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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중국의 명차, 오룡차(烏龍茶) ①
반발효차로 제다 까다로워
5. 세계적인 중국의 명차, 오룡차(烏龍茶)
(1) 오룡차의 전설 -오룡차에 얽힌 검은 뱀의 전설-
전설에 의하면 어느 한 농부가 차나무 무더기를 발견하고, 찻잎을 따려고 다가가 보니, 검은 뱀[黑蛇]이 그 중 한 그루의 차나무를 휘감고 있었다 한다. 농부는 처음에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났으나 가만히 살펴보니, 그 검은 뱀이 사람을 공격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농부의 눈에 검은 뱀이 아주 온순하게 보였다.
그래서 농부는 그 검은 뱀이 휘감고 있는 차나무에 조심스레 접근하여 가만히 찻잎을 따기 시작했다. 과연 그 검은 뱀은 농부를 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따온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셔보니 차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고 한다. 이 차가 바로 중국 청차(靑茶)의 대명사 격인 오룡차이다.
▲ 오룡차의 전설도.
중국인들은 본디 뱀을 싫어하고 용(龍)을 좋아하는 습속이 있기 때문에 검은 뱀(黑蛇)을 까마귀같이 검은 용이란 뜻의 ‘오룡’으로 미화시키고, 이 차를 가리켜 ‘오룡차(烏龍茶)’라 이름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黃墩岩 編著,《中國茶道》(臺北, 暢文出版社, 民國80年))
(2) 오룡차의 원조 무이암차(武夷岩茶)
예부터 차는 신(神)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신비한 음료로 일컬어졌으며, 커피, 코코아와 더불어 세계 3대 음료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차가 사람에게 가장 유익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보편화된 일반적 상식이다. 차는 대저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 종류만 해도 엄청나게 많을 뿐더러 그 종류만큼이나 품질의 우열(優劣)과 제다법(製茶法)에 따라 8대 명차, 10대 명차 혹은 6대 명차로 구분되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분류하는 사람에 따라 그 종류의 대상이 바뀌기도 하고 그 종류가 더욱 복잡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차를 기호하는 이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비교적 광범위하고 간단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세계적인 3대 명차를 꼽는다면, 단연 홍차(紅茶)와 오룡차(烏龍茶) 그리고 용정차(龍井茶)를 꼽을 수 있다.
홍차는 100% 발효차로써 보이차와 더불어 흑차류로 분류하기도 하고, 혹은 독립하여 홍차류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오룡차는 반발효차로써 청차(靑茶)류로 분류한다. 그리고 용정차는 비발효차로써 녹차류로 분류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볼 때 이 중에서 가장 제다가 까다로운 것이 오룡차가 아닐까 생각된다. 조금만 더 발효하거나 혹은 조금만 덜 발효해도 제대로 된 오룡차 특유의 향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룡차는 ‘엽홍양변(葉紅鑲邊)’ 즉, 푸른 찻잎의 가장자리로 마치 붉은 홍선의 테두리를 두른 듯이 반발효가 고르게 진행되어야 최상급이다. 제다를 하는 차농(茶農)과 차공(茶工)(차농(茶農)은 차를 심고 재배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차공(茶工)은 차를 제다하거나 제다한 차를 2차 가공 처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한다.)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의 명차 오룡차의 원산지는 복건성(福建省)이다. 그러므로 오룡 품종으로 제조된 차는 모두 복건차의 계열이라 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모든 차나무는 본래가 전혀 인공재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야생하는 것이었으며, 이들의 품종 또한 모두가 동일종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건성에서 생산되는 차는 대략 탕색(湯色:뜨거운 물로 우려낸 찻물의 빛깔)으로 구분하면 홍차(紅茶), 녹차(綠茶), 청차(靑茶), 백차(白茶)의 네 종류로 볼 수가 있다. 홍차(紅茶), 녹차(綠茶), 청차(靑茶), 백차(白茶) 외에도 탕색에 의한 차의 구분에는 황차(黃茶)와 흑차(黑茶)가 있으며, 이 여섯 종류를 가리켜 '6대 차류'라고 한다. 중국의 모든 차의 종류는 이 '6대 차류' 분류법에 의해 그 종류를 구분한다.
그 중에서도 청차와 백차가 가장 특색이 있다. 백차는 송나라 때에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현재는 청차가 백차보다 한 수 위에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복건성의 청차류(오룡차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무이암차(武夷岩茶)’이다.
무이산은 기암절경이 뛰어난 중국 동남부의 명산중의 명산이다. 그 산수절경이 기이할 뿐만 아니라 기이한 차의 명산지로도 유명한 산이다. 무이암차는 무이산의 기암절벽을 뚫고 자라나는데, 무이산은 현재 복건성 무이산시(武夷山市)의 관내에 위치하며, 위도 상으로는 북위 27˚ 15´, 동경 118˚ 01´이며 평균 해발 650m이다. 매년 평균 온도가 18.5℃, 연평균 강우량이 2천㎜, 평균상대습도가 80%이고 일조기간이 매우 짧아 차의 성장에 매우 적합한 자연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 대홍포의 고향 무이산 구곡계(九曲溪) 풍광.
