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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慧蓮
출처 / 다음카페 순정시대(純淨時代)
[아미타불의 화신이라 칭하는 선도대사님이 가르치신 염불법문 등을 정전스님을 통해 공부하는 전수염불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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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돼지를 위해 염불하자 돼지가 왕생하다
저는 중국 호북성 잠강시 어양진 쾌령촌(湖北省潛江市漁洋鎭快嶺村)에서 살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서 이발소를 열고 있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도살장이 하나 있는데, 제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염불할 때면, 저 돼지들이 도살당하면서 지르는 비참한 비명소리에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제해주고 싶어서 매일 제가 염불할 때 한 생각을 내어 저 돼지들이 구제되기를 바랐습니다.
대략 한 주 정도 지나서 저의 제자 이홍송李洪松(벙어리인데, 몇 년간 농아학교를 다녔었고 음계陰界의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서 이발기술을 배우고는 혼자서 이발소를 차렸다.)이 싱글벙글 웃으며 저희 집에 와서 저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두 손을 귀에다 대고 돼지흉내를 내더니, 또 두 손을 위로 바르게 펴고는 연꽃의 형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키면서 돼지가 서방으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감동도 되고 놀랍기도 해서 정확히 알고자 그와 함께 손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제자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제가 염불하여 돼지들을 천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에게 돼지들이 어떻게 갔냐고 물었더니 돼지의 모습을 흉내 내고는 다시 합장하는 모습을 하고, 또 연꽃이 돼지들을 서방으로 데려갔다는 손짓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집에서 염불을 했는데 돼지들이 어떻게 들을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가리키면서 손짓으로 내가 염불할 때 아주 강한 금색광명이 마치 용의 형상처럼 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가 알아듣지 못할까봐 종이에다 ‘광光’자와 ‘용龍’자를 써 주고는 손짓으로 제가 이 명호를 부를 때에 용과 같은 빛줄기가 끊임없이 도살장을 향해 발사되었다는 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제가 마음속으로 염불하는 것을 지켜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시방을 생각하면서 염불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지켜보던 그는 여덟 방향으로 나오는 광명이 마치 여덟 마리 금색용의 형상과 같았다고 손짓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의 성호聖號가 여덟방향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도대체 방향이 몇 개나 되냐고 거듭 물었더니 그는 틀림없이 여덟 개 방향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저 돼지들을 위해 염불할 뿐만 아니라 허공법계에 가득한 인연 있는 중생들을 위해 염불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진서법陳緖法 기록 2004년 6월)
2. 오리를 위해 염불하자 연꽃에 올라 왕생하다
나무아미타불! 저는 불교를 믿은 지 오래되지 않았고, 정식으로 불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일 년 남짓 밖에 안 됐습니다. 매일 아침 시장에 장을 보러 갈 때 저는 항상 ‘나무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육자홍명의 공덕이 불가사의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고득락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인연이 되어 채식을 하고 있지만 저희 가족들은 불교를 믿지도 불법을 배우지도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육식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수순하기 위해 저는 자주 생선과 육류(삼정육)를 사다가 먹여야만 했습니다.
2009년 7월 6일 아침에 저는 또 시장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이번에 오리머리와 오리날개·오리발 몇 개를 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줄곧 그들에게 육자명호를 불러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대략 9시쯤 되어서 오리들에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리)보살님, 저를 따라 함께 한 번에서 열 번 정도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시고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아서 극락왕생하세요. 더 이상 이 육신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마십시오. 서방극락세계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집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열 번 염불을 하고 난 후, 이어서 ‘서방접인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면서 아미타불께서 그들을 서방극락세계로 영접해 가시길 기도했습니다.
환희심을 내어 염불을 하고 있던 저는 어느새 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세 번째 ‘서방접인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을 때, 갑자기 제 눈앞에 분홍색의 연꽃이 나타나더니 하얀 오리 한 마리가 연꽃위에 아주 편안하게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정말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오리가 연꽃위에 앉아서 왕생한 것입니다! 저의 염불소리는 점점 더 커졌으며 점점 더 기뻤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오리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매우 고통스런 일이었지만 지금은 ‘나무아미타불’의 공덕으로 왕생성불 하러 가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번에 오리가 왕생한 사건은 저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직접 아미타불의 원력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들이 나의 명호를 부르되 적게는 열 번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저 부처님은 지금 현재 극락세계에서 부처가 되셨으니, 마땅히 본래 맹세하신 크신 서원이 헛되지 않아 중생들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함을 알라!
감은感恩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호남 연우: 성사聖思 구술, 불후佛煦 정리, 2009년 9월 8일)
3. 닭을 위해 염불하자 부처님께서 닭을 내영하다
저희 처형의 딸, 다시 말해 저희 작은 조카딸은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제 아들이 막 출생할 무렵, 겨우 한 살 남짓밖에 안 되던 조카가 장모님과 함께 저희 집에서 한 달 정도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조카가 혼자서 뛰어노는 것을 보고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동생하고 놀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집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기에 다시 “동생이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더니, “둘째 고모의 뱃속에 있자나요.”라고 답했답니다. 조카딸의 집 근처에 있는 임산부들은 뱃속에 들어있는 애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조카가 말만하면 정확히 맞췄답니다. 여러 번 말했지만 매번 맞았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자주 조카딸한테 물었다고 합니다. 저희 애도 조금은 볼 수 있었습니다. 불경에 설하시길, 어린이들의 마음은 단순하고 질박하며 오염이 적어서 흔히 이러한 능력들이 있으나, 성장하여 지식이 열리게 되면 어릴 때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능력들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2004년 정월 초삼일 날, 저희 가족은 외갓집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장인장모님께서 닭을 잡고 있었는데, 그 당시 이미 불자였던 저는 황급히 마음속으로 닭을 위해 아미타불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간을 염불하고 나서 다시 방에 들어가 닭을 위해 잠깐 동안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그 일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낮에 제가 옆집에 저희 애를 찾으러 갔었는데, 옆집에도 이미 닭을 두 마리 잡아놓은 상태었습니다. 저희 애도 그 곳에 있었고요. 제가 평소에 항상 아들에게 모든 동물들에 대해 자비심이 있어야 하고, 만약에 그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그들을 위해 염불을 해주라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아들에게 닭을 죽이는 것을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봤다면서 누나(저희 조카딸)와 함께 닭을 위해 염불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아미타불께서 연꽃을 가지고 닭을 데리러 오셨는데, 닭이 연꽃위에 오르자마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올라가서 부처님을 따라 갔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기이하다는 생각이 든 저는 혼자 조카에게 달려가서 물어보니 두 애의 말이 똑같았습니다.
저녁식사를 할 때, 저는 갑자기 아침에 장인장모님께서 죽였던 그 닭이 생각나서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물었지요. “너희 집의 닭은 어떻게 된 거니?” 조카는 생각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아미타불이 데려갔어요.”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닭을 잡을 때는 아직 이른 새벽이어서 조카딸이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닭을 위해 염불한 것을 조카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물었지요. “네가 어떻게 안 거니?” “오늘 아침에 꿈속에서 봤어요. 꿈속에서 아미타불이 분홍색 연꽃을 가지고 우리 집 닭을 데리고 갔어요.” 조카의 대답이었습니다.
경전에서 설하길, 아미타불께서 사십팔대원을 세우셨는데, 오로지 죽은 영가들을 서방으로 영접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닭도 중생이므로 누군가 염불해준 인연으로 서방에 왕생한 것은 이상할 것도 없겠지요. 제 생각에는 만약에 시장을 가는 사람마다 염불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부처님을 따라서 서방에 왕생하겠습니까! 닭이 스스로 공부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도와서 염불했음에도 역시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의 지능은 더욱 수승하므로, 먼저 불경을 읽어서 이치를 깨닫고 나서 열심히 수행을 한다면 극락왕생이 더더욱 쉽지 않겠습니까?
