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斷想
가뜩이나 눈이 많고 추운 겨울 AI(avian influenza), 구제역(口蹄疫, foot and mouth disease)이라는 몹쓸 가축역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구제역은 우리 도 직영의 축산연구소에도 불과 8개월 전에 있었지 않은가? 아마 그 연원은 6천만 년 우리직계조상과 돼지의 조상이 분리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 이름에 발굽을 가진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동서양 같은 의미의 외래어로 표기되는 전염병이지 않은가?
미디어들은 200만 마리 살 처분, 매몰, 생매장, 핏물유출 등 듣기조차 거북스런 낱말들을 연일 쏟아내고 정부 스스로도 심각(深刻)한 수준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착잡할 게 틀림없다. 사태가 이럴 즈음이면 누군가 무엇인가를 탓하고 싶고, 덕분에 최 일선에 있는 우리는 주눅 든 가슴을 안고 하루의 영일도 없이 신묘 년 1월의 차디찬 눈보라를 온 몸으로 맞고 있다.
그래, 시(市)에 살처분 명령권이 있으니, 규정대로라면 의심신고가 있으면 즉시 처분하라고 축산농가에 명하면 된다. 대응이 좀 과하다 싶으면 어떤가? 적극적으로 일 하는 것으로 비칠 텐데. 빠를수록 좋고. 늦으면 책망을 받을 수도 있으니. 어차피 내 부담도 아닌데! 이게 늘 말로 일하는 이들의 업무방식이다. 금년이라고 다를 게 없고, 이번이라고 다를 수도 없다. 굳이 차이를 들라면 이번은 시어머니가 유난히 많다는 정도일 게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살처분 결정이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 분명 감사를 받을 게고, 그 때의 감사관은 지금까지의 경험 법칙상 확진 판정도 없이 무슨 근거로 국고를 낭비하는 처분을 내렸는지 집요하게 따지고 들게 뻔하다. 특히나 의심되어 처분한 후 나중에 검역원에서 음성으로 회신된 경우는 말이다. 역학(疫學)관계도 쉽지 않다. 돼지 몇 마리가 의심증상을 보인다 하여 5㎞ 떨어진 본인의 2,000마리 다른 돼지 농장도 모두 처분대상이 되어야 하며, 열흘 전 쯤 다른 축산농가와 집에서 저녁을 같이한 경우 상대 농장도 꼭 처분해야 하느냐 말이다. 정작 어려운 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일 것이다. 행정적으로는 가능하다 하더라도 500m 내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어도 외관으로는 멀쩡한 여러 집의 가축들을 마구잡이로 도륙할 수 있느냐 하는 인간적인 고뇌인 것이다. 내가 병든 가축을 살리려고 수의학을 배웠는데, 정작 하는 일은 오히려 살려달라고 눈물 흘리는 놈들을 죽이는 일이라는 공수의(公獸醫)의 회의에 찬 푸념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축산농가가 살 처분 명령서를 수용할 것인가? 받으면 스스로 이행할 의지나 능력은 있는 것인가? 는 이미 오래전 사라진 사문(死文)에 불과하다. 실상은 시가 언제 얼마를 보상하겠다는 약속은 물론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제발 허락해달라고 사정하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수일 내에 처분허락만 얻어도 다행일 것이다. 역지사지하여 매일 먹이고 돌보며 같이 살던 주인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자식 같은 가축들의 살 처분을 맡기면서, 내일은 죽을 테니 오늘만이라도 배불리 먹여보고 싶다거나, 재는 내일이 출산이니 이틀만 참아 달라고 부탁하는 가장 인간적인 바람마저 외면할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기나 한 것인가?
매몰 장소의 마련은 더욱 어렵다. 모두가 내 주변은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땅을 임차해서 사육하던 농장은 주인에게서 거부되기 십상이다. 주변에 민가가 있거나 마을이 있는 경우는 지하수 개발이나 몇 억원이 드는 상수도 공급 약속이 전제되기도 한다. 하천이나 계곡, 논, 저지대도 피해야 한다. 나중에 물에 찰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능선도 피해야 하고, 사람들의 출입이 잦거나 개발 가능성이 있는 곳도 피해야 한다. 어렵사리 땅을 구해도 기존 건물을 헐어내야 한다거나, 벌목을 하거나 진입로를 만들고 작업여건을 마련하는 데 또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3.5m이상을 파다보니 지하수가 비치거나 암반이 나오면 이건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마을 여러 사람은 물론 면의 팀장이나 면장까지 나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싸움이 끝나면 다음은 현장준비와 행정처리다. 처분장소의 마련과 유도로의 설치, 구덩이 파기, 석회와 흙 준비, 비닐․경사로․배수통설치 등의 작업과 사전에 주사를 맞은 사람들로 구성된 숙련된 인부의 수배와 이들의 기능분담이다. 수의직 직원이 현장에서 주인과 함께 계체(計體), 착유량 등의 확정을 통해 개체별 가격을 확정 시켜야 함은 물론 이를 서류화 해 처분방침을 얻고, 명령서를 전달해야 하며, 현장검사를 선행한 후 매몰에 입회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시군별로 둘 셋에 불과한 수의직 공무원들로서는 가히 초인적인 어려움을 겪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긴 과정이 마무리 되면 드디어 D-day다. 이 때부터의 일은 짧지만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졌고 목불인견의 참상이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굳이 한두 가지만 꼬집자면 죽음을 안 돼지는 심하게 저항해서 초보 인부는 도시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과 처참하지만 나중에 부풀어 오름을 막는 조치가 불가피 하다는 점, 인부들이 오늘은 그만하자는 분위기가 돌면 어느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만 애기하고 싶다.
오늘로 보름 전까지 살아있던 우리시 돼지의 20% 가량을 땅에 묻었다. 많은 이들이 확산을 두려워한 나머지 신고와 동시 빠른 매몰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다. 확산을 막는 일도 중요하지만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매몰이나 사후의 유지관리도 결코 경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 타협 과정이 하나하나 국가나 시의 부담으로 연결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유난히도 추운 이 겨울, 우리는 미증유의 참상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니 감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세상의 경고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누울 자리조차 없는 비육 방식은 용서되는 것인가? 백신은 배척 되어야 국가적 이익이 되는 것인가? 피해는 100% 시가로 보상되어야 하는가?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민족의 최대 명절 『설』이 보름 앞으로 다가 왔다. 진실로 기도하고 싶다. 영하 15℃ 대형차들이 수시로 다가오는 한밤중 도로 모퉁이에서 노즐에 얼어붙은 얼음을 떼 내야 하는 구차함을 이제는 좀 끝내 달라고. 억지로 폐쇄한 5일 대목장도 활짝 열리고, 구제역 없는 고향방문을 허락해 달라고. 끝으로 말없이 힘들고 험한 일에 참여해준 많은 직원들과 간부들, 향토대대 장병들, 소방, 그 외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2011. 1. 18, 천안시 부시장 박한규)
첫댓글 참으로 암담하고 갑갑합니다 올해의 전염병은 유난을 떨고있습니다 관계 공무원 여러분께 애쓰신다는 말씀 드립니다 수고하십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어서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야 할텐데 걱정입니다.공무원들과 모든 축산 농가들께 위로를 드립니다.
그저 마음이 아려올뿐입니다 박계장님 그리고 부시장님 힘내십시요
어찌 된 세상인지요 사람처럼 태어나면서 바로 백신 투여를 해야 할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