무이산에는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아흔아홉 개의 기암이 장관을 이룬다. 그 중 최고봉은 삼인봉(三仁峰)으로서 높이가 해발 700여 m에 이른다. 구곡계(九曲溪)가 산골짜기 마다 휘감고 흐르고 있어 기암절벽들이 서로 앞을 다퉈 얼굴을 비추니 그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차의 생산이 가장 번성하던 시기엔 매 봉우리와 매 기암마다 모두 차를 만드는 공장인 ‘차창(茶廠)’이 있었다고 전한다. 무이산에서 생산되는 차는 그 종류가 다양한 만큼 그 맛의 수준도 품질에 따라 현저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생장지(生長地)에 의해 분류해보면 대체로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 산봉우리의 암벽에서 채취하여 만든 차를 ‘암차(岩茶)’라고 하는데, 이 품종은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기종(奇種)’이라고 한다.
둘째, 계곡 주변에서 채취한 차를 ‘주차(洲茶)’라고 하는데, 그 맛과 향이 우수하나 암차보다 약간 뒤떨어진다하여 ‘명종(名種)’이라고 한다.
셋째, 산과 계곡주변 사이에서 채취한 것을 ‘반암차(半岩茶)’라고 한다.
▲ 무이산 구곡계 변의 무이차.
무이암차의 상품에 속하는 ‘기종’ 중에서도 특히, 높은 기암절벽에 매달려 생장하거나 높은 바위틈에서 생식하는 차나무에서 따서 만든 차는 다른 찻잎과 절대 혼합하지 않고, 별도로 그 우수한 특징을 유지하여 제다(制茶)하는데, 이를 가리켜 ‘단총기종(單叢奇種)’이라고 칭한다. 그 품질은 매우 우수하여 일반 기종보다는 맛과 향이 월등하다. 뿐만 아니라 무이암차는 대만 오룡차의 생산과 품질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무이암차의 종류-사대명총(四大名欉)
▲ 무이암차 포다.
무이암차의 차의 명칭은 각 시대에 따라 약간씩 그 명칭을 달리 표현하기도 했지만, 상품화된 차에 대한 명칭에 대해서는 여전히 차의 생산지와 품종 그리고 품질을 바탕으로 일정한 규칙에 의해 분류되고 있다.
대부분은 오랜 습관에 의해 대략 기종(奇種)과 명종(名種)으로 크게 구분되며, 기종은 다시 ①일반 기종 ②단총기종(單欉奇種) ③명총기종(名欉奇種) 3가지로 구분된다. 단총기종을 간략히 ‘단총(單欉)’, 명총기종은 간칭하여 ‘명총(名欉)’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최고의 ‘명총’과 최하의 ‘명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간혹 중국의 다인들 사이에서도 ‘명총(名欉,=名欉奇種)’과 ‘명종(名種)’을 혼동하여 기술하는 경우가 있어 많은 초심자들의 혼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명총은 무이암차 중에서도 ‘암차(岩茶)의 왕’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명총차들은 품질이 아주 우수하거나 혹은 차나무의 형상이 기이하거나 또는 차가 재배되는 지역의 기이한 특성들로 인해 제각기 특이한 명칭들을 가지고 있다.
명총은 다시 대홍포(大紅袍), 철나한(鐵羅漢),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手金龜) 등의 4가지로 분류된다.
① 대홍포(大紅袍)
무이명총 중에서도 대홍포의 명성이 단연 으뜸이다. 그중 몇몇 대홍포는 오룡차 중에서도 ‘차중지성(茶中之聖)’이란 최고의 명예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전해지는 전설 또한 많다. 어떤 전설에는 “차가 깎아지른 절벽에 야생하므로 도저히 사람이 올라가 채취할 수 없게 되자 어느 절의 스님이 매년 차를 따는 계절에 산에 있는 원숭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주어 유혹하여 절벽에 야생하는 찻잎을 따오게 했다”고 한다.
▲ 대홍포 엽저(葉底).
또 다른 전설에는 “차나무의 높이가 무려 33m나 되고, 찻잎의 크기가 사람의 손바닥만 하다. 이 차는 좁은 절벽 벼랑 사이에서만 야생하는데,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험해 인근 절의 스님이 겨우 바람에 떨어지는 찻잎만을 주워서 차를 만들었는데 백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현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는 “대홍포는 ‘바위의 신[岩神]’이 소유하는 것이라 아무나 차를 딸 수가 없다. 단지 사원의 스님들이 매년 정월초하루에 분향예배한 뒤, 약간의 차를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만 허락된다. 이 차는 스스로 지킬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의 관리가 필요 없다. 만약에 누가 몰래 바위 신의 허락도 없이 차를 딸 경우에는 복통이 생기며, 몰래 딴 찻잎을 버리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
이 차는 신이 재배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사람이 먼저 맛볼 수가 없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무이암차의 명성이 사방에 널리 전해지자 암차를 도둑질하려는 무리가 많이 생겨났던 것 같다. 차의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 귀신을 가장 두려워하는 중국인들의 민속성에 착안하여 현지 차농들이 지혜를 모아 짜낸 전설이 아닌가 싶다.
대홍포는 천심암(天心岩) 구룡과(九龍窠)의 고암(高岩) 절벽 위에서 자란다. 양쪽의 절벽은 하늘 높이 치솟아 마주하고 있어 일조시간이 길지가 않고, 기온의 변동이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바위 위에서는 일 년 내내 아주 가늘고 작은 샘물이 바위 틈 사이로 졸졸 흘러내려 차의 야생지를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졸졸 흐르는 샘물을 이끼류 등의 풍부한 유기물 등이 땅을 더욱 비옥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이곳의 차수 생장 조건이 대홍포를 더욱 더 독특하고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기이한 차로 그 명성을 드날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옛날에는 대홍포를 채적할 때 반드시 단(壇)을 세우고 분향예배를 하고 독경(讀經)한 뒤 특수한 제다기(製茶機)를 사용하여 고도로 훈련된 차의 사부(師父)가 제다를 맡아서 진행했다.
