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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무등산을 다녀와서!
출판사인 박문각에서 펴낸 시사상식사전에는
국제연합 [United Nations (UN), 國際聯合]이 2002년을 '세계 산의 해
(the International Year of Mountains)'로 선언한 것을 계기로, 산림
청이 산림에 대한 국민의식을 제고시키고자 2002년부터 매년 10월 18일을
기념일로 지정한 날입니다. 10월 중의 하루를 산의 날을 지정한 이유로 선조
들이 1년 중 산이 가장 아름다운 때인 10월에 높은 곳에 올라 풍류를 즐기던
세시풍속 중에 하나인 등고(登高, 음력 9월 9일)에서 유래한다고 밝혔답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우고 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매년 10월 18일 관련 세미나와 산 사랑 실천에 기여한 유공자 포상행사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답니다. 무분별한 벌목과 문명의 침입, 도시화
로 인하여 산의 면적이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산의 날 지정은 산 보호의
필요성을 널리 홍보하고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기회로 활용됩니다. 를
계기로 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생물들의 보금자리며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산의 훼손을 막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산림면적은 637만ha로 전체 국토의 63.7%를 차지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국가 중 네 번째로 넓은 비율이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과거나 현재에도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도 허투로 보지
않는 정지상이 축문을 짓고 제사를 지낸 곳은 산이었는데, 이렇듯 산을
숭배하는 일은 중앙 정부만이 아니라 전국 500여 고을에 주산(主山) 또는
진산(鎭山)을 정하여 제사를 지냈고 명산대천에도 따로 단(壇)을 두어 제사를
올림으로써 고을과 나라의 번성을 기원했던 것입니다. 그중 한국의 무당들이
신령으로 받드는 신이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紺岳山)에 있는 설인귀이고,
개성 덕물산(德物山)에 모셔진 최영이다. 감악산의 산신은 당나라 고종
때의 장군인 설인귀다. 그가 왜 이 나라의 산신이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한제국 말에 이르기까지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기도를 올렸으며,
특히 무당의 치성과 굿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을마다 진산과 주산이 있듯이 나라에도 종산(宗山)이 있었습니다.
최남선은 조선의 종산을 다음의 열두 개로 보았습니다. 서울의 삼각산, 백두산,
함경도 길주와 단천 사이의 원산, 낭림산, 평안남도 양덕과 함경남도 문천
사이의 두류산, 강원도 평강의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전북
장수의 장안산 그리고 지리산이었습니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산은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산에 신령이 있다고 믿는 숭산 사상은 일종의 원시
신앙입니다. 중국에선 산악에 대한 신앙으로 전국시대 이후 오행 사상에
따라 오악의 개념이 생겼습니다. 그 밖에 티베트의 카이라스 산,
바빌로니아의 에크르 산,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 유대인들의
마음속 고향인 시나이 산이 그와 같은 산입니다.
강도 산에서 발원하여 시냇물로 흐르다가 강을 이루어 평야지대의
농경지에 곡식과 과일들을 수확하게하니 사람에게나 생물과 동물
들에게 생명의 나고 자람에 있어 젖줄과 같은 혜택을 줍니다.
위와같이 국내외적으로 역사를 통해서도 산에 대한 중요도의 인식이 높고
현재는 사람이 나고 죽는 과정속에서 끊기면 죽는다는 삶의 질과도
그 당위성이 강화되고 있으니 산악인들은 산에 대한 경외지심
(敬畏之心)을 갖고 산행을 해야하고 모든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에
맞게 가꾸고 보전해야 합니다...
무등산(無等山)
광주광역시 북구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및 담양군 남면에 걸쳐 있는 산.
무등산은 동경 126°06′∼127°01′, 북위 35°06′∼35°10′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187m,
총면적은 30.23㎢이다. 1972년 무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무등산
국립공원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무등산은 비할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다. 북쪽의 나주
평야와 남쪽의 남령산지(南嶺山地)의 경계에 있는 산세가 웅대한 산으로, 통일신라 때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렸다. 이 밖에도 무당산·무덤산·무정산 등 여러 산명을 갖고 있다.