(이강李剛 2006년 5월 20일 광주에서)
4. 왕생한 닭이 꿈속에서 소식을 전하다
제 이름은 이후곤李厚坤이며, 호북성 잠강시 어양진 교두촌湖北省潛江市漁洋鎭橋頭村 사람입니다.
2004년 2월의 어느 날 오전, 저희 집에서 키우던 닭 한마리가 불행하게도 오토바이에 치여 죽었습니다. 저는 집사람이 보게 되면 삶아 먹을까봐 두려워서 서둘러 닭을 숨기고는 닭에게 염불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오후와 저녁 시간에 저는 줄곧 몰래몰래 닭을 데리고 염불하였으며, 닭에게 극락세계의 장엄하고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반드시 아미타불께서 우리들을 위해 건립한 극락세계로 가야 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렇게 쭉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닭을 가져다 묻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매장을 할 때 갑자기 닭의 머리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쥐가 뜯어먹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내심 더욱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닭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닭아 닭아! 네가 얼마나 불쌍한지 아니? 네가 닭의 몸을 받은 것 자체가 본래 사람들의 먹거리인데, 내가 어렵사리 너를 숨겨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화를 피할 수가 없으니, 이 육도윤회가 얼마나 괴로운거니! 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을 절대 잊지 말고, 만약에 진짜로 내 말을 들어서 염불왕생하게 된다면 나한데 꼭 알려다오!”
바로 그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잘생긴 젊은 청년 한분이 침대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조금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이 누구신데 이렇게 잘 생겼을까? 나는 당신을 몰라요.”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 청년이 갑자기 몸을 한 번 흔들었더니 등 뒤에 있는 닭털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금세 깨달았습니다. “아! 닭이었구나! 닭이 진짜로 왕생했구나!” 감동한 나머지 저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면서 깨어날 때까지 끊임없이 염불했습니다.
(이후곤李厚坤 기록 2005년 7월 13일)
5. 자비심으로 염불하자 소가 극락왕생하다
제 이름은 시금련施金蓮이고, 호남성 잠강시 노신진 변하칠조湖北省潛江市老新鎭邊河七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올해 마흔살이고요. 2000년에 다행이도 불법을 만났습니다. 농촌에서 자라다 보니 집이 낡아서 불단을 모실 수는 없었지만 염불만큼은 이제까지 중단한 적이 없었습니다.
2006년 정월에 저희 집의 소가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는데,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며칠 안 되어 송아지는 죽고 말았습니다. 제 남편 번우성樊友成은 이를 발견하고 나서 매우 슬퍼하며, 송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왜 죽었어!”
그리고는 송아지를 위해 계속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송아지를 위해 귀의를 하고 법문하고 염불을 해주면서 나무아미타불께서 송아지를 구제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대략 30분 뒤에 저는 송아지에게 말했습니다. “송아지야! 내가 신통력이 없고 천안도 열리지 않아서 네가 이익을 얻었는지 모르겠어. 만약에 이익을 얻었다면 내가 걱정하지 않게 소식을 전해줘!”
뜻밖에도 바로 그날 밤에 제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예쁜 옷을 입은 사람이 저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송아지입니다. 당신들께 특별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아미타불께서 저를 서방극락세계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하신 말씀을 전부 방榜에다 새겨놨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는 깜짝 놀라서 깨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나무아미타불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시금련施金蓮 강술 이요향李耀香 집필 2006년 3월)
6. 고양이를 위해 염불하자 혼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을 다니던 해에 저희 집에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 들어왔는데, 너무나 귀엽고 애교도 많아서 우리 가족은 이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중3을 졸업하기 전, 이 고양이는 임신을 해서 새끼고양이 세 마리를 낳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새끼고양이 세 마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활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셋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했는데, 무슨 영문인지 계속 잠만 자는 것이었습니다. 먹이를 먹일 때도 첫째와 둘째는 서로 먼저 먹으려고 난리인데 셋째는 천천히 몇 입만 먹고는 더 이상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어머니는 셋째를 데리고 수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열이 난지 최소한 열흘은 넘었네요. 현재로서는 주사밖에 놔줄 수 없으니, 호전될 수 있는지 일단 지켜봅시다.” 의사의 말을 들은 저는 매우 괴로웠으나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셋째는 다시 활기차게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튿날도 역시 정상으로 보였지만 삼일 째 되던 날, 셋째가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자세가 예전에 병원을 가기 전과 똑같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데 저는 서둘러 어머니와 오빠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겁이 나서 감히 함께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가망이 없다고 말했을 때 감당할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그 후에 저는 혼자 집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신나게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더욱 자책하였습니다. 왜 조금 더 일찍 열이 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까? 울면 울수록 더욱 괴로워서 저도 모르게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양이 좀 구해주세요! 가엾게 여기시고 제발 도와주세요!”
그날 밤, 우느라고 너무 지친 저는 아주 빨리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상하 이층으로 되어있는 침대가운데 위층에서 자고 있었고, 아래층에는 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마치 누군가 침대에 있는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뜨고서 머리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셋째 새끼고양이가 제가 누워있는 침대위로 기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의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의 신장은 겨우 손바닥만 했고 침대의 사다리 사이 거리는 고양이 신장의 두 배였습니다. 게다가 지금 중병 중에 있는 고양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위로 올라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각을 하는 동시에 고양이는 여전히 한 발짝 한 발짝씩 위로 기어올랐습니다…….
겁이 나기 시작한 저는 반쯤 누워있던 침대에서 저절로 뒤로 물러났습니다. 마침내 기어올라 온 셋째는 제 발 옆에 앉았습니다. 너무나 놀란 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면서 무서워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양이는 아주 편안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고양이와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 저는 고양이의 몸 뒤의 그림자가 특별히 크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고양이가 앉아있는 자세의 형상과 일치하지 않고 중년남자의 검은 그림자였습니다. 제가 그 검은 그림자를 발견함과 동시에 그 그림자는 뜻밖에 저를 향해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해요!” 저는 너무 놀라서 벌벌 떨었습니다.
셋째가 그렇게 작은데 어떻게 그림자는 저렇게 클수가 있지? 제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고 있을 때, 마침 옆방 거실(셋째를 키우던 곳)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고양이를 가져가서 묻어버려요,……이따가 딸이 일어나서 보면 또 울겠어요……”
“알았어! 내가 시장근처에 있는 빈터에다 묻을 게……”
이 일이 발생했을 때, 저는 아직 중학생이었고, 이 기이한 사건은 이미 1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선합니다. 나중에 커서 안 것이지만; 왜 그 중년남자의 검은 그림자가 저에게 고맙다고 했냐하면, 제가 그때 마음속으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양이 좀 구해주세요!”라고 불렀었는데, 불보살님들께서 그 소리를 듣고 오셔서 그를 천도해주셨기 때문에 고양이가 사람의 모습으로 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저는 중생의 구원의 소리를 듣고 괴로움에서 건져주시고, 저를 도와 제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며, 게다가 저로 하여금 불법의 광대무변함을 직접 증명하게 해주신 관세음보살님께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밖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저로 하여금 인간과 축생 사이의 인과윤회를 깨닫게 도와준 새끼고양이의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투고한 이유는, 단지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과 축생의 평등한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기를 바라고,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늘 염불을 하여 부처님 광명의 비춤을 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바로 이른바 ‘일념이 상응하면 일념이 부처요, 염념이 상응하면 염념이 부처로다.’이니, 절대 이 한 구절 명호의 공덕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특히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만났을 때 한 구절 명호는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비심을 내게 하여 부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대만 소기小旗 기록 2003년 2월)
7. 대중을 따라 염불하던 수탉이 서서 죽다
제한諦閑노법사님(1858~1932)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노법사님께서 두타사에서 방장소임을 보고 계실 적에 상주常住의 일과에 대한 규칙은 벌써 세워진 상태였답니다. 매일 아침 공양과 저녁공양을 마친 뒤, 대중들은 다 같이 염불하면서 세 번 요불繞佛을 하고 나서 각자 요사채로 돌아가서 휴식을 했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절에 시계가 없었기에 수탉이 새벽을 알렸는데, 때가 되어 수탉이 한 번 울면 대중들은 모두 기상을 했다지요. 대중들이 법당에 들어가거나 공양시간에 공양을 하러 갈 때도 수탉은 어김없이 따라다녔답니다. 사람들이 바닥에 흘린 밥알은 그 수탉이 다 주어먹었답니다. 공양을 마치고 자리에서 염불을 하고나서 나갈 때가 되면 수탉은 대중들의 맨 뒤에 따라나섭니다. 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하고 계속 부르면 이 수탉도 뒤에서 꼬곡꼬곡하는 소리를 내는데 마치 사람들을 따라 염불하는 것 같았답니다. 희한하지 않나요? 이것은 제한노법사의 말씀입니다. 또 대중들을 따라서 요불을 하고, 사람들이 요불을 마치고 법당 밖으로 나가면 수탉도 따라서 나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요불을 마치고 다 나갔는데 이 수탉은 나가려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법당소임을 맡은 스님이 말했지요. “넌 왜 아직 안 나가는 거니? 염불을 마쳤으니 이제 문을 잠가야해!” 법당 문을 잠그는 것은 사람들이 와서 어지럽힐까봐 걱정돼서이지요. 수탉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더니 바로 불단 앞에 서서 머리를 치켜들고 꼬곡꼬곡하며 크게 세 번 소리를 지르고는 죽었습니다! 서서 죽었습니다. 보세요! 수탉이 뭘 불렀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정확히 발음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염불만 하면 수탉은 따라서 부르고 따라서 요불도 했습니다. 보세요, 얼마나 영성靈性이 있습니까? 이 사건은 제한노법사님이 온주의 두타사에서 방장을 하고 계실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축생의 염불왕생에 대해 증명을 하고 증거를 남기려는 것입니다.