차 따기와 차 만들기에 관한 문헌기록을 보면, 오전 8시 반에 채다하여 9시 반에 햇볕에 쬐어 차 시들기(쇄청曬靑)를 하고 1시간이 지난 뒤 한차례 비벼 뒤집고 10시 반에 시작하여 15분간을 식힌다. 10시 45분에 위조실(萎凋室:차를 시들게 하는 방)로 옮겨 하루를 재운 뒤, 익일 1시 45분에 덖는다.
찻잎 흔들기 과정인 요청(搖靑: 커다란 원형의 통에 찻잎을 넣고 돌리면 안에서 찻잎이 서로 부딪치며 찻잎의 섬유조직이 파괴되면서 찻잎에서 나오는 액즙에 의해 발효가 진행되는데 이를 요청(搖靑)이라하며, 이때 사용되는 원형의 통을 ‘요청기(搖靑機)’라고 한다.
현재는 전 자동으로 설비가 갖추어져 있다.)은 14시간 40분간에 걸쳐 7차례나 진행된다. ‘요청’과정이 끝나면 두 번 덖는 초초(初炒)와 재초(再炒)를 거쳐 다시 두 차례 불에 쬐는 초홍(初烘)과 복홍(復烘)의 순서로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홍포는 다른 명총과 확연하게 대조를 이루는데, 다른 명총이 7번까지 우리면 그 맛이 담담해지는데 비해 대홍포는 9번을 우려도 여전히 그 원래의 맛이 그대로 유지됨은 물론 계화향(桂花香)을 동반한다는 게 그 특징이다.
세계적인 중국의 명차, 오룡차(烏龍茶) ②
일엽일심으로 제작한 차를 ‘최고급’ 여겨
▲ 일심양엽(一心兩葉) 채엽 모습.
② 철나한(鐵羅漢)
청대 곽백창의 《민산록이(閩産錄異)》에 의하면 ‘철나한’은 무이암차 중에서도 ‘최초의 명총(名欉)’이다. 이에 대한 전설도 꽤 여러 가지가 전해지기도 한다. 차나무의 생장과 제다법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대홍포와 거의 유사하다. 이 차가 명총 중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차인 만큼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것이 아마도 대홍포의 전신이거나 혹은 철나한을 바탕으로 대홍포가 발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중엽 혜안현(惠安縣) ‘시집천(施集泉)’이란 다점(茶店)에서 무이암차를 경영하였는데, 그 중에서 철나한이 가장 귀하게 대접받았다. 왜냐하면, 철나한은 당시 유행했던 열병(熱病)의 치료에 뛰어난 효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890년에서 1931년 사이에 혜안현에서 큰 질병이 두 차례 발생한 적이 있는데, 시집천에서 판매하는 ‘철나한’을 사서 우려 마신 일부분의 환자들은 병이 말끔히 나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시집천의 철나한을 상비약으로 구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먼 길을 가거나 바다로 출항을 할 경우엔 반드시 지니고 나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③ 백계관(白鷄冠)
‘백계관’의 원산지는 혜원암(慧苑岩) 화염봉(火焰峯) 아래에 있는 외귀동(外鬼洞)이란 곳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무이궁(武夷宮) 뒷산에서 발견됨에 따라 백계관의 원산지가 이곳이라는 전설도 있다.
백계관은 대홍포 보다도 훨씬 일찍이 명대(明代) 때부터 그 명성이 사방에 널리 알려졌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시 어느 한 지부(知府: 명・청시대의 부(府)의 장관)가 가족들을 데리고 무이산을 지나가다가 무이궁(武夷宮)에서 묵게 되었다. 그때 그의 아들이 갑자기 몹쓸 병에 전염되었는데, 배가 마치 소처럼 부풀었다. 약을 써서 치료해보았으나 백 가지 양약이 무효하였다. 그 때 절의 한 스님이 조그마한 찻잔에 차를 한 잔 가지고 와서 바쳤는데, 지부(知府)가 마셔보니 그 맛이 아주 특이하게 좋았다. 마시다 남은 차를 병든 아들에게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에게 무슨 차냐고 물었더니, 스님이 “백계관(白鷄冠)입니다”라고 하였다.
지부가 ‘백계관’을 곧장 황제에게 진상하였더니, 황제가 이를 맛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곧 칙령을 내리어 그 절의 스님으로 하여금 그 차나무를 잘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매년 은(銀) 100냥과 곡식40석을 하사하였다. 아울러 매년 이 차를 만들어 진공하여 ‘어차(御茶: 각 지방에서 나는 최고의 명차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차. 황제가 마시는 차)'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백계관(白鷄冠)’은 외귀동(外鬼洞)과 무이궁 뒷산의 2가지 원산지설을 가지고 있으나 두 곳에서 생장하는 차나무의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높이가 1.75미터이고 한 나무에서 갈라지는 가지가 꽤 많다. 찻잎이 길쭉하고 원형이며 그 잎의 색은 짙은 녹색과 광택을 공히 띠며 잎이 여리고 얇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백계관의 찻잎 색은 연두색에 약간의 황색을 띤 것과 짙은 녹색의 늙은 잎이 선명하게 양색의 층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이에 ‘백계관’이란 명칭이 유래되었다.
④ 수금귀(手金龜)
▲ 건조-홍배 과정.
‘수금귀’의 원산지는 무이산의 우난갱(牛欄坑), 두갈봉(杜葛峰) 아래의 절벽에 반쯤의 절벽 위에 있는 난곡암(蘭谷岩)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수금귀는 무이산의 천심사(天心寺)에 속하는 차로 ‘두갈봉’이 아니라 ‘두갈채’ 아래에 심었다”고 전한다.
