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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인천 96코스 역방향 제2부
가좌사거리-가좌IC교차로-가남로-
백범로-가좌삼거리-KG스틸 인천공장-
서인천가구단지입구-염곡로갈림목-
봉수대길사거리-산업용품센터사거리-
가구단지사거리-송림고가교-송림로-
송림4동행정복지센터-재능대삼거리-
송림오거리-샛골로-우각로-창영초등학교
2024년 8월 28일
1.코스 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새 문물을 맞이한 개항지의 역사와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아픔이 공존하는 굵직한 역사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는 코스
2)관광포인트
-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고 인천항이 한눈에 보이는 '인천자유공원'
- 일제강점기 때 응암산 줄기를 뚫어 축조한 무지개 모양의 돌문 '홍예문'
- 19세기부터 운영되던 시장으로 공갈빵, 닭강정 등 오래된 맛집이 많은 '신포국제시장'
3)여행정보(주의사항)
- 시점 : 인천시 중구 북성동3가 6-9 선린문 앞 자유공원 입구
교통편)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서 하차 후 도보 500m 이동
- 종점 : 인천시 서구 가정동 산21-51 대우하나아파트 버스정류장
교통편) 인천지하철 2호선 가정역에서 도보 800m
- 길이 14.4km, 소요시간 5시간, 난도 어려움
-주요경로 : 자유공원입구 3.1Km 송림오거리 4.3Km 가재울사거리 4.7Km 원적산 2.3Km 대우하나아파트 버스정류장
2.인천 기독교 교회와 교육의 심장 창영동을 가다
제2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 가좌사거리에서 서해랑길을 이어간다. 가좌사거리에서 길이 복잡하다. 장고개로를 따라 백범로 가좌IC고가교 아래를 통과한 뒤 다시 인천대로 가좌IC본선교 아래를 통과한다. 가좌IC교차로는 공중에서 백범로 가좌IC고가교와 인천대로 가좌IC본선교가 교차하고, 지상에서는 장고개로에서 가남로가 갈라져 북쪽으로 벋어간다. 그 길이 복잡하여 어리둥절해진다. 가좌IC교차로에서 장고개로를 건너 KG스틸 인천공장 담벽을 따라 가남로를 따라가면 백범로 가좌IC고가교가 가좌삼거리로 내려온다. 서해랑길은 백범로 KG스틸 인천공장 정문 앞에서 봉수대길사거리까지 직선 도로인 백범로를 계속 따라간다.
백범로 북쪽에 서인천가구단지가 자리하여 가구판매점들이 즐비하고, 여러 산업체 공장들이 자리하며, 남쪽에는 인천일반산업단지가 자리한다. 그리고 동쪽에는 주안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하여서 공장과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 때문에 백범로 걸어가기가 몹시 고통스럽다. 매연이 매워서 눈과 코에서 자꾸 눈물과 콧물이 흘러나온다. 탐방객의 예민한 감각 때문일까? 지난번 남동국가산업단지를 통과할 때는 느끼지 못한 매연의 고통을 백범로에서 감각한다. 습도가 높아서 매연이 지상에 가까이 내려앉기 때문일까?
봉수대길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서구 가좌동에서 동구 송림동으로 넘어가 봉수대로를 따라 송림동 지역을 통과한다. 서쪽에는 산업용품 유통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봉수대로에서는 매연의 고통이 사라졌다. 매연에 적응한 때문인지, 이 도로에는 매연이 심하지 않기 때문인지 분명한 이유는 알 수는 없다. 봉수대로와 방축로가 교차하는 산업용품센터사거리에서 남쪽 지역은 미추홀구 도화동 지역이다. 동구 송림동과 미추홀구 도화동 지역은 이곳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분명한 행정 구역을 구분할 수 없다. 동구 송림동에서 방축로 횡단보도를 건너 미추홀구 도화동으로 넘어가 봉수대로를 따라간다.
봉수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봉수대로와 염전로가 교차하는 가구단지사거리에 이른다. 염전로 동쪽에는 한국 최초의 천일염 생산지인 주안염전이 있었고, 예전 이 지역 일대는 전체적으로 염전 지역이었는데, 현재는 매립되어 주안국가산업단지 등이 자리한다. 인천에서는 주안염전을 기리기 위해 남동구 간석동 석정삼거리에서 동구 송현동 송현삼거리 서해안 바다로 이어지는 도로를 염전로라고 명명하였다. 지난 시절 인천 염전의 대표 지역인 이곳은 현재 염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층빌딩들과 산업체들이 자리하여 인천 경제의 바탕을 이루고 번영의 꽃을 피우고 있다.