(담허노법사 불칠법문)
8. 사납고 싸움을 좋아하던 닭이 염불하며 서서 죽다
청나라 광서光緖 29(1903)년, 허운화상이 곤명昆明의 복흥사福興寺에서 패관수행을 하던 때였다.
하루는 영상사迎祥寺로부터 스님 한분이 오셔서 절에 방생한 수탉 한 마리가 있는데, 몸무게가 수근數斤에 달하고 아주 사납고 싸움을 좋아하여 다른 닭들이 모두 머리와 날개를 다쳤다고 하였다. 운공(허운화상)은 곧바로 그 닭을 위해 삼귀의와 오계를 설하시고 염불을 가르쳤다. 그러자 그 닭은 다시는 싸우지 않고 홀로 나무위에서 살았으며, 더 이상 벌레와 개미를 죽이지 않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 먹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종소리와 경쇠소리만 들으면 대중들을 따라서 법당에 들어갔으며, 예불을 마치면 어김없이 나무위에서 머물렀다. 또 사람들이 염불을 가르치면 불불불 하는 소리도 내었다.
그 뒤로 2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예불을 마치고는 똑바로 서서 머리를 들고 세 번 날갯짓을 하면서 염불하는 모습으로 서서 죽었다. 그 모습이 며칠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감실에 넣어 묻어주었다.
(허운화상연보虛雲和尙年譜)
9. 염불이 끊이지 않던 수탉이 서서 죽다
명나라 사종숭정년간思宗崇禎年間(1628-1643), 오설애吳雪崖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복주福州(福建)에서 사리(司理:소송사건을 주관함)직을 맡고 있었는데, 평생을 독실한 불자로 살았다. 현지 개원사의 스님들은 대다수가 육식을 하며 계행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오설애는 돌에다 글을 새겨서 그들의 범계를 제지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오설애가 선방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닭이 염불하는 소리가 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리를 따라 그 닭을 찾아서 스님들에게 말했다. “스님들께서는 개원사에 이미 오랫동안 동물을 키우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닭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런 축생들조차도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신들은 머리 깎고 출가를 하고도 파계를 하였으니, 실제로 이 염불할 줄 아는 닭보다도 크게 못한 줄 아시오!” 개원사의 스님들은 그제서야 재계齋戒를 지키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래서 오설애는 이 닭을 관청에 데려가서 기르게 되었는데, 이 닭은 항상 염불을 하며 중단하지 않았다. 나중에 오설애는 단양(안휘)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기에 이 닭을 해회암으로 보내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중생들을 제접하는 도량이어서 이렇게 하면 원근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닭은 해회암에 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염불하며 서서 왕생하였는데, 대중들은 닭을 위해 탑을 만들어 모셨다고 한다.
(정토의 새벽 종 淨土晨鐘)
10. 폐관 삼년에 수탉이 서서 죽다
명나라 중주(호남)지방의 승려 각원覺圓은 여산의 동림사에서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올리기 위해 패관수행을 함으로써 모금하고 있었다.
이 때에 호관(護關)을 하던 스님이 화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가서 탁발하고 돌아오는데, 수탉 한 마리가 이 스님을 따라 중도까지 나선 것이었다. 닭을 발견한 스님은 그 닭을 다시 화씨 성을 가진 사람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화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집 문을 닫아버리자 이 수탉은 지붕으로부터 날아 나와 스님의 뒤를 쫓아서 각원법사가 폐관수행하는 곳까지 따라와서는 바깥에서 배회하며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원법사와 함께 삼년을 폐관하게 되었다.
나중에 법사는 수탉을 동림사로 데려 가서 수계를 해주었다. 매일 대중들이 법당에 들어가 염불을 할 때마다 수탉은 대중들을 따라서 염불을 하였다.
이렇게 일 년이 지나서 대중공양을 마치자 수탉은 곧바로 서서 왕생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동림사 옆에 묻어주었다.
(정토의 새벽 종 淨土晨鐘)
11. 거위 한 쌍이 염불하여 선후로 왕생하다
민국 9년(1920), 장추선張抽仙거사가 암수 거위 두 마리를 곤명의 운서사雲棲寺에 보내어 방생하였다. 허운화상이 거위들을 위해 삼귀의와 오계를 설하자 모두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들었으며, 계를 설해 마치자 머리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뒤로 낮에는 깨끗한 물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산문을 지켰다. 매일 조석예불을 할 때마다 사람들을 따라서 법당에 들어가 목을 길게 빼고 관불觀佛을 하면서 잠시도 눈을 때지 않았다. 또 염송하는 소리를 들으면 시청을 하고 염불소리를 들으면 크게 울고 요불을 하면 따라서 요불을 하는데 오래오래 변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다 좋아하였다.
이렇게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암 거위가 문득 대웅전 문 앞에서 세 바퀴를 돌더니 머리를 들고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몇 번을 길게 울면서 죽었다. 털이 시들지 않아 나무함에 넣어 묻어주었다.
수컷은 밤마다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았는데, 그 마음이 마치 암 거위를 연모하는 것 같았으며, 목욕도 하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았으니 그 모습이 매우 슬퍼보였다. 그러나 매일 법당에 들어왔으며, 예전처럼 관불을 하였다.
유나스님은 수컷 거위가 괴로워하며 즐겁지 않은 모습을 보고는 경쇠를 치면서 일어주었다. “너는 짝을 잃고 매우 괴로워하고 있구나. 네가 관불을 안다면 마땅히 아미타불을 불러서 극락왕생을 구해야지 이 괴로운 몸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중들이 너를 도와 염불을 할 터이니 너는 왕생할 생각을 마음에 두고 들어야 한다.” 한 번 경쇠를 칠 때마다 한 번의 부처님 명호, 이렇게 대략 수십 번 염불을 하고 나서 목을 구부려 부처님께 절을 하는 모습을 하더니 다시 일어나서 세 바퀴를 돌고 날갯짓을 한 번하고는 날개를 거두고 발을 굽히면서 바로 죽었다.
