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24가지 무예를 위한 교습서가 『무예도보통지』다.
이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여 '24기(技)'로 정리한 무예교범서로서 부국강병의 실학정신이 담겨 있다.
아울러 정조의 왕권을 다져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던 장용영의 군사들은 이 무예 24기를 필수로 익혔으며, 무예로서 역사적 가치는 물론 예술적, 체육적가치가 아주 높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왕조는 창검무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1598년 한교가 중국 무예인 장창, 쌍수도 등을 군사들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자세와 동작을 그림과 설명으로 풀이한「무예제보」를 펴냈으며, 1604년에는 「권보」를, 1610년에는 최기남이 언월도, 왜검 등을 풀이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편찬하여 군영에 보급했다. 이처럼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였다. 이 무렵 기창ㆍ본국검ㆍ예도 같이 우리의 고유한 무예가 발굴되고, 새로운 무예가 창안되었으며, 효종이 북벌을 준비하던 1650년 무렵부터 이러한 무예를 무사 선발의 시험과목으로 삼았고 1680년 무렵에는 한ㆍ중ㆍ일 삼국의 검술에 통달한 김체건이 교전을 창안하여 군영에 보급하였다. 그러므로 교전은 무예24기 중 가장 늦게 완성된 무예이다.
1759년에는 북벌을 꿈꾸던 장헌세자의 명을 받은 훈련도감 교련관 임수웅이 지상무예 18가지를 도보로 정리한 무예신보를 편찬하였다.

장헌세자의 아들 정조는 즉위하던 1776년에 아버지의 뜻을 이어 18기와 마상무예 4기를 군사들에게 익히도록 하였고, 1785년에는 이런 내용을 법으로 정했다. 정조의 명을 받은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초관 백동수가 지상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를 합해 모두 24가지의 무예를 정리하여 1790년 4월에 「무예도보통지」를 장용영에서 펴내 전 군영에 보급한 것이다.
무예24기의 구성 구분 내용은 다음과 갔다.
무예도보통지ㆍ제1권 장창ㆍ죽장창ㆍ기창ㆍ당파ㆍ낭선ㆍ기(騎)창
무예도보통지ㆍ제2권 쌍수도ㆍ예도ㆍ왜검ㆍ교전
무예도보통지ㆍ제3권 제독검ㆍ본국검ㆍ쌍검ㆍ마상쌍검ㆍ월도ㆍ마상월도ㆍ협도ㆍ등패
무예도보통지ㆍ제4권 권법ㆍ곤방ㆍ편곤ㆍ마상편곤ㆍ격구ㆍ마상재

『무예도보통지』는 이덕무는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시인인 이덕무와 백동수가 함께 1789년 가을, 정조의 명을 받고 한· 중· 일 삼국의 수많은 서적을 참고하여 무예24기의 역사와 기원을 밝혀 이듬해 4월에 "무예도보통지"를 출판하는데 이 때 고중학의 대가 이덕무는 무예의 역사를 밝히고, 명필가인 박제가는 책의 판본이 되는 글씨를 썼다고 하며, 백동수는 무예의 달인으로 장용영 초관에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무예의 실기를 직접 고증하고 출판의 감독을 맡았다.
드라마로 보는 무사 백동수와 실제의 백동수는 많이 다르다.
복장이나 ... 주변사람이나 혹 역사를 왜곡하는 앞장을 서는 듯한 연출이다.
백동수, 그는 연암 박지원의 제자였고, 연암골로 박지원의 안식처를 안내한 사람이기에 그와 관련된 글을 옮기고 편집하여 보았다. 능재 .
첫댓글 잘 보았읍니다.
좀 재미나게 너무 딱딱해요. 선생님! 그래도 쓰윽 읽어답니다. 대단하죠잉
감사합니다. 잘보고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