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광화문에서 본 행사로 '아리랑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자'는 행사였습니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구전민요의 하나입니다. 어느시대부터 불리워 졌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고래로부터 내려오면서 조금씩 수정되고 개조되면서 오늘의 노래로 이루어진것은 사실입니다.
'아리랑'이 지금처럼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에게 애창되게 생명이 긴 이유는 다른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장단과 곡이 구성질뿐더러 일제의 잔혹한 점령기에 겨래의 비분과 고통을 노래에 얻져 호소하고 탄식하게 된것이 큰 요인입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지방마다 다르고 장단과 가사역시 다양해 통일된것이 없습니다.
오래 내려온 '본조 아리랑'과 '신 아리랑'은 그대로이지만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긴 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세상' 등 종류가 너무 많습니다. '아리랑'마다 유래설도 제각기 다른데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유래설은 조선시대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때 세금을 바치도록 독촉하니 "원하노니 이 내 귀 어두워저라. 원납(願納)소리 듣기도 싫다"라는 시가 전해지면서 시중 아이롱(我耳聾)이 지금의 '아리랑'으로 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대원군시대 경복궁 공사중에 노역을 위해 부모 처자식을 떠나 서울에 와서 일을 할때 고향생각을 하며 '아리랑(我離浪)이라 노래한데서 비롯됐다는 설입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신축할때 그 괴로움을 견지지 못한 백성들의 사이에서 "고기는 물에서 노는데, 우리는 고생도 많구나'라는 타령의 노래가 유행됐는데 이를 전래받아 "고기는 물에서 노는데 우리는 떠나기도 어렵구나"하고 부르던 '아란리'가 지금의 '아리랑'으로 불리워 졌다는 설입니다만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정선 아리랑'은 '아리랑'의 원조가 아닙니다.
굳이 '아리랑'의 유래를 연구한다면 필자는 중국으로 부터 전래되니것이고 이곳이 대원군의 폭정과 노역에 지친 국민들 사이에 불리워졌으며 한국인 정서에 맞는 장단과 가사내용이 일제때 활성화되었고 한스러운 겨래의 운명과 나라를 빼앗긴 고통을 노래로 부르게된것으로 생각됩니다.
근래에와서 곡을 만들고 가사를 정했지만 십수년전만해도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장점인 흥얼거리는 노래인 구음(口音)에서 비롯된것은 사실이고 서글픈 내용이 거의다 인 곡과 가사는 우리민족의 과거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변경이 되지 않고 그대로 전례됐다고 믿는 '본조 아리랑'과 '신 아리랑'의 가사를 살펴보면,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와요/
삼천리 강산에 풍년이 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워라 노다가세.>
경기도 지방에서 불리는 '아리랑'입니다.
'신 아리랑'은,
<산천초목은 젊어지고/
인간의 청춘은 늙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이랑 고개로 넘어간다'>
로 이역시 경기도 지방의 노래입니다.
이 가사는 1972년 교단사에서 펴낸 국악대사전 에서 옮긴것입니다.
이렇게 전례되어온 '아리랑'은 미국남부에서 많이 불리워진 '흑인영가' 같은 성격을 가지고있습니다.
이것을 유네스코에 민족문화유산으로 등재를 한다는 운동은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등록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민족의 역사가운데 애환을 기억하고 교훈삼는것은 바람직하지만, 아리랑의 본래 의미도 파악되지 않는 것을 세계에 내놓는다는것은 지나친 서두름이 아닐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우리 한국의 경제수준과 외교능력이 향상돼 알려지며 인정받는 마당에 쳐저있는 정치하는것들과 민족운동을 한다는 것들이 서둘러 설쳐대는 모습은 우리속담에 '길닦아 놓으니 미친여자가 먼저 간다'라는 말에 어울립니다.
경제부흥에 올인한 기업가들이 경제성장을 불러와 살만하니 나서서 '내가 했소'하고 설쳐대는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않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할수있는 말은 <나라가 광복하니 모두 광복자요, 패망하니 모두 남탓하더라>는 선조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