봉수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끝까지 가면 송림고가교가 나오고, 이곳에서 이동 경로가 복잡해진다. 송림고가교는 공중으로 올라가 송림로 송림삼거리로 이어지고, 송림고가교 아래는 봉수대로, 인중로, 송림로 지선도로 등 세 도로가 만나 꼭지점을 형성한다. 송림로 지선도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송림로 지선도로는 송림로 간선도로와 만나고, 서해랑길은 송림로를 따라 동쪽으로 잠시 내려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유턴하여 송림로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어지러운 진행 방향은 복잡한 행정구역과 겹쳐 미추홀구 도화동과 동구 송림동이 얽혀 있다. 미추홀구 도화동에서 송림로를 따라 동구 송림동 송림4동 행정복지센터 앞으로 내려오면,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지역으로 분명히 넘어왔음을 알게 된다.
인천광역시 동구의 중심도로인 송림로 양쪽에는 상가와 다양한 업종의 건물들이 솟아 있으며, 인천이 배출한 세계적인 야구 선수 류현진의 모교 동산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새천년로가 나온다. 새천년로를 건너 송림로를 계속 따라 내려가면 인천 전통시장을 대표하는 45년 역사의 현대시장이 자리하고 그 아래 송림오거리가 있다. 송림오거리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송림로와 남북을 가로지르는 샛골로가 교차하고, 동산로가 남동쪽으로 갈라져서 오거리라 불린다. 새천년로가 동산중고등학교를 북쪽에서 돌아가는데 반해 동산로는 동산중고등학교를 남쪽으로 돌아간다. 동산로에서 동산중·고 교정을 지나는 구간은 동산중과 동산고 출신 야구선수 류현진의 이름을 따서 '류현진 야구거리'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동산중·고 교문 근처 담장 쪽에는 류현진의 유니폼 등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동구의 중심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샛골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동구청이 자리하고 인천 개항기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소뿔고개와 배다리골로 이어지는 샛골로에는 현재 금송지구와 전도관 지구의 주택재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그 지역 소뿔고개에 알렌별장이 있었고, 경인선 우각리역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사라지고 알렌별장 터에는 인천 전도관이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조금 일찍 있었더라면 전도관 건물은 볼 수 있었을텐데 현재 가림막이 둘러처져서 소뿔고개로 올라갈 수도 없고 건물이 보이지도 않느다.
샛골로에서 우각로를 따라 배다리골로 내려간다. 배다리골은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이곳은 한국철도의 발원지로서 한국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건설 기공식이 1897년 3월 22일 우각동에서 개최되었고, 개항기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1897년 교회가 건축되고, 1900년에 한국 최초의 신학월간지를 발행하는 등 한국기독교 신학의 선교기지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인 영화학당이 1892년에 생겨났고,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 창영초등학교는 1907년에 출발하여 1919년 인천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인천 교육의 중심을 이루었다.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배다리골은 인천 개항기의 문명과 교육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심장 지역을 헐레벌떡 허걱거린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5.9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24분
삼양사 인천1공장 옆 장고개로 동쪽 보도를 따라서 가좌사거리 백범로 횡단보도를 건너 가좌IC고가교 아래를 통과한다. 백범로 왼쪽 뒤에 주안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한다.
주안국가산업단지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서구, 부평구에 위치한 국가산업단지. 흔히 알려진 약칭은 주안공단 내지는 수출공단, 5·6공단이다. 수도권에서 매우 큰 산업단지 중 하나인 주안공단은 같은 인천에 있는 남동공단과 마찬가지로 인천에서 할 거 없으면 주안공단이나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인천 2호선 주안국가산단역 1번 출구로 나가면 가까운 곳에서 주안국가산업단지 안내도를 마주할 수 있다. 공장 중 일부는 부평구 십정동에 속해 있다. 5·6공단이라는 명칭은 이 공단이 한국수출산업공단의 5번째와 6번째 공단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가좌IC고가교 아래를 통과하여 장고개로 동쪽 보도를 따라 하나은행 주안공단 지점을 통과한다.
장고개로 동쪽 보도를 따라 왼쪽 가재울로를 가로질러, 인천대로 가좌IC본선교 아래를 통과한다.
가재울로는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에서 부평구 십정동까지 이르는 인천광역시도로, 총 연장은 1.92 km이다. 가재가 많은 개울 및 시내 등을 각각 의미하며, 가좌동의 어원이 된 말을 인용하여 제명되었다. - 위키백과
인천대로 가좌IC본선교 아래를 통과하여 장고개로 동쪽 보도를 따라 가좌IC교차로 장고개로 횡단보도 앞으로 왔다.
장고개로 동쪽 보도를 따라 인천대로 가좌IC본선교 아래를 통과하여 가좌IC교차로 장고개로 횡단보도 앞에서 뒤돌아본다.
