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깎는 기계 / 필립 라킨]
잔디 깎는 기계가 멈췄다, 두 번째다.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니
칼날 사이에 고슴도치가 끼어
죽어 있었다.
긴 풀 속에 있었던 것이다.
전에 이 녀석을 본 적이 있고, 한 번은
먹을 걸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눈에 띄지 않는 그 세계를
내가 망가뜨린 것이다.
수리할 수도 없이.
땅에 묻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일어났지만
고슴도치는 그러지 못했다.
하나의 죽음 다음의 첫날, 새로운 부재는
언제나 똑같다.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친절해야 한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영국 시인 프란시스 톰슨은 '별을 흔들지 않고는 꽃을 꺾을 수 없다'라고 썼다. 꽃 한 송이를 꺾을 때마다 파장이 전해져 어느 별에선가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시단이 낳은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받는 필립 라킨(1922~1985)은 자비 출판한 첫 시집 『북쪽으로 가는 배The North Ship』를 포함해 『덜 속은 사람들The Less Deceived』, 『성령강림절의 결혼식The Whitsun Weddings』 등의 시집을 통해 죽음과 무, 허상과 실상, 생성과 소멸에 관한 시를 썼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세 명의 여성을 사랑했으며, 죽기 전까지 30년 넘게 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시 없이는 살 수 있지만 재즈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라고 말할 만큼 재즈 마니아였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계관시인 묘지에 묻혔다.
라킨의 비서이며 연인이었던 베티 매커레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고슴도치의 죽음에 대해 필립이 말하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튿날 아침 그의 사무실에서였는데, 눈물이 그의 얼굴로 홀러내렸다." 라킨의 오랜 동료로 시적 영감을 주고받은 영문학자 모니카 존스도 "정원에서 잔디를 깎던 그가 갑자기 울부짖으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먹을 걸 주던 고슴도치를 실수로 죽인 것이다." 라고 증언한다. 한 마리 고슴도치를 잃을 때 우리 존재도 흔들린다. 하물며 물속에 수장된 수백 명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전과 같을 수 있겠는가.
(잔디 깎는 기계처럼 '수리할 수도 없이'라는 단어와 '새로운 부재는 언제나 똑같다'가 마음에 박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와 전쟁의 상흔 속에서 한 마리 고슴도치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슬퍼하는 작가의 심정이 문맥 속에서 읽힌다. 또 이 시를 쓰기 얼마 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손글씨로 쓴 시의 원문을 보면 여러 번 수정을 가한 흔적이 보인다(번역을 하다 보니 원문의 3행과 2행으로 이어지는 절제된 형식을 지키지 못했다).
인식하지 못한 채 나의 행동이 다른 생명체를 죽이거나 상처 입힐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배려는 그것까지 헤아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죽은 다음의 첫날, 그 새로운 부재 속에서도 세상은 언제나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지 않다. 한 고슴도치의 원치 않은 죽음을 통해 깨달았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하고 친절해야 한다고 시인은 조언한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그것을 항상 실천하는 일이 어려울지라도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