여전히 작은 관에 넣어서 두 거위에게 무덤 하나를 만들어 주었으며, 장위문張爲文이 이를 기록하였다. (허운화상연보)
12. 고요함을 즐기던 흰 거위가 염불왕생하다
민국 21(1932)년, 허운화상은 고산방생원鼓山放生園을 만들었다. 이듬해 6월 초이튿날 사중 스님들과 남녀 거사 500여명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수많은 방생자 가운데 당연히 허공虛公이 단에 올라 설법하게 되었는데, 원음圓音으로 연설하니 다른 부류들도 똑같이 이해를 하였다.
정금초鄭琴樵거사가 방생한 거위 한 떼 속에는 흰색 수컷 거위 한 마리가 있었는데 무게가 열여섯 근에 달했다. 우두커니 외진 곳에 서 있으면서, 그 뒤로 목욕도 하지 않고 무리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부처님을 모신 누각 밑에서 살금살금 기어 다니는데, 먹이를 줘도 먹지 않고 소량의 물만 마시면서 사람을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떤 사람이 너는 ‘응당 염불해야 한다.’고 일러주면 날개를 펴고 소리를 지르는데 마치 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 같았으며 여러번 해봐도 틀리지 않았다. 또 대종과 목어 소리를 들으면 구슬프게 우는데, 마치 법문을 듣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거위를 안고서 법당에 들어가면 차분하게 불상을 주시하면서 어떤 생각에 잠긴 듯 하였으며, 예불을 마쳤는데도 여전히 떠나기 아쉬워하였다.
17일 밤, 대중을 따라서 평소대로 예불을 드리고는 갑자기 아미타불 네 자를 높은 소리로 불렀으니, 그 소리가 역력하게 들렸다. 9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눈을 감고 꼿꼿이 서 있어서 법당 밖으로 안고 나와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허물을 벗은(죽은) 것이었다.
다음 날 매장용 구덩이로 보내졌으나 여전히 따뜻하고 유연하고 향기롭고 깨끗하여 차마 그냥 묻을 수가 없었다. 정금초거사는 그 기이함을 드러내기 위해 스님들처럼 다비할 것을 청하고는 거위를 위해 무덤을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마침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닷새 후에 다비식을 거행하였으나 이상한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불학반월간佛學半月刊』 64 및 88기)
13. 서방에서 온 앵무새가 다시 서방으로 돌아가다
영남지방의 어느 유생이 키우던 흰색 앵무새였는데, 아침마다 필히 ‘관음성호’·‘백의신주’를 외웠으며, 아울러 ’귀거래사歸去來辭‘·’적벽부赤壁賦‘ 및 이태백의 여러 가지 시를 외울 수 있었다.
간혹 새벽일과를 마치지 못했을 때 다른 시문詩文을 가르치더라도 응하지 않았다.
하루는 유생에게 “나는 서방에서 왔는데, 이제 다시 서방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는 그날 밤 홀연히 죽었다.
(견문록)
14. 구관조가 염불하여 입에서 연꽃이 피다
송나라 원우(元祐:1086-1093)년간, 장사군長沙郡에 사는 어느 한 분이 구관조 한 마리를 길렀다. 이 구관조는 우연히 한 스님이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을 듣고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바로 따라서 칭념하였는데, 온종일 염불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이 구관조를 스님에게 드렸다.
시간이 지나 새가 죽자 스님은 관을 갖추어 묻어주었는데, 갑자기 입으로부터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어떤 이가 게송을 짓기를,
신령한 구관조 한 마리
스님따라 아미타불 부르고
죽어 묻은 평지 연꽃 피어오르니
사람인 우리도 그만 못하구나.
또, 천태 황엄 정등사의 관스님이 구관조 한 마리를 길렀는데, 항상 사람들을 따라 아미타불을 불렀다. 하루는 아침에 새장에서 서서 죽었기에 땅을 파서 묻어주었더니, 혀끝에서 자줏빛 연꽃이 피어난 것이었다.
구관조를 위해 대지율사가 게송을 적었는데, ‘닫힌 새장에 서서 죽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나, 자줏빛 연꽃으로 변화하니 크게 기이하도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불조통기 佛祖統記)
16. 가릉조가 염불하여 연꽃이 피다 (1)
타이베이의 남항南港에 구邱거사라는 분이 있는데, 불법을 배우기 전에는 자주 술을 마시면서 흐리멍덩하게 살았으나 인연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수행을 한 뒤부터는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번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장에서 ‘가릉조迦陵鳥’ 한 마리를 샀는데, 처음에는 재미를 위해 가릉조에게 ‘아미타불’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매일 같이 부르도록 가르치다보니 오랜 시일이 지나 이 새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새가 염불을 하는 것을 듣고는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 새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구거사는 매우 아쉬웠습니다. 어렵사리 새에게 염불하도록 가르쳐놓았으니 참으로 아까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사람이 죽어서 입관하는 방식에 따라 직접 나무판자로 작은 나무함을 하나 만들어 그 새를 넣고는 뒷산에서 장소를 찾아 새를 묻어주었습니다.
마침 구거사가 세심한 사람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살펴보면서 간 김에 그곳을 손질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향 한 자루가 타는 반시간 동안 새에게 염불을 해주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은연중에 귓가에서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고 부르는 새 소리가 매우 친근하게 들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가릉조 한 마리가 평소에 그가 책을 보던 방의 창살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구거사는 매우 기뻐하여 마음속으로 혹시 그 새가 다시 부활한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생각을 너무한 탓에 그는 틀림없이 그 새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새는 조금 있다가 그만 날아가 버렸는데, 날아갈 때 또 한 번 아미타불! 하고 불렀습니다.
구거사가 ‘가릉조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바로 새를 묻은 장소에 달려가 보았더니, 보지 않았으면 몰라도 보고 난 뒤 바로 오체투지를 하면서 꿇어앉게 되었습니다. 구거사가 높이 솟아오른 곳을 보았더니 뜻밖에도 옅은 자주색 연꽃과 같은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것이었습니다. 구거사가 주변에 있는 들꽃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이런 품종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매우 희귀하고도 불가사의하여 바로 집에 가서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서 확대를 하였는데, 확대를 하고 나서 다시 보니 연꽃과 매우 닮은 것이었습니다. 삼일 뒤, 죽은 가릉조가 그의 꿈속에 나타나 외쳤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 뒤로 구거사는 염불을 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공덕력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날짐승조차도 염불하여 모두 왕생할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사람들이겠습니까!
(『지청법사地淸法師가 과보의 견증을 말하다』 제2집)
17. 가릉조가 염불하여 연꽃이 피다 (2)
십여 년 전에 제가 도원桃園의 중력中儮에서 포교를 할 때, 내력內儮에서 동童거사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집은 삼합원三合院 형태의 전통식 건축물이었는데, 작은 법당이 있어서 평소에 근 열 분에 달하는 사형사저들이 모여 함께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도 아마 거기에 머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동거사의 집에도 가릉조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조류 중에 앵무새와 가릉은 선근형에 속하여 당신이 그 새에게 간단한 말을 가르쳐 주면 따라서 말할 줄도 알고, 염불을 가르쳐주면 염불도 할 줄 압니다. 특히 가릉조의 머리는 굉장히 좋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동거사는 가릉조에게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매번 사람을 볼 때마다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만약 우리의 염불도 가릉조처럼 올곧은 마음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분별하지 않고 “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부른다면 왕생을 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제 뜻은 이 새가 동거사의 오랜 기간 훈련을 받고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그 새의 선근과 복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인연이 별로 좋지 않아서 가릉조가 죽었습니다. 처음엔 동거사가 발견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늘 새장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가릉조가 왜 네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 안타깝게도 가릉조가 새장속의 나무 막대기 위에 서서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동거사는 매우 감동을 하였습니다. 가릉조는 본래 축생도에 속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아침저녁으로 동거사의 한 구절 부처님 명호의 공양에 의지하여 마침내 이처럼 두터운 선근이 있어서 서서 왕생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이것 역시 핵심은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느 날 제가 다시 내력으로 돌아가 동거사를 찾았는데, 문득 가릉조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동거사에게 “거사님의 새 보살은요? 방생하셨나요?”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지요. “그런 거 아닙니다! 가릉조는 이미 보름 전에 왕생했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말을 하면서 바로 저를 데리고 집 뒤에 있는 화원으로 갔습니다.