가좌IC교차로 장고개로 동쪽 보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장고개로 서쪽 보도로 넘어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건너편 KG스틸 인천공장 담벽에 금속노조 구호 알림막이 걸려 있다.
가좌IC교차로 왼쪽은 가남로, 건너편은 장고개로이다. 건너편 장고개로를 따라 인천대로 가좌IC본선교 아래를 통과하여 장고개로 횡단보도를 건너서 장고개로 서쪽 보도를 따라 가남로 서쪽 보도로 이어가고 있다.
인천대로(仁川大路)는 흔히 경인고속도로 인천 시내 구간 등으로 불리다가 2017년 12월 1일부로 경인고속도로에서 지정 해제되었고 인천광역시도 제65호선 인천대로로 지정되었다. 이후 일반화 공사를 진행하였다. 서울의 국회대로 양평동 이서 구간과 같은 사례다. 대체 도로는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북항터널과 봉오대로 자동차전용도로 구간이다. 제한속도는 서인천IC~네개동보도육교는 80km/h, 네개동보도육교~인천 기점은 60km/h로 조정되었으나 불만 민원이 폭증하여 2019년 3월 25일에 70km/h로 재조정되었다. 2018년 4월 30일에는 주안산단 진출입로가 개통되었고, 5월 30일에는 인하대, 방축, 석남 진출입로가 개통되었으며, 이 중 인하대 진출입로는 도로 주변 주민들이 방음벽 철거에 따른 소음 공해를 이유로 진출로 개통을 반대하고 있어 진입로만 개통되었다. 일반화가 되었다고 해도 일반화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자동차전용도로라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인천대로로 진입할 수 없다. - 나무위키
가좌IC교차로 장고개로 동쪽 보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서쪽 보도로 넘어왔다.
장고개로 서쪽 보도에서 KG스틸 인천공장 울타리 옆 가남로 서쪽 보도로 넘어간다.
서해랑길은 가남로 서쪽 보도를 따라 백범로 방향으로 이어간다. 가남로는 건너편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가남로는 인천광역시 서구에 있는 도로로, 옛 가정동주유소 부근부터 가좌IC앞 교차로까지의, 인천대로의 바로 서쪽 편을 나란히 달리는 도로이다. 전 구간이 6번 국도 및 77번 국도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2024년 4월부터 가정중앙시장역에서 인천대로로 바로 갈 수 있는 도로가 개통했다. - 나무위키
가남로 서쪽 보도에서 KG스틸 인천공장을 들여다 보았다. KG스틸 인천공장이 드넓다.
KG스틸 인천공장 울타리 옆 백범로 남쪽 보도를 따라간다. 오른쪽은 가좌IC고가교 서쪽 진출입로이다.
KG스틸 인천공장 울타리에 전국금속연맹 KG스틸 인천노동조합에서 공정분배를 요구하는 알림막이 걸려 있다.
백범로가 동서로 이어지고, 오른쪽의 가정로가 백범로와 만나는 가좌삼거리이다. 가정로(佳亭路)는 인천 서구 가정역에서 가좌삼거리까지 총거리 4km의 도로이다.
백범로 가좌삼거리 남쪽에 KG스틸 인천공장 정문이 있다.
KG스틸 인천공장 정문 앞 가좌삼거리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왼쪽은 가정로, 정면은 백범로 가좌IC고가교이다.
서해랑길은 백범로 남쪽 보도를 따라간다. 백범로 북쪽에 서인천가구단지가 자리한다.
오른쪽 염곡로가 백범로와 만나는 교차로이다. 왼쪽 지역에는 서구 가좌동 인천일반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염곡로가 백범로와 만나는 갈림목에서 북쪽 염곡로를 바라본다. 염곡로는 목재단지사거리와 석남동, 연희동으로 이어진다.
염곡로는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동에서 연희동까지 이어지는 길이 7.55km, 왕복 4차로의 도로이다. 도로명은 이 도로가 천일염을 생산하던 마을을 통과한다 하여 '염곡로'라고 명명되었다. - 나무위키
염곡로가 백범로와 만나는 염곡로 갈림목에서 백범로 남쪽 보도를 따라 LPG GS칼칼텍스 주유소 앞으로 이어간다.
염곡로 갈림목 남쪽, 서구 가좌동 지역에는 인천일반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서해랑길은 백범로 남쪽 보도를 따라가다가 봉수대길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봉수대로를 따라간다.
백범로를 따라 곧장 직진하면 인천항 북항이며,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꺾어 봉수대로 남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동서를 잇는 백범로와 남북을 잇는 봉수대로가 교차하는 봉수대길사거리에서, 봉수대로 북쪽 방향은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과 서구청으로 이어진다.
