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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혜담 스님, 사회: 혜안, 인례: 자광, 헌향: 명문, 헌다: 명조, 연오행, 현안보고: 법회장, 촬영: 원광, 음악: 지휘자, 반주자, 발원문: 송파 24구명등 광명심, 취재: 미디어팀 2명, 데스크 안내: 2명, 법회보 배부: 송파 17구 법회, 법회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떡 및 생수 보시 : 송파 26~29구
10월18일부터 대면 종교활동 가능 인원은 정원의 10%(130명)가능, 접종완료자로만 구성하면 20%(260명)까지 가능합니다.
일요법회의 시작으로 자광거사님께서 타종을 하시고, 부처님 전에 헌향, 헌다를 올리어 예경드립니다.
오용승 종무실장, 법우 정승렬 총무과장, 직원 수신거사. 위 세 사람이 10시 19분부터 시작해서 10시 25분 51초까지 법원에서도 인정한 적법한 일요법회 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확성기를 동원해서 불법적인 사적 모임이라고 당장 중단하라면서 보광당 법당에서 법회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법회 측에서도 법회 방해하지 말라는 플랭카드만 들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자니 7분 정도를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나가버렸습니다.
금주의 법문 : 혜담 스님
금주의 법어: 마하반야바라밀의 직관(直觀)과 “연기(緣起)의 이법”
존경하고 사랑하는 불광 법회 법등가족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서 오늘의 법회를 함께하고 계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부처님의 가피력이 항상 함께해서 집안이 편안하고 여러분들의 마음이 청안하시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불교에는 많은 경전이 있습니다만 그 많은 경전 중에서 화엄경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어쩌면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기도라는 것은 바로 이 일체유심조 사상에서 기원한다는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신이 다 이루어주기 때문에 신에게 빈다. 그런 것이겠지만 신을 믿지 않는 종교 가령 불자들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일체유심조, 여기에 기원이 있고, 거기에 의해서 교리적인 것이 근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한국불교에서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이 어느 정도로 이해를 하고 믿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불행스럽게도 말만 불자라면서 거의 믿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경전에 있는 말이고, 실질적으로는 일체유심조가 아니라는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저도 일체유심조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는 큰스님 말씀을 따라서 마음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한다. 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것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어떤 사람을 택해서 태어날 것인가를 관찰하기 위해서 도솔천 내원궁에서 살펴서 카필라궁의 마야부인을 택해서 태어나시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는 이것은 당치않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양자물리학 책을 보면서 이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히 고타마 싯달타가 내원궁에서 이 지구상을 보면서 어머니가 자기가 태어난 후 일주일안에 돌아가신다는 것을 택했습니다. 내가 내 삶을 내가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일체유심조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듯이, 저의 어머니는 제가 16세 때, 어머니 나이 35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거기에 대해 스님이 된 후에 많은 책들을 보면서 내가 15세에 어머니를 여읜다는 것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나의 업(業)이라는 생각은 했었으나, 내가 선택했다는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마야부인을 선택한 것이 고타마 싯달타의 선택이었다. 거기에 이르렀을 때, 나의 어머니께서 젊은 나이에 아들을 남겨두고 돌아가신 것도 나의 운명인 것이고 이것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물론 출가승 가운데에서는 집이 가난해서 출가했다, 병약해서 출가했다, 그런 일이 많지만, 저는 적어도 35세에 세상을 버리는 그 어머니를 내가 선택했다. 무엇을 하려고? 출가승이 되어서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유에서 출가한 스님들과는 다르다는 무엇인가 비장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홍 사태를 맞이했고, 이것이 제가 겪어야하는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럭저럭 놓고 살면 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인가 이 세상에 와서 불법을 펴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앞으로 불광 법회에서 법문하면서 누구를 비난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겠다, 항상 칭찬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했습니다.
지금 불행스럽게도 불광 법회를 방해하는 안정화대책이라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 다른 곳에 불광 법회의 사상을 전하기 위해서 법회를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불광사에 사는 스님들 가운데서 다른 곳에 법회를 만들어서, 혹은 가서 법문해 본적 있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법회장 현진거사는 법원에서 가는 곳마다 '반야회'라는 법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5년 이상 법문을 했었습니다. 보행거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전에 근무하면서 한전 내에 '법회'를 만들어서, 제가 정기적으로 몇 년에 걸쳐 법문을 했습니다. 그런 분들이 지금 불광 법회 주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안정화대책위원이라는 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런 분들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불광 법회를 비난하고 말살하려고 합니까? 누가 과연 부처님 법을 위하여 노력 하는지? 자꾸 어긋난 행동만 하지 말고 정신 좀 차리세요. 모든 것이 일체가 유심조입니다.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좋은 곳으로 창조해 가시길 바랍니다.
