이 우주와 하나가 되느냐? 어떻게 해야 불멸의 생명, 신선이 될 수 있는가? 우주 조화의 세계, 그 바다를 걸어 다닐 수가 있는가?
지금 여기서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 거대한 기운이 영원히 살아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조화다, 신의 손길이다, 신의 집이다, 신의 의존처다, 신의 생명 자체다라는 것이다! 이 텅 빈 대우주의 허공 그 깊은 속에 누가 있느냐? 바로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은 광명 그 자체다.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라
유·불·선·기독교의 신관과 불교의 일심법, 주역의 건곤乾坤이라든지 십익十翼에서 말하는 도교 또는 불가적인 심법, 그 모든 가르침이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라’는 것이다. 이 자리는 참된 영원한 생명이 발원하는 바요, 일어나는 곳이다. 만법萬法이 여기서 생한다는 것이다.
만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법사상에 보면 우주 만유, 살아있는 대우주 자체도 법이고, 그것을 깨달은 성자들의 가르침, 부처님의 말씀이라든지 모든 성자들의 말씀, 삶 그 자체도 법이다.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게 법이다. 깨달음의 법은 어떻게 우주생명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주 현상계의 법칙, 그 속에서 태어난 인간의 삶, 삶에 대한 가르침, 깨달음의 길, 도통법, 그 모든 법이 시생是生이다! 이것은 강력한 메시지다. 진명소원眞命所源 만법시생萬法是生, 영원한 생명이 여기에서 발원하는 바요, 그리고 모든 동서고금의 법이 여기서 생한다.
일월지자日月之子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그래서 ‘일월지자日月之子오’, 현실세계에서 생명의 근원은 해와 달이다. 태양이 한순간 멈추면 지구 생명계는 한순간에 다 없어진다. 소멸된다. 바로 이 일월, 생명 현상의 1차 근원인 일월, 일월광명, 일월생명의 씨, 근원이란 말이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여기서 신의 문제가 나오는데, 천신天神은 대표적으로 「삼신오제본기」에서 말하는 대우주의 통치자, 우주 정치의 주관자 삼신상제, 일상제를 말한다. 여기서 천신은 『환단고기』 또는 우리 동방 문화의 정서로 보면 천지신명, 신의 마음자리다. 신명의 참마음이다. 충衷이라는 것은 속마음, 참마음, 우주와 하나 된 일심 자리다.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이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에서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삼신이 무궁한 광명을 비춰주고 생명선을 열어준다. 그 기운을 받을 때 ‘원각이능圓覺而能’ ; 원각이 일어난다. 대원각大圓覺이 일어나서 능한 인간이 된다. 옛날 안함로 같은 분은 돗자리를 타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런 경계에서 『삼성기』를 썼다.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유만기중有萬其衆이니라 :
그리고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이런 기운이 크게 내려서, ‘유만기중有萬其衆’, 온 천하의 창생이 번성한다.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 원圓이라는 것은 하늘을 상징하니까 삼신이, 신이 우주 현상세계에 나타나 있다. 이게 우리 문화의 원형정신이다. 신이 따로 있고, 현상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사고는 너무도 잘못된 것이다.
본체 세계의 영혼의 생명계는 플라톤Platon의 이데아Idea처럼, 영원한 것은 저 천상의 이데아로 있고 현실세계는 다 그림자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런 이원론에 구약의 정신이 들어가서,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문화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서구 근대역사에서, 근대과학의 우주론에서 크게 정리되고 극복되고 있다.