봉수대로(烽燧大路)는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송림삼거리와 경기도 김포시 구래동 변전소사거리를 잇는 도로이다. 봉수대로에서 '봉수'는 서구 일대에 있는 석수 봉수대에서 유래되었다. 청라국제도시, 검단신도시, 한강신도시 등의 여러 신도시를 연결하는 핵심도로이기도 하다. 2013년 8월 30일, 한강신도시 개발로 인해 경기도 김포시 구간을 연장함에 따라 총 연장이 17.987km에서 18.189km로 증가하였다. - 위키백과
서구 가좌동에서 동구 송림동으로 넘어와 봉수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 송림동 지역을 통과한다. 건너편에는 산업용품 유통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송림공구 상가 앞을 거쳐 이마트 트레이더스 주차장을 지나왔다. 오른쪽 길가에서 요기를 하였다.
봉수대로 주변 위치안내도와 인천광역시 동구에 대한 설명글이 적혀 있다.
인천광역시 동구는 1948년 정부수립 후 1949. 5월 당시 인천시의 본청관할 구역내에 속하였다. 1956. 11. 23 인천시조례 제114호로써 인천시 출장소 설치조례를 개정하고 1957.1.1 부터 시행하였는데 기존의 5개 출장소 외에 본청관할 구역을 중부, 북부, 동부, 남부 등 4 개의 출장소 관할구역으로 분획하고 여기에 각각 새로운 출장소를 증설토록 하였다. 동구의 모태가 된 행정구역은 북부출장소와 동부출장소가 관할하던 지역이었다. 현재 동구는 만석동, 화수동, 송현동, 화평동, 창영동, 금창동, 금곡동, 송림동 등의 7개 법정동을 갖추고 있으며, 인천의 중심구로서 서해안 시대의 전개와 함께 활기찬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봉수대로 동쪽에 있는 트레이더스 홀세일클럽 송림점 매장 입구를 지난다.
방축로와 봉수대로가 교차하는 산업용품 사거리에서 방축로 횡단보도를 건너 봉수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산업용품센터 사거리에서 방축로 동남쪽 방향을 바라본다.
봉수대로가 남북으로 이어지고 방축로가 동서로 이어진다. 방축로 위쪽 지역은 미추홀구 도화동 지역이다. 왼쪽의 횡단보도를 건너 동구 송림동에서 봉수대로 위쪽 미추홀구 도화동으로 이어간다.
방축로는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에서 남동구 간석동까지 이르는 인천광역시도로이며, 총 연장은 5.350 km이다. 이름이 유래된 것은 옛 주안염전의 방축을 따라 도로가 개설된 것에서 연유하여 제명되었다. - 위키백과
봉수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 미추홀구 도화동 현대오일뱅크 앞을 통과한다.
봉수대로와 염전로가 교차하는 가구단지 사거리에서 염전로 횡단보도를 건너 봉수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가구단지 사거리에서 염전로 동쪽 방향을 바라본다. 주안염전은 매립되어 그 자리에는 주안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염전로(鹽田路)는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에서 남동구 간석동까지 이르는 인천광역시도로이며, 총 연장은 4.53km이다. 이름이 유래된 것은 한국 최초의 천일염 생산지인 주안염전을 오래 전하기 위하여 제명되었다. - 위키백과
가구단지 사거리에서 염전로 서쪽 동구 송림동 염전삼거리 방향을 바라본다. 봉수대로가 좌우로 이어진다.
봉수대로 송림고가교 버스정류소 앞을 통과하여 송림고가교 옆을 거쳐 송림삼거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송림고가교 왼쪽 아래 봉수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 송림삼거리로 이어간다.
봉수대로 동쪽 보도를 따라와서 송림고가교 송림삼거리 아래에서 왼쪽 송림로 지선도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서 송림로 간선도로 횡단보도를 건너 송림로를 유턴하여 건너편 파인앤유 아파트 단지 앞으로 내려온다.
봉수대로 동쪽 보도에서 왼쪽으로 꺾어 송림로 지선도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다 송림고가교와 건너편 인중로를 뒤돌아본다.
인중로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숭의로터리와 동구 송림동 송림고가교를 잇는 인천광역시의 도로이다. 개항 이후 인천의 근대화 도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도로임을 반영해 인중로라고 명명되었다. - 위키백과
송림로 지선도로 왼쪽 보도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송림로 간선도로와 만난다.
오른쪽 송림로 지선도로 오른쪽 보도를 따라 올라왔다. 왼쪽의 송림로 간선도로가 송림삼거리 방향으로 이어진다.
송림로 북쪽 보도를 따라가다가 송림로 횡단보도를 건너 송림로 남쪽 보도로 넘어간다.
송림로 횡단보도를 건너며 송림로 동쪽 방향을 바라본다. 미추홀구 도화동 인천교삼거리에서 송림로가 시작된다.
