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7:12-22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다(12-15)
성경은 세상의 시작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태초에,” 시간과 공간이 생겨난 시점, 아니 그 이전부터 하나님은 살아계셨고,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말씀의 사람을 세워 자신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는가에 있지 않고, 주어진 그 말씀을 우리가 듣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가려는 인간의 본성, 매일 반복되는 죄의 굴레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교만함, 말씀을 따르지 않으려는 완고함이 아직도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말씀에 귀를 닫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심판과 멸망을 목전에 둔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입니다.
(12-13)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어찌하여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전한 말씀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너의 판단대로 정하지 말고, 너의 뜻을 앞세우지도 말고, 하나님이 이끄심대로 따르라는 말입니다. 바벨론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사시리라,” 살길은 오직 그 길뿐입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만일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온 백성이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예레미야는 경고합니다. 이 내용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선포되었지만, 실제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와 정반대의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왕을 섬기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14-15)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의 내용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다는 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등에 업고, 거짓을 말했던 것입니다. 이는 십계명 중 제3계명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일이었으며,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 할 크고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신명기 18장 20절입니다.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럼에도 그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속여 전합니다. 그렇게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저들의 거짓을 드러내시고, 끝내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에도 그들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교묘한 말로 백성을 미혹합니다.
성전의 기구로 거짓을 말하다(16-22)
(16-17)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
앞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을 근거로 거짓을 말했다면, 이제 눈에 보이는 ‘성전의 기구’를 근거로 거짓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 거짓 선지자들은 빼앗긴 성전의 기구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도 ‘속히’ 돌아온다고 강조합니다. 남유다의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있어 성전의 기구가 돌아오는 일은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포로의 시대가 종식되고, 완전한 해방이 임했음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다시 한번 단호히 말합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나님이 정하신 남유다의 길은 즉각적인 회복이 아닌 심판이었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심판이라는 현실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직 그 길만이 유일한 살길입니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그들의 주장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힙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18-19)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과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그들이 참 선지자라면, 바벨론에 빼앗긴 기구가 돌아온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남은 성전의 기구를 빼앗기지 않도록 간구해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합니다. 왜냐하면 참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심판의 메시지, 바벨론의 멍에를 받아들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거짓 선지자들은 결코 심판은 없을 것이며, 회복과 평안만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쩌면 이 말은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이기 전에 남유다 백성의 욕심과 욕망이 빚어낸 헛된 기대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지도 않습니다. 심판의 경고를 외면한 채,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말씀에는 귀를 닫고, 거짓에는 귀를 열고, 미혹된 말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그들이 그토록 의지하고 붙들었던 성전의 기구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본문 20-21절입니다.
(20-21) 이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인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가져가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여고니야, 곧 여호야긴 왕이 즉위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왕족과 귀족을 비롯한 남유다의 핵심 지도층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왕하 24:13-16), 그때 약탈되지 않고, 남겨진 왕궁과 성전의 물건들이 바로 본문에 언급된 그 기구입니다. 남유다 백성에게 이 기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기구를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들과 함께하신다는 증거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기구가 남아 있는 한 자신들의 안전과 번영도 보장될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아닌 성전의 기구를 더 의지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기 위해 주어진 물건이 하나님을 대체하고,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의 ‘우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왜곡된 믿음의 대상이 된 성전의 기구를 바벨론으로 모두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성전의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진다는 말은 단순히 물건의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남유다의 왕과 제사장과 백성까지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심판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정하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통받는 그 시간에도 그들을 돌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또한 하나님은 비참한 포로 생활이 끝나는 그 순간에도 함께하시며, 결국 그들을 다시 고향으로 인도하여 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심판은 그들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계획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교만하고 완고한 백성이 그 말을 듣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레미야 1장 10절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텅 빈 곳에 다시 심으시는 하나님.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파괴와 파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 심판 너머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회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포할 때부터 회복을 계획하셨고, 그 심판마저도 회복을 이루시는 과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소망은 눈앞의 현실이나 사람의 말에 있지 않고,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영미권에서 널리 사랑받는 찬양 가운데 “약속의 찬양(Hymn of Promise)”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작곡가 나탈리 슬리드(Natalie Sleeth)는 암으로 투병하는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이 찬양을 썼고, 곡이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찬양 속에는 고통스러운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뿌리 속에도 꽃이 있고, 씨앗 속에도 나무가 있으며, 차가운 겨울의 눈 속에도 봄이 있습니다. 때가 되기 전까지 감추어져 있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제한된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남유다 백성은 바벨론의 침략과 당장 펼쳐질 포로 생활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너머의 회복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심판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 너머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순복(順服)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획대로, 그분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내 계획이나 내 뜻대로 바꾸어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그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인생의 주도권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알게 되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섭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뜻을 바라보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욕망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주님의 이끄심이 내 생각이나 바람과 다르다 할지라도, 기꺼이 주님께 순복하는 인생, 곧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행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약속의 말씀이 있는 줄 믿습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그 뜻을 보게 하시고, 순종의 귀를 열어 그 말씀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세속적 가치관보다 하나님의 뜻을 주목하며, 거짓 된 사람의 말보다 진리의 말씀을 더욱 붙드는 순복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심판 중에 회복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끝내 회복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완전하신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 맡긴 믿음의 사람들과 오늘 하루도 동행하여 주시고, 부르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을 경험하는 매일의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달콤한 사람의 거짓말과 하나님의 말씀 중에 무엇을 신뢰하며 살고 있나요?
2.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믿고 의지하는 내 삶의 ‘성전의 기구’는 무엇인가요?
3. 하나님이 이끄시는 인생의 방향이 내 뜻과 다를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4. 하나님께 순복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