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이전 상황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바로 신라다.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고,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기원전 18년 건국되었다.
지리적으로 고구려는 중국과 인접해있고, 백
제를 바다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신라는 대륙
과 교류하기에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어 국력
도 가장 열세했다.
삼국은 통일이전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주요
전투 및 활동들이 이루어졌다.
■ 신라의 국력신장
지도자(왕) 한분의 통치능력이 국운을 좌우한
다는것은 신라의 통일과정에서도 엿보인다.
신라국력이 강해진 시기는 6세기 무렵이며
신라 24번째 왕인 진흥왕 재위시 최 전성기
를 이루었다.
진흥왕은 북으로는 원산만 일대 함흥평야와
남으로는 대가야를 확보하는등 최고로 영토
를 확장하였다.
특히 진흥왕이 한강상류와 한강하류를 확보
함은 삼국통일에 크나큰 힘이 되었다.
진흥왕은 또한 화랑도라는 제도를 통해 나라
의 인재를 키우고,불교로 백성들의 마음을 하
나로 뭉치게 했다.
■ 삼국의 외교관계
고대 삼국은 동일민족의식하 상호협조보다는
견제와 균형을 우선한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내쫏아
한강유역을 확보하고,고구려 성을 공격해 승
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한강유역 독점에 대한 신라의 과욕은
백제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백제는 신라를 자
주침략하게 되었고, 신라는 백제의 침략을 막
기 위해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요청하
기도 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의 도움요청을 거부하자
신라는 당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해 나당연합
군이라는 군사동맹을 맺게되었다.
그리고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후에는 어제의
동맹국인 당나라와 싸워 격퇴시켰다.
타국과의 외교에는 영원한 우방, 영원한 적도
없다는것은 우리의 고대사에도 보였다.
■ 신라의 통일 과정
◑ 백제의 멸망
백제 멸망 원인은 세 가지를 제시한다.
1. 의자왕의 불통과 내부분열
백제 의자왕은 세자시절에는 형제간 우애, 부
모님께 효도 및 결단력을 구비하였고, 왕으로 즉위후에는 재위 20년간 백제 내치를 안정적
으로 관리함(의자왕 3천궁녀는 과장 추정)에
힘입어 신라를 무려 10회공격을 하여 40여개
의 성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충신들의 간청을 멀리하였다 특히 성충은 의자왕에게 당나라의 침공을 경
계할것을 상소했으나 의자왕은 이를 적극 수
용하지 않았다.
또한 의자왕은 대신급인 좌평에는 귀족세력들
을 몰아내고 왕족과 의자왕 아들(41명)으로
충원함은 백제 지배계층내 분열을 초래하였다
2. 외교를 소홀
앞서 언급한바와같이 백제는 한때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어 고구려군을 추방하여 한강
유역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한강유역을 독차지하자 배신감
을 느낀 백제는 이후 신라를 자주 공격하였고
게다가 신라 김춘추 딸과 사위까지도 살해하
여 신라라는 동맹국을 잃게 되었다.
3. 계백장군의 황산벌 결전에 지원 저조
계백장군은 백제당국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못한체 단지 5,000여명 결사대로 나당
연합군의 18만여명과 싸웠으니 1 : 36 이라
는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나당연합군(신라 5만, 당나라 13만)은 황산
벌 전투에서 백제의 사비성을 무너트려 백제
는 660년 멸망하였다.
※ 고대 로마제국을 전율케 한것은 카르타고
가 아니라 명장 한니발이었는데 카르타고 위
정자들은 한니발의 명성에 시기를 하여 로마
와 결전에는 한니발에 군사지원은 안하여 카
르타고는 처참하게 몰락하였다.
◑ 고구려 멸망
고구려의 멸망원인은 크게보면 두 가지다.
1. 고구려 동맹국 백제 붕괴와 외교 실패
고구려는 고구려의 동맹국인 백제가 붕괴되
어 고구려 혼자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싸워
야 했다.
신라가 백제의 잦은 침략을 견제하기 위하
여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고구려가 이를 거부하자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버렸다.
※ 외교, 즉 줄을 잘못서 망한 나라를 소개하
면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는 1차대전시 동맹
국인 독일편에 서 패전하자 오스만 제국은
붕괴하였고, 헝가리 영토는 1/3으로 줄고 약
500만 헝가리인들은 해외로 유랑하게 되었다
2. 연개소문 아들 무능과 권력다툼
연개소문 사후 연개소문 아들들은 내전을 방불케한 권력투쟁을 하였다.
