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 너무 비싸다구요?
환금성 보장 인기작가 1백여명, 값은 내리막길…
운보 10호작품 500만∼700만원
한동안 '옷 정국'이 화제가 되다가 뒤이어 찾아온 '그림 정국'도 이젠 다소 가라앉은 것 같다.
그림이 로비의 수단이라는 것은 일반인도 어느 정도 아는 사실이다. 정치인에게 청전(靑田·이상범)이나 소정(小亭·변관식)의 산수화를 선물한다든지, 은행에서 거액의 예금주에게 작은 서양화 작품으로 연말에 인사한다든지 하는 사실은 문외한들도 익히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물 문화를 잘 살펴보면 그 액수가 외국에 비해 너무 크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0~20달러 수준의 선물에도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적어도 10만원은 돼야 뭔가 받았다는 느낌을 갖는다. 몇백만원짜리 고가품도 작은 인사치레로 넘어가는 현실이다 보니 그림이 아니더라도 그만한 액수의 선물이 오갔을 것이다.
미술계가 최근 언론의 도마에 자주 올랐지만, 이는 미술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의 많은 문제점이 미술계에도 그대로 발영된 것뿐이다.
성직자나 교육자가 잘못하면 일반인보다 더 혹독한 비난을 받듯 뭔가 고고하고 세속적인 것과 거리를 둔 듯한 예술 분야에는 그만큼 기대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계를 이 시점에서 한번 되돌아보자. 우리 미술시장은 일반인이 예상하는 것보다 아주 작은 규모다. 화랑가가 서울의 인사동 청담동, 그리고 지방 대도시에 형성돼 있으나 제대로 된 전시회를 기획하는 화랑은 극소수다. 소장가 가운데 정기적으로 그림을 사는 사람은 1000명도 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미술대학 다니는 학생들을 자주 보고 미대 졸업생이 매년 큰 규모로 배출되며 직업적인 작가가 거의 1만명은 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거래가 되고 환금성이 보장되는 인기작가의 수는 100-200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작고작가로는 서양화의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최영림, 남관, 도상봉, 동양화의 이상범, 변관식, 이응로, 박생광, 조각의 권진규, 문신, 판화의 유강열, 오윤 등이 환금성이 보장되는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동양화가 인기였던 70년대 말과 달리 최근엔 서양화가 훨씬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생존작가로는 박고석, 윤중식, 유영국, 천경자, 이우환, 김종학, 김기창, 이종상, 고영훈, 최종태 등이 인기작가 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그림 가격의 특징은 호당 가격제인데 1호당 50만원이면 10호에 500만원 하는 계산법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그러나 이 제도도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정기적인 그림 거래자 1천명도 안돼 최근 그림 로비 문제로 화제가 된 운보 김기창 화백의 경우 화랑가에서 형성되는 시세는 대략 10호 크기 작품이 500-700만원 정도, 전지(40호 크기)는 2000-2500만원으로 파악되어 있다.
소재와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가격에 변동이 있을 수는 있다. 걸작의 경우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선물로 그려 준 5호 안팎의 작은 작품들로서 색이 선명하지 않고 완성도도 떨어질 경우 심지어 150만원 정도 하는 것도 있다.
요는 가격이 아니라 작품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운보의 경우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 청록산수와 바보산수이고 화조도나 동물 그림은 가격이 그 아래에서 형성된다.
추상적인 작업은 거래가 뜸한 편이다. 그래서 운보의 청록산수(전지 크기)가 2200-2500만원이라면 동물 그림은 1600-2000만원 정도로 볼 수 있다. 운보의 판화 작품의 경우 대략 100만원 정도에 거래가 된다고 보면 된다. 미술경기가 한창 좋았을 때 운보의 10호 작품이 1000만원 이상, 전지는 3000-3500만원 정도 했으니 다소 가격이 조정이 된 셈이다. 그러나 가격이 4분의 1로 떨어진 작가들도 있는 현실에서 이 정도면 가격이 유지되고 있는 편이다.