순간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뜻밖에 남항 구거사 집의 가릉조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가릉조를 묻어둔 곳에서 대략 농업시대에 유통되었던 오원짜리 동전크기의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연꽃을 닮았을 뿐더러 오직 이 한 송이밖에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동거사는 이 꽃이 자라난 범위에 따라서 땅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둘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 꽃은 가릉조의 뾰족한 주둥이로부터 자라나온 것이었습니다. 보세요, 불가사의하지 않나요? 이때 가릉조의 몸으로부터 은은한 향기까지 났다니까요. 참으로 불가사의했습니다! 가릉조가 왕생한지 이미 보름이 지났는데도 몸에 나쁜 냄새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깃털조차도 아직 광택이 있었으니, 보고 나서 아깝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는 가릉조가 주인의 조연에 의해 이러한 복을 심게 되었고, 또 천 년의 긴 세월 동안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만약에 우리가 정진을 한다면 절대 가릉조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격려를 해주십시오! 이 ‘나무아미타불’ 명호의 공덕은 무량무변하여 우리가 수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숙세의 업장을 소멸한다든지 아니면 복과 지혜를 늘린다든지 자손·권속들을 보살핀다든지 하는 소원들을 모두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지장경』의 「업연품」·「업감품」·「지옥품」에 의하면 저를 포함해서 누구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부정업不淨業·부정연不淨緣·부정물不淨物들이 우리 일상의 신구의 가운데 가득히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서, 자신의 업을 정화시키려면 반드시 자력과 타력에 의지하여 함께 나란히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청법사地淸法師가 과보의 견증을 말하다』 제2집)
18. 지성으로 염불하자 다람쥐가 서상을 나타내다
1998년 9월 방생을 할 때, 제가 병든 다람쥐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원래 생각하기를 한동안 키우다가 다시 방생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다람쥐가 아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정신은 갈수록 나빠지더니 나중에는 겨우 숨만 붙어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람쥐를 새장 속에서 꺼내어 침대위에 내려놓고, 저도 침대 맡에 앉아서 한편으로 다람쥐에게 염불을 해주면서 한편으로 아미타불께서 접인 해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다람쥐에게 염불기를 틀어주고 낮에는 제가 다시 이어서 염불을 해주었습니다. 다람쥐는 염불소리 가운데서 천천히 호흡을 멈추었습니다.
다람쥐가 죽고 나서 저와 염불기는 교대로 다람쥐를 위해 여덟 시간을 염불해 주었습니다. 염불도중에 손으로 가볍게 밑에서 위로 다람쥐의 몸을 더듬어 보았더니 온몸이 완전히 차가워졌는데도 정수리만은 온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게 바로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지 않나요? 저는 정말이지 이게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살짝 두 번을 만져보니 여전히 정수리가 약간 따뜻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저는 다람쥐를 이틀을 더 두고 계속 염불기를 틀어주었습니다. 48시간이 지나서 제가 다람쥐를 손바닥에 올려놓았을 때, 다람쥐의 전신은 굉장히 유연하여 작은 팔다리를 마음대로 굽힐 수 있었는데, 전혀 딱딱하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다람쥐를 나무 밑에다 묻어 주었습니다.
다람쥐가 왕생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저는 모릅니다. 다만, 정수리가 맨 마지막에 차가워졌고, 또 이틀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온몸이 부드러운 현상으로부터 봤을 때, 저는 다람쥐가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갔을 거고, 틀림없이 악도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다람쥐가 내생에서 행복하기를 축원합니다. 이 일을 겪고 난 저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하는 공덕이 확실히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더욱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2005년 5월 7일 조석령趙錫玲 기록)
19. 유구필응有求必應하여 토끼가 왕생하다
올 봄에 아들이 토끼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굉장히 귀여웠습니다. 바구니에 넣어 기르면서 매일 한 번씩 풀어주었더니 거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골칫거리가 생겼습니다. 토끼가 똥을 너무 많이 싸고 또 냄새까지 지독했습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저는 토끼를 안고서 불상 앞에 서서 아미타불과 마음을 터놓고 말씀드렸지요. “나무아미타불:
첫째, 제가 이 토끼를 방생하고 싶지만, 어디에다 방생하든 간에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잡혀서 ‘맛있는 음식’이 될 가능성이 있고, 설사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더라도 다른 동물들로부터 상해를 입게 되므로, 이 첫 번째는 실행될 수 없습니다.
둘째, 저는 이 토끼가 일주일 내에 죽기를 원합니다.(아이고! 인정머리가 없네요!) 제 생각에는 이 토끼가 수없이 육도윤회를 하면서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에 이 토끼가 제가 기르는 동안에 죽게 된다면 저는 이 토끼가 부처님의 명호를 따라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랍니다.”
그 뒤로 저는 각별히 신경 써서 토끼를 길렀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난 그날 아침에, 저는 평소대로 토끼를 거실에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토끼는 여기저기 막 뛰어다니지 않고 계속 저만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딜 가던 토끼도 그곳으로 따라왔는데, 이런 현상은 요 며칠 동안 없었던 것입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저는 문득 창턱위에 있는 토끼우리에 토끼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 큰 일 났습니다! 토끼는 우리 밑에서 전신이 축 처져서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토끼를 안고 법당에 들어가 소파에 앉아서 가슴 아파하며 토끼를 들고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하면 이름듣고 왕생하고자 하는 이는 모두 다 저 나라에 왕생하여 저절로 불퇴전에 이르게 되느니라. 나무아미타불……” 이때가 오후 6시 10분이었는데, 6시 25분까지 염불하고는 토끼의 복부 쪽에 아직 미약한 기복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봤더니 아무리 봐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저는 아마도 이미 아미타불께서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몇 분 정도 염불을 하였는데, 갑자기 토끼가 길게 한번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리는 가늘고 날카로우면서도 크게 울렸습니다. 토끼의 그 당시 상태로는 절대 그처럼 울리고 그처럼 길게 울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 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쁘고 흥분되고 해탈하는 심정을 느끼게 하였으며, 그 긴 울음소리와 함께 뒷다리를 쭉 뻗고는 죽었습니다. 저는 다시 부처님의 명호로써 한동안 토끼를 배웅하고 싶어서 계속해서 밤 7시까지 염불하였습니다. 토끼가 저희 집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죽는 이날 까지 꼬박 7일이 걸렸습니다.
그 뒤로 매번 제가 채소를 씻거나 청소를 하면서 작은 벌레나 거미나 날벌레나 잠자리 등을 보게 되면, 항상 그들을 위해 세 번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주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손바닥에서 마구 날뛰던 벌레들이 부처님의 명호를 듣기만 하면 옴짝달싹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염불을 다하고 나서 다시 도망을 가려 할 때, 저는 가볍게 입김을 불어서 그들을 바깥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2000년 10월 6일 정생淨生거사가 사실을 기록함)
20. 실험실의 토끼에게 염불하여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다
2008년 10월, 우리는 ‘호흡에 미치는 영향과 혈압의 변화’에 대한 생리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때 내가 비록 불법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동물을 가지고 실험한다는 것은 여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염불기를 가지고 가서 실험대위에 있는 토끼들을 위해 ‘나무아미타불’육자명호를 틀어주고 마음속으로도 염불을 해주었다. 그 당시 나는 부처님의 명호를 통해 토끼들이 받게 되는 고통과 공포를 덜어줌과 동시에 그 토끼들이 내생에는 불법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두 시간 넘게 지나서 우리 팀의 실험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때 토끼는 기관지가 이미 절단되었고, 경동맥·정맥과 미주신경 등도 모두 절단되었으며, 실험을 하면서 여러 가지 실험 약품들을 투여한 상태였다. 그 당시 토끼는 눈을 살짝 감고 두 귀는 힘없이 아래로 축 처져 있었으며, 호흡이 미약하고 전신에 전혀 윤기가 없었다. 팀장은 나에게 회수통에다 토끼를 버리라고 하였다. 토끼를 손에 들고 있었더니 온몸이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지기에 토끼를 위해 부처님의 명호를 몇 번 불러주었다. 막 토끼를 회수통에 넣으려던 순간,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는 것이었다. ‘아직 한 시간정도 지나야 수업을 마치는데, 왜 토끼를 위해 염불해주지 않지?’ (우리 팀의 토끼는 선생님이 직접 시교示敎한 토끼이여서 한 시간 일찍 실험을 끝냈다.)