연개소문은 당시 당제국 이세민의 침략을 두
번 격퇴할 정도로 매우 카리스마적이고 비범
하였지만 연개소문 아들들은 비범하지 못했
다.
나당연합군은 고구려의 권력투쟁이라는 혼란
스러운 때를 놓치지 않고 서기 668년 고구
려를 공격하여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 고대 로마제국도 내전을 방불케하는 왕권
투쟁이 로마붕괴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 당나라의 격퇴(나당 전쟁)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대로 무너뜨리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 마지막으로 당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한 건곤일척 전투를 치루었다.
이 전투의 이름은 나당 전쟁으로 669년부터 676년까지 무려 7년간 치룬 장기전이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전쟁에서 승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1. 지리적 이점 활용
전쟁지역이 당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
였기 때문에 7년간 장기전을 위한 전쟁지속
면에서 신라가 당나라보다 매우 유리한것으
로 보인다.
※ 나폴레옹에 이어 히틀러까지 대 러시아(소
련)원정에 실패한 것은 러시아의 지리적 이점
인 종심깊은 지형으로 인한 신장된 병참선 및 동장군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 화랑도 정신(세속오계)
신라의 화랑이 지켜야할 세속오계, 즉, 임금
에 충성, 부모에 효도, 친구와는 믿음, 전투에
서 물러서지 않으며, 생명체를 죽일때는신중
히 택한다(인권중시)는 정신은 신라인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3. 백제, 고구려인들에 대한 관용ᆞ포용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후 이들에 대한 관용정책, 즉 백제, 고구려 고위직에게
는 신라의 유사한 직위를 주고, 일반 평민들
에게도 융화정책을 베풀어 이들 모두가 신라
를 구심점으로 하나가 되게 하였다.
※ 고대 로마제국의 가장 큰 위기는 카르타고
하니발과 싸운 포에니 전쟁이었다.
로마가 승리할 수 있었던것은 로마가 식민국
에 대한 관용으로 식민지 국민들은 로마를 조국으로 받들고 끝까지 로마를 위해 결사항
전한 덕분이었다.
■ 삼국통일 함의와 교훈
1. 삼국통일 의의와 한계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무
너트린후 백제에는 웅진도독부, 고구려에는
안동도호부를 두는등 영토야욕을 보였다.
만일 신라군 3만여명(보병, 활과 장창 무장)
이 당군 20만명(기병중심)과 싸워 이기지 못했다면 당시 백제와 고구려 영토는 당나라
에 복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주도의 통일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삼국을 하나로 통일하여 단일 운명 공동체를 이루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반면 아쉬운점은 신라중심의 통일로 고구려
의 영토였던 만주지역을 잃게됬다는것과 신
라가 외부세력을 이용하여 같은 동족을 멸망
시켜 동족의 동질성을 약화시킨것이다.
※ 필자는 고대 삼국인 백제문화의 정교함과
개방성(일본에 불교ᆞ한자 전파등)+ 신라문
화의 장엄과 결속력(화랑도)+고구려 문화의
진취성과 투쟁성= 삼국통일을 이루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것인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2. 신라의 삼국통일은 군사동맹 중요성을 일
깨워주었다.
고대 삼국시대는 당나라가 가장 강대국이었
는데 당시 백제와 고구려는 일본과 긴밀한 관
계를 유지하였으나 신라는 강대국인 당나라
와 군사동맹을 체결함이 통일에 주효했다.
전 세계 주요 전쟁사의 승패는 군사동맹이 좌
우했다.
제 1차대전시 동맹국 : 연합국은 8개국 :24
개국, 제 2차대전은 8개국 : 49개국 그리고
6.25 전쟁에는 2개국(북한지원) : 60개국
(남한지원)이었다. 특히 6.25 전쟁시 참전 UN국중 미군 전투력은 90%이상을 차지하
였다.
※ 6.25 전쟁에 UN군 참전 연인원 194만여
명중 미군은 179만이었고, 특히 해공군은
거의 미군전력이었다.
남북분단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 그
리고 장차 남북통일등을 고려시 한미군사동맹
은 우리의 선택이 아닌 운명이다.
※ DJ 대통령도 우리나라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강화하는것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
고 일갈하였다.
3.자체 국방력 소홀은 체제붕괴로 이어진다.
백제는 황산벌 전투에서 1 : 36이라는 절대
열세의 군사력으로 패전후 붕괴되었다.
백제는 나당연합군에게 패전후 의자왕등 1만
2천여명이 당나라로 끌여갔다.