송림로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천교삼거리에서 동구 송림삼거리를 거쳐 중구 배다리사거리까지를 잇는 약 3.3km의 도로이다. 인천교삼거리에서 장고개로와 합류하고, 배다리사거리에서는 개항로, 참외전로와 접한다. - 위키백과
건너편 송림로 북쪽 보도를 따라 송림로 동쪽으로 진행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유턴하여 송림로 남쪽 보도를 따라가고 있다.
송림로 남쪽 보도를 따라 송림삼거리에서 왼쪽 파인앤유 아파트 앞으로 이어간다. 송림로는 동구 송림동 송림삼거리를 거쳐 중구 경동 배다리사거리까지 이어진다.
미추홀구 도화동에서 동구 송림동으로 넘어왔다. 송림로 남쪽 보도에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4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미추홀구 도화동에서 도화신동아아파트 단지를 거쳐 동구 송림동 송림4동 행정복지센터 앞으로 걸어왔다.
송림동 남쪽 보도를 따라 동구청 방향으로 송림동 지역을 지나간다.
송림로 남쪽 보도에서 재능대학교 서문으로 이어지는 도로명은 재능로이다. 언덕에 재능대학교가 자리한다.
재능대학교 서문 입구인 재능로 갈림길에서 송림로 남쪽 보도를 따라 앞쪽의 재능대삼거리로 이어간다.
새천년로 갈림길인 재능대삼거리에서 새천년로 횡단보도를 건너 송림로 남쪽 보도로 이어간다.
새천년로 북쪽 힘찬장어 음식점 옆에 송림골꿈드림센터와 동구문화체육센터가 자리한다.
새천년로(千年路)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의 석정로와 연결되는 삼거리에서, 동구 송림동의 송림로와 연결되는 삼거리까지의 약 1km 구간이다. 도로명은 '새천년에 모든것을 이룩하라'는 상징을 담아서 지어졌다. 완만한 에스(S)자 형태로 굽이진 왕복 4차선 도로로, 인도 중 0.6Km가 보도겸용 자전거도로로 조성되어 있고, 일부 구간이 '류현진 거리'로 조성중이다. - 위키백과
나무 모양을 한 '행복도시 동구' 조형물이 세워져 있으며 지대석에는 '송림 근대로 발자취 탐방루트'(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현대상가, 옛 노동회관 자리, 서림초등학교, 옛 도축장 자리, 영화초등학교)가 새겨져 있다. 건너편에 송림6동 행정목지센터가 있다.
현대시장과 송림오거리로 가는 송림로 주변이 혼란스럽다. 건너편에 산새소리 유치원, 그 오른쪽에 공영 빌딩이 있다.
송림로 남쪽 보도를 따라 송림오거리로 이어간다. 건너편에 현대시장이 있다. 1979년 개장한 인천 현대시장은 인천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라고 한다.
송림오거리를 지나 동산로 방향으로 가며 송림오거리와 건너편의 현대시장를 뒤돌아본다.
동산로 횡단보도를 건너 콩나물국밥 음식점을 오른쪽으로 돌아 청소년도서관이 있는 샛골로로 올라간다.
동산로 횡단보도에서 송림오거리에서 갈라져 나가는 동산로을 바라본다.
동산로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박문삼거리에서 동구 송림동 송림오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이 0.99km, 왕복 4차로 도로이다. 동산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도로 중간에 지역의 전통 사학인 동산중학교와 동산고등학교가 있어 이 학교의 명칭을 따서 동산로라고 명명했다. 동산중고교 인근에는 박문여자중학교와 박문여자고등학교도 있었지만 동구 일대 학령 인구 감소 등의 영향으로 두 학교가 나란히 송도국제도시로 이전했으며 현재 이 자리에는 박문여중고의 소유주인 천주교 인천교구청이 들어와 있다. 동산중·고 교정을 지나는 구간은 동산중-동산고 출신 야구선수 류현진의 이름을 딴 "류현진 야구거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동산중·고 교문 근처 담장 쪽에는 류현진의 유니폼 등이 전시돼 있다. - 나무위키
동산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코다리조림 위 샛골로로 이어간다. 중앙 뒤는 송림로이다. 송림오거리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송림로와 남북을 가로지르는 샛골로가 교차하고, 동산로가 남동쪽으로 갈라진다.
동산로 횡단보도를 건너 샛골로로 들어와 송림오거리를 뒤돌아본다. 송림오거리에서 샛골로를 따라 남진한다.
송림오거리에서 샛골로를 따라 남쪽 언덕으로 올라간다. 앞쪽 금곡로 갈림길에서 오른쪽 금곡로를 따라가면 동구청이 있다.