문헌에 의하면 “하루는 큰비가 억수같이 내려 봉우리 정상의 차밭 양쪽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차나무가 빗물에 씻기어져 떠내려가다가 ‘우난갱’의 반암(半岩) 움푹 패인 곳에 이르러 멈추었고, 후에 물이 흘러 내려 차나무 곁으로 고랑을 이루고 흘러내리게 되자 난곡산(蘭谷山)의 산주인은 이에 곧 이곳에 돌을 뚫고 다듬어 계단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로 쌓아올린 뒤, 그 곳에다 흙을 실어다 붓고 배토하여 차나무를 잘 살 수 있도록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수금귀는 다른 차와는 좀 특이하게 원산지 소유권 문제가 주로 많이 논쟁거리로 대두되는 차이다. 실지로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엔 ‘수금귀’의 원산지의 소유권 분쟁문제로 인해 뇌석사(磊石寺)와 천심사(天心寺)의 업주끼리 소송이 제기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법원에서 판결하기를 “수금귀의 원산지는 천연적으로 조성된 것이므로 ‘난곡(蘭谷)의 소유’로 해야 마땅하다”라고 판결이 귀결되었다. 그 원산지의 소유권이야 어쨌든 간에 명총(名欉)은 실로 명차 중의 명차인 것만은 사실이다.
위에서 서술한 네 가지 명총 중에서 필자가 실제로 마셔본 종류는 전자 두 종류이며 후자 두 종류는 아직 마셔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중국의 명차들은 그 명성만큼이나 맛과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거기에 얽힌 재미난 전설도 참 무척이나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과장이든 또 거짓이든 간에 모두 차의 역사적 배경과 그 문화를 반영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으며 더 나아가 앞으로 새롭게 개발될 무수히 많은 차들의 맛과 향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차에 담긴 그들의 정신문화를 창신(創新)해나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4) 중국보다 더 세계적인 ‘대만(臺灣) 오룡차’
▲ 각종 차품(상점 진열대).
오룡차가 복건성에서 대만으로 전래된 시기는 청나라 가경(嘉慶) 연간(年間:1976~1820년)이며, 도광(道光) 연간(年間:1820~1850년)에 대만에서는 이미 오룡차를 대충 거칠게나마 제작 생산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만에서 최초로 생산된 오룡차이다. 그 후, 대만에서 조제(粗製:거칠게 제작)된 오룡차는 다시 복건성 복주(福州)로 운반되어져 재가공과 정제(精製) 과정을 거친 후 시판되었다.
동치(同治) 4년(1865)에 이르자 담수(淡水:타이뻬이시의 남단을 돌아 대만 북서쪽 바다로 흐르는 강)에서는 이미 외국 서방세계와의 무역왕래가 시작되었는데, 오룡차 8만2천22근이 수출되었다. 이어 동치 8년(1869)에는 영국 상인이 대만에서 직접 정제한 오룡차 12만7천800근을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였는데 미국 시장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 청나라 광서(光緖) 7년(1880)에는 무려 542만8천553근이나 수출하였다. 이는 당시 최고의 수출량을 기록하였는데, 당시의 오룡차 생산이 얼마나 흥성했는지를 잘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이렇게 대만에서 만들어진 오룡차가 서방세계로 대량 수출됨에 따라 원래 철관음과 함께 ‘청차류(반발효차의 통칭)’의 한 품종에 불과했던 ‘오룡차’의 품종명칭은 어느새 ‘차의 분류’과정에서 ‘청차류’라는 분류명을 대신해서 반발효차의 ‘분류명’으로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룡차’의 의미는 두 가지로 나누어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첫째, 광의적인 의미로 청차류(靑茶類:반발효차)를 통칭하는 것이고, 두 번째, 협의적인 의미로는 청차류의 차의 한 품종인 오룡차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차의 종류를 구분할 때, 혼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차종(茶種)은 대부분 오룡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비교적 유명한 청차의 대부분은 품종이 좋은 ‘청심오룡(靑心烏龍)’으로 제다하고 있다. 대만의 오룡차는 발효정도가 5~10%정도의 ‘경발효차’로부터 70%이상에 이르는 중발효차(重醱酵茶)에까지 다양하다. 요즘은 젊은 층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향기 위주의 경발효차가 많이 생산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대만의 오룡차는 70%이상의 중발효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 맛과 향은 중후하면서도 회감(回甘: 차를 마신 후, 차향이 목으로부터 다시 입안으로 되돌아올라 와서 입 안 가득 감도는 단 기운)이 빠르고, 그 향이 오래가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대만에서는 아직도 고대의 제다법을 이용하여 오룡차를 많이 생산하는데, 그야말로 중국 정통의 오룡차를 생산하고 있다. 고급 오룡차는 ‘일엽일심(一葉一心:맨 끝 싹과 그 싹 밑에 달린 첫 잎으로써, 싹은 창과 같고, 그 잎은 창에 달린 깃발 같다고 하여, 일명‘일창일기(一槍一旗)’라고도 한다)’으로 제작된 차를 최고로 치는데, 찻잎의 외관은 황갈색(黃褐色)을 띤다. 그리고 찻잎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그 뒷면에는 흰 털이 솜털처럼 송송이 나 있다.