산세는 웅대하지만 산정 부근의 암석노출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식생의 밀도가 높은 토산(土山)이어서 믿음직하고 덕이 있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무등산은 동부의 산악 지대와 서부의 평야 지대의 결절점에 위치하고 있다. 북서
·남동의 능선은 무등산 천왕봉에서 중봉(915m)·향로봉(367m)·장원봉(386m)에서
망월동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규모가 크다. 동서 방향의 능선은 무등산 천왕봉
에서 중봉·중머리재(608m)·새인봉(490m)에서 학동으로 뻗어 있다. 무등산 천왕봉
에서 남서 방향으로는 장불재(910m)·만연산(665m)·수레바위산(363m)·정광산·죽령산
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뚜렷하다. 이 산줄기는 북쪽의 극락강 수계와 남쪽의
지석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무등산은 중생대 화상암 산지로서 산지 전체가 부드럽게 풍화되어 있고 곳곳에 주상
절리(柱狀節理: 암괴나 지층에 있어서 기둥 모양의 절리가 지표에 대해 수직으로
형성되어 있는 형태) 경관이 있다. 이 주상절리는 남한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서
산정상이나 능선을 따라서 이들 주상절리와 관련된 성곽형의 토르(tor: 차별적인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그 지역의 기반암과 연결되어 지표에 노출되어 형성된 독립성
이 강한 암괴미지형)가 발달해 있다.또한 산지사면을 따라 설형(舌形)으로 발달하는
암설의 퇴적지형인 애추(talus)가 발달되어 있다. 애추는 우리말로 너덜겅 또는
너덜지대라고 하고 가장 보편적인 주빙하기후 지형으로서, 기계적 풍화에 의해
단애면(斷崖面)으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진 암설이 집적된 지형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골이 많이 발달하였고, 153과 897종의 식물이 고루 분포
하는데 그 중 465종은 약용식물이다.광주광역시는 남부 서안형과 남부
내륙형의 점이지대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은 13.5℃, 강수량은 1,368㎜, 최한월
평균 기온이 0.5℃로 온화한 편으로 온대기후에 속한다. 무등산은 비교적
적설량이 많고 12∼3월까지 눈이 내리고 1,000m가 넘는 무등산에
2주일 이상 눈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암석은 대부분 중생대 백악기 중성 및 산성의 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고 화강암과
석영반암이 곳곳에 관입되어 있다. 화산암 지대는 높은 산지가 발달하여 있고,
화강암 지대는 낮은 구릉이나 평야를 이루고 있다. 기반암에 따라 풍화양상이
다르고 곡지모습이나 사면발달 모습도 차별성을 보인다.
특히, 백마능선 일대에는 억새가 널리 분포하여 장관을 이루며 매년 가을에 열리는
‘무등산 갈대제’ 행사가 유명하다. 무등산 일대는 산세가 웅장하고 산중에는 많은
명승고적이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
)와 원효사(元曉寺)의 2대사찰과 많은 암자들이 있다. 무등산 최대의 사찰인 증심사
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오백나한전·오층석탑·칠층석탑·석조보살입상·증심사철조비로
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31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원효사는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한 절인데, 증심사와 함께 한국전쟁 때의 공비토벌작전으로
소실되었다가 근년에 복구되었으나 그 규모는 휠씬 작아졌다.
광주 시내에서 원효사에 이르는 도중의 북구 충효동은 임진왜란 때의 유명한 의병장
인 김덕령(金德齡)의 출생지이며, 부근 산기슭에 그의 사우인 충장사(忠莊祠)가 있다.
무등산의 산정 가까이는 주상(柱狀)의 절리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명소가 많다.
