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마미술관 <키스 헤링전> 전시장 앞에 선 한결이
외손자 한결이가 외갓집( ― 우리집입니다 ^^^ ― )에서 이틀 밤 자고 갔습니다.
여름방학인데, 손자가 외갓집에 다녀가지 않으면 그게 어디 방학이냐는 아내의 지론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지난 3월, 한결이가 처음 외갓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을 때,
집으로 돌아간 한결이가 다시는 외갓집에 가서 자고 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는 딸 하루의 말과 달리,
확인에 들어간 아내와의 통화에서 "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라고 말한 한결이의 대답 둘 중에서 어느 것이 정말일까,
나도 궁금했었는데 , 여섯 달이 흐른 지금 한결이가 외갓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으며,
그것도 2박 3일, 그러니까 두 밤을 자고 간다니 '역시 내 새끼야' , 아내의 기쁨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한결이가 온다는 전날,
아내는 예상했던 대로 한결이가 잘 먹는 쇠고깃국부터 한 솥 끓여 냈습니다.
보나마나 한결이가 저 많은 국을 다 못 먹을 테니,
남은 고깃국 내가 한 며칠 질리도록 먹을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합니다. ^^^
딸네 세 식구가 저녁 먹고 돌아가고, 드디어 한결이가 혼자 남았습니다. ^^^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한결이, 외할아버지 컴퓨터 제 컴퓨터인양, 제 멋대로 컴퓨터 켜고 게임에 열중합니다.
옆에서 들여다보니 게임 제목은 케로로 팡팡,
우주의 몬스터들을 제거하는 내용인데 게임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나도,
거침없이 몬스터들을 총으로 쏴 사살하는 중에 한결이의 심성이 무자비한 성격으로 변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
이튿날 아침, 한결이와 함께 잔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결이는 아직도 침대 위에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습니다.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결이가 이제 다 컸구나' 대견하기 그지 없습니다.
동생 한새를 끔찍이도 위해 주는 평소 태도를 보면 형제간 우애도 참 돈독한 것 같아 마음 흐뭇합니다.
낮에는 교육문회회관 수영장에 놀러 갔습니다.
김밥에 과일에 찬물에 그리고 코스트코에 들러 튀긴 닭과 카레밥 사니 한 짐 가득,
그래도 아내는 뭐 더 빠뜨린 것 없나 짚어보는 눈치입니다.
여름이 물러가는 시점이라 선탠하는 젊은이들이 없는 성인 풀장은 조금 한산했습니다.
이 곳은 여름방학 때마다 몇 번 찾아와 수영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편한 곳입니다.
한결이가 어린이 수영교실에서 수영을 배웠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수영을 시켜보니 팔로 물을 당기는 자세는 괜찮았으나 거리는 몇 미터 못 가니 초보 수준입니다.
멀리 가는 영법을 한참 가르치다보니 눈치 빠른 안전요원 다가와 한결이가 몇 살이냐고 물어 봅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라고 대답하니까, 이번에는 한결이에게 몇 년 생이냐고 확인을 합니다.
순진한(?) 한결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데, 안전요원 내 얼굴 한 번 보더니 그냥 갑니다.
중학생 이상만 하는 풀장에 초등학생 왔으니 '수영 불가'지만,
손자 앞에서 할아버지 체면 세워주느라 눈 감아준 그 안전요원 인격이 훌륭합니다. ^^^
미끄럼틀에서 한 번 타고 내려온 한결이가 두 번째는 나와 함께 타겠다고 합니다.
가만히 눈치를 보니 재미는 나지만 겁이 났나 봅니다.
손자를 위해서 무엇을 못 할까, 한결이 손 잡고 미끄럼 틀 위로 올라갔습니다.
안전을 위해 2단으로 된 미끄럼틀인데도,
속도도 빠르고 물보라도 튀겨 앞을 못 보니 잠깐 동안 위험한 순간이 있어서 한결이가 겁을 낼 만하구나 했습니다.
다음날 한새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한결이를 데리러 딸 하루가 왔습니다.
모자상봉, 이틀 만이라서 그런지 그다지 감격적이지는 않았습니다 ^^^
소마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키스 헤링전>을 관람했습니다.
무엇인가를 향해 짖고 있는 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아기,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춤 추는 어른.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은 봤을 것 같은 친숙한 캐릭터가 전시실마다 가득 넘쳐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32살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숨을 거둔 젊은 화가.
단순한 선, 강 렬한 원색, 너무나 쉬워 보이는 캐릭터에서 묻어나는 인간미.
그래서일까,
전시장은 20대 젊은 남녀들이 만화 컷 같은 작은 작품 앞에서 골돌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였습니다.
한결이보다는 오히려 딸과 아내가 작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친구와 함께 다시 한번 오겠다고 할 정도로 작품이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소마미술관,
이곳에서 야외 조각작품 해설을 하는 나는,
손자인 한결이에게 외할아버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기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음에는 <장미광장>에 갔습니다.
장미꽃도 아름답지만,
여기도 외할아버지인 내가 자원봉사하는 곳이라 외손자인 한결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무엇인가 통하고 유전되는 법,
이심전심, 낱말 그대로 은퇴 후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내 뜻이 전해지겠지,
한결이의 손 잡고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