삼신(三神)은 삼극(三極)이고, 그것이 살아있는 하늘과 땅, 인간이고, 그것을 수학 언어로 천일(天一) · 지일(地一) ·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하늘의 본성은 원만구족(圓滿具足)이니까 모든 걸 수용한다. 진리원상(眞理原象) 자체, 우주의 생명의 바다 그 자체다. 그래서 여기서 원圓이라는 것은, 일一이고 무극(無極)이다. 그러니까 하늘의 근본정신은 무극이다.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
그다음에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어머니 땅의 정신은 방정한데, 모든 생명, 인간이 태어나는 생명의 바탕, 어머니 지구 생명이라는 것은 음(陰)이다. 음陰의 근원이라는 뜻인데, 그것을 반극反極이라 했다. 반反이라는 것은 하늘과 정반대된다는 뜻도 있지만, 돌아갈 반反 자로, 하늘의 근원 정신으로 돌아가는, 하늘의 근원 정신과 영원히 일체, 하나 됨의 경계에 있다는 뜻도 된다.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
여기서 결론은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각角은 정삼각형을 말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영원히, 탄생하기 이전이나 탄생되는 순간이나 성장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나, 천일·지일·태일이다. 우주 궁극의 생명의 바다, 그 속에 있는 일신(一神) 즉 삼신(三神)이 현상화되어 나타나서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다. 삼위일체 문화원형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할 때 태극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극미세의 양자, 소립자 세계를 들어가면, 그 바탕은 진공인데 거기서 쌍입자雙粒子가 태어나서 쌍생쌍멸雙生雙滅한다고 한다. 매 순간 수억 조, 수수 억조의 입자들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이렇게 생성과 소멸의 춤을 춘다는 것이다.
이 대우주의 생명의 바탕 자체가 진공이고, 여기서 양자 요동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래서 초프라Deepak Chopra(1946~ ) 같은 사람은 ‘이 우주의 진공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허虛다. 여기에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무궁한 생명력이 있다’고 했다. 음양의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동양에서는 태극이라 하고, 그 태극을 정의할 때 물물物物이 태극이라 한다.
소립자, 원자, 이 우주 은하계에 있는 하나의 사물 그 각자가 다 태극이다. 그것을 거느린 우주정신 자체가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생명이 요동을 친다. 일본 동경에 가면 미래과학관이 있다. 거기에 가보면 앞으로 나올 과학의 여러 가지 진귀한 것도 보여주는데, 위로 올라가면 극장이 있다. 누워서 보는 거대 화면으로 보는 30분짜리 영화가 있다. 이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우주의 살아있는 모습인데, 극미의 입자 또는 끈이 막 요동을 치는 것이다.
동경 미래과학관 3D 돔 영상 작품 『버스데이 우주와 나를 잇는 것』 그 마지막을 보면, ‘우주는 끈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끈이 뭉쳐서 만물이 태어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자, 갑시다. 새로운 소식이 들립니다. 그것은 차원을 넘어야죠’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차원을 넘어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물리적 공간계, 시공 일체의 4차원 공간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수행을 해야 된다.
인류 문화 창조의 자궁, 소도제천 행사에서 우주의 천신과 어머니 지구의 영신과 그 주재자인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천제를 올리고 있는데, 그때 신선 발귀리가 한마음이 되었을 때 바로 그 마음의 경계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소도제천 행사의 솟대이다. 이 문화가 일본에 가보면 그대로 살아있다.
원형 삼도三道 : 전도佺道 선도僊道 종도倧道
전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우리가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이후 9천 년 국통 맥에서 문화를 창조한 원형정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천지부모와 한마음, 한 생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 생명의 바다에, 바로 그 생명의, 존재의 주인인 삼신이 계신다.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완전히 발현한 우주 광명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불멸의 동방 원형삼도原型三道 정신이다.
원형 삼도는 삼신이 하늘땅 인간으로, 삼극으로, 삼재로, 천지인 사상으로 전개된 것이다. 동방의 천지인 삼재 합일 사상의 원형이 바로 삼신이다. 우주 삼신, 이것이 우주 신학이고 서양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신학의 원형이다. 강단사학자들이 서양에 있는 삼위일체를 뜯어다가 삼신관을 조작했다고, 잘못된 이야기를 한다.
유·불·선·기독교의 원형정신, 유·불·선·기독교의 모체 원형 삼도가 있다. 하늘의 조화 신성을 받아내린 것이 바로 전도佺道이고, 어머니 땅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나온 것이 선도僊道, 신선도神仙道다. 그다음에 천지의 원주인인 인간, 인간의 다스림의 도,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의 도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종도倧道가 나왔다. 그러고서 불도가 이 전도에서 나오고, 선도, 신선도가 원형 선도에서 나오고, 그다음에 유도가 종도에서 나왔다.