대만 말로 속칭 ‘팽풍차(膨風茶)’라고도 하는데, 영국인들이나 미국인들은 이를 가리켜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백호오룡차(白毫烏龍茶)’이다.) ①
반발효차로 제다 까다로워
5. 세계적인 중국의 명차, 오룡차(烏龍茶)
(1) 오룡차의 전설 -오룡차에 얽힌 검은 뱀의 전설-
전설에 의하면 어느 한 농부가 차나무 무더기를 발견하고, 찻잎을 따려고 다가가 보니, 검은 뱀[黑蛇]이 그 중 한 그루의 차나무를 휘감고 있었다 한다. 농부는 처음에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났으나 가만히 살펴보니, 그 검은 뱀이 사람을 공격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농부의 눈에 검은 뱀이 아주 온순하게 보였다.
그래서 농부는 그 검은 뱀이 휘감고 있는 차나무에 조심스레 접근하여 가만히 찻잎을 따기 시작했다. 과연 그 검은 뱀은 농부를 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따온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셔보니 차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고 한다. 이 차가 바로 중국 청차(靑茶)의 대명사 격인 오룡차이다.
▲ 오룡차의 전설도.
중국인들은 본디 뱀을 싫어하고 용(龍)을 좋아하는 습속이 있기 때문에 검은 뱀(黑蛇)을 까마귀같이 검은 용이란 뜻의 ‘오룡’으로 미화시키고, 이 차를 가리켜 ‘오룡차(烏龍茶)’라 이름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黃墩岩 編著,《中國茶道》(臺北, 暢文出版社, 民國80年))
(2) 오룡차의 원조 무이암차(武夷岩茶)
예부터 차는 신(神)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신비한 음료로 일컬어졌으며, 커피, 코코아와 더불어 세계 3대 음료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차가 사람에게 가장 유익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보편화된 일반적 상식이다. 차는 대저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 종류만 해도 엄청나게 많을 뿐더러 그 종류만큼이나 품질의 우열(優劣)과 제다법(製茶法)에 따라 8대 명차, 10대 명차 혹은 6대 명차로 구분되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분류하는 사람에 따라 그 종류의 대상이 바뀌기도 하고 그 종류가 더욱 복잡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차를 기호하는 이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비교적 광범위하고 간단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세계적인 3대 명차를 꼽는다면, 단연 홍차(紅茶)와 오룡차(烏龍茶) 그리고 용정차(龍井茶)를 꼽을 수 있다.
홍차는 100% 발효차로써 보이차와 더불어 흑차류로 분류하기도 하고, 혹은 독립하여 홍차류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오룡차는 반발효차로써 청차(靑茶)류로 분류한다. 그리고 용정차는 비발효차로써 녹차류로 분류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볼 때 이 중에서 가장 제다가 까다로운 것이 오룡차가 아닐까 생각된다. 조금만 더 발효하거나 혹은 조금만 덜 발효해도 제대로 된 오룡차 특유의 향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룡차는 ‘엽홍양변(葉紅鑲邊)’ 즉, 푸른 찻잎의 가장자리로 마치 붉은 홍선의 테두리를 두른 듯이 반발효가 고르게 진행되어야 최상급이다. 제다를 하는 차농(茶農)과 차공(茶工)(차농(茶農)은 차를 심고 재배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차공(茶工)은 차를 제다하거나 제다한 차를 2차 가공 처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한다.)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의 명차 오룡차의 원산지는 복건성(福建省)이다. 그러므로 오룡 품종으로 제조된 차는 모두 복건차의 계열이라 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모든 차나무는 본래가 전혀 인공재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야생하는 것이었으며, 이들의 품종 또한 모두가 동일종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건성에서 생산되는 차는 대략 탕색(湯色:뜨거운 물로 우려낸 찻물의 빛깔)으로 구분하면 홍차(紅茶), 녹차(綠茶), 청차(靑茶), 백차(白茶)의 네 종류로 볼 수가 있다. 홍차(紅茶), 녹차(綠茶), 청차(靑茶), 백차(白茶) 외에도 탕색에 의한 차의 구분에는 황차(黃茶)와 흑차(黑茶)가 있으며, 이 여섯 종류를 가리켜 '6대 차류'라고 한다. 중국의 모든 차의 종류는 이 '6대 차류' 분류법에 의해 그 종류를 구분한다.
그 중에서도 청차와 백차가 가장 특색이 있다. 백차는 송나라 때에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현재는 청차가 백차보다 한 수 위에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복건성의 청차류(오룡차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무이암차(武夷岩茶)’이다.
무이산은 기암절경이 뛰어난 중국 동남부의 명산중의 명산이다. 그 산수절경이 기이할 뿐만 아니라 기이한 차의 명산지로도 유명한 산이다. 무이암차는 무이산의 기암절벽을 뚫고 자라나는데, 무이산은 현재 복건성 무이산시(武夷山市)의 관내에 위치하며, 위도 상으로는 북위 27˚ 15´, 동경 118˚ 01´이며 평균 해발 650m이다. 매년 평균 온도가 18.5℃, 연평균 강우량이 2천㎜, 평균상대습도가 80%이고 일조기간이 매우 짧아 차의 성장에 매우 적합한 자연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 대홍포의 고향 무이산 구곡계(九曲溪) 풍광.