보이저 1호가 한 열흘 전에 도착한 곳이 341억Km 떨어진, 즉 태양계를 벗어나 있는 곳입니 다. 그 곳에 가기까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행성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극락세계는 어디 있을까? 그 멀리까지 가서도 찾지 못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태양계를 벗어난 곳에 있을 수 있지만 그 타방 극락세계가 아니고 마음에 있다는 유심조가 맞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양자물리학이 나오는 한 책이 있었습니다. ‘홀로그램 우주‘라는 책입니다. 이 삼라만상은 ’홀로그램‘이다. 그러므로 우리 머리카락 하나에도 몸 전체에 있는 DNA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우리 몸도 ’홀로그램‘이다. 손가락 하나, 손톱 하나에도 전 몸 구조와 똑같은 DNA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양자물리학이 밝힌 삼라만상의 이치입니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떤 것이냐? 이 책에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합죽선’의 접힌 부분과 펼쳐진 부분이 있는 것처럼, 접혀서 안 보이는 세상, 즉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마음의 세계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렇게 봤을 때 우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즉, 공(空)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바로 이것은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양자장의 세계이다. 이 양자장을 이해할 때, 부처님의 공(空)의 세계가 얼마나 수승한 가르침인지를, 또한 그것이 진리 자체라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우리들은 이런 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30년 전인 1990년대인데, 저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불교계는 이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벌써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것을 가지고 설왕설래하던 시대인데 우리는 그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이 세계만 전부이고 그 외에는 없다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불자들이 양자물리학과 부처님의 공(空)사상을 접목시켜서 좋은 책을 발간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런 사람이 잘 안 보입니다. 70을 넘긴 제가 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한탄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 주보는 마하반야바라밀의 직관(直觀)과 “연기(緣起)의 이법” 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앞에 있는 것이 지난번에 창립기념법회 때 있었던 법문입니다.
선문(禪門)에서 말하는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하며 허공이 능히 용납하지 못하고 해와 달이 능히 비추지 못한다[天不能蓋 地不能載 虛空不能容 日月不能照]”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벽암록』의 저자 원오(圓悟:1063~1135)선사는 이러한 화두에 관해서 이렇게 노래[송(頌)]하고 있다.
“강남에 봄바람 아직 불기 전,
자고새는 꽃 숲에서 우짖고 있네.
삼단의 물결 거슬러 고기는 용이 됐거늘,
어리석은 이는 아직도 밤 연못의 물을 퍼내고 있네.“
(창립법회 주보에 원오스님의 이 게송을 설두스님으로 표기한 오류가 있었던 부분을 바로 잡습니다.)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하며 허공이 능히 용납하지 못하고 해와 달이 능히 비추지 못한다[天不能蓋 地不能載 虛空不能容 日月不能照]” 이것이 우리의 마음 본성입니다. 이 자리는 쉽게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행자들이 이 도리를 알기위해서 평생을 그렇게 수행해 왔습니다. 그 가운데 덕소(德韶)국사가 계십니다. 원래 화엄도 하고 계율도 지키면서 학문적으로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덕소선사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4명의 선지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여 “하늘도 덮지 못하고 땅도 싣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 이치는 어떠한 것이옵니까?”하면 다들 “그것은 그렇다” “그건 설명 못해”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스님은 말을 합니다. “이것은 자네가 추구해서 취득해야지 다른 사람이 말해 준 것을 가지고는 절대 취득하지 못하는 거다”말을 합니다. 이 말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보통 ‘참선계‘에서는 인가를 하고, 전법계를 줍니다. 이러면 도(道)를 얻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 스님이 깨달은 경계를 일러주면 스승이 봤을 때, 이것은 말한 그 성품 위엄이 깨달은 도리라고 인가를 해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이란 것은 철두철미하게 자기가 체득해야 합니다.