동쪽 사면을 따라 정상을 오르는 길에는 입석대(立石臺)·서석대(瑞石臺)·삼존석
(三尊石)·규봉암(圭峰岩)·풍혈대(風穴臺) 등이 있고 정상 가까이에는 수신대(隨身臺)
가 있다. 2005년 12월 16일에 무등산주상절리대 10만 7,800㎡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화산활동의 산물인 무등산주상절리대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굵은 돌기둥과
동서로 길게 발달하한 돌병풍 등이 빼어난 지질 경관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경관적 가치
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등산도립공원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상절리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8개월동안의 공사를 거쳐 2008년 12월서석대(1,100m)를
개방하였다. 개방된 등산로에 나무판을 깐 산책로를 만들었고, 산책로는 서석대에서
조금 떨어진 입석대(1,017m)까지 이어져있다.
광주에서 무등산에 오르는 길은 증심사를 기점으로 하는 용추계곡 등산로와 원효사를
기점으로 하는 원효계곡 등산로가 있다. 광주광역시는 탐방객의 75%가 증심사 쪽으로
몰리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등산공원 증심사지구 자연환경복원사업을 2006년부터
시작하여 2008년까지 진행하였다. 그리고 2009년원효사쪽에 자연지형을 살린 옛길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만들어져 1960년대까지 이용됐던 무등산 옛길 11.9㎞ 중 경사가
완만한 산수동·청풍쉼터·충장사·원효사 7.8㎞구간의 복원을 마치고 2009년 5월 개방했다.
완만한 산록 지대에서 많이 재배되는 수박과 차는 예로부터 무등산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등산 차밭은 허백련(許百鍊)이 맡아 일구어 삼애다원이라 이름 짓고
‘춘설’이라는 녹차와 홍차를 생산하였다. 무등산의 웅장한 자태에서 생겨나는 정기는
광주학생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문인·예술가 등을 배출시키는 근간이 되었다.
『한국의 지형』(권동희, 한울, 2006)
『자연지리학사전』(자연지리학사전편찬위원회 엮음, 한울, 1996)
『한국지지』지방편 Ⅳ(건설부국립지리원, 1986)
『관광한국지리』(김홍운, 형설출판사, 1985)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무등산의 산지 지형 특색」(김현수,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경향신문』(2009. 2. 4)
『한겨레신문』(2009. 5. 14)
국토지리정보원(www.ngi.go.kr)
무등산국립공원(mudeung.knps.or.kr)
문화재청(www.cha.go.kr)
한국의 산천(www.koreasan.com)
츌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광주광역시 북구와 동구, 전라남도 화순군과
담양군 지역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면적 75.425㎢. 1972년 무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무등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무등산(1,187m)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이며 광주에서 동쪽으로 8㎞쯤 떨어져 있어 광주를 대표하며 예로부터
광주의 진산으로 이름난 산이다. 무등산은 저지 가운데 홀로 우뚝한
큰 산으로 호남의 신전(神殿)이라고도 했고 산세가 웅대하고 자애로와 성산
또는 신악으로 알려진 명산이다. 무등산의 특색은 서석대(瑞石臺), 입석대
(立石臺) 등의 3대석경과 규인봉 등의 암석미에 있다.이것들은 돌의 집단으로
암석 산사이에는 봄의 진달래가 유달리 아름답다. 활엽수 계통의 잡목과 송림
이 우거지고 깨끗이 포장된 등산도로에는 많은 약수들이 솟아 나와 인기가 있고
정상쪽의 백마능선 일대에는 억새풀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매년 가을이면 무등산 갈대제를 지내고 있다,
이 산의 명물인 수박은 정갈하게 한 뒤 온갖 정성을 대하여 10㎏∼20㎏의
무등산 ‘푸렁이’를 생산해 낸 것이다. 이곳 삼애다원에서는 춘설차와 홍차를
생산하여 더욱 유명하다.무등산에는 증심사(證心寺)·원효사(元曉寺)·규봉암
(圭峰庵)·약사암(藥師庵) 등의 사찰이 있고 임진왜란때의 의병장인 김덕령
(金德齡)의 사우인 충장사(忠壯寺)와 취가정, 정철(鄭澈)이 자랐던 환벽당
(環碧堂), 식영정(息影亭)과 성산별곡(星山別曲)
시비(詩碑) 등이 산자락에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불재[長佛嶺, Jangbuljae]
광주광역시의 동구 지원동 관할 용연동과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사이의 고개이다.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남서쪽으로 서석대와 입석대를 거쳐 내려선 고개마루가
있다. 억새 군락이 장관이다. 고개 서편 샘골에서 광주천이 발원한다. 『대동지지』
에 '장불치(獐佛峙)'로 기록되어 있다. '긴골' 또는 '장골'을 한자로 장불치(長佛峙)
로 표기했다. 말 잔등 같은 능선이라 '백마능선'이라고도 칭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불동에서 철이 생산되었고, 『유서석록』
에 "장불천은 그 상류에서 쇠를 씻기 때문에 언제나 탁한 물이
흐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한국지명유래집 - 국토지리정보원)
광주광역시 북구무등산(無等山)에 있는 돌기둥.