무이산에는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아흔아홉 개의 기암이 장관을 이룬다. 그 중 최고봉은 삼인봉(三仁峰)으로서 높이가 해발 700여 m에 이른다. 구곡계(九曲溪)가 산골짜기 마다 휘감고 흐르고 있어 기암절벽들이 서로 앞을 다퉈 얼굴을 비추니 그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차의 생산이 가장 번성하던 시기엔 매 봉우리와 매 기암마다 모두 차를 만드는 공장인 ‘차창(茶廠)’이 있었다고 전한다. 무이산에서 생산되는 차는 그 종류가 다양한 만큼 그 맛의 수준도 품질에 따라 현저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생장지(生長地)에 의해 분류해보면 대체로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 산봉우리의 암벽에서 채취하여 만든 차를 ‘암차(岩茶)’라고 하는데, 이 품종은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기종(奇種)’이라고 한다.
둘째, 계곡 주변에서 채취한 차를 ‘주차(洲茶)’라고 하는데, 그 맛과 향이 우수하나 암차보다 약간 뒤떨어진다하여 ‘명종(名種)’이라고 한다.
셋째, 산과 계곡주변 사이에서 채취한 것을 ‘반암차(半岩茶)’라고 한다.
▲ 무이산 구곡계 변의 무이차.
무이암차의 상품에 속하는 ‘기종’ 중에서도 특히, 높은 기암절벽에 매달려 생장하거나 높은 바위틈에서 생식하는 차나무에서 따서 만든 차는 다른 찻잎과 절대 혼합하지 않고, 별도로 그 우수한 특징을 유지하여 제다(制茶)하는데, 이를 가리켜 ‘단총기종(單叢奇種)’이라고 칭한다. 그 품질은 매우 우수하여 일반 기종보다는 맛과 향이 월등하다. 뿐만 아니라 무이암차는 대만 오룡차의 생산과 품질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무이암차의 종류-사대명총(四大名欉)
▲ 무이암차 포다.
무이암차의 차의 명칭은 각 시대에 따라 약간씩 그 명칭을 달리 표현하기도 했지만, 상품화된 차에 대한 명칭에 대해서는 여전히 차의 생산지와 품종 그리고 품질을 바탕으로 일정한 규칙에 의해 분류되고 있다.
대부분은 오랜 습관에 의해 대략 기종(奇種)과 명종(名種)으로 크게 구분되며, 기종은 다시 ①일반 기종 ②단총기종(單欉奇種) ③명총기종(名欉奇種) 3가지로 구분된다. 단총기종을 간략히 ‘단총(單欉)’, 명총기종은 간칭하여 ‘명총(名欉)’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최고의 ‘명총’과 최하의 ‘명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간혹 중국의 다인들 사이에서도 ‘명총(名欉,=名欉奇種)’과 ‘명종(名種)’을 혼동하여 기술하는 경우가 있어 많은 초심자들의 혼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명총은 무이암차 중에서도 ‘암차(岩茶)의 왕’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명총차들은 품질이 아주 우수하거나 혹은 차나무의 형상이 기이하거나 또는 차가 재배되는 지역의 기이한 특성들로 인해 제각기 특이한 명칭들을 가지고 있다.
명총은 다시 대홍포(大紅袍), 철나한(鐵羅漢),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手金龜) 등의 4가지로 분류된다.
① 대홍포(大紅袍)
무이명총 중에서도 대홍포의 명성이 단연 으뜸이다. 그중 몇몇 대홍포는 오룡차 중에서도 ‘차중지성(茶中之聖)’이란 최고의 명예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전해지는 전설 또한 많다. 어떤 전설에는 “차가 깎아지른 절벽에 야생하므로 도저히 사람이 올라가 채취할 수 없게 되자 어느 절의 스님이 매년 차를 따는 계절에 산에 있는 원숭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주어 유혹하여 절벽에 야생하는 찻잎을 따오게 했다”고 한다.
▲ 대홍포 엽저(葉底).
또 다른 전설에는 “차나무의 높이가 무려 33m나 되고, 찻잎의 크기가 사람의 손바닥만 하다. 이 차는 좁은 절벽 벼랑 사이에서만 야생하는데,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험해 인근 절의 스님이 겨우 바람에 떨어지는 찻잎만을 주워서 차를 만들었는데 백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현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는 “대홍포는 ‘바위의 신[岩神]’이 소유하는 것이라 아무나 차를 딸 수가 없다. 단지 사원의 스님들이 매년 정월초하루에 분향예배한 뒤, 약간의 차를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만 허락된다. 이 차는 스스로 지킬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의 관리가 필요 없다. 만약에 누가 몰래 바위 신의 허락도 없이 차를 딸 경우에는 복통이 생기며, 몰래 딴 찻잎을 버리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
이 차는 신이 재배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사람이 먼저 맛볼 수가 없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무이암차의 명성이 사방에 널리 전해지자 암차를 도둑질하려는 무리가 많이 생겨났던 것 같다. 차의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 귀신을 가장 두려워하는 중국인들의 민속성에 착안하여 현지 차농들이 지혜를 모아 짜낸 전설이 아닌가 싶다.
대홍포는 천심암(天心岩) 구룡과(九龍窠)의 고암(高岩) 절벽 위에서 자란다. 양쪽의 절벽은 하늘 높이 치솟아 마주하고 있어 일조시간이 길지가 않고, 기온의 변동이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바위 위에서는 일 년 내내 아주 가늘고 작은 샘물이 바위 틈 사이로 졸졸 흘러내려 차의 야생지를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졸졸 흐르는 샘물을 이끼류 등의 풍부한 유기물 등이 땅을 더욱 비옥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이곳의 차수 생장 조건이 대홍포를 더욱 더 독특하고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기이한 차로 그 명성을 드날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옛날에는 대홍포를 채적할 때 반드시 단(壇)을 세우고 분향예배를 하고 독경(讀經)한 뒤 특수한 제다기(製茶機)를 사용하여 고도로 훈련된 차의 사부(師父)가 제다를 맡아서 진행했다.