덕소스님은 이렇게 54명의 선지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에게서 진실의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덕소스님은 이미 한 회상을 거느리고 있었던 대선지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이끌고 중국 전역 총림을 다니면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날 덕소스님은 마지막으로 영천에 계시는 정혜스님을 찾아갑니다. 정혜선사는 덕소스님을 한 눈에 봐도 영웅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나 말은 하지 않고 스님들이 많이 찾아왔으니 법문을 하는 것입니다. 법문하시는 정혜선사께 어떤 스님이 묻습니다. “어떤 것이 조원(曹源)의 일적수(一滴水)이옵니까?(어느 것이 6조 혜능선사의 핵심사상입니까?)“ 정혜선사는 “이것이 조원(曹源)의 일적수(一滴水)이니라” 질문한 스님은 어안이 벙벙하여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랐지만, 덕소스님은 참으로 뜻밖에 생각지도 않았던 깨달음의 진리에 눈이 뜨게 되었고, 그리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학문적 소산, 이성분별의 수확물이 어쩌면 한 조각 얼음이 녹아 없어지듯 그만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하며 허공이 능히 용납하지 못하고 해와 달이 능히 비추지 못한다[天不能蓋 地不能載 虛空不能容 日月不能照]”라는 자리입니다. 이것을 이름 하여 깨달음이라 말하고 마음자리를 보았다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들이 지금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면서 봐야하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자리를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염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들어서가 아니고, 끊임없이 염송하여, 그럴 때 내 스스로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도리일까? 오늘의 화두다. 자! 그렇다면 소납은 무엇이라 말하면 좋을까요?
봄날이면 진해항이 벚꽃으로 장엄하고
여름 장생포에는 고래가 물을 뿜네.
여주의 가을벌판은 황금물결 너울치고
겨울의 선운사 동백꽃은 계절을 잊게 하네.
이 도리가 연기(緣起)의 이치입니다. 삼라만상은 전부 연기에 의해서 ‘이것이 있는 곳 저것이 있고, 저것이 멸하면 이것이 멸한다. 이것과 저것이 합해져서 삼라만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모르면 불교를 모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불성을 깨달았다고 말을 하고 공(空)자리를 보았다라고 말을 합니다. 공(空)의 자리가 어떻게 있는 것이냐? 그것은 연기의 고리에서 서로 인과 연이 생기면서 그것이 한 부분이다. 그렇게 깨달음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이까야‘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로 연기(緣起)를 이해를 하면 이해가 되지만 그건 깨달음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번뇌망상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세상을 활기차게 살 수가 있고,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일체유심조‘의 도리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불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창조자‘가 되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행복을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행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가 창조하라고 이르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야바라밀‘ 그 자리를 보아라. 그럴 때 네가 원하는 삶을 살수 있다고 말을 하셨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선서(禪書)를 낸 책이 「방거사 어록」입니다. 방거사는 중국의 재가불자 가운데 최고의 도를 이룬 거사이고 이 분이 태어난 곳이 ‘우한’이라는 곳입니다.
방거사가 어느날 방거사가 약산 선사를 방문하고 하직할 때, 약산은 열 명의 선승들에게 방거사를 산문 앞에까지 전송하도록 지시했다. 방거사는 마침 허공에 날리고 있는 눈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눈이 잘 내리는구나! 눈송이 하나하나가 다 제자리에 떨어지는구나!’ 그때 한 스님이 방거사 곁에서 말했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방거사가 스님의 따귀를 때립니다, 스님은 ‘거사님, 왜 스님을 때립니까?’ 그때 방거사는 말했다. ‘참선 한다는 스님이 내 말에 어디 떨어지냐고 묻는다면 죽어서 염라대왕이 스님의 밥값을 청구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 스님은 ‘거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거사는 또다시 따귀를 때리며 말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한다’고 말을 하는데 이 도리가 바로 “하늘도 덮지 못하고 땅도 싣지 못한다‘ 는 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눈이 어떻게 떨어집니까? 눈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겨울이 되면 눈이 오고 여름이 오면 비가 오는 것이라 즉, 계절과 현상이 맞아떨어질 때, 눈도 오고 비가 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인과(인연)의 법입니다. 그 도리를 모르니까 스님은 방거사에게 맞은 것입니다. 그 스님도 마찬가지고 모든 삼라만상이 진리 자체가 귀로 들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자리입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휘날려서 아무 곳이나 떨어지는 것 같지만 눈은 바로 제 자리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 대로 우리들은 태어날 때 내 스스로가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이런 집에 태어났을까? 물론 이것은 업(業)을 지었다고 말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내가 원해서 업을 짓는 것이지 원하지 않는 업을 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전부가 그곳에 태어나길 원한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불광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당히 제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업이 내가 원했다. 그래서 지홍스님이 온 뒤에도 말이 없을 때도 몇 년 있으면 지홍스님이 “사형님, 이제 법문 그만 하십시오.” 그리 나올 것이라고 잡혀있어서, 쫒겨 나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실버하우스로 가야겠다고 했던 그 말 자체가 오늘날의 불광 사태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침, 저녁에 선(禪)을 통해서 부처님도 고맙고, 문도스님도 고맙고, 우리 불광 법회 식구도 고맙고 지홍스님도 역행보살로 고맙다, 진효스님도, 안정화대책위원회도 고맙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기로 했고 그렇게 해야 모든 것을 해결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연기법이라고 했을 때,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 전체가 모두 삼라만상이 나타나는데 그 삼라만상이 나타나는 과정에서는 바로 내 마음(의식)이 만든다.