무등산의 정상 1,017m 지점에 있는 돌기둥의 무리이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절경
의 하나로 장불재(長佛峙)에서 동쪽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정상의 서쪽에 있다.
높이 10∼15m의 돌기둥이 반달모양으로 둘러서 있는 석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아름다운 경관이다. 돌기둥은 5∼8면체의 각석(角石)이며, 하나의 암주
(巖柱)나 3,4단의 석주(石柱)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 바위에 ‘立石(입석)’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축단을 통해서 이곳이 가뭄이나
질병의 전염이 심할 때 지방관리들이 하늘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제를 지내던
제천단(祭天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입석암
(立石庵)을 비롯하여 주변에 많은 암자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호남의 수정병풍(水晶屛風)
無等山 瑞石臺 柱狀節理
호남고속도로의 동광주나들목을 나와 남북으로 관통하는 제2순환도로를 타고
약 4㎞ 남쪽으로 가면, 두암나들목이 나온다. 이곳에서 무등산 방향으로 좌회전
하여 화암동의 충장사를 지나 무등산장까지 약 10㎞를 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도보로 KBS, MBC 방송 통신탑이 있는 정상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약 2시간 반 정도 올라가면 서석대와 입석대를 만난다. 무등산(1,187m)은
백악기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화산체 중의 하나로, 산지의 방향은 북동-남서
방향이며 주변 구릉과 큰 비고차를 보인다. 화산암 지대는 대체로 암괴의 노출이
심한 석산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무등산은 정상부의 암석 노출지를 제외하고는
사면에 걸쳐 일정 두께의 풍화층이 덮여 있는 완만한 토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무등산 정상 부근, 장불재의 고산초원을 지나 북동쪽으로 약 900m쯤 올라가면 마치
거대한 병풍을 둘러쳐 놓은 것 같은 장엄한 바위절벽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이 유명
한 서석대이다. 서석대(1,100m)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어서, 저녁노을
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면 수정처럼 강한 빛을 발하며 반짝거리기 때문에 '서석의
수정병풍'이라 전해진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도 이러한
서석대의 지형 경관과 연관이 있다.
무등산의 지질은 해발고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데, 해발고도 400m 이하는 안산암질
암편이 많으며, 그 이상은 대개 석영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왕봉 주변의 데사이트
에서는 사장석과 석영이 수㎜ 크기의 반정으로 나타난다. 특히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
에는 화산암의 멋진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분출되어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급히 냉각되고 수축되면서 생성된다. 수축으로 부피가 급격히 줄어들면,
인장응력(引張應力)이 생겨 서로 120°를 이루는 수직단열이 발달하여 단면이 육각형
또는 오각형의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진다.
무등산 주상절리의 형성 시기는 대략 9,000만년 전후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 동안 화산암이
풍화되지 않고 남아 주상절리를 이루는 것은 석영안산암이 화강암이나 변성암보다 풍화에
강할 뿐 아니라 화산체가 화산활동이 끝난 뒤 용암이 흘러나온 빈 공간 아래로 침강하는
칼데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반의 침강은 풍화와
침식으로부터 기반암을 보호 받을 수 있다.