차 따기와 차 만들기에 관한 문헌기록을 보면, 오전 8시 반에 채다하여 9시 반에 햇볕에 쬐어 차 시들기(쇄청曬靑)를 하고 1시간이 지난 뒤 한차례 비벼 뒤집고 10시 반에 시작하여 15분간을 식힌다. 10시 45분에 위조실(萎凋室:차를 시들게 하는 방)로 옮겨 하루를 재운 뒤, 익일 1시 45분에 덖는다.
찻잎 흔들기 과정인 요청(搖靑: 커다란 원형의 통에 찻잎을 넣고 돌리면 안에서 찻잎이 서로 부딪치며 찻잎의 섬유조직이 파괴되면서 찻잎에서 나오는 액즙에 의해 발효가 진행되는데 이를 요청(搖靑)이라하며, 이때 사용되는 원형의 통을 ‘요청기(搖靑機)’라고 한다.
현재는 전 자동으로 설비가 갖추어져 있다.)은 14시간 40분간에 걸쳐 7차례나 진행된다. ‘요청’과정이 끝나면 두 번 덖는 초초(初炒)와 재초(再炒)를 거쳐 다시 두 차례 불에 쬐는 초홍(初烘)과 복홍(復烘)의 순서로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홍포는 다른 명총과 확연하게 대조를 이루는데, 다른 명총이 7번까지 우리면 그 맛이 담담해지는데 비해 대홍포는 9번을 우려도 여전히 그 원래의 맛이 그대로 유지됨은 물론 계화향(桂花香)을 동반한다는 게 그 특징이다.
세계적인 중국의 명차, 오룡차(烏龍茶) ②
일엽일심으로 제작한 차를 ‘최고급’ 여겨
▲ 일심양엽(一心兩葉) 채엽 모습.
② 철나한(鐵羅漢)
청대 곽백창의 《민산록이(閩産錄異)》에 의하면 ‘철나한’은 무이암차 중에서도 ‘최초의 명총(名欉)’이다. 이에 대한 전설도 꽤 여러 가지가 전해지기도 한다. 차나무의 생장과 제다법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대홍포와 거의 유사하다. 이 차가 명총 중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차인 만큼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것이 아마도 대홍포의 전신이거나 혹은 철나한을 바탕으로 대홍포가 발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중엽 혜안현(惠安縣) ‘시집천(施集泉)’이란 다점(茶店)에서 무이암차를 경영하였는데, 그 중에서 철나한이 가장 귀하게 대접받았다. 왜냐하면, 철나한은 당시 유행했던 열병(熱病)의 치료에 뛰어난 효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890년에서 1931년 사이에 혜안현에서 큰 질병이 두 차례 발생한 적이 있는데, 시집천에서 판매하는 ‘철나한’을 사서 우려 마신 일부분의 환자들은 병이 말끔히 나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시집천의 철나한을 상비약으로 구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먼 길을 가거나 바다로 출항을 할 경우엔 반드시 지니고 나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③ 백계관(白鷄冠)
‘백계관’의 원산지는 혜원암(慧苑岩) 화염봉(火焰峯) 아래에 있는 외귀동(外鬼洞)이란 곳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무이궁(武夷宮) 뒷산에서 발견됨에 따라 백계관의 원산지가 이곳이라는 전설도 있다.
백계관은 대홍포 보다도 훨씬 일찍이 명대(明代) 때부터 그 명성이 사방에 널리 알려졌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시 어느 한 지부(知府: 명・청시대의 부(府)의 장관)가 가족들을 데리고 무이산을 지나가다가 무이궁(武夷宮)에서 묵게 되었다. 그때 그의 아들이 갑자기 몹쓸 병에 전염되었는데, 배가 마치 소처럼 부풀었다. 약을 써서 치료해보았으나 백 가지 양약이 무효하였다. 그 때 절의 한 스님이 조그마한 찻잔에 차를 한 잔 가지고 와서 바쳤는데, 지부(知府)가 마셔보니 그 맛이 아주 특이하게 좋았다. 마시다 남은 차를 병든 아들에게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에게 무슨 차냐고 물었더니, 스님이 “백계관(白鷄冠)입니다”라고 하였다.
지부가 ‘백계관’을 곧장 황제에게 진상하였더니, 황제가 이를 맛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곧 칙령을 내리어 그 절의 스님으로 하여금 그 차나무를 잘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매년 은(銀) 100냥과 곡식40석을 하사하였다. 아울러 매년 이 차를 만들어 진공하여 ‘어차(御茶: 각 지방에서 나는 최고의 명차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차. 황제가 마시는 차)'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백계관(白鷄冠)’은 외귀동(外鬼洞)과 무이궁 뒷산의 2가지 원산지설을 가지고 있으나 두 곳에서 생장하는 차나무의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높이가 1.75미터이고 한 나무에서 갈라지는 가지가 꽤 많다. 찻잎이 길쭉하고 원형이며 그 잎의 색은 짙은 녹색과 광택을 공히 띠며 잎이 여리고 얇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백계관의 찻잎 색은 연두색에 약간의 황색을 띤 것과 짙은 녹색의 늙은 잎이 선명하게 양색의 층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이에 ‘백계관’이란 명칭이 유래되었다.
④ 수금귀(手金龜)
▲ 건조-홍배 과정.
‘수금귀’의 원산지는 무이산의 우난갱(牛欄坑), 두갈봉(杜葛峰) 아래의 절벽에 반쯤의 절벽 위에 있는 난곡암(蘭谷岩)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수금귀는 무이산의 천심사(天心寺)에 속하는 차로 ‘두갈봉’이 아니라 ‘두갈채’ 아래에 심었다”고 전한다.