샛골로는 미추홀구 숭의동 숭의로터리에서 중구 도원동을 지나 동구 송현3동 송현2차아파트까지 이어지는 길이 2.55km, 왕복 2~4차로의 도로이다. 샛골로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예전에 샛골 마을로 불렸던 지역이라서 붙었다고 한다. 송림2동과 6동의 경계, 송현동과 송림동의 경계 중 일부가 국도로 지정되어 있다. - 나무위키
청소년복합문화공간인 청본(淸本)이룸터에 이룸청소년도서관, 청본창작소 등이 자리한다.
샛골로 서쪽에 인천중부소방서 송림119안전센터가 자리한다. 앞쪽 사거리에서 금곡로 오른쪽에 동구청이 있다.
샛골로 동쪽 언덕에는 전도관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샛골로 언덕의 전도관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제2문 앞에서 서해랑길은 맞은편 우각로로 이어가야 한다.
샛골로를 따라 인천세무서 후문과 금창동행정복지센터로 이어지는 금창로 출입구를 지나왔다. 오른쪽 가림막 뒤에는 동구 송림동과 미추홀구 숭의동에 걸쳐 금송구역과 전도관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언덕에서 맞은편 우각로로 이어가야 하는데 언덕을 넘어 샛골로를 따라가고 말았다. 가림막 뒤 쇠뿔고개에 있었던 알렌별장 터에는 인천 전도관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알렌 별장은 호러스 알렌(주한 미국 총영사·대리 공사 재직기간 1884년∼1905년)이 고종황제의 땅 옆(숭의동 107번지 인근)에 지은 여름 별장이라고 한다. 알렌별장은 현재 전도관 자리, 창영동 쇠뿔고개로 불리는 곳에 세워졌는데, 경인철도가 이 별장 앞을 경유해 지나갔고 그를 위해 우각리역이 조성됐다고 전해진다.
미추홀구에 있던, 개항기 미국인 호러스 알렌의 별장 터에 전도관이 세워져 있다. 알렌(Horace Newton Allen)[1858~1932]은 대한제국 시기에 활동한 미국의 외교관이자 선교사이다. 조선인의 하와이 이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알렌은 인천에 자주 들렀어야 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러기에 인천에 별장을 건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알렌 별장은 1893년 건립되었으며, 지상 2층의 본관과 단층의 부속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관은 벽돌조로 연면적 202.2㎡였으며, 부속 건물은 관리인 주택 1동과 창고 1동이었다. 1905년 알렌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이 건물은 이완용의 아들인 이병구, 서병의 등의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일본인에게 매각되었다. 알렌 별장은 1930년 5월 28일자로 이성희에게 이전되었고, 1956년 11월 15일 박태선에게 매각되어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인천 전도관이 들어섰다. 인천 전도관 건물은 지금 빈 건물로 남아 있다. 도원역에서 샛골로를 따라 인천광역시 동구청 방향으로 진행하다 우회전해서 우각로로 올라서면 언덕 꼭대기에 비어 있는 교회 건물이 남아 있는데 이 자리가 알렌의 별장 터이다. 현재 알렌 별장 터에는 한때 인천 전도관으로 사용되었던 2층의 교회 건물이 방치된 채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출입구를 자물쇠로 막아 놓아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샛골로 언덕에서 우각로를 따라가야 하는데 잘못하여 샛골로를 따라 도원역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우각로 갈림길에서 우각로로 이어가지 못하고 샛골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고 말았다.
수도권전철 1호선 도원역 앞까지 왔다. 건너편은 도원사거리이며 도원역 오른쪽에 한국철도최초기공지비가 있다고 한다.
도원역(桃源驛)은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과 중구 도원동, 미추홀구 숭의동에 걸쳐있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전철역이다. 역 앞에 한국철도최초기공지비(韓國鐵道最初起工址碑)가 있으며,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에도 이 기념비가 그려져 있다. 역 인근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있다. - 위키백과/ 도원역은 1994년 7월 11일 경인선 운전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역사는 지상 2층 구조로 역명이 유래한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장천리와 독각리 일부를 떼어 새 마을을 만들면서 주위에 복숭아밭이 많다 하여 도산정이라 이름 붙인 것에서 유래하였다. 광복 후 일본식 이름인 도산정을 도원동으로 바꾼 것이다. 맞은편에 인천 축구전용경기장과 인천 도원실내체육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런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도원역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연결한 지하도에 인천의 스포츠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타임라인이 조성되어 있다. 옛 숭의종합경기장의 건립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알아보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문
수도권전철1호선 도원역에서 동인천역 방향을 바라본다. 샛골로73번길 일대는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이라 지정되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배다리역사문화마을 : 개항 이후 일본인들에게 개항장 일대 삶의 터전을 넘겨줘야 했던 조선인들이 모여 살면서 배다리 마을이 형성되었다. 과거 이곳엔 성냥·간장·고무신 공장 등 조선인들의 일터가 있었고, 마을 주변에 헌책방이 들어서면서 지성인들의 사랑방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 창영동, 금곡동 일대 배다리역사문화마을 내 인천창영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배다리 사람들의 옛 모습과 생활 등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로드갤러리가 조성되어 예쁜 그림 작품 등을 거닐며 감상할 수 있다. - 동구문화관광
도원역까지 내려갔다가 전도관구역 주택재개발 지역 제2문 앞 우각로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우각로를 따라 배다리골 지역으로 내려간다.