천지우주와 하나 되는 태일 심법을 열자
근대에 와서 이제는 종교 중심 시대도 끝났다. 철학 중심 시대도 끝나고, 과학 중심 시대도 끝났다. 한 가지에만 매달려서 거기에다가 사활을 걸면 성공을 못 하고 패망을 당한다. 이 개벽기에 살 수가 없다. 지금은 종교, 철학, 과학 모든 인류 동서고금의 문화역사 정신이 융합되는 때이다.
동학에서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니냐’고 했다. 앞으로 지구에 인류가 그동안 앓아왔던 병통, 즉 전쟁, 굶주림, 음해, 남을 해코지를 하면서 권력을 잡았던 데서 오는 원한과 그 투쟁과 피의 역사, 거기에 뭉쳐 있는 기운들이 폭발해서 끊임없는 병란이 터진다.
서양에서는 기후변화를 말하는데, 이 기후변화와 병란의 문제가 하나가 되어서 온다.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많이 병드는 데 공기가 오염돼서 기에 의해서 쓰러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 천지우주와 하나 되는 태일 심법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회복해서 우주의 생명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조화생명 자체가 되고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 역사를 창조하는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신선 발귀리가 소도문화, 그 원형의 역사문화 정신을 가지고 노래해 주신 우주 생명관, 신관, 역사관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 지향할 통일문화 시대 열어나가는 역사관의, 미래 비전의 기초가 된다고 본다.
앞으로 『환단고기』를 우리가 제대로 읽고, 앞으로 개벽의 거대한 변혁의 물꼬를, 크고 작은 모든 시련을 태일의 심법으로 넘어설 수 있는, 천지부모와 크게 한마음이 된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태백일사 (太白逸史)』의 「소도경전본훈 蘇塗經典本訓 」 에 담긴 깨달음
그러니까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를 가리켜 ‘양기良氣’ 또는 ‘대기大氣’라는 말을 쓰고 있다. 다른 말로 허조이묘의 ‘허虛’라는 말을 쓰고 있다. 또는 대허유광大虛有光이라 할 때 ‘대허大虛’라는 말을 쓴다. 그래서 ‘대일기극大一其極’이라고 할 때 우주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 살아 있는 것, 존재자, 이 존재자들의 궁극의 근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의 존재 근거, 그 존재 자체를 ‘대일大一’, ‘대허大虛’, ‘신神’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 어떤 때는 우주생명의 바다를 ‘양기良氣’, ‘대기大氣’로도 말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신神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 처음 듣는 깨달음의 담론이다.
신선 발귀리의 깨달음
신선 발귀리의 깨달음의 대서사시는, 이 우주의 본성이 허虛, 텅 빔이고, 그 속에 무한의 생명이 출렁이고 있는데, 그것과 하나가 되려면 마음을 온전히 비워야 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마음을 그냥 적당히 비워서는 안 되고, 90%, 95%, 99%도 안 되고, 완전히 100%를 비워서 완전한 허虛의 경계, 자연과 진정한 하나가 될 때 깨달음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우주에는,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 속에 신神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신神은 삼신(三神)이다. 신이, 궁극의 존재가 이 대우주 생명의 바다, 기氣의 바다 그 기운을 가지고서 우주 만유를 빚어내는 것이다.
수메르 역시 동방의 환국을 뿌리로 하여 갈라져나간 서양의 동이다. 수메르에도 7수와 칠성문화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교(神敎)의 본고장인 동양은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이 계신 별인 북두칠성을 천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반면, 수메르와 서양은 신(神)의 차원에서 칠성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르의 제천단 꼭대기에는 하늘의 일곱 주신에게 천제를 올린 제단이 있다. 이 일곱 주신은 칠성령(일곱 분의 성령)으로, 칠성의 신도神道적 표현이다. 수메르의 일곱 신은 후에 기독교의 ‘하나님의 일곱 영seven spirits of God’ (「요한계시록」 4:5)으로 전승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요일의 이름이 되었다.