문헌에 의하면 “하루는 큰비가 억수같이 내려 봉우리 정상의 차밭 양쪽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차나무가 빗물에 씻기어져 떠내려가다가 ‘우난갱’의 반암(半岩) 움푹 패인 곳에 이르러 멈추었고, 후에 물이 흘러 내려 차나무 곁으로 고랑을 이루고 흘러내리게 되자 난곡산(蘭谷山)의 산주인은 이에 곧 이곳에 돌을 뚫고 다듬어 계단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로 쌓아올린 뒤, 그 곳에다 흙을 실어다 붓고 배토하여 차나무를 잘 살 수 있도록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수금귀는 다른 차와는 좀 특이하게 원산지 소유권 문제가 주로 많이 논쟁거리로 대두되는 차이다. 실지로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엔 ‘수금귀’의 원산지의 소유권 분쟁문제로 인해 뇌석사(磊石寺)와 천심사(天心寺)의 업주끼리 소송이 제기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법원에서 판결하기를 “수금귀의 원산지는 천연적으로 조성된 것이므로 ‘난곡(蘭谷)의 소유’로 해야 마땅하다”라고 판결이 귀결되었다. 그 원산지의 소유권이야 어쨌든 간에 명총(名欉)은 실로 명차 중의 명차인 것만은 사실이다.
위에서 서술한 네 가지 명총 중에서 필자가 실제로 마셔본 종류는 전자 두 종류이며 후자 두 종류는 아직 마셔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중국의 명차들은 그 명성만큼이나 맛과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거기에 얽힌 재미난 전설도 참 무척이나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과장이든 또 거짓이든 간에 모두 차의 역사적 배경과 그 문화를 반영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으며 더 나아가 앞으로 새롭게 개발될 무수히 많은 차들의 맛과 향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차에 담긴 그들의 정신문화를 창신(創新)해나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4) 중국보다 더 세계적인 ‘대만(臺灣) 오룡차’
▲ 각종 차품(상점 진열대).
오룡차가 복건성에서 대만으로 전래된 시기는 청나라 가경(嘉慶) 연간(年間:1976~1820년)이며, 도광(道光) 연간(年間:1820~1850년)에 대만에서는 이미 오룡차를 대충 거칠게나마 제작 생산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만에서 최초로 생산된 오룡차이다. 그 후, 대만에서 조제(粗製:거칠게 제작)된 오룡차는 다시 복건성 복주(福州)로 운반되어져 재가공과 정제(精製) 과정을 거친 후 시판되었다.
동치(同治) 4년(1865)에 이르자 담수(淡水:타이뻬이시의 남단을 돌아 대만 북서쪽 바다로 흐르는 강)에서는 이미 외국 서방세계와의 무역왕래가 시작되었는데, 오룡차 8만2천22근이 수출되었다. 이어 동치 8년(1869)에는 영국 상인이 대만에서 직접 정제한 오룡차 12만7천800근을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였는데 미국 시장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 청나라 광서(光緖) 7년(1880)에는 무려 542만8천553근이나 수출하였다. 이는 당시 최고의 수출량을 기록하였는데, 당시의 오룡차 생산이 얼마나 흥성했는지를 잘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이렇게 대만에서 만들어진 오룡차가 서방세계로 대량 수출됨에 따라 원래 철관음과 함께 ‘청차류(반발효차의 통칭)’의 한 품종에 불과했던 ‘오룡차’의 품종명칭은 어느새 ‘차의 분류’과정에서 ‘청차류’라는 분류명을 대신해서 반발효차의 ‘분류명’으로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룡차’의 의미는 두 가지로 나누어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첫째, 광의적인 의미로 청차류(靑茶類:반발효차)를 통칭하는 것이고, 두 번째, 협의적인 의미로는 청차류의 차의 한 품종인 오룡차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차의 종류를 구분할 때, 혼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차종(茶種)은 대부분 오룡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비교적 유명한 청차의 대부분은 품종이 좋은 ‘청심오룡(靑心烏龍)’으로 제다하고 있다. 대만의 오룡차는 발효정도가 5~10%정도의 ‘경발효차’로부터 70%이상에 이르는 중발효차(重醱酵茶)에까지 다양하다. 요즘은 젊은 층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향기 위주의 경발효차가 많이 생산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대만의 오룡차는 70%이상의 중발효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 맛과 향은 중후하면서도 회감(回甘: 차를 마신 후, 차향이 목으로부터 다시 입안으로 되돌아올라 와서 입 안 가득 감도는 단 기운)이 빠르고, 그 향이 오래가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대만에서는 아직도 고대의 제다법을 이용하여 오룡차를 많이 생산하는데, 그야말로 중국 정통의 오룡차를 생산하고 있다. 고급 오룡차는 ‘일엽일심(一葉一心:맨 끝 싹과 그 싹 밑에 달린 첫 잎으로써, 싹은 창과 같고, 그 잎은 창에 달린 깃발 같다고 하여, 일명‘일창일기(一槍一旗)’라고도 한다)’으로 제작된 차를 최고로 치는데, 찻잎의 외관은 황갈색(黃褐色)을 띤다. 그리고 찻잎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그 뒷면에는 흰 털이 솜털처럼 송송이 나 있다.
대만 말로 속칭 ‘팽풍차(膨風茶)’라고도 하는데, 영국인들이나 미국인들은 이를 가리켜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백호오룡차(白毫烏龍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