오늘날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태세 미흡과 북
한 정규군 120만 여명에 비해 국군을 60만
에서 50만으로 약 10만여명을 줄이고, 병 복
무기간도 북한군 8년(남자기준)에 비해 약 3
개월 줄인 18개월(육군기준)은 자체 국방력 소홀이 아닌가 우려된다. -끝-
첫댓글 역사학자들은 '만약에'라는 말을 하죠. 능화의 언급대로 '고구려에 의해 통일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을 보면 안미경중의 줄타기인데 이를 미국과 중국이 모두 용납하지 않고 있으니 한국의 외교가 참으로 아슬아슬해 보여 안타깝네요. 국방의 중요성과 국민의 단결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네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즈음, 일부 대선후보라고 하는 작자들의 한심한 역사인식을 보고 있자니 더 더워 죽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뭐라 카나? 개뿔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이래저래 흔들어 놓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발언.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 있는 역사 학자들의 속시원한 커멘트라도 있으면 좀 시원할 것 같은데....능화가 한 번 어떻게...해보시지 않을란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인데, 신라의 삼국통일의 배경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삼국사기열전을 연구한 바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삼국통일의 요체는 화랑도 정산이었음을 간파할 수있었습니다. 전세가 불리하여 죽는 줄 알면서도 그들은 전진했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해 살아돌아온 아들에 대해 왕에게 사형을 주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평생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는 화랑임인 자랑스러웠고 화랑의 아들을 둔 집안은 명가였고, 전쟁에 나가 죽는 것은 명예로웠습니다. 요즘 군인에 대한 국가적 대우는 어떠한지 반성하게 하네요.
크로아티아의 모진 굴곡의 역사에서도 느끼는 바가 적지 않은데요. 이합집산 이후의 크로아티아. 이젠 우리나라보다도 작지만 그들만의 오붓한 나라를 이루어 살고 있지요.
통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의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이나, 영호남간의 지역적 라이벌리 같은 걸 생각하면요.
차라리 삼국시대의 분할과 같이 살고 있다면 자신들 고유의 전통과 역사문화, 각각의 정체성을 보다 뚜렷하게 간직하면서 더 소담하게 살 수도 있었을텐데요. 바보같은 생각인가요?ㅎㅎ...
부여 궁남지에는 계백장군님의 출정비가 슬픔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을씨년스럽게 우뚝 서있지요.
패망의 역사에는 임금들고 그 아들의 무능함이 항시 존재하는데,고구려나 백제나 패망할수 밖에 없는 왕과친족들의
암투가 있었던것 같아요.중국의 역사에도 은나라의 주왕이 얼마나 못된짓을 많이 하여 국민들의 외면을 받은걸 보면,
역사의 흐름은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인것 같네요.역사를 재인식 시켜준 글,고마워요.
일찌기 탄허 대선사께서 부모님께
불편함을 드리지않음은 소효, 부모님
께 기쁨을주는것은 중효지만, 나라에
충성하는것은 대효라고 했지요.
월몽께서 언급하신 역사카멘트는
직접 만날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현 집권층의 역사인식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국 고대사, 특히 고대 3국시대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능화 선생의 통찰은 안보와 국방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매우 뜻깊은 연구라고 생각됩니다!
현대 분쟁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는 상호 의존성의 증대를 제시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의존은 한반도의 군사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주고 받는 주변 및 세계국가들의 안보역학 구조와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안전한 상황관리를 위해 단기적 민감성과 장기적 취약성이라는 별개의 비용 지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반도의 안보 문제를 검토시에는 북핵 미사일과 미중관계 등 주변국들과 세계국가들의 다양하고 복잡화된 상호 의존성을 보다 폭넓고 심도있게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도 좋은 글 올려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려운 과제라서 다소 이해가 힘들군요~
한마디로 약소국의 운명인데 어느 정도까지 국방력을 구비하는가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지요~오히려 외교, 경제력이 더 낳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동맹에만 맡길 수도 없으니, 현명한 철인의 도래를 기다려야 하나요? 모두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도 약 40여개국들과 군사동맹을
,30여개국들과는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합니다.
한반도 주변 4대강국의 군사력은
미국 1위, 러시아 2위, 중국 3위,
일본 5위인바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시 한미군사동맹은 통일이
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단 우리안보를 미국에게 맡겨서는
안되며 한미양국 국익을 위해 상호보완적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군사안보는 정치, 경제,외교
등 비군사안보에도 영향이 지대한바
전 세계에 대한 초강대국 미국의 영
향력을 고려시 한미군사동맹강화는
남당이 언급한 경제안보 및 외교안
보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