수메르의 일곱 신神은 요일 이름의 기원이고, 7요일(일주일) 자체가 생긴 기원은 배달 시대 때 탄생한 인류 최고最古의 책력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과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에서 찾을 수 있다.
神市之世(신시지세)에 有七回祭神之曆(유칠회제신지력)하니 一回日(일회일)에 祭天神(제천신)하고 二回日(이회일)에 祭月神(제월신)하고 三回日(삼회일)에 祭水神(제수신)하고 四回日(사회일)에 祭火神(제화신)하고 五回日(오회일)에 祭木神(제목신)하고 六回日(육회일)에 祭金神(제금신)하고 七回日(칠회일)에 祭土神(제토신)하니 盖造曆(개조력)이 始於此(시어차)라.
신시 시대에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이 있었다. 첫째 날에 천신(삼신상제님)께, 둘째 날에 월신月神께, 셋째 날에 수신水神께, 넷째 날에 화신火神께, 다섯째 날에 목신木神께, 여섯째 날에 금신金神께, 일곱째 날에 토신土神께 제사 지냈다. 책력을 짓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紫府先生(자부선생)은 發貴理之後也(발귀리지후야)니 生而神明(생이신명)하고 得道飛昇(득도비승)이라. 嘗測定日月之纏次(상측정일월지전차)하고 推考五行之數理(추고오행지수리)하야 著爲七政運天圖(저위칠정운천도)하니 是爲七星曆之始也(시위칠성력지시야)라.
자부 선생은 발귀리의 후손이다. 태어나면서 신명神明하여 도를 통해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 일찍이 일월의 운행 경로와 그 운행 도수[纏次]를 측정하고, 오행의 수리數理를 추정하여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지으니 이것이 칠성력의 기원이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수메르의 칠성문화는 이외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년 축제에 태양계의 일곱개 행성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심판하는 7인’이며 ‘최고신 안An의 일곱 사자’다. 또한 고대 근동의 모든 도시에는 일곱 개의 성문이 있었고, 문에는 일곱 개의 빗장이 있었고, 7년간의 풍요를 비는 축복이 있었으며, 7년간의 기아와 역병을 저주하는 주문이 있었다.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쉬팀을 만난 곳은 ‘일곱 산맥 너머에 있는 생명의 땅’이다. ‘일곱 산맥’은 신교(神敎)의 신선神仙 사상의 상징 언어인 칠성七星을 지리학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10수數에 대해 예수 성자는 god is the ten(보병궁복음서)이라 하여 우주본원에 있는 신의 무궁한 조화성과 통일성을 지적하였고 석가 또한 화엄경(華嚴經)에서 이십표무진본(以十表無盡本), 10수數로써 다함이 없는 근본을 나타낸다고 하여 10으로써 “우주의 조화법계”를 드러낸다고 설파 하였다.
도서관(圖書館)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한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근본 천리(天理)를 깊이 깨달았던 공자 또한 주역[周易]의 부록 해설서에 10익翼을 보충 하면서 10의 완전성을 증언 한바 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는 1에서 10까지의 모든 수數는 제각기 특수한 의미와 역할을 갖는데, 그 중에 특히 10이라는 수는 “완전한 포용성”을 지니는 만물의 주재자 라고 하였다.(낙서의 유산), 10이 갖는 완전성과 조화성은 “피타고라스가 고안한 ”테트락티스(tetractes)라는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테트락티스는 점 열 개를 4층으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배열하여 포개놓은 4321로 매우 안정된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인 삼신상제님을 동양의 상수철학으로 표현하면 ‘통일과 조화의 완전수’인 ‘10무극’이다. 10무극 상제님을 다시 체용體用 관계로 보면, 상제님은 삼신(三神)을 본체로 하여 칠성(七星)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작용하신다[ 3+7=10]. 삼신과 칠성이 음양 짝을 이루어 10무극 상제님의 조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신을 본체로 하여 칠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신교문화에서는 하나님을 삼신(3)상제님으로만 모신 것이 아니라 칠성(7)님으로도 모셨다. 삼신은 생명을 낳는 하나님이고, 칠성은 기르는 하나님이다.
