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거사의 사부시(四浮詩)를 보면서 / 법장 스님
나는 가끔 부설(浮雪)거사의 사부시(四浮詩)를 음미한다.
부설거사는 통일신라 신문왕 때 거사로 중국의 방거사,
인도의 유마거사 버금가는 거사로 알려져 있다.
부설거사는 경주 불국사에서 승려가 된 후 제방을 두루 다니며
공부하다가 쌍선봉(雙仙峰) 아래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단신 홀로 10여 년 간을 쉼없이 처절하게 공부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도반인 영희 스님과 영조 스님이 찾아와
전라도 땅 변산에서 강원도의 오대산으로 들어가
여름 안거(安居)를 지내기로 길을 재촉하던 중 날이 저물어
만경고을 구(具)씨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 집에는 18세 된 '묘화'라는 딸이 있었는데 부모는 묘화를
시집보내기 위해 그 동안 선 보기를 권해도 쳐다보지도 않던 딸이
부설거사를 보자마자 반해 끝내 이 생에서의 부부 연(緣)을 맺게 된다.
그리고는 부설거사는 아들 등운과 딸 월명, 두 명의 자식을 두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설거사를 찾아와 온갖 일을 묻고 설법을 듣기 위해
찾아오니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부처님의 위없는 무상의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원래로
승속(僧俗)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 마음이란 누구나 다 가지고 있기에 외형적으로 나타난
겉치레적 형식을 뛰어넘는 것이라야 한다.
옛 부터 절집에서 이르기를 발심(發心)은 선후(先後)가 있으나,
깨침은 먼저와 나중이 없다고 한 것이다.
깨달음이란 출가 재가를 떠나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설거사는 사부시(四浮詩)로서 여실히 보여준다.
처자와 권속이 아무리 많고 그 귀중한 금은 옥백이 언덕처럼 쌓였더라도
임종시(臨終時)에 고혼만 홀로 가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하고 허망할세!
날이면 날마다 일터에 나가 벼슬 겨우 높아지니 어느 듯 머리는 희어지네.
염라대왕은 벼슬 띠 두려워하지 않나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하고 허망할세!
비단결 같고 바람과 우뢰같은 말(言語),
천만가지 시와 글로 많은 사람 움직여도
세세생생 너니 나니 하는 아상만 증장하는 근본되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하고 허망할세!
가령 설법이 구름과 비 내리듯 하여
하늘에서 꽃비 내리고 돌장승이 머리를 끄덕여도
건혜(乾慧)로선 능히 생사(生死)를 못 면하니
생각하면 이 또한 허망하고 허망할세!
부설거사의 사부시(四浮詩)를 보노라면
비록 재가에서 사셨지만 깨달음을 향해 용맹정진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신 그 모습은
모든 출가 수행자들에게도 크나큰 경종을 울린다고 하겠다.
<뉴욕 중앙일보>
출처 : 염화실
첫댓글
건혜(乾慧)는 마른 지혜라는 뜻이니,
그 지혜가 아직 온전하지 못함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