무등산 서사면의 해발 1,100m에는 주능선 방향과 같은 북-남 방향으로 비고 차 30m 내외의
수직단애가 발달되어 있다. 수직단애는 직경 100~150㎝의 화산암괴가 여러 개의 돌기둥처럼
서 있는 전형적인 주상절리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수직단애의 윗부분은 평탄하고 단애 앞쪽
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약간씩 낮아진다. 주상절리의 윗부분은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등 다각
형을 이루고 있어 마치 거북의 등껍질 모양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서석대의 석영
안산암에는 치밀한 수직 절리와는 대조적으로 수평 절리가 매우 드물게 발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주상절리를 이루는 화산암 기둥들의 일부는 옆으로 뒤틀리거나 기울어져 있고 수평
절리의 아래 위쪽이 어긋나 있는 불안정한 상태의 것들도 상당히 많다.
주상절리의 좁은 수직 틈새에는 점토질 토양이 끼여 있고, 수직단애의 전면에는 주상절리
에서 공급된 거력들이 흩어져 쌓여 있다. 역들은 크기가 일정치 않은 장축 3~4m 단축
1~1.5m 정도의 거력이 섞여 있으며 분급 상태가 불량하다. 비교적 큰 거력은 장축의
방향이 사면 방향을 향하는 것이 많으나 대각선 방향으로 놓여있는 것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 밖에도 서석대와 유사한 형태의 경관이 나타나는 입석대와 광석대는 각각 무등산의
남사면 1,017m 동-서 방향과 남동사면 950m 북-남 방향으로 주상절리의 수직단애가
발달하고 있다. 주상절리의 수직단애 전면부 주변은 서석대에서도 발견된 거력들이
관찰되는데 이를 너덜이라고 하며, 암괴류에 해당된다. 암괴류는 주빙하환경 하에서
만들어진 자연유산이다. 따라서 서석대에서 입석대 까지의 무등산 지역은 광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절경의 전망대로 화산암이 풍화·침식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자연학습장이 되고 있다.
김현수, 2005년, 무등산의 산지 지형 특색,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나기남, 1998년, 무등산 테일러스의 성인에 관한 연구,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무등산 도립공원 홈페이지; www.mudeungsan.gjcity.net
박병규 외, 2005년, 무등산지역 화산암류에서 산출되는
사장석의 광물학적 연구, 한국광물학회지, 제18권 3호.
박승필 외, 2002년, 한국의 화산지형, 한국의 제4기 환경, 서울대학교 출판부.
박승필, 1996년, 무등산 지역의 지형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지형학회지, 제3권 2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2004년, 한국의 지질노두 150선, 성인문화사.
(위성에서 본 한국의 지형-한국지질자원연구원)
증심사(證心寺)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무등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860년(헌안왕 4)철감선사(澈鑑禪師)가 창건하였고, 1094년(선종 11)혜조국사
(慧照國師)가 중수하였으며, 1443년(세종 25) 전라도 관찰사 김방(金倣)이 자신
의 녹봉으로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9년(광해군 1)석경
(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등의 선사들이 중창하였고,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임제종(臨濟宗) 운동의 본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중수를 거듭하다가 1951년 4월
50여 명의 무장공비들에 의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버렸으며, 1971년에
크게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지장전(地藏殿)·비로전(毘盧殿)·적묵당(寂默堂)·종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과 같은 계통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내의
백나한상은 1443년의 중창 때 김방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 오는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불상이다. 오백전 옆에는 높이 205㎝의 석불 1구가 있는데, 고려시대
(10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보살입상으로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
로 지정되어 있다. 비로전 안에 안치된 높이 90㎝ 정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철불은 본래 광산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에 옮겨온 것이다.