그래서 나는 토끼를 품에 안고서 가슴 앞에 걸려 있는 염불기를 토끼와 아주 가깝게 대고는 또 작은 목소리로 염불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어떠한 기적이 나타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다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 토끼를 위해 염불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반시간 정도 염불하고 나서 놀랍게도 힘없이 살짝 감고 있던 토끼의 두 눈이 뜻밖에도 이미 떠져 있었고 두 귀도 기적처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본래 미약했던 호흡도 현재 이미 염불하는 소리를 따라서 리듬감 있게 진행되었다(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토끼의 기관지와 미주신경은 이미 다 끊어졌는데, 어떻게 입과 코는 여전히 호흡을 따라서 열었다 닫았다 하는지 였다.)! 그 순간 나의 마음에는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이 일어났으며, 토끼의 차분하고 생기 있는 모습을 보고는 염불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염불을 하다 보니 토끼의 정신은 더욱 좋아지고 두 눈에 눈빛이 형형하였으며 몸도 따뜻하게 변하였다. 갑자기 토끼의 두 눈이 축축해지더니 눈가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물 몇 방울이 걸려 있었다. 토끼가 감동을 한 걸까, 아니면 기뻐서일까?
그 당시에 나는 토끼를 위해서 이렇게 염불해주면 토끼가 왕생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문득 어떤 사람이 무릎을 꿇고 환자를 위해 독경을 해주던 광경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토끼에게 염불을 해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주변의 일체를 잊어버리고(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그 당시에 어떻게 토끼 한 마리를 위해 무릎을 꿇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토끼를 위해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준 것이었다. 어느새 토끼 몸의 털들은 점점 윤기가 흐르기 시작하였고, 특히 입주변의 털들은 특별히 희고도 빛났다. 토끼의 모습은 조용하고 차분하였는데, 절대 몇 시간의 실험을 거친 뒤 온몸이 이미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을 당한 토끼 같지가 않았었다. 토끼의 태연자약한 모습은 마치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았으며, 심지어 정상적인 토기보다 더 사랑스러웠고 마치 갓난 애기처럼 귀여웠다. 아무리 많은 문자로도 토끼의 그 당시 표정을 묘사할 수 없었으며, 지금에 이르러 다시 생각해봐도 아직도 그 때문에 몹시 놀라며 감탄하게 된다.
수업을 마치자 다른 팀의 실험도 끝이 났다. 실험에 사용되었던 토끼들은 회수통에 버려져 몇 번 발버둥 치다가 이내 숨을 거두었다. 나는 내가 부른 부처님의 명호가 그 토끼들을 전부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주기를 바랐다. 내 손위에 있던 맨 먼저 실험을 한 이 토끼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부득불 회수통에 넣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 토끼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난 이제 가야해, 넌 슬퍼하지 말고 안심하고 극락세계로 가!” 갑자기 토끼가 두어 번 발버둥을 치더니 다시 눈물 두 방울을 떨구었다. 나는 토끼를 내려놓으면서 왕생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실험실을 떠나면서 나는 여전히 토끼를 위해 염불을 해주었다. 숙소에 돌아온 뒤에도 염불하여 회향해 주면서 오로지 토끼가 이미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맹춘련 2009년 10월 26일 광서 중의학원에서)
21. 죽은 소가 천도되어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다
19년 전에 나는 나무를 나르려고 한 두 살 된 소 한 마리를 샀는데, 아주 귀여웠다. 나는 그 소를 매우 아끼면서 절대 남들이 사용하도록 빌려주지 않았다. 이 소는 일을 하는데 힘이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 일반적으로 아무리 큰 소라도 7·80센티 정도 되는 나무를 끌 수 있었지만 나의 이 소는 키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1·2미터나 되는 나무도 끌 수 있었다. 수레를 메울 때도 한번 젖히기만 하면 스스로 들어갔으며, 매년 겨울이 되면 나에게 수천 원씩 벌어다 주었다.
나와 소는 차츰차츰 감정이 생겨 친형제처럼 서로 감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소가 설사 눈앞에 없더라도 나는 어느 산골짜기에 있고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알아서 가기만 하면 생각한대로 거기에 있었다.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나 소가 늙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고 걸음걸이에도 힘이 없었기에 나는 소를 잡는 사람에게 팔았더니 당일 밤에 그 소가 눈물을 흘리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에 내가 그 소를 보러 갔다가 마음이 몹시 불편하여 먹을 것을 주었더니 한입도 먹지 않았는데, 저녁에 죽임을 당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후로부터 나는 자주 이 소를 꿈꾸었다. 어떤 때는 나를 막 쫓아와서 나를 공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에게 경고를 주기도 하였다. 이 소를 꿈꿀 때마다 이튿날이 되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으니, 몇 년 동안 하나의 법칙이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 소를 꿈꾸고 나면 이튿날에는 아예 일을 나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 소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아마도 나에 대해 한편으로 사랑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원망하기도 해서일 것이다.
내가 상해에 와서도 여러 번 꿈꾼 적이 있는데, 둘째 누나 왕항매王恒梅가 날더러 칠일동안 염불을 하되 매일 백팔염주를 21바퀴 돌리고 염불을 하고 난 뒤에 소에게 회향해 주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소가 다시는 나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아마도 부처님의 공덕으로 천도된 게 아닌가 싶다.
(진염권秦艶權 구술 정종淨宗 기록 2004년 10월 30일 상해에서)
22. 아미타불의 성호로써 96마리 소의 혼령을 제도하다
96마리 소의 혼령은 사천성(四川省) 남부에 사는 유정밀(劉淨密)거사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섭씨 아주머니가 전생에 도살한 소들이다. 섭 씨는 사천 사람으로 시집을 간 뒤로부터 자주 귀신들에게 시달렸는데, 매년 반드시 몇 번 발작을 하였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민국21년(1932) 2월 유거사 집에서 가사를 돕던 도중 갑자기 심한 병이 생기더니 온몸에 붉은 색 흉이 지면서 통증과 가려움이 몹시 심하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밖으로 달려 나가 강을 찾아서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하였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저지를 당했는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를 도살하는 참혹한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가 낭랑하여 곡조를 이루었고 소동을 그치지 않았다.
유정밀 거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섭 씨가 대답했다. “어르신은 도량이 넓고 크십니다. 저는 섭 씨가 아니라 그녀가 먼 과거 생 이전에 만현萬縣(지명)에서 백정노릇을 할 때 죽임을 당한 소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에게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인데, 96마리가 있습니다.”
이에 유정밀거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사실은 너희들이 먼저 그녀를 죽였기 때문에 다음에 소가 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녀가 어떻게 마침 너희 96목숨만을 빼앗았겠느냐? 지금 너희들은 먼저 그녀를 죽인 것은 잊고서 그녀가 너희들을 죽인 것만 기억하고 있으니 이렇게 원수를 찾아 돌고 도는 것을 고통스런 윤회라고 부른다. 영원히 서로 죽이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만약에 그러하다면 저희들이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목에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고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 고통 때문에 그 근원을 생각하여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소의 말을 들은 유정밀은 “그걸 없애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찻잔에 차를 반쯤 따라오라고 하인에게 시키고는 감로주甘露呪를 세 번 외운 뒤 섭 씨에게 마시라고 하였다. 그런데 섭씨의 손이 굽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소 발굽으로 어떻게 찻잔을 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인을 시켜 섭씨에게 먹여주었다.