유대와 기독교의 칠성문화
수메르문명에서 갈려 나간 유대문화에도 칠성신앙이 녹아 있다. 유대인들의 역사서인 『구약전서』에서는 천지창조가 7일 만에 이루어졌다 하고, 『신약전서』에서는 ‘일곱 개의 금 촛대’, ‘일곱 교회’, ‘하나님의 일곱 성령’ 등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서양의 칠성신앙에서 우리는 또 한 번 환국을 모태로 하고 수메르를 실질적인 전수자로 하여 서양 세계로 뻗어 나간 신교문화의 정수를 느끼게 된다. 수메르의 칠성사상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7수 사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여호수아」 6:4)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 1:20).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요한계시록」 8:6)
불교와 도교에 전파된 칠성신앙
우리의 신교(神敎) 칠성신앙은 불교에 그대로 흡수되어 우리나라의 모든 사찰에서는 지금도 경내에 칠성각을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칠성각, 칠성전七星殿, 북극전北極殿, 북극보전北極寶殿 등의 이름으로 전각을 세워 주존인 치성광여래熾星光如來(북극성)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변조소재보살日光遍照消災菩薩(해)과 월광변조소재보살月光遍照消災菩薩(달)로 삼존불을 이루고, 다시 좌우로 칠성여래와 칠원성군이 배치된 칠성탱화를 모신다.
칠원성군七元星君이 불교적으로 수용되어 부처님의 모습으로 화현한 것이 칠성여래七星如來다. 특히 음력 7월 7일은 칠석七夕날이라 하여 불가의 명절은 물론 우리 민족의 세시 풍속으로 자리 잡아 왔는데,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치성광여래에게 재齋를 올린다. 이를 칠석재라 하는데 치성광여래에게 성대하고 정성스런 재를 올려 그 신통력으로 모든 재앙을 없애고 복덕을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불교의 칠성문화는 인도, 중국, 티베트 등의 불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도교 또한 신교의 칠성사상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조선 초기, 중신 변계량卞季良이 도교 사당인 소격전昭格殿에서 북두칠성을 향해 초제醮祭를 올렸다는 기록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변계량은 “저 푸른 하늘은 비록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오직 북쪽하늘에 북두가 있어서 상서로움도 내릴 수 있고 재앙도 내릴 수 있다”라고 하며 칠성을 찬양하였다.
칠성은 생명의 고향
칠성은 우리 인간의 생명과 영혼의 고향이다. 오늘날 인류에게도 칠성 또는 칠성신앙은 여전히 주요한 테마다. 칠성으로 돌아가서 칠성과 하나 되었을 때 우리는 온전한 생명의 원시반본原始返本을 이루게 된다. 칠성은 예로부터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상제님이 계신 별이다. 인간으로 오신 삼신상제님께서는 인류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신교의 칠성신앙을 천지공사의 칠성도수로 다시 부활시켰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3:89)
하루는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신은 낳고 칠성은 기르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240)
칠성도수는 상제님과 지구촌 인류의 어머니 태모님 천지공사의 결론이며 가을개벽의 긴박한 실제상황에서 인류를 구원해내는 땅 위의 ‘인간 칠성’을 말한다. 이들은 우리 신교의 삼신 상제님의 낭가 도맥을 계승한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들로 선천 인간을 후천가을 광명의 신선仙 세계로 인도하는 구원의 인간 천사들이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인생의 궁극적인 물음에 우리는 칠성에서 왔으며 다시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답을 내릴 수 있다. 지상의 인간이 하늘의 별과 연결된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다. 이제 우리는 가을개벽을 앞두고 다시금 칠성신앙과 상제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인간으로 오신 삼신상제님께서 열어주신 대도의 광장으로 나와 인류를 건져내는 인간칠성으로 거듭나 인간 삶의 참된 의미와 보람을 찾아야 한다.