의식이 무엇인가?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각광받고 있는 마음이 의식입니다. 보통 우리들은 '일체유심조‘라고 해서 마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유식불교에서는 마음만이 아니라 심의식(心意識)이라하여 마음이 있고, 의식이 있고, 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삼라만상을 어떤 마음을 내고,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신체의 각 장기마다 전기가 나오는 전자기장 가운데서, 기쁜 일이 있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양자물리학자들의 주장이고 바로 부처님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들이 이런 속에서 봤을 때, 바로 연기법[緣起法] 속에서 이뤄내는 것이고, 현현[顯顯]되는 것이며, 그것을 우리가 내어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부처님 법을 이해를 하고, 불교를 믿어야 이것이 불법이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광덕 대선사의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이 사상은 광덕스님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고 큰스님만 주장을 하셨고 그것이 현대 양자물리학에 나오는 그 도리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수승한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이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형제 여러분들의 생각가운데서 부처님의 공(空)]사상과 연기법(緣起法) 그리고 의식(意識)이 내 삶을 창조한다는 이 속에서 여러분의 삶이 창조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법문을 마칩니다.
찬탄곡은 마하보디 동영상으로 올립니다.
♬ 찬탄곡 : 님의 말씀 등불삼아 ( 김초혜 작시, 김희조 작곡) ♬
1. 지금 님의 법이 있는 곳으로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님의 말씀 등불삼으면 마음이 보배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에 이 세상에 머물게 됩니다.
2. 이제 님의 옷자락 그늘 속에 안기옵소서, 안기옵소서
님의 말씀 계율을 세워 마음을 구하면 외로움 없어지고
스스로 열반을 얻게 됩니다.
혜담 스님께서 학업성취 발원문을 해주시고, 송파 24구 명등 광명심 보살님께서 정상화 기도 발원문은 낭독하고 계십니다.
법회장님의 현안 보고를 하고 계십니다.
합동 영구위패 봉안 천도재가 금일 10시 부터 정기법회와 함께 봉행 되었습니다. 스님 요령에 맞춰 바라지로 연화부 거사님들이 모두 참가하시어 여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보문부에서 모든 시식준비를 하셨고, 시식은 인원 제한에 의해 먼저 하신 분들이 법당 밖으로 나가시고, 밖에 계신 분들은 들어오시며 순차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합동 천도재가 끝난 후에도 금강경 독송은 현진 거사님, 자성인 보살님 집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긴 법문 정리하시느라 마음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매주 하시는 반야법문이지만 정성껏 준비하여 법문하시는 혜담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음님 이번주도 법회소식 정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복습 잘 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일체유심조"
끊임없는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으로
자신의 본래생명 자리를 보고
실천하는 것이
불광청정도량 원만성취의
완성이 되겠습니다.
불광형제 모두의 기도성취를 기원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직접 요령을 잡고 집전해주고 계시는 혜담스님의 모습을 뵈니 울컥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분개한 마음도 교차되었습니다.
저렇게 직접 하실 연세도 위상도 아니신데
저리 해주시니 감사하고
저리 할 수밖에 없도록 분탕질 친
반 불광세력들에 분개하게 됩니다.
매주마다의 법문도 힘든 일이실텐데 스님의 소중한 반야바라밀 잘 새겨 듣고 실행해야겠습니다.
이번에도 법회시 일부 놓쳤던 부분들을 이런 녹취기록을 통해 복습하게되니 아주 다행한 일입니다.
이 법회일지는 녹취기록하기가 쉽지않은 작업이지만
이렇듯 소중한 자료이자 바라밀 수행의 의지처가 됩니다.
아주 귀중한 법회일지입니다.
마음님!
이번에도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번뇌줄이고 끊는 공부가 참 좋습니다
ㅅㅎㅅ
마음님,그리고 불광미디어팀
보살님들 노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응원합니다,찬탄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혜담스님 법문이 확 와 닿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