그림 가격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생소한 분야일 것이다. 반 고호의 해바라기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다는 말이 해외토픽에 나는 정도인데, 우리나라 그림값은 70년대 후반과 90년 등 두 차례 큰 폭의 상승이 있었다. 특히 89년 상반기와 91년을 비교하면 2-3배의 가격 상승이 있었고 그 이후 계속 하락세였다고 할 수 있다(물론 그 기간에 지속적으로 가격이 오른 작가도 상당수 있다).
현재의 상황은 과거보다는 거래가 늘어났지만 낮은 시세 때문에 좋은 작품 찾기가 어렵다. 급매물의 가격을 시세로 볼 수는 없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으니 시세가 정확히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경매제가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된다. 경매제는 화가가 주도하던 가격을 컬렉터가 결정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낙찰율은 저조한 편이다. 금리가 떨어지고 증권시장이 과열되면 미술시장도 반사이익을 누릴 확률은 있다.
하지만 90년의 호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술시장이 다시 정상화되더라도 모든 작가의 모든 작품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니고 일부 독창성 있는 작가의 수작만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 사서 돈번 사람 별로 없어 최근 사태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일반인들이 미술품에 대해 우려할 수준의 편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첫째, 미술이 경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둘째, 우리나라 그림 값은 진짜 비싼가?, 셋째, 미술품은 재벌이나 특권층의 전유물인데 서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넷째, 미술품 투기로 돈을 번 사람이 많은가? 이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미술관련 산업을 정의해보면 상당히 폭넓은 분야가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수미술(순수회화, 조각, 판화, 비디오 아트), 공예(금속, 목), 도예, 응용미술(디자인,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박물관 및 미술관, 고미술 및 앤티끄, 산업미술, 디자인 등등.
21세기는 정보화의 시대이고 우리는 이미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가 얻는 정보의 90% 이상이 시각적인 것이라고 한다. 특히 활자에서 이미지화된 정보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산업에서 미술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경제성장이 가속화될수록 실용적인 상품보다는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화상품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순수미술이 발전하고 일반인들에게 미술 감상이 특별한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진정한 문화상품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그림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얘기일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가격이 과거보다 하락하고 원화가 평가절하 되었으니 과거의 몇 분의 1 수준인 셈이어서 가끔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대가들을 외국의 일반 작가와 비교해 값이 비싸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백남준의 대형 비디오 작품의 제목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사람의 소유욕은 한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개인적 욕심에서 출발했지만 컬렉션이 방대해지면 결국 국가에 기증하거나 자신의 이름을 딴 사설미술관을 통해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컬렉터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기업인들이 메세나 또는 일반 후원인으로 문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투자목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로 미술품을 사서 돈을 번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가격하락으로 실망하고 미술시장을 떠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자산의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그림을 산다기 보다는 부동산이나 증권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넘치는 돈으로 미술품도 사보는 것이 더 정확한 구매 동기일 것이다.
긴 안목으로 예술성 있는 작품을 잘 산다면 간혹 큰 수익을 올릴 가능성은 물론 존재하는 것이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재준/국민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그림과 그림값' 저자 -------------------------------------------------------------------------------- Copyright(c) 1999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donga.com
첫댓글 눈이 빙빙 돌아 가네요.ㅎㅎㅎ 전 위대한 작가(감동적 작품을 쓴)가 되는 게 인생의 꿈인 사람 이라서, 안경 쓰면 안 되는데...,ㅎㅎㅎ 개략만 읽었어요.공감.
죄송. 수정했습니다. 21세기는 정보화의 시대이고 우리가 얻는 정보의 90% 이상이 시각적인 것이라고 한다. 특히 활자에서 이미지화된 정보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산업에서 미술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좋은 미술작품도 많이 올려서 감상을 교환함시다--! ^^ (제가 그쪽으로 너무 약해서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