과거 어머니, 할머니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리고 가족의 무사안녕을 칠성에 기원하였다. 아들이 없는 아낙네들은 칠성단에 자손의 점지를 기원하였고, 죽었을 때는 시신의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깔아 칠성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상제님께 염원하였다. 칠성은 우리 민족에게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늘 함께 하는 별이었다. 우리 민족은 칠성을 인간의 운명과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 인식하였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한다.
옛 사람들의 무덤인 고인돌의 덮개돌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는 ‘성혈’(性穴, 돌의 표면에 파여져 있는 구멍)이 발견되고 있다. BCE 300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는 평안도 증산군 용덕리에서 발견된 10호 고인돌 중심부에는 북극성이 그려져 있으며 11개의 별자리에 80여 개의 구명은 별을 나타내고 있었다.
상원군 번동 2호 고인돌에도 역시 80개의 구멍이 북두칠성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세계 천문학계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에서 발견된 BCE 12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지경계비에 새겨진 별자리를 고대 천문학의 원형으로 보았는데 한반도에서 발견된 고인돌의 별자리는 이보다 1800년 이상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대한민국이 천문학의 종주국이자 칠성신앙의 원조 나라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삼신과 칠성을 함께 받들어 왔다. 삼신은 인간의 탄생을 관장하고 칠성은 인간의 건강, 수명, 복록 등을 관장한다고 믿어왔다. 삼신과 칠성은 체와 용의 관계다. 하나님은 삼신을 체로 하여 칠성으로 만물을 다스린다. 칠성은 곧 삼신상제님이 계시는 별이다. 달리 말해 북두칠성은 대우주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별이다.
칠성(七星)의 七은 三이라는 하늘의 삼신三神과 지상의 동서남북 四방위와 봄 여름 가을 겨울 四時가 합쳐4가 합쳐진 수數다. 運三四(운삼사)하여 成環五七(성환오칠)이니라. 천지만물은 3과 4수의 변화마디로 운행하고 5와 7수로 순환운동을 이룸이니라. 『(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천부경 中에) 3, 4에서 시작한 운동은 중앙의 5土(甲己化土)와 7(子午少陰 君火), 노름판에서 갑오(甲午)를 잡았다고 할때의 갑오甲午 황극(皇極)을 연결 고리로 하여 성숙을 이룬다.
옛 사람들은 7數를 성스러운 수數로 숭배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에 칠(七)자를 많이 넣었고 서양에서는 7수를 ‘lucky seven’이라고 하였다.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7을 가리켜 영적인 수數이며 위대한 수數라고 하였다.
하늘에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칠성七星이 있고, 그 기운을 받아 인간의 얼굴에도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 상고 시대의 무덤이자 제단인 고인돌에 칠성을 그리고, 죽은 사람의 관 밑에 칠성판을 깐 것은 바로 칠성신앙의 한 모습이다.
擇三七日(택삼칠일)하사 祭天神(제천신)하시며 忌愼外物(기신외물)하사, 閉門自修(폐문자수)하시며 呪願有功(주원유공)하시니라. 삼칠일(21)을 택하여 상제님께 제사지내고 바깥일[外物]을 꺼리고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삼성기전 상」)
☞ 칠성은 곧 삼신상제님이 계시는 별인 북두칠성이다. 달리 말해서 북두칠성은 대우주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별이다. 때문에 북두칠성은 우주의 중심별로서 천지일월과 음양오행을 다스리며 인간의 무병장수와 생사화복, 영원불멸, 도통과 깨달음을 관장한다.
3×7=21이 수행과 기도에 있어 중요한 수數였다. ‘곱하기[×]’는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정성을 드릴 때는 7일 단위로 7일, 21(7×3)일, 49(7×7)일 수행을 하였다.
북두칠성은 우주의 중심별로서 천지일월과 음양오행을 다스리며 인간의 무병장수와 생사화복, 영원불멸, 도통과 깨달음을 관장하는 별이다. 우리 선조들은 우주의 주재자 상제님을 삼신상제님 또는 칠성님으로 불렀다. 칠성은 신교문화에서 한민족의 선조들이 하느님을 부르는 또 다른 호칭이었다. 칠성 사상은 9천 년 한민족사의 모든 왕조에서 국가경영제도의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전반의 기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