인천에 '배다리골'이라는 곳이 있다. 동인천역 앞이다. 동구 금창동과 창영동, 송현동 일대를 아우른다. 예전에는 이곳에는 수문통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이 있었고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배다리라는 이름은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배다리골은 흥미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근대와 현대와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고층 아파트와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근대건축물이 나란히 서 있다. 1960~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도 만날 수 있다. 배다리골의 시작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9년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고 제물포에 조선 침탈을 위한 조계지가 만들어지자 그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배다리와 송현동, 수도국산 주변으로 몰려든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공장과 학교가 세워진다. 당시 중심 거리였던 우각로에는 외국인 여선교사 사옥, 창영초등학교 등 근대 건축물이 들어선다. 한국전쟁 후에는 고향을 잃은 피란민들도 모여든다. -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 배다리골 우각로 - 낡은 골목길의 진화 (길숲섬, 최갑수)
인천세무서는 인천지방국세청 산하 세무서로, 관할구역은 인천광역시 동구, 중구, 미추홀구, 옹진군 지역이라고 한다.
우각로를 따라 창영사회복지관과 창영교회 앞을 거쳐간다.
창영종합사회복지관은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 소속으로 2003년 6월 22일 개관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인천광역시 동구 우각로 57번지(창영동)에 세워진 창영 교회(기독교 대한 감리회)에서는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라는 선교 정신을 설립의 취지로 (구)기독교 종합사회복지관 부지를 2003년 3월 31일 매입,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 소속으로 2003년 6월 22일 개관하였다. 위와 같은 취지로 세워진 복지관은 지역사회의 종합적인 사회복지센터로서 지역의 필요와 요구에 다가서는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을 함으로써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창영종합사회복지관 사이트
창영교회(昌榮敎會)는 대한민국의 감리교 교회이다. 인천 동구 창영동에 있다. 창영감리교회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인천 동구 창영동의 영화여자보통학교 부설 영화유치원에서 96명의 신자가 창립 예배를 본 것이 시초이다. 교회 설립의 취지는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겠다"였다. 초대 담임목사는 갈홍기가 맡았다. 이후 인천 지역 선교중심지로 발전해 왔으며, 여러 교회를 분립시키고 개척해 왔다. 특히 인천 지역 최초의 기독교 학교인 영화여학교와 함께 교육과 선교를 병행해 왔다. 1991년 카자흐스탄에 알마아타 감리교회를 창립하는 등 해외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해 왔다.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인 전밀라가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 재직한 곳이기도 하다. - 위키백과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뒤쪽에 영화초등학교 본관동이 있다.
서구식 신식교육의 선구지로 꼽히는 영화학당은 1892년 존스 목사 내외에 의해 설립됐고 이후 8월 사립학교로 영화학교가 탄생했다. 당시의 수업 과목은 산수·영어·성경·지구약론·바느질 등으로 다양했다. 당시 학생수가 10명이 안됐던 영화학원은 1902년 미국인 카루렌씨가 1천달러를 학교건축기금으로 희사하였으며 26평의 벽돌교사를 신축하면서 학생수도 늘고 교과목도 무려 16가지로 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영화초교 본관동 교사는 1909년 쇠뿔고개(창영동)에 학교부지를 구입하고 1910년 3월 30일에 착공하여 지금의 영화초교 본관동에 이르고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맞으면서 영화학당은 ‘식민지 교육’ 실시 등의 일제정책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1930년대에 이르러는 관립학교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나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유아교육의 개척자 서은숙 박사, 이화여대의 교육자 김애마 학장, 전 이대 예술대학장 김영의 여사, 전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 탤런트 황정순 여사 등을 배출한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를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다. - 동구청
2022년 2월 14일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창영어린이공원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고 준공식을 개최했다. 창영어린이공원에는 산책로, 짚라인, 시소, 미끄럼틀, 트램펄린, 흔들의자 등의 어린이 놀이시설과 노장년의 건강관리를 위한 운동기구 등의 편의시설이 조성됐다. 출처 : 시사브리핑(http://www.nanews.co.kr)
샛골로에서 우각로로 들어와 창영교회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앞을 거쳐 창영어린이공원 앞으로 이어왔다.
우각로를 따라 창영초등학교 입구로 이어간다.
