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깊게 읽기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드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정감이 간다. 책 제목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책이 내 가슴에 깊이 박히지 않는다면 그저 시간만 낭비한 꼴이 아닐까 싶다.
나의 독서는 제멋대로다. 어떤 때는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읽다가도 또 어떤
때는 그저 봄바람에 옷깃 스치듯 깊은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박웅현의 책읽기는 그 책속에서 진국을 우려내고 있는 듯해서 묘한 여운이 남는다. 그의 책읽기는 깊게 읽기다.
나. 시작은 울림이다.
박웅현은 맨 먼저 이철수의 책을 이야기 거리로 끄집어 들었다. 짧은 시 같은 그의 이야기가 판화와 더불어 있으니 가슴 깊숙한 곳으로 그의 이야기가 빨려 들어왔던 모양이다. 이철수의 이야기는 스님의 참선을 연상케 한다. 그 책을 보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건 박웅현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그가 꺼내든 책은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박웅현은 ‘광장’을 시처럼 쓴 소설이라고 평한다. 그리고는 내용 중에 깊이 울림을 준 문장을 꺼내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면서 최인훈의 ‘광장’에서 보여준 사랑 이야기를 읽고는 최인훈의 시선에 감탄했다는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내용 중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라는 말이 가슴에 매달린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것이라고 한다.
다.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김훈의 글은 형용사나 부사가 별로 없이 늘 담백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늘 명료했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런 때문인지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행간마다 날이 잔뜩 서 있는 것처럼 서늘했다. 문장 하나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박웅현은 김훈으로부터 깊은 울림을 받았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그의 울림은 나와는 달랐다. 그의 울림은 감성이 가득 담겨있다. 김훈의 글을 읽고 그는 김훈이 바라본 그 세상을 다시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무릎을 치고는 그 동안 그저 스쳐 지나친 것을 후회했다고 실토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자전거로 천천히 달리면 볼 수 있을 것이고, 자전거로도 볼 수 없는 것들은 천천히 걸으면서 더 잘 볼 수 있다. 저자는 김훈을 통해서 삶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 새로운 것을 들여다보라고 일깨운다.
라. 행불행은 다만 선택의 결과이다.
세 번째 이야기 대상은 알랭 드 보통이다. 저자는 그를 통해 사랑의 의미와 함께 누구나 느껴봤을 사랑의 감정을 다시 들추어낸다. 알랭 드 보통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나는 ‘상대에게 누군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전정한 연인들의 생각은 두서가 없고, 말은 조리가 서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이다.
한편,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을 이야기하면서 행복은 선택이라는 말이 참으로 깊숙이 박힌다. 우리는 불행한 일이 닥치면 그저 숙명이려니 한다. ‘내 처지가 그러니 어쩌겠어?’ ‘다 부모 잘못 만난 탓이지 뭐.’ 하고 핑계를 댄다.
마. 지중해 문학,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알베르 카뮈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아직 자연과의 탯줄을 끊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조르바의 말은 늘 원초적인 데다 직설적이었다. 그는 판단의 대상을 옳고 그름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추함을 중심으로 판단하며, 늘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느끼는 행복을 한 구절 옮겨놓았다.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이방인’의 뫼르소 역시 조르바를 닮았다.
뫼르소는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그는 현재가 전부였다. 감정이나 신 따위는 믿지 않았다. 그에게 감정, 신, 슬픔, 도덕, 종교, 신념 따위의 말들은 별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이방인이라 부는 것이다.
일종의 외톨이일 텐데 사실은 그 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말대로 하자면 거짓말은 있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느낀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가 늘 하는 일이다.
박웅현은 ‘이방인’을 읽을 때는 줄거리를 생각하며 읽기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꾹꾹 눌러 읽기를 권한다. 모든 문장이 개별적이고 살아서 펄떡거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서평에서 ‘이방인’의 문장은 모두가 독립적이라고 추켜세웠다.
바.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이야기
다음은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다. 여기서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은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은 사랑 이야기다.
다른 곳과 달리 박웅현은 이곳에서는 한 권의 책에 대해 자기가 알아낸 그 나름의 속살을 낱낱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소설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담긴 연애소설이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소설의 키워드는 키치(Kitsch)이다. 독일어에서 나온 말인데 영어로는 섈로(Shallow)라고 번역되는 데, ‘얕은, 얄팍한, 피상적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보이는 키치는 나의 신념에 위배되는 것은 보려하지 않거나 틀렸다고 단정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누군가의 글에 대해 특정한 부분만 편집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치키라는 것이다. 어딘가 낯설지 않다. 이건 우리 정치 마당에서 거의 매일 목격되는 것이다. 어떻든 슬픔이 형식이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는 테레사와 토마스의 사랑 이야기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오히려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
다음 이야기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안나와 브론스키다. 그들은 만나자 말자 사랑에 빠진다. 그 외에도 많은 등장인물이 서로 얽혀있다. ‘안나 카레니나’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농노제 붕괴에서 러시아혁명에 이르는 한 시대를 아우르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은 첫 장부터 위선적인 사람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 묘사는 소설 곳곳에 계속해서 배치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와 주변 환경이라는 장치들은 ‘안나 카테리나’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닌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통찰력 있는 대작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된다. 박웅현은 소설의 주요 등장에 대해 하나하나 깊이 있게 설명한다.
아.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기
손철주의 기막힌 글 솜씨는 숨이 막히는 듯하다. 오주석은 김홍도의 그림 속에 숨어 있는 해학과 아름다움 등을 아주 꼼꼼히 챙겨주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분명 그림을 보는 눈이 트일 것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이어서 법정 스님이 소개된다. 아마도 법정 스님은 오늘을 살면서도 가장 예스럽게 사신 분이 아닌가 싶다. 박웅현도 이에 대해 옛사람들의 속도로 살다 가신 분이라고 한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다분히 불교적인 내용이지만 그 울림이 깊다. 말하자면 법정 스님은 소유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삶의 의미가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응현이 모든 강의를 마치며 독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인다. 덕분에 모처럼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