이밖에도 문화재로는 증심사 창건 때 만들었다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삼층석탑,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1933년의 보수 때 탑내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금동보살 입상 등이 나왔던 오층석탑,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칠층석탑 등이
있다. 특히,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 절 입구의 왼쪽 산록에는
약 3만여 평의 차밭이 있다. 이 차밭은 원래 증심사에서 공양을 위하여 가꾸어왔던
것이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경영하였고 광복 후에는 허백련(許百鍊)이 인수
하여 고유의 차를 재배하였다. 절 주변이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사찰총서』(사찰문화연구원, 1996)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약사사(藥師寺) 전경 광주시 운림동 증심사 가는 길 오른쪽
님은 먼 곳에
유 호:작사
신중현:작곡
김추자:노래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
마음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영원히 먼 곳에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신중현이 이끄는 덩키스의 멤버로 그가 작곡한 늦기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거짓말이야, 진정난 몰랐네, 님은 먼곳에, 빗속의
여인,봄비, 꽃잎, 커피한잔 등등... 정말 주옥같은 수많은 명곡을 남
기고 1981년 어느날 결혼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린채 지금껏 대중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대중 가요계에서 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단 두사람... 바로 '목마와 숙녀'를 부른 박인희와 김추자
입니다... 그외는 거의다 다시 나왔죠..
1951년생, 강원도의 똑똑한 여학생들은 다 모였다는 명문 춘천여중,춘천여고
출신으로 넘치는 끼를 감당치 못해 당시 2차였던 동국대 연극영화과 진학. 신입
생때 우연히 찾아간 신중현을 단한번의 노래 테스트로 그를 사로잡아 <늦기전에,
월남에서 동아온 김상사>로 데뷔.. 소울 사이키라는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
하지않은 전위적인 음색으로 70년대초 뭇 남성들의 정신을 뺏어 버렸습니다.
터질듯한 몸매를 여과없이 드어낸 꽉 조이는 의상과 엉덩이를 현란하게
돌려대는 춤, 그리고 폭발적인 가창력은 드러내길 꺼리던 정적인 사회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파격 그 차체였죠. '잠자던 돌부처도 불러 세웠다'는
그녀는 가장 섹쉬한, 온국민의 눈과 귀를 자신을 향해 고정시키게한
유일한 여가수 입니다... 노래건 스캔들이건 간에. 그녀의 첫 스캔들 상대는
가수 박일남, 그녀를 두고 박일남과 매니저겸 보디가드 소윤석이 벌인 스카라
극장앞 노상혈투는 당시 사회를 벌집 쑤시듯이 하며 연인을 두고 벌이는 마초
들간 결투의 시조가 되었지요. 그후 소윤석에 의한 소주병테러로 얼굴을 100
바늘이나 뀌메는 상처를 입습니다. 영국의 세계적 레이블인 '데카'와 계약한
외국수출 1호 음반.한국가요사상 최초의 3개월 가수 자격정지. '거짓말이야'
를 부를 때하는 손짓이 '암호송수신'이라는 온국민을 경악케한 간첩설
여가수의 대마초 흡연설,청와대의 호출을 거부하고 공연을 펑크내는 초현
실적 저항성. 소주병테러를 당한후 프랑켄쉬타인같이 온얼굴을 붕대로
감고 리사이틀을 감행한 투혼. 총관객 3만명이 모인 78년 대한극장
리사이틀에서 격렬한 춤에 드레스가 흘러내려 가슴이 노출된것도
모르고 춤을 추었다는 사실등 70년대는 그녀의 시대였습니다.
님은 먼 곳에의 작곡은 신중현이지만 작사는 70년대에 TBC 동양방국
의 연속극 주제가였는데 극작가 유호씨가 가사를 써서 작곡가 신중현씨
에게 곡을 만들라고 줬는데 신중현씨가 작사도 자기가 했다고 발표를
한 뒤 저작권료를 여지껏 한푼도 지불하지 않아서 유호씨가 제소를
했는데 승소를 해서 삼천만원을 받았답니다..
김 추자님의 "님은 먼 곳에" "늦기 전에" 박 건님의 "사랑은 계절따라"
등은 가을이 가고 초겨울이 오는 계절의 길목에서
2017-11-0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