차를 마시자마자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로 신묘한 물입니다.”
그러고는 섭씨의 목을 만지면서 “이미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손을 만지면서 “소 발굽도 이미 벗어버렸습니다.”고 말하고, 다시 머리를 만지면서 “뿔도 이미 없어졌습니다.”고 말했다.
너무나 경사스러운 나머지 허공을 향해서도 말했다.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만약에 앞으로 다시 나를 우왕보살牛王菩薩이라고 부르면 그때는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유정밀은 이어서 그들을 위해 윤회할 때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또 극락세계의 안온하고 즐거우며 영원히 생사의 고통을 면할 수 있음에 대해 설명하고는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느냐?”
“어르신의 말씀대로라면 어찌 원치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은 죄업의 장애가 두터운데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발원하여 염불하며 저 극락세계를 기뻐하며 흠모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위해 아미타 부처님을 청하여 너희들을 영접하게 하겠다. 그렇게 하겠느냐?”
“좋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오랫동안 굶주리고 있었으니 먼저 음식을 조금 주시길 바랍니다.”
유정밀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과 밥을 담아 변식진언을 일곱 번 외우고 나서 대나무 밭에 뿌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의 혼령들이 “우리는 이제 많이 먹어서 배가 부릅니다.”라고 말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유정밀은 곧 뒷 창문 쪽의 공터에서 향과 초를 사르며 아미타 부처님을 공손히 청하고는 왕생주, 반야심경, 대비주 및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하였다.
이때 유거사의 처 왕지서汪志西가 방에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보아라. 아미타부처님께서 청하자마자 바로 오셔서 창밖에 장륙금신丈六金身으로 높이 서계신다. 모두 빨리 준비하여 부처님을 따라가거라!”
또 묻기를 “너희들은 극락정토가 보이느냐?”고 하자 “보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모습이 어떠하냐?”고 묻자 극락정토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정토경전에 모두 부합하였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지성으로 감사드리며 말했다.
“이번에 베풀어 주신 호의는 저희들로 하여금 여러 생의 원한이 하루 아침에 녹게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여러 해 동안 섭씨를 괴롭혀서 항상 고통에 시달리게 하였지만 이제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을 받아서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섭씨 이 사람도 어르신께서 자비로 거두시어 염불하여 함께 서방에 왕생할 수 있도록 타일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날에 어르신 부부가 서방정토에 왕생하실 때 저희들이 반드시 부처님을 따라 영접하러 올 것이며, 오늘 날 염불한 공덕을 다시 돌려드려서 어르신이 받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조용해졌다.
얼마 후 섭씨가 깨어났는데 그녀에게 묻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마치 꿈속에서 성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서쪽 거리로 가다가 한 무리의 소떼가 흉악한 모습으로 저를 향해 오는 것을 봤습니다. 그 소들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긴장되고 겁이나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주변 경치가 변하여 평평한 바닥과 우거진 나무숲이 깨끗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놀기에 딱 좋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밥 향기가 평소보다 강하게 나더니, 소떼가 숲에서 밥을 먹으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분명하게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그 후 다시는 소의 혼령이 섭씨를 괴롭히지 않았고, 섭 씨도 줄곧 채식을 하였다.
유정밀 거사는 민국23년(1934) 봄 서강(西康)에서 출가하여 법명은 혜정(慧定)이고, 위의 이야기는 출가하기 전에 겪은 일은 기록한 것이다.
(『개대환희 皆大歡喜』제1집)
23. 돼지가 영성이 있어서 배불하며 염불하다
2003년 8월, 나는 부모님을 뵈러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보니 돼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곧 잡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록 이 돼지를 구해줄 힘이 없었지만 아미타불께서 돼지를 구제하여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돼지를 향해 나무아미타불명호를 불러주고 삼귀의를 해주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오늘 승보의 이름으로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전하기 위해 너에게 법문을 해주겠다. 네가 과거 생에 어리석은 한 생각으로 인해 삼보를 공경하지 않고 인과를 믿지 않았으며 갖가지 악업을 지었기에 윤회가운데 떨어져 오랜 세월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금생에도 축생이 되어 피와 살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빚을 갚느라고 사람들에게 도살을 당하는 것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만약에 내 말을 알아듣는다면 당장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나무아미타불을 믿고 아미타불의 구제에 의지하고 아미타불의 대원업력에 올라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다시는 윤회의 괴로운 과보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미타불께서 우리를 위해 48대원을 세우시고 시방중생을 구제하여 모두 당신이 성취하신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신다. 비록 네가 축생이지만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기필코 왕생할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아미타불의 구제를 받아야 한다.”
축생도 감정이 통하는지라 내가 말을 마치자 이 돼지는 바로 먹이를 먹던 것을 중단하고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보면서 입으로 “흥·흥·흥”하는 소리를 내었는데 마치 염불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뒤로 도살되기 전까지 부친께서 매일 돼지에게 네 번씩 염불을 가르쳤는데, 그때마다 돼지는 앞발굽을 꿇고 앉아있었으니 마치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왕씨 도살업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야! 이상한 일! 내가 여러 해 동안 돼지를 잡았지만 당신 집의 돼지와 같은 경우는 보지 못했네. 글쎄 고기를 밤새 놔뒀는데도 이튿날에 여전히 따뜻하였으니 정말 보살이 영험을 나타낸 것이야. 앞으로 나도 염불을 해야겠어!”
(석종도釋宗道 기록)
24. 악업도 아미타불의 구제를 장애하지 못하다
나의 귀의은사이신 북경 법원사法源寺 진명鎭明노스님은 나와 같은 고향으로, 모두 사천성四川省 재동현梓潼縣 사람이고 일생동안 오로지 정토수행만 하신 분이다.
1992년 내가 아직 출가하기 전에 나에게 전수염불하기를 권하기 위해 노장께서는 늘 나의 손을 잡고서 벽에 써져 있는 연지대사의 법어 한 단락을 가리키며 나에게 읽어주시곤 하셨는데, 지금까지도 그 법어를 기억하고 있다. “대장경에서 설명하는 것은 계·정·혜에 지나지 않는다. 염불이 바로 계·정·혜인데 어찌 따로 문장을 찾고 글을 쫓을 필요가 있겠는가!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고 목숨 또한 견고하게 오래가지 못하나니 원컨대 모든 행자들은 정업을 급선무로 삼기를 바란다.” 아울러 직접 나에게 당신이 어렸을 적에 고향 재동현 자강진에서 발생한 ‘비록 악인의 파괴를 만났으나 여전히 염불왕생한’ 실제의 사례를 말씀해 주셨다.
이 사례가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신심을 줄 수 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이 선하다. 다만 그 당시에 감동적인 이야기만 듣느라 당사자들의 이름에 대해 유심히 듣지 않았고, 또 스님께서 1996년에 왕생하셨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름에 대해 이미 자세히 조사할 수가 없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사천성 재동현에 농촌 부부 한 쌍이 있었는데, 나이는 대략 마흔 살 정도였고 자식은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매우 기뻐하며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에게 아주 기쁜 소식 하나를 말할게요!”
“무슨 좋은 일인데?”
“내가 오늘 사람들의 권유를 받았는데, 이제부터 채식하며 염불해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고요.”
평소에 부처님을 믿지 않았기에 금은보화와 같은 재물을 얻었다는 기쁜 일인 줄 알았던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내 마누라는 반드시 나와 같아야지 어떻게 남들처럼 무슨 부처를 미신한단 말인가! 안 돼! 내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어.”