동구민방위교육장 옆 벽에 인천의 3·1운동 발생지 안내글이 적혀 있고, 이 지역 관련 게시판들이 전시되어 있다.
왼쪽 벽에 인천의 3·1운동 발생지 안내글이 적혀 있고, 오른쪽 벽에 이 지역 관련 게시판이 전시되어 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비폭력 평화시위 만세운동입니다. 3.1운동 당시 일본의 영향력이 큰 지역인 인천의 심장부에 위치한 '창영초등학교'가 인천 3·1운동의 발상지로 인천 시내 중심으로 경인가도, 만국공원, 관교리, 황어장, 인천서구 지역 등에서 항일독립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참가인원 68,100명/ ·사망자 1,409명/ ·부상자 2,677명/ 체포자 4,220명
한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의 출발지 "영화학당” : 영화학당(영화초교)은 1892년 4월 30일에 존스 목사와 그의 부인인 벵켈 선교사가 내리교회의 전교사였던 강재형의 딸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의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소수의 여학생을 대상으로 산수·영어·성경·지구약론· 바느질 등을 가르쳤다. 1902년 미국인 카루렌씨가 1천 달러를 학교건축기금으로 희사하면서부터 26평의 벽돌교사를 싸리재(경동)에 신축하면서 학생 수도 늘고 교과목도 무려 16가지로 늘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909년 쇠뿔고개(우각리 42번지)에 대지 1,226평을 구입한 후, 1911년 9월 14일에 건평 212평의 2층 교사를 짓고 이사를 하였다. 당시의 건립된 교사는 지금의 영화초교 본관동이며 현재는 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맞으면서 영화학당(영화초교)은 '식민지 교육 실시 등의 일제정책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1930년대에 이르러는 관립학교에 밀려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나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유아교육의 개척자 서은숙 박사, 이화여대의 교육자 김애마 학장, 전 이대 예술대학장 김영의 여사, 전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 탤런트 황정순 여사 등을 배출한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를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국 기독교 신학의 선교기지 '우각로' : 1897년 미 북감리회 선교사 존스는 한국 서지방(인천, 강화, 남양, 황해도 연안 등) 선교를 위한 선교기지를 우각리에 세웠다. 1895년 600달러를 들어 우각리 38번지와 42번지 일대를 매수하였고 1897년 7월 뉴욕주 감리교 감독인 휴즈 목사의 재정지원을 받아 벽돌조 1층 건물을 건축하고, 이 건물의 명칭을 미국 최초로 감리교를 선교한 에스베리 목사처럼 기독교 불모지인 한국 서지방을 선교하고자 에스베리 목사관(현 창영교회 자리)이라 정하고 교세 확장에 노력하였으며, 1900년에는 이곳에서 한국최초의 신학월간지인 "신학월보"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00년 6월에는 제물포교회(현 내리교회)의 구 예배당의 건축자재를 재활용해 우각리에 에즈베리 예배당을 건축해 제물포교회의 임시예배처로 사용했으나 1902년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소실되었다. 그렇지만 이 터전 위에 1904년에는 2층 규모의 아담한 남선교사 숙소(현 인천세무소 현관 자리)를, 1905년에는 여선교사 기숙사를 건축하여 미국인선교사 숙소뿐만 아니라 인천, 부평, 부천, 강화 등 도서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이곳의 성경교육을 통해 각 지역의 선교를 확장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철도의 발원지 '우각리' : 한국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고종황제로부터 경인철도 부설권을 특허 받아 미국인 거상 타운젠트와 함께 인천에서 한국개발공사를 설립하고 1897년 3월 22일 우각동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모스는 자금난과 기술문제로 공사가 지연되자 1899년 1월에 철도부설권을 일본의 경인철도인수조합에 넘기었다. 이후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1899년 9월 13일에 경인선의 개통식을 갖고 임시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개통된 역은 제물포-축현-우각동-부평-소사-오류동-노량진이었다. 당시 축현역(동인천역)과 현재의 주안역 사이의 경인선 선로는 직선으로 공사할 수 있었지만 우각동역(牛角洞驛)을 경유하느라 곡선으로 약간 휘어 있었다. 또한 우각동역 일대는 경인선 개통 당시 인천의 교외 지역이었으며, 여객 수요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각동역이 설치된 이유에는 미국공사 알렌(Horace N. Allen)의 영향이 컸는데, 알렌의 별장이 우각동역 인근의 쇠뿔고개 위에(現 전도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스의 부설권을 매수한 일본으로서는 굳이 돌아가는 노선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에, 1906년 우각동역은 폐지되고 1908년 12월에 선로마저 이설되었다.
동구청민방위교육장 옆 벽의 게시판들을 살피고 창영초등학교 입구에서 걸어온 우각로를 뒤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