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EASTER
부활절 EASTER(행12:4) 에서(KJV)헬라어(토 파스카)를 영역한 말, 다른 영역판 성경은 "유월절"이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이 정확하다,KJV은 이와 다른 28개의 구절에서 토 파스카를 "유월절"이라고 번역했다)."유월절"을 보라.
"이스터"(Easter)라는 명칭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베데(Bede, De Ratione Temporum XV)에 의하면, 이 명칭은 4월에 희생제물이 바쳐진 튜우톤족의 봄의 여신 "이스터"(Eastre)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부활을 기념하는 크리스챤 의식은 아마도 이교도 축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주의 부활을 기념하는 이 연례의식이 사도 시대에도 지켜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고린도전서 5:78 절의 암시를 주목하지만, 이는 의심스럽다고 보겠다.
부활절 축제에 대한 최초의 문자기록은 부활절의 정확한 날짜를 결정하려는 "부활절 논쟁"에 나타나는데, 이는 A.D.154년 서머나(Smyrna),의 감독 폴리갑(Polycarp)과 로마의 감독 안티크투스(Anticetus)사이의 서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Euseb. Hist. V 23-25). 그러므로,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활절 축제가 기독교회 전체에 걸쳐 일반적으로 지켜지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왜 부활주일은 유동적인가?
부활절은 매년 3월 22일부터 4월 25일에 온다.
이것은 춘분다음 첫 만월후 첫째주일이다.
이렇게 지켜지는 이유는 그 유례가 있다. 초대교회때 3세기 동안에는 해마다 부활절을 지켜야 할 일자에 대하여 계속 날카로운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을 음력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서방교회(로마교구를 중심으로한 서쪽에 위치한 교회들)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주일(일요일)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이것은 서방 크리스천들에게는 주중의 날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알렐산드리아, 예루살렘, 안디옥, 콘스탄틴 교구를 포함한 로마 동쪽에 위치한 교회들)의 크리스천에게는 달(月)월의 날이 중요하였다.
이런 의견의 해결은 니케야총회(325년)에서 결정했는데 결국 달과 주중의 날 둘다 인정하여 부활절은 춘분다음 첫 만월 후 첫째주일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런 유동적인 부활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부활절에 휴가를 하는 학교와 대학들이 교육계획을 종교적인 휴일과 맞추기 위하여 어려움을 보기 때문에 관심이 많다.
이뿐아니라 의복상으로 이른 부활절과 늦은 부활절 때문에 행사의 복의 수요공급이 해마다 달리되는 경우가 있다는 등으로 근년에 와서는 부활절이 고정된 주일이 되도록 고정된 교회력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 내용은 gssvt@hosanna.net이 보내주셨습니다.
정장복 교수님의 예배학 개론에는 '두 월력은 보통 10일에서 심한 겨우 한 달의 간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2001년에는 서로 다른 날짜의 계산법도 불구하고 4월 15일에 합치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앞에두고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중동교회 협의회(MECC)는 1996년 시리아 알렙포헤서 회의를 갖고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날짜를 가장 정확한 천문학적 지식을 이용해 산출한 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1년을 기점으로 부활절을 함께 지내자"는 합의를 한 바 있다. 이러한 알렙포 제안은 세계의 많은 교회로부터 환영을 받는 시점에 이르렀다.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를 비롯하여 루터교세계연맹(LWF)나 로마 교황청도 "이러한 시도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심지어 시리아 정교회까지 적극적인 호응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만 정교회의 최대교단인 러시아 정교회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의의
의식주의자요 독선주의자들인 바리새교인들,부활이 없다고 내세를 부인하는 세속주의자들인 사두개 교인들, 그리고 잔인한 로마의 병정들의 손에 의하여 우리 주님은 만민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득의한 줄 알고 의기 양양하여, 주님의 무덤을 인봉하여 굳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킴은 헛되이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우리 주님은 사망권세를 이기고 무덤문을 헤치고 부활하고야 말았습니다. 검은 구름이 해를 가리울 수 있으나 해를 없앨 수는 없는 것처럼 악의 세력은 의의 세력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이며, 불의에 대한 의의 개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생명의 빛으로 통하는 일시적인 관문일 뿐,죽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죽은 자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요11:25).
엠마오로 향하던 실의에 찬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마음이 뜨거워져 새 힘을 얻은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눅24:32).슬피울던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통하여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마28-9).빈 그물을 걷우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대로 그물을 던지므로1실패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요21:1-11).
성경을 주의 깊게 주목하여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의 확신 전후가 놀랍게도 비교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몇 군대서 주님의 부활사건을 중심하여 그 전후가 어떻게 달랐었는지 상고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엠마오로 가던 두제자의 신앙(눅24:13-17 )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 무덤에 장사되자 "글로바라고 하는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예루사렘에서 25리 떨어진 엠마오라고 하는 곳으로 힘없는 발걸음으로 무거운 다리를 옮겨 놓으며 깊은 사랑의 함정으로 빠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그들은 3일만에 다시 부활의 주님이 그들과 함께 동행하며 말씀하고 계셨지만,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신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 들어와서 예수께서 떡을 떼어 축사하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셔 예수신줄 보게 되었을 때,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소망의 발걸음을 옮겨 제자들과 합세하며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보기 전에 발걸음은 실망의 하향 길이었으나, 부활의 주님을 확신한 저들의 발걸음은 소망의 상향 길이었던 것입니다.
2) 무덤문 앞에서 슬피 울던 막달라 마리아(요20:14 )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라도 바르려고 이른 새벽 무덤을 찾아 갔으나,예수는 보이지 아니했고 빈무덤이었을 때, 무덤문 앞에 엎드려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다시 사셔서 그곁에 오셔서 말씀하고 계셨으나, 슬픔의 벽이 너무도 두꺼워서 예수신줄 알지못하고 겨우 동산지기인줄로 알고 당신이 우리 주님의 시체를 가져 갔으면 내어 달라고 했을 때 주께서 마리아야 평안하뇨 하시매, 그때서야 주께서 다시 사신줄을 믿고 슬픈 눈물을 거두고 기뻐하며, 분부대로 제자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떠났습니다. 우리는 빈 무덤만 바라보고 엎드려 슬피 울지 말고, 빈무덤을 통하여 영원을 바라 보고 소망의 주님을 붙들고,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찾아야 하겠습니다.
3) 공포 속에서 떨고 있던 제자들(눅24:37 )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만 알고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을 알지 못했던 제자들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두려움 속에서 떨며 비겁하게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불의를 누르시고 다시 사신 승리의 주님을 확인햇을 때, 의심의 구름은 사라져 가고 밖으로 뛰쳐나와 죽음을 두려워하지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의 화신이 되어 순교하고 자리에 들어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 영원히 죽지 않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부활 신앙의 확신적 근거는 그들의 생을 공포와 비겁한데서 탈출시켜서 순교자의 담대한 반열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4) 빈 그물을 거두고 있던 제자들(요21:4 )
십자가를 외면하고, 버려 두었던 자와 그물을 다시금 챙겨 갈릴리 바다로 고기 잡으러 다시 갔던 어부출신의 몇몇 제자들은, 헛수고 뿐이요 빈 그물만 거두게 되었을 때,예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다시 찾아 갔으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다가 예수신 줄 알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분부대로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떠나가면 빈 그물 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갈때에 우리의 그물에 고기가 찢어지도록 잡힐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