남편은 마음속으로 작정을 하고 나서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둘은 한 밥솥에 밥을 지어 먹는데 당신이 채식을 한다면 설마 가마솥과 부엌을 따로 나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고기를 먹어야 하니까 당신이 나에게 시집와서 내 마누라가 된 이상, 내가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 돼.”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 피해주지 않을 테니까!”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할 때 먼저 남편의 몫을 만들어서 밥상위에 올려놓고 다시 본인 몫의 채식을 준비하였다. 이를 본 남편은 돼지기름 한 숟가락을 퍼서 아내의 채식에다 넣어 그녀가 깨끗한 채식을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매번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일부러 입을 닦으면서 말하였다. “고기를 먹은 사람은 죄가 없지만 고기로 요리를 한 사람은 죄가 있어!” 이렇게 두 번·세 번 반복하고 나서 결국 아내가 채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계획이 뜻대로 되자 매우 기뻐하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래야지! 부부가 잘 살고 있는데 무슨 채식을 하고 무슨 염불을 한단 말이야! 부처를 믿으면 서로 할 말도 없게 되는데 얼마나 재미없을까!” 또 생각하기를, “채식은 이미 내가 막았고, 이젠 염불을 못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런데 염불은 아무 때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걸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구나.”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마침내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그거야! 내가 그녀에게 나쁜 일을 하여 죄를 짓게 만들면 분명히 염불도 못하게 될 거야.” 남편이 비록 부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염불하는 사람은 선행을 하고 덕을 쌓으며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염불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니겠는가! 채식도 좋은 일도 못하고서 염불만 한다면 아마 부처님께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그녀가 스스로 염불을 포기하게 될 거다.
이에 남편은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파는 직업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매일 이른 아침마다 강제로 아내에게 돼지다리를 꽉 누르라고 하였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돼지 다리를 눌렀다. 돼지를 다 잡고 나서 남편은 또 일부러 말하였다. “돼지를 잡은 사람은 죄가 없고 돼지를 누른 사람은 죄가 있어!”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마치 간장이 찢어지는 듯 가슴이 아팠다.
과연 그날부터 아내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남편은 영험한 이 방법이 마음에 들어 매번 돼지를 잡을 때마다 예전대로 아내에게 돼지의 다리를 누르도록 하였다. 그 뒤로 돼지가 죽어가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염불소리를 대신하였으며, 다시는 아내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집의 안과 밖·침대 시트와 이부자리를 전부 깨끗하게 청소하고 씻고 가지런하게 정리를 하였는데 마치 명절을 보내는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물어보았다.
“당신의 행동을 보니 마치 먼 길을 떠나려는 것 같은데, 대체 뭘 하려는 것인가?”
“이제 집으로 가려고요.”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시 물었다.
“당신의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정집에는 이미 사람이 없어! 여기가 바로 당신 집인데 다시 어떤 집으로 돌아간다는 거야?”
아내가 대답하였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는데 내가 돌아갈 집은 당신이 말하는 집이 아니라 서방극락세계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당신이란 사람은 심보가 너무 나빠서 내가 본래 채식하는 염불인이 되고 싶었는데 채식을 못하게 만들었고, 채식을 못하더라도 염불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은 또 나더러 당신을 도와 돼지 다리를 누르라고 했어요. 게다가 매번 ‘돼지를 잡은 사람은 죄가 없고 돼지를 누른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했으니, 고의로 내가 염불을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어요. 나는 당신의 심보가 말로 타이를 수 없을 만큼 고약하다는 것을 보고 또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다시는 당신이 보는 앞에서 염불하지 않았죠. 요 몇 년 사이에 나는 줄곧 마음속으로 염불하였는데, 내가 누르고 있던 돼지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전부 마음속으로 염불하면서 기도했어요: 돼지야! 내가 참으로 죄업이 두터워서 너를 구해줄 수 없으니 아미타불께서 빨리 너를 데리고 정토왕생을 하도록 해야겠어! 그러면서 돼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염불을 했지요. 그러나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은 요 몇 년 동안 내 손으로 눌렀었던 돼지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을 했다는 거죠. 내가 그들에게 염불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삼일 뒤에 전부 아미타불과 함께 내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영접하러 오겠다고 했어요.”
남편이 들어보니 그야말로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아내의 정신이 잘못되었나 싶어서 손으로 아내의 이마를 만져보면서 말했다. “지금 고열이 나서 헛소리하는 거니, 아니면 삼년 동안 염불을 못해서 답답해 미친 거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을 내가 모를까봐! 내가 돼지를 잡을 때 당신이 다리를 눌러놓고, 그러고도 극락세계에 간다고?” 곧 우스갯소리로 여기면서 밖에 나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 마누라가 돌았나봐, 자기가 삼일 뒤에 무슨 극락세계를 간다고 말하질 안나, 또 돼지들도 극락세계에 갔는데 다시 부처와 함께 와서 자기를 데리러 온다고 하질 안나. 정말 금시초문이야! 그 누구도 죽길 원치 않고 모두 잘 살고 싶어 하지. 무슨 사람이 그것도 기쁘게 죽으려 한단 말인가!” 호기심이 많은 시골사람들이라 이 말을 듣고는 모두 그때 가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구경하려 하였다.
삼일 째 되는 날, 남편은 기상을 하자마자 온 방안에 가득한 기이한 향내를 맡고서 몹시 궁금하여 온 집안을 살펴보았으나 이 향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오늘이 바로 아내가 간다고 했던 날이라는 게 생각이 났는데, 설마…… 몰래 아내를 쳐다보니 마침 가지런하게 몸치장을 하고 있는 것 외에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
런데 별다른 점이 없는 가운데 계속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게 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한 평생 마누라의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한 번 믿어보고 도대체 어떻게 극락세계 고향으로 돌아가는지를 봐야겠다!” 그래서 남편은 암암리에 관찰을 하였다.
마을에서 구경을 하려던 사람들도 당연히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저희 고향에서는 모두 사합원四合院형식의 집들인데, 이날 아침부터 길을 지나가는 척하면서 문틈과 담 위로 머리를 내밀어 들여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몸치장을 마친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의자 하나를 가져다 문 앞의 중앙에다 놓고는 얼굴은 구경꾼들을 향하고 두 발은 가지런히 내려놓고 두 손은 합장하여 눈을 감은 채 염불하였는데, 열 번도 안 되어 화색이 도는 얼굴로 그 자리에서 바로 왕생하였다.
이를 본 남편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한동안 멍청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본래 아내가 말로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릴 줄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눈앞에 생생하고 갑자기 닥쳐온 현실은 그로 하여금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였다. 순간적으로 부처님의 위대함과 실제로 존재함은 한 가닥 번쩍이는 광선처럼 그의 마음속 깊이 비쳐 들어 자신이 잔인하게 생명을 죽이고 남의 수행을 파괴하며 부처님을 비방하고 믿음이 없었던 등등의 죄악을 남김없이 환하게 드러냈다. “아!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이제 어떡하지?” 다시 뒤집어 생각을 하였다. “내 마누라도 채식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돼지를 잡을 때 그녀도 다리를 누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염불하고도 불국토로 갔으니 그럼 내가 염불해도 갈 수 있지 않겠어! 안 돼! 나도 더 이상 이 직업을 해서는 안 되겠어, 지옥을 간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야, 나도 내 마누라를 따라가야겠어.” 그 뒤로부터 남편도 염불인이 되었다.
내가 지금 아무런 보류 없이 그 당시 들었던 풍성한 법의 요리法餐를 동행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드려서 아미타불의 아무런 조건이 없는 구제를 함께 누리기 바란다. 극악한 사람도 염불하면 필히 구제하니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의 자비이다!
(2001년 5월 18일 연명演明법사 기록)
출처 / 정전스님의 순정시대(純淨時代) ☞ http://cafe.daum.net/sunsujeong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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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慧蓮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동안 못난 자식이 부모를 외면하듯이 부처님의 구제를 여지껏
외면해왔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부처님의 평등하신 대자비는 이런 동물 내지
미물들조차 버리지 않은신데, 사바세계 못난 중생들은 아직도 불신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연우님들, 부처님의 크신 서원 잊지 마시고 오로지 칭명염불하여
극락왕생합시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정전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